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성] 김원봉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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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봉. 포상 대상인가, 전범인가?

 

몇 권의 인물평전을 쓰고 나니 출판사들로부터 누구누구를 써달라는 요청이 계속 들어온다. 박정희와 김일성부터 최근의 노회찬까지 다양하다.

그중 김원봉은 특이한 경우다. 다른 인물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다 거절해 왔는데 김원봉은 평전을 쓰기로 출판사와 계약까지 했다가 내가 먼저 해약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포기한 이유는 김원봉을 어떤 사람이라고 쓰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위인전이 아니라 평전이라면 주인공을 제대로 파악해야 하는데, 판단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김구는 김원봉을 “속을 알 수 없는 음험한 자”라며 매우 싫어했다는데, 전혀 그런 의미는 아니다. 강연회에서 누가 “좌우를 통 털어 독립운동가 중에 누구를 가장 좋아하는가?”라고 물으면 나는 꼭 김원봉이라고 답한다. 사회주의자 중에는 이관술, 현대 운동가 중에는 윤한봉을 좋아한다는 단서와 함께. 그럼에도 김원봉은 평전으로 쓰기에 참 어려운 인물이었다.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 본인의 글이나 행동이 아닌 내면의 생각을 추측해서 비판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엄청난 용량의 지능을 가진 인간의 내면은 그만큼 복잡하다. 겉으로 어떤 활동을 하든, 내면에는 자유주의, 사회주의, 민족주의 같은 온갖 생각들이 뒤엉켜 있고 친일과 반일, 친미와 반미, 친북과 반북이 공존할 수 있으며 심지어 마초이즘과 페미니즘이 한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있을 수도 있다. 따라서 그 사람의 불법적 행위를 재판해야지, 도덕성이니 계급성이니 하는 잣대로 내면을 측량해 재판해서는 안 된다. 누군가의 사상을 추측하고 의심하고 캐내어 징벌하려는 오만한 행위가 구 사회주의를 붕괴시켰다고 단언해도 될 것이다. 인간이란 가난은 견딜 수 있지만, 남이 자기 머릿속을 캐고 들어와 헤집고 통제하는 것은 견딜 수 없으니 말이다.

물론 평전은 다르다. 행위만이 아니라 머릿속 생각과 감정까지, 한 인간에 대한 모든 것을 추론해도 된다. 그런데 자료를 아무리 봐도 김원봉의 생각이 무엇인가를 잡아낼 수가 없었다.

김구를 비롯한 민족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은 입만 벌리면 말했다. 그들이 항일운동을 하는 단 하나의 이유였다.

“나의 소원은 첫째도 조선의 독립이요, 둘째도 조선의 독립이요, 셋째도 조선의 독립이다.”

독립한 뒤에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지, 가난한 조선인들을 위해 어떠한 정책을 펼 것인지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한 민족주의자는 눈에 띄지 않는다. 다당제 민주주의 공화국부터 의료보험, 국민연금, 가족수당 등 세부사항까지 무려 260가지에 이르는 미래의 청사진을 보여준 것은 온전히 공산주의자들이었다.

자료를 읽다보니 김원봉은 전자인 단순한 민족주의에 가까운 사람 같았다. 그가 어떤 미래상을 갖고 있었는가는 찾아볼 수 없었으니 말이다. 스스로 자기는 공산주의자들을 용인하는 용공 민족주의라고 했으니 공산주의자가 아닌 건 확실해 보였다. 그러나 그는 독립투쟁의 많은 시간을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했고 해방 후에는 좌익의 결산체인 민전의 공동의장을 하다가 월북해 국가서열 3위라는 국가검열상과 노동상까지 역임한다.

김원봉의 처신을 보고 있으면 마치 1970년대 선배 운동가들을 보는 것 같다. 내심으로는 반공의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후배들이 모두 사회주의로 흐르니까 입을 다문 채 후배들을 모아 그 힘으로 민주주의를 이루고 자신은 정치가로 성공한다. 상식적인 민주주의론 아니면 현실을 외면한 감상적 민족통일론, 아니면 친일망국론 같은 철지난 민족주의 외에 그들로부터 배울만한 사회사상이라곤 찾아볼 게 없다. 꼭 김원봉을 보는 것 같다.

