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헛됨은 없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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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헛됨은 없어라
– 임철우의 ‘봄날’을 읽고 –

김정희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다 <봄날>을 발견했다. 임철우 님의 <봄날>은 자석에 끌려가는 쇠붙이처럼 나의 눈을 끌고 가 놓아주지 않았다. 나의 의식은 모천으로 회귀하는 연어처럼 80년 광주, 그 기억의 동굴로 돌아가고 있었다.

“수업 끝나고 망월동에 함께 가지 않을래?”

가끔씩 친구는 망월동 길에 나를 동반하고 싶어 했다. 80년 5월에 그 일이 없었다면 친구는 행복한 결혼을 했고 목사의 아내로 교회 일에 열정을 쏟았을 것이다. 친구와 결혼을 약속했던 신학생은 도청을 마지막까지 지키다 계엄군의 진압 작전 시 무차별 총격에 의해 목숨을 잃고 말았다. 늘 꽃을 들고 망월동을 찾았던 친구는 서른이 훨씬 넘어서야 결혼을 했다. <봄날>을 읽으면서 오랫동안 소식이 끊긴 그 친구의 처연했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그녀에게 광주 민주화 운동은 다른 운명의 삶을 살아가게 했다.

애써 감추려 기억의 저 끝에 밀어두었던 10일간의 이야기가 책 다섯 권에 빼곡히 들어 있었다. 한 줄 한 줄 고통스럽게, 가슴 저 밑바닥에서 솟아오르는 주체할 수 없는 아픔으로 다가왔다.

글자 하나도 소홀히 읽을 수 없었다. 그 많은 활자들이 내 마음속에 화살로 날아와 피 흘리는 상처로 각인되고 있었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눈물을 흘리지 않고 정말 냉정하게 지구 저편에서 일어난 일처럼 담담하게 읽어나가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뜨거운 눈물이 흘려내려 책 속의 활자들은 춤을 추고 있었고 책은 젖어 있었다. 낯설지 않은 장소와 사람들 속에서 10일을 살다 돌아온 것만 같다. 한여름의 땡볕에서 으스스 한기를 느끼면서 말이다.

고향 낙일도에서 6.25를 겪으며 이념의 분쟁에 휩쓸린 원구 씨 일가의 이야기로 <봄날>은 시작 된다. 전쟁의 이념에 휘말려 죽이고 죽였던 낙일도의 아픈 기억으로 원구 씨는 어둡고 음울한 삶을 살아간다. 이데올로기로 얽히고 설켰던 원구 씨 일가족은 그 자식 대에 와서도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악연의 꼬리를 이어간다. 집을 나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큰아들 무석은 뚜렷한 의지는 없지만 여느 젊은이들처럼 공수부대원의 만행을 보고 저절로 민주화 운동에 동참 한다.

둘째 명치는 공수부대원으로 형 무석과 동생 명기에게 총부리를 겨누지만 그 또한 운명의 장난처럼 다가온 자신의 역할에 몸부림치며 괴로워한다. 셋째 명기는 대학 1학년생으로 들불 야학 친구들과 과감하게 전단을 뿌리며 민주화 운동에 적극 참여한다. 원구 씨 일가족은 처참한 질곡의 삶을 살아온 우리 민족사의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나도 그때 시위 대열에 참여했던 적이 있다. 학교에서 도청 분수대까지 행진해 가면서 구호를 외쳤다. 분수대 주변에 전투경찰이 둘러싸고 있었지만 별 충돌은 없었다. 말 그대로 평화적인 시위였다. 맨주먹으로 민주화의 구호를 외치는 학생들의 데모 진압이라는 미명하에 공수부대가 투입되면서 신군부의 시나리오에 의해 광주의 비극은 시작된다.

공수부대에 의해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학생들과 무심히 거리를 지나는 젊은이들이 상상을 초월한 야만적이고 무차별한 폭행을 당하고 피 곤죽이 되어 끌려갔다. 꽃을 들고 성당에 가던 여학생이 죽고, 임신 팔 개월의 여인이 집 앞에서 남편을 기다리다 총살당하는 등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엄청난 광경들이 시민들의 분노를 자극했다. 인간이 인간이기를 포기하며, 피를 찾아 쫓고 몰아치는, 광주는 한 순간에 짐승의 사냥터로 변했다.

이 도시는 사람들의 공포에 찬 비명과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영문을 모르고 처참한 모습에 놀란 시민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소리 없이 집요하게 이글거리며 저 가슴 밑바닥 어딘가에서 점점 뜨겁게 끓어오르기 시작하는 저항의 불씨가 지펴지기 시작했다. 막다른 골목까지 쫓긴 최후의 순간에 돌연히 충전되는 어떤 놀라운 힘과 용기, 분노와 절망이 극한 상황에서 피어내는 불꽃같은 투쟁의지는 공포나 증오보다 더 크고 강력한 민중의 힘으로 뭉쳤다. 차량 시위가 시작되고 일방적으로 계엄소의 허위에 찬 발표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한 언론에 대한 분노가 마침내 문화방송을 불태웠다. 결국 시위대를 향하여 발포가 시작되고 군용 헬기에서 시민들을 향한 기총소사가 퍼부어졌다. 순식간에 광주는 피비린내와 단말마의 신음으로 가득 찬 지옥으로 변했다. 사망자가 늘어가고 병원 응급실은 아예 발 디딜 틈도 없고 복도와 계단은 물론 앞 뒤쪽 마당까지 수백 명이 넘는 부상자들로 아비규환을 이루었다. 시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하고 무기고를 습격하여 스스로를 지키고자 무장하였다. 그 무서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광주는 절해고도처럼 버려진 도시가 되었다.

