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소나무처럼 인문의 길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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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처럼 인문의 길을 걷다

 

*이 글은 <창>에 실린 황광우 상임이사님 인터뷰 기사입니다.
<창>은 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에서 발행하는 문화담론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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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온윤 청년(이하 조온윤) : 황광우 선생님, 안녕하세요. 독자 분들에게 간단한 인사 부탁드리겠습니다.

황광우 철학자(이하 황광우) : 인문연구원 동고송의 상임이사 황광우입니다. 그동안 광주에서 여러 인문학 공부모임을 이끌어오던 중 이번에 뜻이 맞는 사람들과 인문연구원 동고송을 만들었어요. 최근에는 한문으로 된 옛 문인의 문집을 번역하고 연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조온윤 : 인문연구원 동고송의 창립을 축하드립니다. 아직은 동고송이라는 이름이 생소한 분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동고송은 고전연구모임을 전신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고전연구모임에서 하신 활동과 새 이름으로 시작하는 인문연구원 동고송에 대해 좀 더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황광우 : 그간 고전공부모임을 운영하며 수강자들과 동양 및 서양의 고전을 함께 읽고, 한국의 명소를 탐방하고 해외로 기행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동고송이라는 이름은 광주라는 지역의 의미를 살려 빛고을로 이름을 지으려던 것을, 너무 지엽적이라는 의견이 있어서 좀 더 보편성을 갖는 지금의 동고송으로 짓게 되었습니다. 겨울 산의 외로운 소나무처럼 의연하게 인문의 길을 걷겠다는 뜻입니다. 외로운 인문학의 길 좀 더 넓히는 것과 동시에 광주가 왜 의향인지 그 뿌리를 연구하고 알리자는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조온윤 : 참 좋은 취지인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옛 문인들의 문집을 번역했다고 하셨는데, 어떤 문집을 번역하신 것일까요? 그리고 이외에 동고송에서 진행 중인 연구나 활동에 대해서도 여쭙고 싶습니다.

황광우 : 얼마 전에 옛 선비의 문집 『운사유고』 풀이를 마무리했습니다. 5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처음엔 뭣도 모르고 번역하다가 가면 갈수록 빠져들었어요. 『운사유고』는 운사 여창현이 친우들과 주고받은 편지의 내용을 엮은 책인데, 편지를 주고받은 100여명의 사람들은 모두 독립운동가이거나 독립운동 집안의 후손이었지요. 역사적으로 그 연구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동고송은 이전부터 해왔던 고전연구원의 활동을 계속하면서 좀 더 적극적인 활동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인문통신’ 발행입니다. 동고송의 문필력을 바탕으로 월 1회의 인문통신을 1천여 독자들에게 온라인 발송할 것입니다. 아울러 한국학호남진흥원과 함께 의향 광주의 뿌리 찾기 활동을 계획 중입니다. 그 시작으로 올해 하반기에 한말 호남의병에 관한 심포지엄을 한국학호남진흥원과 함께 전남대에서 개최할 예정입니다.

조온윤 : 최근에 구독 경제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젊은 작가들 중에는 월 구독료를 받고 매일 자신의 수필이나 만화를 독자들에게 메일로 보내주는 메일링 서비스를 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젊은 경향에 비추어봤을 때 방금 말씀하신 인문통신 발행은 인문학 전파에 장기적으로 좋은 방향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아직도 종이 잡지가 더 친숙한 독자들도 많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인문통신을 어떻게 온라인으로 운영하기로 결정하셨는지 그 배경이 궁금합니다. 인문통신을 이러한 방식으로 운영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황광우 : 2014년도에 인문 전파의 일환으로 『인문의 향연』이라는 인문학 전문 계간지를 발행했었습니다. 종이 잡지로 발행을 하다 보니 제작비가 꽤 들어갔지요. 결국엔 4호까지 발행하다가 재정 문제로 중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온라인상으로 발행을 시도하게 되었습니다. 『인문의 향연』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그때 그 일이 독자들에게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아픔으로 남아있었습니다. 그게 이번에 인문통신을 새로 시작하게 된 계기 중 하나이기도 하죠. 독자들에 대한 빚 갚음의 일환으로 봉사하려고 합니다.

