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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가을이면 고향에 가고 싶다. 어느 결에 메마른 도시인이 돼 버렸지만 감이 익을 무렵이면 마치 떨어지지 않는 감기처럼 고향을 그리는 가슴앓이를 한다.

내 고향은 감나무골이다. 사람들은 그냥 편하게 감난골이라 부른다. 아담한 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감난골은 아주 한적한 농촌 마을이다. 가을이 되면 이름처럼 지천으로 감이 익어가고 낮은 담장 넘어 주렁주렁 감이 매달린 가지가 팔을 뻗은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나는 읍내에서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지만 주말이나 방학은 매번 감난골 할아버지 댁에서 보냈다. 할아버지는 한학에 능하셨고 가끔씩 사랑에 온 손님들과 시조를 읊기도 했다. 동네 아이들에게 서당을 열어 한문을 가르쳤고 사주나 토정비결을 보아주고 혼서지 같은 것도 써 주었다. 이런저런 상담도 해 주셨기에 사랑채엔 늘 손님이 드나들었다.

놋대야에 세수를 하고 수염을 쓰다듬던 할아버지, 조금이라도 예의에 벗어난 행동을 하거나 거친 말을 쓰면 즉시 불호령을 내렸다. 마루 끝에 걸터앉아 그네 타듯 다리를 흔드는 것조차도 그냥 보아 넘기지 않았다. 평소에는 고목한암(古木寒巖)같은 얼굴이셨지만 나를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라고 놀릴 때는 장난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굳게 다문 입 주위에 보일 듯 말 듯 스쳐가는 미소, 나의 반응을 살피는 짧은 눈길에서 난 이미 그 말이 거짓임을 알아버렸다. 내가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으면 할아버지는 나를 어떻게 다리 밑에서 주워 왔는지, 얼마 전에도 떡장수인 친엄마가 집 앞을 지나가며 내 안부를 물었다고 진지하게 설명하셨다. 놀리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내가 정말 주워온 아이가 아닌가 싶어졌다. 내 얼굴에서 눈물 방울이 뚝뚝 떨어지면 그제서야 할아버지는 득의만만한 미소를 띄우면서 수염을 한 번 쓰다듬었다. 할아버지는 윗목 구석에서 훌쩍이고 있는 나를 달래다 안 되면 간지러움을 태웠다. 나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절대 웃지 않으려 입술에 힘을 주지만 결국은 웃음을 보이고야 말았다. 엄격했지만 인자하셨던 할아버지, 그때 배웠던 몸가짐이나 말씨 등이 지금도 내 생활에 커다란 도움이 되고 있다.

가을 한철은 가을걷이하랴 감 따랴 정신없이 바빴다. 대나무 끝을 조금 갈라서 그사이에 작은 나뭇가지를 끼워서 만든 장대로 감이 달린 잔가지를 비틀어 감을 땄다. 감을 따느라 고개를 들어 감나무만 하염없이 쳐다보노라면 골 붉은 감들이 하늘까지 붉게 익혀 가는 것만 같았다. 나는 감을 따다 떨어뜨려 늘 깨고는 했다. 할머니는 내게 감을 따는 일보다 바구니에 주워 넣는 일을 하도록 하셨다. 밤이 되면 식구들이 둘러앉아 따놓은 감을 깎았다. 감을 깎는 손놀림은 언제나 할머니가 가장 빨랐다. 깎아놓은 감은 장독대 위에, 실에 꿰어 처마 밑에 매달아 말렸다. 속살을 드러낸 감들은 따사로운 늦가을 햇살에 하얀 분을 내며 다갈색으로 변해갔다. 붉은 감잎이 마당에 쌓이고 곶감의 달콤한 내음으로 감난골의 가을은 깊어갔다.

감을 딸 때 나무마다 서너 개의 감은 꼭 남겨 두었다. 할머니는 그 감이 까치의 먹이라고 했다. 까치밥은 잎을 모두 떨군 나무에 지지 않는 꽃처럼 남아 있었다. 회갈색 가지에 투명하고 영롱한 주황색 감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매달려 있는 것을 보면 괜히 서글퍼지기도 했다.

함박눈이 소복소복 쌓이는 겨울밤, 고방 열쇠를 차고 계시는 할머니는 채반 가득 홍시를 꺼내 오셨다. 이가 시리도록 찬 홍시는 뜨뜻한 아랫목에서 먹어야 제격이다. 홍시의 끝을 살짝 깨물어 떼어내고 쪽쪽 빨아먹으면서 듣던 할머니의 옛날이야기가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놋화로의 불씨가 다 식어 가는 줄도 몰랐다.

내가 가보고 싶은 곳은 감이 익어 가는 고향 마을의 가을풍경만은 아니다. 내가 진정 돌아가고 싶은 곳은 그 공간이 아니라 머물고픈 그 시절인지도 모르겠다. 그곳에 가면 잃어버린 세월이 그대로 머물러 을 것만 같다. 나를 놀리며 귀여워 해주시던 할아버지,” 호랭이 댐배 먹든 시절에….”로 시작하는 할머니의 옛날이야기가 감이 익어 가는 가을이면 더욱 간절히 그립다.

 

 

동고송
안녕하세요. 사단법인 인문연구원의 웹진 동고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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