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 2 -호메로스와 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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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와 저승

 

저승이 뭘까? 호메로스에게 물어보자. <일리아스> 23권에서 호메로스는 파트로클로스의 혼백을 통해 하데스의 문을 통과할 수 있도록 장사를 지내달라고 아킬레우스에게 요청한다. 장사를 지내주지 않으면, 하데스 근처에서 헤매고 있다는 것, 장사를 지내주고 하데스에 들어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말하였다.

마침내 달콤한 잠이 마음의 근심을 쫓으며 주위로
쏟아져 그를 엄습했을 때-그의 팽팽한 사지는
바람 부는 일리오스로 헥토르를 쫓느라 몹시 지쳐 있었다
가련한 파트로클로스의 혼백이 그를 찾아왔다. 그 체격이며 65
고운 눈이며 목소리며 모든 것이 생전의 그 자신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고, 옷도 똑같은 것을 입고 있었다.
그는 아킬레우스의 머리맡에 서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나를 잊고 잠이 들었구려, 아킬레우스여!
내가 살았을 적에는 잊지 않더니 죽고 나니까 잊고 마는구려.    70

, 어서 나를 장사지내 하데스의 문을 통과하게 해주시오.
사자(死者)들의 그림자인 혼백들이 나를 멀리 내쫓아

강2을 건너 그들 틈에 섞이지 못하게 하니, 나는 정처 없이
문이 넓은 하데스의 집 근처를 헤매고 있소이다.
눈물로 간청하노니, 그대의 손을 이리 주시오! 그대들이 나를    75
화장하고 나면 나는 다시는 하데스의 집에서 돌아오지 못할 테니까요.

이어 호메로스는 하데스에 혼백이 있다는 것, 혼백이 그림자와 같다는 것, 혼백이 연기처럼 사라졌다는 것, 그 안에 전혀 생명이 없다는 것을 말하였다.

이렇게 말하고 아킬레우스는 두 팔을 내밀었으나
그를 잡지 못했다. 혼백이 희미하게 비명을 지르며     100
연기처럼 땅속으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아킬레우스는
놀라 벌떡 일어나 손뼉을 치며 비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아, 그러고 보니 하데스의 집에도 혼백과 그림자가 있음이
분명하구나! 비록 그 안에 전혀 생명이 없기는 하지만.
가련한 파트로클로스의 혼백이 밤새도록 내 곁에 서서   105
울고 슬퍼하며 여러 가지 일들을 일일이 부탁했는데
그 모습이 생전의 그와 똑같았으니 말이야.”

저승에 대한 백과사전은 <오뒷세이아> 11권 저승편이다. 저승에 유폐된 혼백들은 짐승의 피를 마셔야 활기를 찾는다.

나는 사자들의 종족들에게 서약과 기도로 애원하고 나서
작은 가축들을 움켜잡고는 구덩이 위에서 목을 베었소.    35
그리하여 검은 피가 흘러내리자 이미 세상을 떠난 사자들의
혼백들이 에레보스에서 모여들었소.

키르케의 궁전 지붕에서 낙상하여 죽은 오뒷세우스의 전우 엘페노를 통해 호메로스는 고대인들의 사후세계관에 관한 몇 가지 정보를 제공한다. 저승은 어둠에 싸인 그림자들의 나라라는 것, 장사를 치르고 무덤을 만들어 주어야 후세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맨 먼저 다가온 것은 나의 전우 엘페노르의 혼백이었소.
그는 아직도 길이 넓은 대지 밑에 묻히지 못했으니
우리는 다른 일이 급해서 울어주지도 매장하지도 못한 채
그의 시신을 키르케의 집에 남겨두고 왔던 것이오.
그를 보자 나는 눈물이 나고 불쌍한 생각이 들었소.      55
그래서 나는 그에게 물 흐르듯 거침없이 말했소
엘페노르! 어쩌다 그대는 어둠에 싸인 그림자들의 나라에 오게
되었소? 그대는 걸어서 왔건만 검은 배를 타고 온 나보다 먼저 왔구려.’
……

나는 그대가 이곳 하데스의 집을 떠나게 되면 그대의 잘 만든
배를 도로 아이아이에 섬으로 몰고 가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오. 70
그때는 통치자여! 제발 부탁이니 나를 기억해주시오.
울어주지도 매장하지도 않은 채 나를 뒤에 남겨두고 떠나지 마시오.
나로 인해 그대가 신들의 노여움을 사지 않도록 말이오.

