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시작] 《바가바드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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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깨달음에 이르는 길
_ 《바가바드기타》

 

전쟁에서 대화가 시작되다

쿠루족의 왕 판두가 다섯 명의 아들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나자 그의 형인 드리타 라스트라가 왕위를 이어받았다. 드리타 라스트라에게는 100명의 아들이 있었다. 판두의 다섯 아들과 드리타 라스트라의 100명의 아들 사이에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갈등이 생겨났다. 그런데 드리타 라스트라의 맏아들 두로다나가 왕권을 강탈하자 판두의 아들들이 반발하여 전쟁이 일어났다.
두로다나가 이끄는 부대와 판두의 맏아들 유디스티라가 이끄는 부대가 대결했다. 진영을 비교해보니 두로다나의 부대가 우세했다. 당대 최고의 명장 비스마 장군이 두로다나의 부대에 가담했다. 전쟁은 18일간 계속되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전쟁은 유디스티라 부대에게 유리하게 진행되었다. 전쟁 10일째 되는 날, 두로다나 부대의 상징 비스마 장군이 전사했다. 비스마 장군의 죽음으로 전세가 급격하게 유디스티라 쪽으로 기울었다. 결국 전쟁은 유디스티라 부대의 승리로 끝났다.
전력이 불리함에도 유디스티라 부대가 승리한 데에는 신의 화신, 크리슈나가 그 부대에 합류한 것이 큰 힘이 되었다. 그는 유디스티라의 셋째 동생 아르주나의 마부로 전쟁에 참여했다. 크리슈나가 참여했다는 건 신이 유디스티라 부대를 지지했음을 의미했다.

왕위를 둘러싼 쿠루 크세트라 전쟁의 경과다. 이 전쟁에 참가한 아르주나와 크리슈나는 장군과 마부의 사이였다. 둘은 많은 대화를 나눈다. 처음에 아르주나는 고민했다. 아르주나의 입장에서 이 전쟁은 왕위 찬탈자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다. 그렇지만 형제들의 골육상쟁(骨肉相爭)이다. 아무리 정의롭다 해도 형제 사이에 처참한 전쟁을 해야 하는가. 크리슈나는 아르주나를 격려하며 전쟁에 참여하도록 이끌었다.

이 두 사람, 아르주나와 크리슈나의 대화를 기록한 책이 《바가바드기타》다. ‘바가바드기타’는 ‘지존자의 노래’라는 뜻이다. 《바가바드기타》는 인도의 힌두교도들이 아침저녁으로 낭송하는 경전이다. 비폭력 무저항주의로 유명한 인도의 성인 마하트마 간디는 영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바가바드기타》를 읽고 평생 몸에 지니고 다니며 읽었다고 한다.

 

제사는 왜 지내나요?

인도의 브라만교, 힌두교를 대표하는 경전으로는 《베다》, 《우파니샤드》, 《바가바드기타》가 있다. 《베다》는 종교 지식과 종교 의식을 담은 경전이다. ‘베다’는 지식 또는 지혜를 뜻한다. 《베다》는 우주 만물에는 각기 신이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브라만교에서는 수많은 신을 섬겼다. 그런데 브라만교의 교리는 불교의 나가르주나에 의해 논파되었다. 나가르주나는 우주 만물은 공(空)이라 하여 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 나가르주나의 출현으로 불교가 인도에서 종교와 사상의 양 측면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이에 맞서 브라만교 내에서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시도가 생겨났다. 그 대표적 인물이 샹카라(700~750)다. 샹카라는 사제 계급, 즉 브라만 계급 중심의 브라만교를 대중의 종교인 힌두교로 재정비하는 작업을 했다. 그러면서 나가르주나의 공 사상에 맞서 새로운 사상을 제시했다. 그때 샹카라는 《우파니샤드》를 토대로 했다. ‘우파니샤드’는 ‘가까이 앉는다’는 뜻이다. 《우파니샤드》는 숲 속에서 학생들이 스승 가까이 앉아 가르침을 듣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공자의 가르침을 제자들이 적어놓은 《논어》와 상통한다. 소크라테스가 여러 사람과 주고받은 대화를 플라톤이 기록한 것과도 흡사하다.

<카타 우파니샤드>의 한 대목을 보자. 와즈슈라와라는 한 사제가 늙은 암소를 바치며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자 그의 아들인 나치케타가 묻는다. “제사는 왜 지냅니까?”, “늙은 암소를 바쳐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들의 질문을 거듭되었다. “아버지, 저는 누구에게 바칠 건가요?” 질문이 거듭되자 화가 난 아버지가 말했다. “죽음에게 주어버리겠다.” 아버지가 짜증나서 한 말일 뿐 결코 그럴 뜻은 없었다. 그러나 나치케타는 죽음의 신을 찾아갔다. 며칠을 기다린 끝에 죽음의 신을 만나 죽음에 대해 물었다. 죽음의 신이 말했다. “우주 만물의 본체인 브라만의 마음속에 갖추어진 아트만을 알면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

<카타 우파니샤드>는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가? 죽음의 신을 섬겨 죽음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는 헛된 일이다. 신들에 대한 헛된 신앙에 힘쓰지 말고 진리를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는 말을 하고자 했다. 신들에 대한 제사에 힘쓰는 아버지는 《베다》의 신앙을 잇는 구세대이다. 아들은 《우파니샤드》에서 말하는 진리를 찾으려는 신세대다.

