[고전의 시작] 마키아벨리, 《군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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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국가가 필요하다_ 마키아벨리, 《군주론》

《군주론》, 논란을 불러일으키다

제가 가진 것은 근래에 일어난 여러 가지 일에 대한 경험, 그리고 옛것을 끊임없이 연구하여 터득한 위대한 인간들의 행적에 관한 지식뿐입니다. 제가 오랜 시간 상당한 노력으로 연구하고 알아낸 지식입니다. 이제 그 지식을 이 작은 책에 담아 각하에게 올리고자 합니다. …… 이 책에는 세상 사람들이 글을 쓰거나 꾸밀 때 사용하는 미사여구와 과장된 술어 그리고 비본질적인 문장 수식을 일절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 책으로 명성을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내용의 진실성과 주제의 중요성을 각하께서 받아들여주시기만 바랄 뿐이기 때문입니다. …… 각하께서 이 책을 소중히 여기시어 읽어주신다면 운명의 신과 각하의 능력이 각하에게 길을 터주어 틀림없이 위대한 자리에 오르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 최고의 소망입니다.

1513년 마키아벨리(Niccoló Machiavelli, 1469~1527)가 당대 이탈리아 피렌체의 권력자인 로렌초 데메디치(Lorenzo de Medici)에게 편지를 보냈다. 자신의 책을 헌정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때 로렌초 데메디치에게 바친 책이 바로 《군주론(Il principe)》이다. 마키아벨리는 이 책으로 명성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오늘날까지 명성을 얻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말대로 미사여구나 과장된 술어, 문장 수식을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을 직설적으로 숨기지 않고 그냥 썼다. 책의 분량도 많지 않아 마키아벨리 자신도 이 책을 소책자인 ‘팸플릿’이라고 불렀을 정도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역사상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책 중의 하나다. 이 책은 마키아벨리 생전에 출판되지 않았다. 이 책이 출판되자 로마 가톨릭 교황청은 금서로 정하고 불태워버렸다. 또한 사람들은 마키아벨리를 ‘파렴치한 정치 이론가’로 몰아붙였고 급기야 마키아벨리를 폭력의 화신, 권력의 화신으로 낙인찍었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뜻의 ‘마키아벨리즘’이라는 단어도 만들어졌다. 그러나 오늘날 마키아벨리는 정치사상과 윤리를 구별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마키아벨리는 실제 정치 과정에서 폭력이나 기만이 있게 마련이므로 정치사상에서 그런 폭력이나 기만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마키아벨리는 정치사상을 현실의 토대 위에 세우고자 했다. 지금도 마키아벨리의 주장은 현실 정치를 분석할 때 주요한 이론으로 사용되고 있다.

 

르네상스의 아들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독일의 역사학자 랑케(Leopold von Ranke)는 “어떤 역사적 사실은 그 사실이 발생한 시대의 역사적 환경 속에서만 바로 이해될 수 있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마키아벨리를 이해하려면 마키아벨리가 활동하던 시간과 공간을 알아야 한다.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은 시대의 산물이다.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조국이 처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 당시 마키아벨리의 조국 피렌체를 포함한 이탈리아는 대내외적으로 처참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작은 나라들로 분열된 이탈리아는 내부 경쟁에 휘말려 있었고 외세의 침략에 시달렸다. 마키아벨리는 혼란한 정치 상황에서 조국의 부국강병을 위해 노력하는 공무원이었다. 전쟁에서 패한 조국을 위해, 힘이 없어 눈치를 보아야 하는 조국을 위해 다른 나라와 협상을 해야 하는 외교관이었다. 외교 활동을 하면서 ‘강한 조국’을 건설해야 한다는 신념과 열정이 싹텄다. 마키아벨리는 그런 나라를 만들 군주를 기다렸다. “오랫동안 기다림에 지친 이탈리아에는 구세주가 나타나야만 한다. 지금까지 이방인의 홍수에 밀려 그토록 진통을 겪어온 이탈리아 방방곡곡에서 얼마나 큰 우러름으로 구세주를 맞아들일 것인가! 복수의 갈망, 충성의 일념, 존경심 그리고 기쁨의 눈물. 형언할 수 없이 큰, 이 모든 것을 갖고 이분을 맞을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활동할 무렵 이탈리아에는 르네상스의 물결이 휩쓸고 있었다. 르네상스의 핵심은 ‘인간의 발견’이다. 중세의 사상은 신과 도덕과 윤리가 중심이었다. 정치란 신의 뜻을 경건하게 받들어 지상에서 신의 왕국을 실현하는 일이었다. 신학적인 윤리 도덕과 구분되는 별개의 정치사상이란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르네상스를 통해 이런 흐름이 무너졌다. 정치는 신의 은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고 덕분에 정치사상도 신학적인 윤리와 도덕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정치란 때로 폭력과 기만이 동반되는 것이었다. 정치가 항상 윤리적인 행위, 도덕적인 행위가 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감히 주장할 수 없었다. 그러다 과감하게 이런 주장을 처음으로 펼친 것이 마키아벨리였다. 마키아벨리는 바로 ‘르네상스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다.