그대는 내 모든 무구들과 함께 나를 화장한 다음 나를 위해
그곳 잿빛 바다의 기슭에 무덤을, 한 불운한 남자의 무덤을 75
쌓아 올려주시오. 후세 사람들도 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말이오.
그리고 그대는 나를 위해 이 일도 이루어지게 해주시오. 즉 그대는
내가 살아서 전우들과 함께할 때 젓던 노를 내 무덤 위에 꽂아주시오.’

호메로스는 저승에서 오뒷세우스의 모자 상봉을 연출하였다. 역시 저승은 어둠에 싸인 그림자들의 나라였다. 어머니의 혼백은 그림자처럼 꿈처럼 날아갔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사후에 대해 말한다. ‘일단 목숨이 흰 뼈를 떠나게 되면 근육은 더 이상 살과 뼈를 결합하지 못하고 활활 타오르는 불의 강력한 힘이 그것들을 모두 없애버리지만 혼백은 꿈처럼 날아가 배회하게 되는 것’이라고.

이렇게 말하고 테이레시아스 왕의 혼백은 하데스의 집으로 150
돌아갔소, 예언들을 다 말하고 나서. 내가 꼼짝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자 마침내 어머니께서 다가오셔서
검은 피를 마셨소. 그러자 어머니께서는 당장 나를 알아보시고
울면서 내게 물 흐르듯 거침없이 말했소.
내 아들아! 어떻게 살아 있는 네가 어둠에 싸인 그림자들의 155
나라로 내려왔느냐?
……..

어머니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나는 마음속으로 곰곰이 생각하다가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의 혼백을 붙잡기로 작정했소. 205
나는 세 번이나 달려가 마음이 시키는 대로 어머니를 붙잡으려
했으나 세 번이나 어머니께서는 그림자처럼, 꿈처럼 내 두 손에서
날아가 버리셨소. ……
내가 이렇게 말하자 존경스런 어머니께서는 지체 없이 대답했소. 215

아아! 내 아들아, 모든 이들 중에서 가장 불운한 자여!
제우스의 따님이신 페르세포네께서 너를 속이시는 것이 아니란다.
이것이 곧 인간이 죽게 되면 당하게 되는 운명이란다.
일단 목숨이 흰 뼈를 떠나게 되면
근육은 더 이상 살과 뼈를 결합하지 못하고 220

활활 타오르는 불의 강력한 힘이 그것들을 모두 없애버리지만
혼백은 꿈처럼 날아가 배회하게 되는 것이란다.

저승편의 압권은 아킬레우스와 오뒷세우스의 대화였다. 저승은 ‘아무 의식이 없는 사자들, 지쳐버린 인간들의 환영들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아킬레우스는 저승비관론자였고, 이승예찬론자였다. “세상을 떠난 모든 사자들을통치하느니 차라리 지상에서 머슴이 되어 농토도 없고 재산도 많지 않은 가난한 사람 밑에서 품이라도 팔고 싶소이다.“

준족(駿足)인 아이아코스의 손자32의 혼백이 나를
알아보고는 비탄하며 물 흐르듯 거침없이 말했소.
‘제우스의 후손 라에르테스의 아들이여, 지략이 뛰어난 오뒷세우스여!
대담한 자여, 그대는 또 무슨 큰일을 마음속에 생각해내려는 것이오!
어찌 감히 하데스의 집으로 내려왔단 말이오? 아무 의식이 없는 475
사자들, 지쳐버린 인간들의 환영들이 살고 있는 이곳으로 말이오.’

내가 이렇게 말하자 그는 지체 없이 이런 말로 대답했소.
죽음에 대해 내게 그럴싸하게 말하지 마시오, 영광스런
오뒷세우스여! 나는 세상을 떠난 모든 사자들을
통치하느니 차라리 지상에서 머슴이 되어 농토도 없고  490

재산도 많지 않은 가난한 사람 밑에서 품이라도 팔고 싶소이다.

 

황광우
30만부가 나간 '철학콘서트'에 이어 '역사콘서트'와 '촛불철학'을 출간했다. 지난 5년 동안 운사 여창현의 문집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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