절대로 나쁜 의미로 말하는 건 아니다. 만일 민주화운동의 대선배들이나 문익환, 백기완 같은 분들이 “너희는 무슨 파니 집회에 나오지 마라” “너희는 무슨 파니 같이 할 수 없다”는 식으로 수십 개는 될 정치노선에 따라 편 가르기를 했다면 유월항쟁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뭔가 찜찜한 것이 끝내 김원봉평전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이 찜찜함의 정체를 공감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올해 2019년 6월 6일 현충일에 문재인 대통령이 김원봉을 독립유공자로 인정해야 한다고 발언해 보수들의 큰 반발을 일으켰다. 대통령 발언의 요점은 김원봉이 좌우의 통합을 위해 애쓴 독립운동가라는 점을 높이 사야한다는 것이었다. ‘남북의 화합’이라는 현 정부의 기조에 꼭 맞는 인물이라 본 듯하다.

잘 아다시피 보수파들은 난리가 났다. 현행 법률상 해방 전에 독립운동을 했더라도 북한 정권의 수립이나 운영에 참여했다면 독립유공자가 될 수 없으니 김원봉은 포상의 대상이 아니며, 만일 김원봉을 포상하려면 김일성과 박헌영도 포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솔직히 이 부분에서는 보수들의 주장이 타당해 보인다. 독립유공자 포상이 남북공동의 상이 아니라 남한에서만 주는 상이라면, 남한 법에 따라야 할 것이다. 똑같이 북한정권에 기여했는데 자신이 민족주의자라고 말했다고 해서 용납이 되고, 공산주의자라고 자인한 사람은 용납할 수 없다는 건 모순이다. 김일성에 의해 숙청되었다는 것이 김원봉과 남한의 관계를 바꾸는 것도 아니다. 그런 식이라면 월북 후 숙청된 수천 명의 남한 출신들도 모두 독립유공자로 등록해야 할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자본주의 남한을 거부하고 월북한 후 남한 정부를 타도를 목표로 전쟁을 이끌었던 이가 왜 남한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아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돌아가신 분께 물어볼 수는 없지만, 본인이 원하지도 않는 훈장을 주겠다는 건 본인에 대한 모욕이거나, 지나친 오지랍 같다.

말을 꺼낸 문재인 대통령이나, 김원봉에게 서훈을 하자고 주장하는 이들은 아마도 김원봉은 민족주의자니까 다른 월북자들과 다르게 대우해야 한다는 생각을 깔고 있는 것 같다. 아니면 북한에 올라가 고위직을 한 것도 민족통일과 반외세투쟁의 일환이었으니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인 것 같다. 이념적으로는 서로 정반대되는 생각이 하나의 결론으로 모인 셈이다.

결국 보수들의 공격에 못 이겼는지, 청와대는 6월 14일 자로 현행법상 김원봉을 포상할 수는 없으며 의열단 기념행사에도 정부 기금을 쓸 수 없다고 발표했다. 항일운동기념단체들도 김원봉 서훈 추진 운동을 중지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공방은 수그러드는 것 같다.

솔직히 내가 보기에는 문재인 대통령도, 보수파들도 역사에 너무 무지해서 벌인 해프닝만 같다. 김원봉의 약력도 잘 모르면서 영화 <암살>을 보고 박수치며 만세 부르던 보수들이나, 의열단장이란 점과 노덕술에게 뺨을 맞고 울었다는 부분만 보고 우리 편이라며 흥분한 민족주의자들이나, 제대로 좀 공부를 하라고 말하고 싶다.

김원봉은 분명 존경받아 마땅한 훌륭한 인물이다. 다른 수많은 월북한 사회주의 계열 항일운동가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에 대한 기념사업은 많을수록 좋겠다. 이 문제를 두고 보수와 격돌한다면 얼마든지 싸워야 할 일이다. 그렇지만 남한 법률에 의한 유공자 포상은 서둘 일이 아닌 것 같다. 언젠가 통일이 되어, 좌익에 의해 벌어진 죄악상과 우익에 의해 벌어진 죄악상을 서로 용서하게 되었을 때, 양자의 합의 아래 기쁘게 수상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김원봉을 포함한 월북자들이 진정 원하는 것도 그것일 것이다.

 

대한민국 일급 평전 작가. 이재유, 이관술, 이현상 등 일제하 사회주의 운동가들은 모두 안재성의 손에서 평전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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