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시작] 토크빌, 《미국의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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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다수파에 따르라
_ 토크빌, 《미국의 민주주의》

 

토크빌, 예언을 하다

오늘날 세계에는 서로 다른 곳에서 출발했지만 같은 목적지로 향하는 것처럼 보이는 두 나라가 있다. 바로 러시아와 미국이다. 두 나라는 모두 눈에 띄지 않게 성장했다. 인류가 다른 곳에 관심을 두고 있는 사이에 두 나라는 돌연 세계 각국의 선두 대열에 뛰어들었다. 그래서 세계는 두 나라의 존재와 거대성을 동시에 알게 되었다. 다른 모든 나라는 이제 자연적 한계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자신들의 힘을 유지하고 있는 정도다. 그러나 미국과 러시아는 아직도 성장하고 있다. 다른 모든 나라는 발전이 멈추었거나 혹은 발전을 계속하는 것에 커다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만이 빠르게 전진하고 있고 그들이 가는 길은 끝이 없다. 미국은 자연이 가로막은 장애와 싸우고 있고 러시아는 인간과 싸우고 있다.

미국은 넓은 광야 그리고 야만 생활과 싸우고 러시아는 모든 무기를 동원하여 문명과 싸운다. 그러므로 미국인은 농기구로 쟁취하고 러시아인은 총칼로 쟁취한다. 미국의 국민은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여 목적을 달성한다. 그리고 국가는 국민이 힘과 상식을 자유롭게 발휘할 무대를 제공한다. 러시아는 사회의 모든 권력을 한 손에 집중한다. 미국의 주요 무기는 자유이고 러시아의 주요 무기는 예속이다. 미국과 러시아는 출발점도 다르고 가는 길도 서로 같지 않다. 그러나 두 국가는 조물주의 뜻에 따라 지구를 절반씩 나누어 운명을 좌우하도록 예정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토크빌은 1840년에 발표한 자신의 주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미국과 러시아에 대해 예언했다. 토크빌의 예언대로 20세기에 미국과 러시아는 지구를 반쪽으로 갈라 세계의 판도를 좌우했다. 이 두 나라 가운데 토크빌의 관심은 당연히 미국이었다. 그는 미국이 국민의 자유를 바탕으로 자연과 싸우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토크빌은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토크빌이 살았던 시기에 프랑스에서는 혁명과 반혁명이 교차했다. 토크빌은 1839년부터 1851년까지 국회의원을 지냈는데, 이때는 프랑스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1848년 2월 파리에서 노동자 봉기가 있어나 7월 왕정이 타도되었다. 이 시기에 토크빌은 부르주아 공화파로서 활동했다. 부르주아 공화파가 권력을 잡자 토크빌은 외무부 장관으로 활동했지만 1851년에 루이 나폴레옹이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은 후 외무부 장관에서 축출되었다. 토크빌은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들기 몇 년 전인 1831년 친구인 귀스타브 드 보몽(Gustave de Beaumont)과 함께 미국 여행을 했다. 여행의 목적은 그 당시 오직 하나뿐인 민주국가를 직접 관찰하는 것이었다. 이 여행은 10개월간 계속되었다. 두 친구는 미국의 여러 주를 둘러보고 미시간 호 연안의 원시림 지대까지 여행했다. 이 여행에서 두 사람은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했다. 한 번은 증기선이 좌초하는 바람에 토크빌은 심한 오한을 겪었고 그로 인해 폐가 약해졌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토크빌이 이때 직접 목격한 것을 바탕으로 쓴 저서다.

보편적인 법은 인류의 다수파가 만든다

토크빌은 수세기 동안의 서유럽 역사가 자유와 평등의 방향으로 움직여왔다고 보았다. 그런데 자유와 평등은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발전하지 않는다. 토크빌이 보기에 1789년 프랑스 대혁명으로 평등은 회복되었지만 자유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자유 없는 평등은 평등 없는 자유처럼 오래 지탱되지 않는다. 그러면 자유와 평등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 토크빌은 미국 민주제도의 성격과 작용 속에서 그 답을 찾으려고 했다.

보편적인 법은 한 국가 내의 다수파가 아니라 전체 인류의 다수파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인정받아왔다. 법은 정의로워야 한다. 따라서 국민의 권리는 정당한 한도 안에서만 보장된다. 국민 개개인은 전체 인류의 일원으로서 보편적인 법이 부여하는 권리를 가진 배심원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배심원이 자신에게 권리를 부여하는 법을 만든 인류보다 더 큰 권력을 가질 수 있겠는가? 내가 옳지 못한 법에 복종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한 국가 내의 다수파가 행사하는 권리에 항거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한 국가의 다수파가 아니라 전체 인류의 다수파에게 호소하는 것이다.