역대 독재정권에서는 권력 유지의 수단으로 북한을 이용하였다. 무고한 사람들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한 무슨 무슨 간첩단 사건은 왜 그리도 많았는지…… . 그 때에도 ‘현재 북괴가 남침 중이다’ ‘북괴군 특수부대가 광주로 침투한다’며 시민들을 위협했다. 또한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폭도와 빨갱이로 몰아붙였다. 80년 그 해가 지나고 나서도 한동안 희생자와 그 유가족들은 죄인 취급당하며 가슴앓이를 했었다.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유언비어까지 의도적으로 유포했으니 권력욕은 얼마나 무서운 비극을 빚어낼 수 있는지 그 끝을 짐작하기조차도 어려웠다.

공수부대의 위장철수 시 전남대 강의실에 잡혀있던 사람들을 산골짜기로 끌고 가 흙구덩이에 한꺼번에 몰아넣고 일제히 총격을 가했다니 6.25전쟁 때의 끔찍한 만행이 재현 되었던 것이다. 광주 외곽에 머물던 공수부대원들은 민간인의 버스, 멱 감던 아이들, 길을 지나가던 사람들을 가리지 않고 총격을 퍼부었다. 공수부대원들은 이미 사람이기를 포기한 것처럼 보였다. 그들의 눈에는 광주시민들이 모두 사냥감으로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도 자신의 역할이 무척이나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명령에 의해 꼭두각시처럼 춤추는 인형과 같았던 그들도 똑같은 권력욕의 희생물이었으니까.

당장이라도 벌떡 일어나 부대를 이탈해 버리고 싶은 충동이 솟구치는 명치, 고문관이라는 별명을 지닌 심약한 유 이병은 공포에 질려 허둥대고 마침내 정신을 놓아 버린다. 친구의 죽음을 목격한 유 상병, 더 이상 추악한 음모에 가담하지 않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오 하사, 이들 모두에게도 광주 민주화 운동은 영원히 치유 받지 못할 아픈 상흔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때 이 도시에서 벌어졌던 기막힌 상황은 도대체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이었단 말인가. 다 같은 젊은이끼리, 형제끼리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상처 입게 만들었던 자들은 누구였던가. 한 집단의 권력욕이 가져온 엄청난 비극에 온몸이 떨려올 뿐이다. 권력욕의 재물로 광주가, 이 땅의 젊은이들이 바쳐진 것이다.

어정쩡한 태도로 시간의 강물에 떠밀려온 나무토막처럼 나는 이 지점에 이르렀다. 그때에도 적극적으로 시위 대열에 뛰어들지도 못했고 어용학생이 되는 것도 싫어 늘 우유부단했었다. 내 자신의 내면에서만 방황했었지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선 아무것도 정립하지 못했었다. 가까이 들리는 총소리에 온몸이 마비되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다가, 겁에 질려 연탄 창고로 사용하던 지하실로 몸을 숨기기에 급급했었다. 아버지의 외출 금지령에, 담장 너머로 피난행렬을 보면서 한숨만 내쉬었을 뿐이다. 개학을 하고 학우들의 빈자리와 교사(校舍)에 남아있는 총탄 자국을 보며 우울한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도청이 함락되기 직전 YWCA건물을 빠져 나왔던 명기처럼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죄의식에 사로 잡혀 있었다.

그 이년 후 전남대 총학생회장이었던 박관현이 감옥에서 대학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져 고통스럽게 마지막 숨을 거두었던 것을 보았던 나에게는 이 다섯 권의 책이 소설이라기보다는 생생한 역사의 기록이고 거짓 없는 증언이었다. 어떤 이유에서라도 인간이 다른 인간을 그처럼 잔혹하고 처참하게 파괴해 버릴 수는 없다. 우리 모두는 망월동의 침묵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아무것도 헛됨은 없어라.
우리가 사랑했던 것
괴로움을 당했던 것
아무 것도 헛됨은 없어라.’

5.18 묘역에 있는 한 묘비명의 애절한 절규가 <봄날>의 의미를 말해 주고 있다. 망월동에 잠든 넋과 그때 광주에 있었던 모든 이의 고통은 헛되지 않고 고스란히 우리 역사에 살아남아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지켜볼 것이다. 더 나아가 이 지구상에 어떤 까닭으로든 비인간적인 모든 폭력이 사라지기를 바랄 것이다. 이 땅의 불행한 역사와 이 시대의 아픔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고 그들은 말하고 있다. 작고 이름 없는 불꽃들의 희생위에 피어난 민주주의의 꽃은 영원히 시들지 않는 아름다움으로 우리들 가슴 가슴마다에 남아 정의의 불씨로 이어져 나가리라 믿는다.

안녕하세요. 사단법인 인문연구원의 웹진 동고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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