조온윤 : 저도 구독 신청을 해놓아서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금 5월이 되면서 광주에서는 여러 행사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매년 5월은 선생님께 그 의미가 큰 달일 것 같습니다. 5·18민주항쟁이 올해로 39주년을 맞이했고 내년이면 해를 꺾어 40주년을 맞게 됩니다. 소회를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황광우 : 내년이 5·18민주항쟁의 40돌인데, 먼저 가신 분들께 부끄럽지 않는 40돌을 맞이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습니다. 40주년이 다가오면서 민주항쟁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여러 기념행사가 열리고 기획되고 있는데, 저는 다른 누구보다 청소년들이 5·18민주항쟁과 민주 열사들의 삶을 기억하는 게 진정한 5·18의 계승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현재 청소년들이 ‘오월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운동을 벌이고 있고, 이 운동을 서울과 부산으로 확대하고 있습니다.

‘오월극’의 상설화를 놓고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타 지역 사람들이 광주에 왔을 때 언제든지 5·18과 관련된 연극작품을 볼 수 있다면 긍정적인 관광 효과를 볼 수도 있겠지요. 허나 문제는 연극인들을 비롯한 광주의 예술인들을 지원해줄 여건이 열악하다는 것입니다. 처음 시작은 시민들이 십시일반으로 힘을 모아 시작할 수 있겠지만, 일회성으로 끝날 게 아닌 상설화가 되기 위해서는 행정적인 지원이 필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고 광주에 5월 문화가 정착된다면 ‘살아남은 자’의 몫을 다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이가 드니 매사를 조심하게 되군요.

조온윤 : 몇 해 전에 한강 소설가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 상을 수상하면서 작가의 근간인 『소년이 온다』도 함께 베스트셀러에 오른 바 있습니다. 그 덕분에 5·18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보다 더 커질 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희 세대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의 아이들도 오월의 책을 읽고 오월극을 관람하는 것으로 5·18의 정신을 계승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책 이야기가 나와서 말씀드리는데, 저는 선생님의 저서를 󰡔철학콘서트󰡕로 처음 접했습니다. 아마 많은 청년, 청소년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무엇일까요?

황광우 : 젊었을 때 저의 관심은 경제학에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철학을 하고 싶어졌지요. 경제학을 전공하며 배운 마르크스주의를 좀 더 심화시키고 싶은 욕심이 있었는데, 그러려면 철학의 뿌리와 역사를 먼저 검토할 필요를 느꼈던 거지요.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쓴 수필을 엮어 『레즈』라는 책을 집필하기도 했습니다.

조온윤 : 저는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고 지금도 시를 쓰고 있는 중입니다. 이십대 초반엔 열정적으로 문학을 공부했었는데, 요즘엔 생활과 문학 사이에서 많은 고민과 갈등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건 대부분 인문학도들이 지닌 공통된 고민일 것 같습니다. 요즘 청년 세대는 사회에서의 생존에 매달리면서 인문학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철학자이자 우리나라에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윗세대로서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들을 위해 해주고 싶으신 말씀이 있을까요?

