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그리운 박명섭 선생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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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박명섭 선생님께

이은주

*박명섭 선생은 2015년 무등산 등반을 하던 중 심장마비로 타계하였다.
전교조 해직교사였고, 전남 영광고에서 마지막 교단을 지켰다.
2013년 <교육의 배신, 내몰리는 아이들>을 출간하였다.

선생님이 저희들 곁을 떠나가신 지, 벌써 4년이 되었네요. 2013년 12월 일신중학교 강당에서 개최한 선생님의 책 잔치가 떠오릅니다. 책 제목이 «교육의 배신, 내몰리는 아이들»이었지요. 교육에 대한 의견을 열정적으로 토로하던 모습이 생생하네요.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또 하나 있습니다. 2015년 3월 금요일 저녁이었습니다. «고전교사공부모임»이 끝나고 헤어질 때였죠. 선생님은 저에게 다가와 물으셨지요. “동생 회사에서 직원 뽑느냐?”고요. 대학 못가는 제자들의 일자리가 걱정된다면서 “여학생들이라 속 아는 곳에다 취직을 해주어야 한다.”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2015년 4월 어느 날, 선생님이 타계했다는 부음(訃音)을 듣고 달려간 조대병원 장례식장엔 어린 딸 하나의 이름이 상주로 적혀 있었습니다. 상주인 딸은 아직 도착도 못했대요.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요.

선생님! 엊저녁 전교조 광주지부 창립 30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답니다. 신창동 연수원 강당 입구에서 장구를 멘 샘들이 왠지 낯이 익어, 보니 작년 여름 연수를 같이 받은 분이었어요. 입구에 놓인 방명록에 싸인을 하고, 30주년 기념수건을 받았어요. 떡도 받았습니다. 들어가 보니 낯익은 얼굴이 또 보였어요. 황광우 선생님이었어요. 합수 윤한봉 기념사업회의 상임 이사로 축하하러 오셨대요. 반가운 얼굴들이라 신이 났어요.

풍물패의 공연과 함께 막이 올랐고, 우리는 노래패 «점심시간»을 따라 ‘참교육 함성’과 ‘임을 위한 행진곡’을 힘차게 불렀어요. 백금렬 선생님을 아시지요? 만담의 대가 선생님이 나오니 반가운 마음에 기쁨이 두 배가 되었지요.이어 흥겨운 액막이와 복 내림 기원이 이어졌고, 이동철 선생님의 만담이 터져 나왔어요.

정물에 튀겨 죽을,
푼이 같은,
칠치 못한,
시럴 놈들이,
살할 짓 하는 통에,
람들이, 교사, 학부모, 학생.
위일체가 되어,
렇게나 많이 모여,
을 아주 잘해 볼라고 하는데, 그걸 다 막고 있어.

이동철 선생님은 6년째 법외 노조로 탄압받고 있는 전교조의 현실을 통쾌하게 폭로하였어요. 신들린 만담에 모두들 어리둥절해 있다가, 정신이 번쩍 들어 힘차게 박수를 쳤답니다.

이어 연극교사모임 «꿈틀»이 나왔어요. “전교조가 없다면” 미래의 교실이 얼마나 황폐할지 상상하는 연극, 간담이 서늘해졌어요. 웃다, 박수치다, 교육현장 걱정하다… 저는요, 저와 함께 연극연수를 받던 선생님들이 나와 연기를 하니 너무 보기 좋았어요. 제가 너무 자기중심적인가요? 황 선생님도 배우로 출연한 김영은 선생이 제자라고 하면서 흐뭇해하시더라고요.

사회는 지정남의 몫이었어요. 1989년 당시 고등학생으로 해직교사들과 함께 고생한 지정남. 지정남은 걸걸한 사투리로 그때의 추억을 회고했어요. ‘선생님을 돌려 달라!’ 비를 맞으면서 운동장에 책상을 내놓고, 항의하고, 시험 거부로 맞서다 빵점을 맞고, 부모님께 혼나고 경찰이 시골 집까지 찾아 왔다고요.

장휘국 교육감님은 경찰들의 원천봉쇄에 맞서 한양대에서 연세대로, 다시 연세대에서 건국대로 이동하여 치렀던 1989년 창립 대회 당시의 숨 막히는 상황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김병일 선생님은 올해 전교조 광주지부의 지부장을 맡아, 부지부장 심선화 선생님과 함께 기념사를 낭독하였지요. «고전교사공부모임»을 함께 한 안선옥, 조미숙 선생님도 오셨구요. 합수 윤한봉 기념 사업회에서 뵈었던 윤광장, 정해직 선생님도 오셨어요.

1989년 전교조 탈퇴각서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선생님들이 해직되면서 박명섭 선생님도 그때 해직되었다지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봉고차에 샤쓰, 런닝구, 양말 가득 싣고 전국을 장돌뱅이로 떠돌아 다니셨지요. 해직된 김성중 선생님이 ‘그리운 하나족발’을 낭송하자, 박 선생님 생각에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그리운 하나족발

                                             김성중

1989년 뜨거운 여름
수만 명의 교사들이 교육민주화를 외치며
전교조의 깃발을 하늘 높이 올렸다
학교에서 쫓겨났을 때
운암동 주공아파트 3단지 앞
허름한 조립식 건물에
10평 남짓한 족발집이 생겨
사람들을 불러 모았지.

–중략–

그곳에서는 너나없이
참교육 투사가 되었고
그곳은 해방구가 되어
사람들의 답답한 가슴을
시원스럽게 뚫어주었지.

그때 내 나이 스물아홉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던 시절.
접시를 나르고 탁자를 닦던 때가
아주 오래된 전설처럼 되어버린 오늘
새삼 하나족발이 그리운 것은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이런저런 변명만 일삼다가
교단을 떠나는 아쉬움 때문이리.


 

박명섭 선생님이 고생하시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했답니다. 이어지는 뮤지컬 공연에선 ‘전교조 교사 식별법’을 공개했어요. 당시 교육부에서 내려온 ‘전교조 교사 식별법’이라는 공문 내용을 볼까요?

촌지를 받지 않는 교사,
학급문집이나 학급신문을 내는 교사,
지나치게 열심히 가르치려는 교사,
반 학생들에게 자율성, 창의성을 높이려 하는 교사,
직원회의에서 원리 원칙을 따지며 발언하는 교사,
아이들한테 인기 많은 교사….”

어쩌면 박명섭 선생님의 성품을 이렇게 잘 표현했을까요? 저는 늦게나마 전교조 조합원이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까지도 제자의 취업 걱정을 하시던 선생님! 선생님께서 살아 계셨다면 그 때의 제자들과 함께 기념행사에 오셨을 거라고 생각하니 또 눈물이 났습니다. 천국에서 이 소식을 들으시면 기뻐하실 거라 믿어요. 저 세상에서 선생님의 영혼이 평안하길 기원합니다. 내년 31주년 행사에는 더 기쁜 소식을 많이 전해드릴 것을 약속드리며 이만 맺을께요.

 

2019년 6월 6일 이은주 올림

 

 

동고송
안녕하세요. 사단법인 인문연구원의 웹진 동고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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