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 “철학의 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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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신전> 중 플라톤을 읽고

                             나지현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욕망을 넘어 어떤 것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욕망을 넘어선 어떤 것’은 철학과 탐구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먹고 사는 것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해결되고 나면 ‘이 세계를 관통하는 진리는 없을까?’ 라고 물음을 던지기도 해왔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종교를 믿기도 하고, 철학 책을 읽기도 하며, 과학적 진리를 탐구하기도 하였고, 또 다른 사람은 그런 것을 크게 인식하지 않고 살아간다.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를 통해 ‘선의 이데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우리는 처음에 현실 세계인 동굴에서 빛을 인식하지도 않고 보지도 못한 채 살아간다. 우리가 그 때 볼 수 있는 건 그저 허상의 그림자일 뿐이다. 그러다 어떤 계기로 빛을 보게 되고 이제 허상이 아닌 자기 자신을 인식하게 된다. 여기서의 포인트는 ‘빛을 마주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빛은 선이며, 신적인 존재로도 설명 된다. 나는 최근에 c.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를 읽으면서 선에 관한 명제를 본적이 있다. 저자는 인간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선을 추구하며, 선으로 이끌어진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신이 있다고 주장한다. 나는 첫 번째 명제는 그럭저럭 이해가 되었다. 상대적인 ‘선’에 대한 의문점은 남아 있지만, 대체로 인간은 악보단 선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신은 있는 것일까? 에 대한 긍정은 아직 나에게 물음으로 남아있다.

빛을 본다는 것은 진리를 얻고자 함이고, 나의 존재와 살아감의 이유를 알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에 대한 긍정이 없어도 빛을 본다는 것은 꽤나 중요한 일일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참된 진리를 추구한다는 것이 쉽지 많은 않다. 우리는 대중매체를 통해, 교통수단을 통해 더 많은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지만 동시에 남과 비교하기 더 쉬운 세상에 살게 되어 버렸다. 언젠가 오랜만에 한 지인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 지인은 그저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내 꿈이었는데 못 벌게 되어 아쉽다고 하였다. 그래서 상대를 만날 때 외제차를 타는지와 같은 물질적인 것과 얼굴을 가장 먼저 본다고 했다. 그 친구는 호메로스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사람에겐 그저 그것이 자신이 알고 있는 진리인 것이다. 그것만 추구한다면 삶이 깊이 있지 않겠다, 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회 안에서 자신을 지키는 힘은 참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끔씩 반 아이들을 보면 ‘중, 고등학교에 가서 교과서 공부만 하며 졸업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 책 읽는 시간을 많이 가지고 있다. 반 아이들의 진도가 한 달 안에 끝나 가는데, 그리스 로마신화를 같이 읽어 봐야 겠다. 또한 일생에서 참된 진리를 추구하려는 끈을 놓지 않아야겠다.

 

안녕하세요. 사단법인 인문연구원의 웹진 동고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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