황광우 : 민주주의를 이나마 이끌어온 것은 우리들의 자랑이지만, 사회의 불평등과 청년 실업이 이토록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무능이 부끄럽습니다. 고뇌하는 젊은이들을 볼 때면 선배로서 참담한 심정입니다. 경제나 취업 문제는 결국 정권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큰 문제인데, 개인적으로는 현재 주 5일로 노동하는 체제에서 주 4일 노동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독일이나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이 시행하고 있기도 하고요. 유럽 국가들은 지금 우리나라보다 GDP 지수가 낮았을 때 주 4일 노동 제도를 시행했습니다. 노동시간을 줄이는 게 오히려 생산성을 높였던 거죠. 물론 쉽게 바꿀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러한 변화를 가져오려면 거대한 사회적 협약을 맺는 게 필요하죠. 또한 사회 전체의 변화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도 있지만, 개개인에 있어서는 부의 축적이 아닌 삶의 질을 높이는 선택적인 소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현대인들에게는 소크라테스처럼 검소한 삶의 태도가 필요하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조온윤 : 맞습니다. 맥락에서 벗어난 질문입니다만, 시를 배우고 쓰고 있는 청년으로서 한창 황지우 시인의 시를 즐겨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시인의 첫 시집인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가 광주 역사와도 관계가 깊다고 알고 있습니다. 형제가 모두 폭력과 독재에 맞서 투쟁했다는 것도 그 의미가 큰 것 같습니다. 형 황지우 시인에게 받은 영향이 있는지, 황지우 시인과 관련된 일화가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황광우 : 황지우 시인의 처녀작이 「연혁」입니다. 그때가 1980년 3월이었을 겁니다. 어느 날 저한테 봉투 하나를 건네주면서 우체국에 부치고 오라고 하더라고요. 비밀로 하라고 신신당부를 하면서요. 그러고 나서 한 달 뒤에 형이 신춘문예에 등단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제가 우체국에 부친 그 우편이 신춘문예에 응모하는 원고였던 겁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형이 집을 나서면서 어머니께 하직인사를 올리더라고요. 상황이 좋지 않으니 잠시 떠나있겠다면서요. 그해 6월에 형이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전단지를 만들어 종로3가에서 배포하다가 경찰들에게 끌려가 보름 동안 고문을 당했습니다. 그때의 그런 경험들로 형의 첫 시집이 나오게 된 거죠.

조온윤 : 선생님께서도 황지우 시인 못지않게 운동권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특히 정계에서도 활동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어떤 연유로 일선에서 물러나게 되신 걸까요?

황광우 : 제가 17살에 유신헌법 철폐를 주장하는 시위를 모의하다 광주교도소에서 한 달 간 투옥생활을 했었습니다. 1978년엔 연합 시위를 모의해 또 투옥되었습니다. 1980년 5월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수배가 되었구요. 이후 공장에 들어가 일하면서 노동운동을 했고, 1987년 6월 항쟁을 인천과 서울에서 이끌기도 했습니다. 이후엔 선거운동에 뛰어들어 진보 세력을 결집하는 역할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건강에 적신호가 느껴져 담양 산자에 들어가 단식을 했었습니다. 그때가 2007년도 4월인데, 산자에 머물던 중에 그만 중풍으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 정도로까지 건강이 나빠진 걸 몰랐던 거죠.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정치 일선에서 후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온윤 : 그런 불운한 사고가 없었다면 선생님의 진보 활동이 더 활발하게 이어지셨을 것 같은데, 정말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선생님께서 현재 몸담고 계신 동고송은 장기적으로 어떤 일들을 하게 될지 여쭙고 싶습니다.

황광우 : 향후 2, 3년은 인문학을 전파하는 것으로 광주 시민들에게 헌신하고자 합니다. 동고송의 진심이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또 동고송에 참여하는 분들이 늘어나면, 그 후 명확한 계획을 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준비기라고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빛고을에서 적극적으로 인문 활동을 실천하고자 합니다.

조온윤 : 동고송의 연구와 활동이 광주의 인문학 발전에 초석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이만큼이나 발전시킨 것만으로도 지금 세대의 젊은이들에게 아주 큰 선물을 주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께서 특별히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을까요?

황광우 : 광주는 군부 독재에 맞서 항쟁한 민주의 성지입니다. 한말 의병운동의 역사에서도 호남 의병이 전체 의병의 절반을 넘게 차지하죠. 빛고을이 얼마나 위대한 도시인지 역사가 증명하고 있는 겁니다. 광주 사람들이 이런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함께 느꼈으면 좋겠어요.

조온윤 : 네, 오늘 좋은 말씀들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동고송
안녕하세요. 사단법인 인문연구원의 웹진 동고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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