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 3-플라톤의 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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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저승

 

플라톤은 그의 대화록 여러 편에서 사후 세계에 인간의 혼이 경유하는 저승에 대해 흥미있는 이야기를 남겨 놓았다. 그 중 『국가』10권에서 ‘에르의 저승 이야기’는 사후 세계에 대한 플라톤의 상상을 들려주는 자료이다. ‘에르’라는 한 용감한 사나이는 전쟁터에서 죽었는데, 열흘이 지난 시점에서 시체로 발견되어, 열 이틀째 날 장례를 치를 참이었다. 그런데 화장 장작더미 위에서 에르는 되살아났고, 그래서 그가 저승에서 보게 된 것들을 말해주었다는 것이다. 똑같은 저승 이야기이지만 호메로스와 플라톤은 상반된 이야기를 전한다.

에르에 따르면 그의 혼은 다른 많은 혼들과 함께 길을 떠나 어떤 장소에 도착했는데, 그곳에는 지하로 이어지는 두 개의 구멍과 천상으로 연결되는 두 개의 구멍이 있었다고 한다. 하늘 쪽 구멍들과 땅 쪽 구멍들 사이에 재판관들이 앉아 있어 올바른 삶을 산 이는 하늘로 올라가고 불의한 삶을 산 이는 지하 세계로 내려가도록 혼들에게 명령1)을 내렸다고 한다.

플라톤이 에르의 신화에서 명확히 밝히고 있는 것은 이승과 저승에 있어서 혼의 동일성이다. 이승의 행위에 대한 보상과 징벌을 열 배로 받은 다음 혼들은 다시 라케시스 앞으로 나가 다음 생에 관한 제비를 뽑는다. 어떤 대변자가 혼들을 정렬시킨 뒤 제비와 삶의 견본들을 가져오더니 다음과 같이 말하더라는 것이다.

“이는 아낭케 여신의 따님이신 처녀신 라케시스의 분부이시다. 하루살이 혼들이여, 죽게 마련인 족속의 죽음을 가져다줄 또 다른 주기가 시작된다. 수호신이 너희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수호신을 선택할 것이다. 첫 번째 제비를 뽑은 자가 먼저 삶을 선택하라. 일단 선택하면 그는 반드시 그 삶과 함께 해야 한다. 미덕은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는다. 각자가 미덕을 존중하느냐 경시하느냐에 따라 미덕을 더 많이 갖거나 더 적게 가질 것이다. 책임은 선택한 자에게 있고, 신은 아무 책임이 없다.”(국, 617d-e)

제비를 뽑는 것이나 삶을 견본을 선택하는 것은 모두 혼의 동일성을 전제한다. 이승의 혼과 저승의 혼이 같을 뿐만 아니라 저승의 혼이 또 내생의 혼과 같다는 것을 전제한다. 이어지는 저승 이야기는 윤회설2)의 변형에 해당한다. 선택할 수 있는 견본들은 여러 가지였다. 동물의 삶은 물론이고 인간의 삶도 있다. 참주의 삶도 있고, 거지의 삶도 있고, 명망가의 삶도 있다. 오르페우스에게 속한 혼은 백조의 삶을 선택하였고, 아가멤논의 혼은 인간이 싫어 독수리의 삶을 선택하였고, 오뒷세우스의 혼은 전쟁과 고역이 싫어 평범하게 사는 범부의 삶을 선택하더라는 것이다.

플라톤은 저승 이야기에서도 자신의 형이상학을 전개한다. 인간의 삶은 하루살이다. 인간의 삶이 하루살이처럼 하찮은 것이라면 누가 무슨 짓을 하던 무어라 탓할 것인가? 호메로스적 사생관에 입각할 때, 인간이 도덕적으로 살아야할 이유가 없다. 이것이 플라톤의 고민이었다. 플라톤은 인간이 도덕적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를 만들고 싶었다. 에르의 신화에서 플라톤은 이승의 삶은 선택한 자의 몫이라며 행위의 선택에 따르는 응벌을 주장한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판단하는 지혜가 중요하다. 이승의 운명이 결정되는 바로 이 순간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 선한 삶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과 지식이 중요하다. 이 능력과 지식을 가르쳐주는 공부가 있다면, 그런 공부에 전념해야 할 것이다.

이제 다시 이승으로 나아갈 차례이다. 혼들은 푹푹 찌는 무시무시한 더위를 뚫고 망각의 들판으로 나온다. 각자는 일정 양의 강물을 마신다. 이른바 망각의 강물이다. 지혜의 도움을 받지 못한 자들은 정해진 양보다 더 많이 마시는 바람에 모든 일을 잊어버린, 흥미로운 뮈토스이다.

『파이돈』의 저승

사자들이 자신의 수호신이 인도하는 곳에 도착하면, 그들은 아름답고 경건하게 살았는지 아닌지 재판을 받는다. 성물을 훔쳤거나 살인을 저지른 자는 타르타로스에 내던져져 다시는 나오지 못한다. 그러나 경건한 삶을 산 사람들은 순수한 거처로 올라가고, 특히 철학으로 혼이 정화된 사람들은 아름다운 거처에서 몸 없이 산다.3)


1)구제불능인 죄인들은 지옥의 가장 끝자락인 타르타로스로 영원히 버림받는다. 『고르기아스』에서는 그런 영혼들은 범례적 성격의 처벌을 받는 것으로 언급된다. 구제불능이 아닌 영혼들은 회개적 성격의 처벌을 받고, 보다 지혜로운 모습으로 개선되어 돌아온다. 플라톤,『고르기아스』524a, 『파이드로스』113d 참조. R. M. 네틀쉽,『플라톤의 국가론 강의』, 348쪽.
2)혼이 윤회한다는 것은 아주 오래된 이론으로 그리스뿐만 아니라 특히 인도에도 널리 퍼져 있었다.
   칼 알버트, 앞의 책, 185쪽.
3)“경건하게 산 사람들은 지상의 여러 곳들로부터 해방되고 감옥에서 풀려나 청정한 곳으로 올라가 그 땅에서 살게 되네. 이 사람들 가운데 특히 철학을 통해서 자신을 순수하게 한 사람들은 그 이후로는 전적으로 육체 없이 살 것이며, 방금 말한 거처보다 더 아름다운 거처에 이르게 될 걸세.”(파, 114b-c)

황광우
30만부가 나간 '철학콘서트'에 이어 '역사콘서트'와 '촛불철학'을 출간했다. 지난 5년 동안 운사 여창현의 문집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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