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1960.4.19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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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4월 19일·20일·21일, 광주

 

황지우

그날은 오후반이어서 오전 11시쯤 란도셀을 메고 등교하던 나는, 계림동 기차건널목을 돌아, 막 계림극장 앞을 지나갈 무렵이었지요. 나는 난데없이, 거리로 뛰어나온 수천 명의 광주고생· 광주상고생·사레지오고생들이 도열을 지으며 모자를 손아귀에 쥐고 번쩍 들며 대한민국만세를 부르며 광주중앙국민학교 쪽으로 움직이던 데모대에 휩쓸려 가고 있었지요. 그때는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턱에 수염난, 아저씨들 같은 고등학교 학생형님들이 목에 핏줄이 드러나도록 목청껏,

이승만은 물러가라!
자유당은 자폭하라!

함성을 지르고, 연도의 수많은 광주시민들이 학생들에게 박수를 쳐주고, 하던 것들이 그저 신이 나 대열 한가운데에 끼여, 국민학교 2학년 어린이의 작은 보폭으로 철없이 따라갔지요. 그러니까 말하자면 나는 만 8세 때, 영광스럽게도, 나중에 역사책에 나오는 그 현장에, 그 소요에, 그 혁명에 우연히, 있었지요. 말 탄 나폴레옹 그림이 그려진 나의 란도셀 속에는 국어책, 국어공책, 산수책, 산수공책, 자연책, 자연공책, 사회생활책, 사회생활공책, 음악책, 짝짝이, 병아리표 크레용, 도화지 2장, 필통, 자가 들어 있고 아침에 깎아 넣은 연필들이 화란 풍차 그림이 든 철갑 필통 속에서 달그락거리고 있었지요.

나는 군대 담요색 당꼬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대열이 동명동 광주형무소와 전남여고 사이에 흐르는 동문다리 개천으로 구부러져 들어갈 때였을 거예요. 히말라야 소나무숲으로 우거진 전남여고 앞에서 검정색 제복을 입은 일단의 순경아저씨들이 곤봉을 쓰윽 빼들고 대열 앞을 가로막자, 수천 명의 광주고생·광주상고생·사레지오고생들이 그 자리에서 너나없이 스크럼을 짜고

독재 타도 독재 타도
독재 타도 독재 타도
독재 타도 독재 타도
독재 타도 독재 타도

를 외치며 발을 맞추는 사이에, 나는 스크럼을 짜기엔 키가 너무나 작아서 대열에서 빠져나와야 했지요. 대열은 그대로 경찰 저지선을 밀어버렸지요. 나는 곤봉으로 맞아 이마에 피가 주르륵 흐르는데도 손으로 그것을 싸매고 교복 단추가 모조리 떨어져 나간 채 그대로 앞으로 나아가는 광주고생·광주상고생·사레지오고생 들을 보았지요.

싸움은 어린이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았으나 어른들이 왜 싸우는지는 알지 못했지요, 전남여고의 프러시아식 지붕에서 놀던 비둘기떼가 일제히, 와다다닥 날개를 부채질하며 히말라야 소나무숲 위를 날아 갔지요. 교복 손목에 예쁜 흰 줄이 세 개 달리고 어깨등에 해군 수병들이 다는 것과 같은 마골러가 부착된 전남여고 누님들이 치마에 돌을 싸가지고 교문으로 쏟아져 나오니까, 광주고생·광주상고생·사레지오고생 들은 와아, 박수를 치고 전남여고만세 대한민국만세를 부르고, 어느새 전신전화국 쪽에는 경찰을 가득 태운 트럭들이, 소방차들이 속속들이 들이닥치고,

이승만 독재정권의 하수인들아, 당장 길을 비켜라!
경찰도 우리 편에 서서 민주주의를 위해 함께 싸우자!