 

위대한 군주의 두 가지 덕목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주장하는 핵심을 정리하면 간단하다. 《군주론》의 대상은 군주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을 실천할 사람은 일반 국민이 아니라 군주다.

마키아벨리는 인간이 쉽게 변하고 힘에 따라 좌우되는 존재라고 말한다. “인간은 두려워하는 자보다 애정을 느끼는 자를 더 쉽게 배반한다. 원래 인간은 사악하여 단순히 의리에 매인 정 같은 것을 자기의 이해에 따라 언제나 서슴없이 끊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 앞에서는 처형의 공포로 꽉 얽매어 있기 때문에 결코 모르는 체할 수가 없다.”

군주는 이런 인간의 본성을 염두에 두고 통치해야 한다. 군주는 국민을 대할 때 진실하면 안 된다. 항상 자신의 생각을 숨기고 가장해야 한다. 본심을 드러내면 국민이 군주의 본심을 이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군주는 국민들로부터 사랑보다 존경을 받아야 한다. 신하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조언이 필요하면 항상 소수에게 은밀히 구해야 한다. 그리고 신하들을 통제하기 위해 항상 주의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국가를 다스리는 일은 개인적인 일과 다르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한다. 군주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따라서 군주는 국가를 통치할 때 이런 국가의 성격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개인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일도 군주에게는 허용된다. 예를 들어 무자비한 폭력이나 기만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마키아벨리는 폭력이나 기만을 결코 찬양하지 않는다. 그러나 군주는 국가를 위해 폭력을 단호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키아벨리는 한니발을 예로 들었다. “한니발은 수많은 인종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군대를 이끌고 이국땅에서 싸웠지만 전세가 유리할 때나 불리할 때나 군대 안에서 병사들 간의 내분이나 지휘관에 대한 모반이 없었다. 한니발의 비인도적인 잔인성 때문이었다. 부하들은 몇 가지 다른 덕목과 함께 극도의 잔인성을 갖춘 이 지휘관을 항상 숭고하고 두려운 인물로 바라보았다. 한니발이 이런 기질 없이 덕만 있었다면 성과를 올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저술가들은 이 점을 깨닫지 못하고 한편으로는 한니발의 위업을 찬양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성공의 기본 동기인 한니발의 잔인성에 비난을 퍼붓는다.” 군주에게 두 가지 덕목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한편으로는 인자하고 자비로워야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잔인해야 한다.

 

강력한 국가란 무엇인가?

마키아벨리는 국가가 강해지려면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나는 훌륭한 법률이고 다른 하나는 훌륭한 군대다. 이 중에서 마키아벨리는 훌륭한 군대를 더 중요시했다. 힘이 없다면 법률을 제정할 수도, 집행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군대는 반드시 국민이 직접 병역의 의무를 지는 국민군 형태여야 한다. 당시 이탈리아 군대는 상당수가 용병이었다. 용병은 돈에만 관심이 있지 싸움에는 관심이 없다. 또 용병의 힘이 지나치게 강하면 그 용병을 쓰고 있는 나라에 해가 될 수도 있었다. 따라서 군주는 반드시 국민군을 가져야 한다. 마키아벨리는 이것을 몇 번이나 힘주어 강조했다. “민족 해방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쳤던 옛 위인들을 본받으려면 무엇보다 먼저 군사행동의 진정한 기틀, 즉 자국민만으로 구성된 병력을 길러야 한다. 이들이야말로 가장 강하고, 가장 충실하고, 가장 우수한 병사들이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훌륭한, 이들 병사가 한데 뭉쳐 총명한 군주의 지휘를 받고, 후대를 받고, 영광을 얻는 날에는 더욱 우수한 군대가 될 것이다.”

정리하면, 《군주론》의 내용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마키아벨리는 인간의 본성이 사악하고 변덕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당대의 시대적 상황 때문이었다. 정치적 혼란과 약육강식의 전쟁터에서 마키아벨리는 사악한 인간을 발견했던 것이다. 둘째,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인자함과 잔인함을 함께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군주가 자기의 본심을 드러내지 말고 신하를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군주권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마키아벨리는 당시의 정치적 혼란을 종식시킬 실질적인 힘이 군주에게만 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군주는 약한 군주가 아니라 강한 군주여야 한다. 셋째, 마키아벨리는 국민군의 양성을 주장했다. 이탈리아를 통일하고 외세의 침략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군대가 절대로 필요하다. 조국을 사랑하고 전쟁을 자신의 일로 여겨서 목숨을 걸고 싸울 군대가 필요하다.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은 흔히 중국의 법가 사상과 비교된다. 법가 사상가들 역시 전국시대라는 정치적 혼란과 약육강식의 전쟁을 끝내기 위해 강력한 군주의 등장을 주장했다. 마키아벨리의 사상이든 법가 사상이든 오늘날의 현실에는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의 사상이 읽히는 이유는 경계로 삼기 위함일 것이다.

 

홍승기
인민노련 홍보부를 담당하면서 6월 항쟁을 현장에서 이끈 숨은 일꾼. 술만 사 준다면 지옥에도 함께 들어갈 천진무구한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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