국민 개개인은 여러 가지 한계를 가질 수 있으므로 국민을 대표하는 다수파에게 권력을 주는 것이 좋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주장은 노예의 논리다. 나는 다수파의 권력이 소수파의 권력보다 우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수파가 행사하는 지나친 권력을 완화시키고 조정하는 아무런 장치가 없다면 자유가 위협받는다. …… 지금 유럽에서는 흔히 미국의 민주제도의 결함을 민주제도가 약하다는 데서 찾는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의 민주제도의 결함은 민주제도가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즉 과도한 자유가 문제가 아니라 다수파의 횡포에 대처할 수 있는 제도가 불충분하다는 점이 약점이라고 생각한다.

토크빌은 “보편적인 법은 인류의 다수파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했다. 이 말에는 매우 독특한 의미가 담겨 있다.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제도가 보편적인 법에 의한 것임을 주장한다. 그것은 미국인의 다수 의견이 아니라 인류의 다수 의견이 담긴 것이다. 그러므로 토크빌은 미국의 정치제도를 유럽에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이다. 특히 토크빌은 자유를 강조한다. 과도한 자유조차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제도가 자유를 위협하는 권력의 횡포에 대항하는 데는 약점이 있다고 보았다. 민주주의는 다수파의 지배이므로 다수파의 횡포를 제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편적인 법은 국민의 다수파가 아니라 인류의 다수파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말한 것이다. 국민의 다수파가 횡포를 부리면 인류의 이름으로 제어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정치 과학적 연구의 시초

토크빌은 민주주의 혁명이 시대의 징표이고 앞으로 평등의 시대가 도래할 것을 예언했다. 1789년부터 1794년까지 계속된 프랑스 대혁명으로 중세의 신분적 질서는 무너졌다. 그리고 급격한 산업혁명에 따른 자본주의의 발전은 모든 신분적 질서의 붕괴를 촉진했다. 자본주의의 발전은 자유로운 신분의 노동자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토크빌은 이런 사태의 진전을 보면서 평등의 시대가 도래할 것을 예언하며, 평등의 시대가 자유를 위협할 수도 있음을 경고했다. 신분적 질서에서 해방된 시민들이 오히려 국가권력에 의존하려 할 것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토크빌의 경고는 사실로 드러났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발간되고 13년이 지난 1848년 2월에 프랑스에서 다시 혁명이 일어났다. 이 혁명은 1851년에 루이 나폴레옹이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음으로써 끝이 났다. 시민들은 루이 나폴레옹의 독재를 지지했다. 그리고 루이 나폴레옹 체제에서 관료주의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중앙 권력의 권한이 증가함에 비례하여 공직자의 수도 증가했다. 공무원은 국가 안의 국가를 형성했다. 공무원들은 정부의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점점 귀족의 지위를 누리려 했다.

토크빌은 이미 독재와 관료주의의 위험을 예감하고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그런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를 제시했다. 선출직 공무원으로 구성된 제2급 행정기관, 독립된 법원, 신문의 자유, 의회의 불가침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는 통치자에게 이렇게 권고했다.

나는 통치자들이 큰 인간이 되기 위해 좀 더 노력하기를 바란다. 다시 말하면 통치자들은 일보다 일꾼에게 더 가치를 두기 바란다. 국민 개개인이 약하면 어떤 국가도 오랫동안 강할 수 없다. 비겁하고 연약한 시민의 공동체를 강력한 국민으로 만들기 위한 어떤 방법도 어떤 정책도 아직 발명된 일이 없다는 것을 통치자들이 절대로 잊지 않기를 바란다.

독재정치로 국민을 약하게 만들면 다시 그 국민을 강하게 만들 방법이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토크빌은 자유를 중요시했다. 토크빌은 민주주의를 자유의 실현이라고 보았다. 자유의 실현은 제도로 구체화되어야 한다.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제도에서 자유가 실현될 가능성을 보았다. 그러나 토크빌은 또한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요소들도 발견했다. 다수의 횡포와 국가권력의 비대화, 독재정치 출현과 관료제의 등장 등에 대한 경고는 토크빌이 매우 냉철하게 미국의 정치제도를 관찰했음을 보여준다. 토크빌의 경고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경구로 남아 있다. 이런 현재성에 《미국의 민주주의》의 가치가 있다.

영국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미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이 책은 민주주의가 현대 사회에 나타나는 모습 그대로를 처음으로 논한 이론적 저서다. 이 책에서 밝힌 주요 원리에 대해 앞으로 여러 세대가 어느 정도 수정을 할 수는 있지만 아무도 그 전체를 뒤집을 수 없다. 또한 그 정신과 주제를 다루는 일반적인 방식은 정치 과학적 연구에서 새로운 시대의 시초를 이룬다.”

 

홍승기
인민노련 홍보부를 담당하면서 6월 항쟁을 현장에서 이끈 숨은 일꾼. 술만 사 준다면 지옥에도 함께 들어갈 천진무구한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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