고함이 깃발처럼 일고, 드디어 소방차에서 이쪽으로 물줄기가 머리 든 뱀처럼 뻗어 오고, 이쪽에선 그쪽으로 돌멩이가 운동회 보자기 던지기 할 때처럼 새까맣게 날아가고, 나는 겁이 나서 뒷길로 줄행랑쳐서 학교로 들어갔지요. 교실은, 흡사 여름날 처마 밑으로 귀에 손고등을 만들어 소낙비 소리를 들을 때와 같이, 눈앞에서 막 떠나갈 듯했지요. 우리 반 아이들은 제각기 자기가 본 것들을 늘어놓고, 평소에 자기 아버지가 검사라고 주변의 힘없는 우리들을 괄시하던 내 뒷자리의 임동현이란 놈도 신이 나서 자기집 장동 쪽에서 광주공고생·광주여고생·조대부고생 들이 소방차를 뺏어 타고 도청 쪽으로 진격하던 장면을 이야기하고, 우리들의 계집애 짝꿍들은 무섭다고 훌쩍훌쩍 짜고 있고, 임동현과 나는 이 겁쟁이들!을 한 번씩 쥐어박아 주고, 임동현은 책상 위에서, 나는 걸상에서 제자리 걸음으로 뛰면서 번갈아가며,

독재 타도 독재 타도 독재 타도 독재 타도 독재 타도

한참 까불고 있는데, 그때사 김현숙 담임 선생님이 검지 손가락을 입술 한가운데 꼿꼿하게 세운 채 조용히, 조용히, 들어오대요. 우리 반 아이들은 이쁜 김현숙 선생님을 따라, 칠면조 사육장 앞을 지나, 하얀 백엽상이 있는 교실 뒤뜰 화단으로 해서, 물 빠진 풀장을 끼고 후문으로 빠져나왔지요. 후문에 서서 김현숙 선생님은 눈물을 흘리면서 다음 가정통신 때까지 학교 나오지 마라고, 한눈 팔지 말고 곧장 집으로 가야 한다고 그러시고, 후문에서 박소아과 의원이 있는 광주중앙국민학교 네거리까지 상가들도 모두 양철문이 닫혀져 있고, 거리에는 무슨 푸른 연기 같은 것이 자욱했지요. 우리들은 쿨럭쿨럭 기침에다 눈물 콧물 흘리고, 그러면서도 김현숙 담임선생님이 시키신 대로 분단장 인솔하에 한 줄로 서서,

따따따 따따따 나팔 붑니다
따따따 따따따 나팔 붑니다
우리들은 어린 음악대
동네 안에 제일 가지요

를 부르면서, 장난치면서, 그날 하교했지요.

그날 저녁, 대인동 시장에서 돌아오신 우리 아버지는 학생놈들 때문에 굶어죽게 생겼다고 역정내시고, 우리 어머니는 학생들이 다치면 큰일이라고 걱정하셨지요. 우리 아버지는 김장철이면, 장성, 비아 쪽에서 무 배추를 실어다 시장에 넘기시고, 무안에서 고구마를 실어다 넘기시고, 봄 여름엔 여수에서 멸치 갈치를 떼어다 넘기시는 장사꾼이었고요, 우리 어머니는 집에서 학생들 하숙치고 있었거든요. 그래도 우리 아버지는, 언제나 그랬듯이 일찍 들어와 손발 씻고 제때 밥 딱 먹고 책상에 딱 앉는, 아랫방의 전남대 법대 다니는 화순 학생을 손가락질하면서, 저 친구는 데모도 안하나, 핀잔을 주었어요.

우리 어머니는, 중학생인, 우리 집 장손 민수 형과 나를 방안에 꼼짝도 못 하게 만들어놓고, 그래도 아직 안 들어온, 광주상고 3학년 다니는, 아랫방의 곡성 학생을 근심걱정하고 앉았고요.
그날, 밤이 되도록 시내에선 함성이 그치질 않았어요. 마침내 도청 쪽에선가 충장로 쪽에선가 금남로 쪽에선가 연발이 총성이 요란하게 들려온 것과 동시에, 우리집 식구들은 모두 마당으로 뛰어나오고, 우리 어머니는 형과 나에게, 이 호랭이 물어갈 놈들아 싸게 방으로 안 들어갈래, 소리 지르면서, 소리 지르면서도 앉았다 섰다 하시면서 가슴을 치고