《우파니샤드》는 모든 신위에 우주만물의 본체인 브라만이 있다고 한다. <케나 우파니샤드>는 말한다. “신들의 힘과 영광의 출처가 브라만이다.” 브라만은 신들의 본체인 아트만이기도 하다. 사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마음속 깊은 곳에 본체인 아트만이 있다. 그 아트만이 곧 브라만이다.

샹카라는 《우파니샤드》에 근거하여 나가르주나의 사상을 비판했다. 샹카라는 나가르주나가 무지하여 진실을 잘못 파악했다고 비판했다. 우리가 보는 사물들은 거짓이다. 거짓된 사물을 보고 실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면 망상이다. 망상에서 벗어나 진정한 존재인 브라만을 알아야 한다. 또한 브라만이 우리 마음속의 진정한 주체인 아트만과 일치함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이 세상의 좋은 향기이다

샹카라의 철학 역시 비판에 직면했다. 라마누자(1055~1137)는 샹카라 철학을 비판하며 힌두교의 근본 이치를 재정립하고자 했다. 라마누자는 샹카라가 세상은 거짓이라고 말한 것에 대해 세상은 물질로 이루어졌으므로 존재한다고 했다. 샹카라가 망상에서 벗어나야 브라만을 알 수 있다고 말한 것에 대해 라마누자는 세상을 통해 브라만에 다가갈 수 있다고 했다. 라마누자는 《바가바드기타》를 해설하면서 자기 철학을 밝혔다. 《바가바드기타》의 제7장 12번 노래를 보자.

선의 격정과 암흑의 요소를 지닌 존재는
모두 나에게서 나왔다.
그러나 나는 그것들 안에 있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들이 내 안에 있다.

크리슈나가 아르주나에게 한 말이다. 만물은 신, 즉 브라만에게서 나왔다. 신은 만물의 본체다. 그러나 신은 만물 속에 있지 않고 만물이 신 속에 있다. 이 부분에 대해 라마누자는 이렇게 해설했다. “신은 만물의 가장 순수한 형태다. 신에게서 나와 제각기 개성과 특성을 가지게 된 만물은 신에 의존한다. 신은 만물의 아트만(진정한 주체)이므로 만물에 의해 제약된다. 만물은 신이 몸을 구성하면서 신에 의존한다. 그러나 신은 만물에 의존하지 않는다. 사람은 신체가 아트만에 의존하고 있으면서 아트만을 지탱하는 목적을 수행한다. 신은 만물 너머에 있다. 왜냐하면 신의 성스러운 특징은 신에게만 있고 만물은 신의 특징을 수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신은 만물의 가장 순수한 형태이고 만물은 신에게서 나왔다. 그래서 신은 만물과 하나다. 따라서 만물에서 신으로 나아가는 길이 열린다. 《바가바드기타》는 이런 진리를 일깨워주고자 한다. 일상의 삶 속에서 우주 만물의 본체를 알 수 있고, 따라서 절대적 진리를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일상의 삶이 의미가 있다.

 

우리 안에 있는 두 본성의 싸움이다

그러나 신은 만물과 다르다. 신은 성스러운 특징을 가지므로 만물 너머에 있다. 그러므로 만물에서 신으로 나아가려면 비약해야 한다. 일상의 삶을 넘어서야 한다. 그러면 일상의 삶을 초월하여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다. 삶의 자세와 관련하여 《바가바드기타》는 헌신적인 삶을 강조한다. 아르주나가 크리슈나에게 물었다. “헌신과 명상 중 어느 것이 더 완벽한 길인가?” 크리슈나는 단호하게 ‘헌신’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헌신적인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했다.

그 누구도 미워하지 않고
모든 존재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며
집착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
고통과 기쁨에
더 이상 휩쓸리지 않는 사람

《바가바드 기타》는 일상을 떠난 은둔이 아니라 적극적인 참여의 삶을 강조한다. 적극적인 삶을 표현하는 말이 ‘헌신’이다. 인도어로 ‘박티’라고 한다. 그러나 박티의 길은 쉽지 않다. 그 누구도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살면서 고통과 기쁨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면 다음의 것은 어떠한가?

그 마음이 넉넉하고 신념이 확고한 사람,
그 마음과 지성이
항상 나를 향하고 있는 사람
최선을 다하지만
그 결과에는 무관심한 사람,
순수하고 민첩하며
전혀 흔들리지 않는 사람,
복잡한 일거리를 모두 버리고
오진 나만을 향하는 사람

넉넉한 마음과 확고한 신념,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연연하지 않음, 단순하고 소박한 삶. 이 정도는 해볼 만하지 않을까. 문제는 어렵고 쉬움이 아니라 옳고 그름이다. 《바가바드기타》는 일상에서 옳은 일을 위해 헌신하라고 말한다. 그 일이 어려울수록 최선을 다하라고 한다. 그런 헌신하는 삶 속에서 진리를 깨닫게 된다.

인도의 성인 마하트마 간디는 《바가바드기타》를 이렇게 평가했다. “그것은 역사 논문이 아니다. 그것은 사촌들 사이에 벌어지는 전쟁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두 본성, 선과 악 사이에 벌어지는 전쟁을 서술하고 있다. 안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더 풍부한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모든 세대에 걸쳐 《바가바드기타》의 중요한 언어들은 새롭고 더욱 깊은 의미를 사람들에게 전해줄 것이다.”

 

 

홍승기
인민노련 홍보부를 담당하면서 6월 항쟁을 현장에서 이끈 숨은 일꾼. 술만 사 준다면 지옥에도 함께 들어갈 천진무구한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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