오매, 어째야 쓰까 어째야 쓰까, 꽃 같은 우리 학생드을 –
안절부절 못하고, 또다시 도청 쪽에선가 충장로 쪽에선가 금남로 쪽에선가,
땅땅땅땅땅땅땅땅땅땅땅땅땅땅땅땅땅땅땅땅땅땅땅땅땅땅땅땅땅땅땅

그리고 함성과 함께, 불기둥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것을, 우리 식구들은 마루에서 보았어요. 내 가슴이 콩콩 뛰고 손이 떨리고 신나고 경이로운 그날 밤, 곡성 형님은 끝내 돌아오지 않고, 아랫방은 아까처럼 불 밝힌 채 조용했지요.

그 다음날, 나는 봄볕을 받으며 혼자서 마당에서 구슬치기를 하고 놀았지요. 곡성서 형룡이 형님 어머니가 올라오시고, 우리 아버지는 형룡이 형님 어머니와 함께 시내 나가시고, 신문 배달 하고 돌아온 민수형이 어머니와 나를 앉혀놓고 시내 정황을 일러주대요. 파출소란 파출소는 모두 박살났대요. 민수형이 궁동으로 해서 체신청과 광주경찰서 사잇길을 가는데 일단의 시민들에게 둘러싸인 검은 지프차 위에 어떤 사람이 올라가, 전 서울신문이 아니라 동아일보 기자입니다. 하니까 그때야 시민들은

동아일보 만세! 민주주의 만세!

를 외치며, 그 차량을 손으로 밀며, 도청 쪽으로 갔대요.그 다음 다음날, 아들 찾으러 올라오셨던 곡성 형님 어머님과 함께 우리 아버지가 다시 시내로 나가신 후, 나는 몰래 집을 빠져나와 동네 아이들과 철도 가에서 병정놀이를 하고 놀았지요. 우리들은 엊그제 들었던 총소리를 흉내내면서,

땅땅땅땅땅땅땅땅땅땅땅땅땅땅땅땅땅땅땅땅땅땅땅땅땅땅땅땅땅땅땅

철도 저편 적이 죽고, 철도 이편 우리편도 죽고, 우리들은 고지를 서로 탈환했다고 아우성치고, 서로 이겼다고 만세 부르고, 곧장 달음박질로 시내 쪽으로 들어갔지요. 계림동 파출소는 유리창과 문짝들이 모두 깨지고 떨어져 나가 있고, 기차 건널목의 차단기가 넋을 잃은 듯 하늘 높이 뎅그마니 올라가 있고 그런데, 이상하게 거리 곳곳에 군인 아저씨들이 총을 들고 부동자세로 서 있었지요. 우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회생활책에서 보았던, 북한 공산당을 무찌른, 그 용감한 국군 아저씨들 앞으로 달려가 일렬횡대로 서서 배 뚝 내밀고, 손바닥을 눈썹 위에 철썩 갖다 붙이면서, 경롓! 했지요. 우리들은, 아저씨들 가슴에 단 수류탄이랑 허리에 단 단검이랑 수통이랑 그물 친 철모랑 빛나는 일등병 계급장이랑 빤짝빤짝 한 구두를 숭배했지요. 우리들은, 아저씨 총 한 번 쏴 보세요, 네? 야아, 멋지다 칼 한 번 만져봐도 돼요? 진짜로 총알이 들어 있어요? 하면서, 갖은 아양과 아첨을 다 떨어봤지만, 아저씨들은 꿈쩍도 않더구만요. 우리들은 각자 손으로 트럼본 트럼펫 수자본 큰북을 공중에 그려가면서,

따따따 따따따 나팔 붑니다
따따따 따따따 나팔 붑니다
우리들은 어린 음악대
동네 안에 제일 가지요

를 취주하면서, 집으로 왔지요. 집에는 마루에 우리 아버지와 곡성 형님 어머니가 벌써 돌아와 앉아 계셨는데, 곡성 형님 어머니는 멍하니, 멀리, 봄하늘 끝만 바라보고 있었지요.

 

 

동고송
안녕하세요. 사단법인 인문연구원의 웹진 동고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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