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시작] 《주역周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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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_ 《주역周易》

 

《주역》, 점치는 책인가

이순신의 명량대첩은 세계 해전사의 금자탑이다. 12척의 배로 133척의 적선에 맞서 31척을 격파한 전투가 명량대첩이다. 이런 승리도 놀랍지만 이순신이 7년간 임진왜란의 일상을 낱낱이 기록하여 《난중일기(亂中日記)》를 남겼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세계의 어떤 장군도 이런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 그런데 《난중일기》에 보면 《주역》으로 점을 치는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1596년 1월 10일 《난중일기》는 이렇게 기록한다. “맑은 날이었지만 서풍이 강하게 불었다. 적이 나타날지 안 나타날지를 알아보기 위해 점을 쳤다. ‘임금을 보고 모두 기뻐하는 것과 같다’는 좋은 괘가 나왔다.” 점을 친다는 것은 하늘의 뜻을 물어보기 위함이다. 하늘의 뜻을 물어본다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겸허함인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인간의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오만이 가득하다면 점을 칠 이유가 없다.

《주역》은 가장 오래된 점치는 책이다. 그러나 단순히 점만 보는 책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주역》에는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철학이 담겨 있다.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제자로 잘 알려진 세계적인 심리학자 카를 융(Carl Gustav Jung)은 30년 동안이나 《주역》을 연구했다. 카를 융은 《주역》의 서문에 이렇게 썼다. “내가 이 일을 시작한 이유는 고대 중국의 사유방식이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을 가지고 있다고 나 스스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역》에는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것이 있다. 카를 융은 《주역》이 지혜를 사랑하고 진정으로 자기를 알려는 사람에게 알맞은 책이라고 했다. 《주역》은 철두철미하게 자신을 알 것을 주장하는 책이다. 경박한 사람이나 미숙한 사람을 위한 책도 아니고 합리적인 지식인을 위한 책도 아니다. 자기가 하는 일을 깊이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즉 성찰하는 사람에게만 적합한 책이다.

《주역》을 만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척전법(擲錢法)을 사용하면 된다. 100원짜리 동전을 꺼내어 던져보라. 앞면이 나오면 양(陽)이라 하고 뒷면이 나오면 음(陰)이라고 하자. 여섯 번을 던져서 차례대로 음(–)과 양(-)을 기록한다. 모두 양이 나오면 건위천(乾爲天) 괘이고, 모두 음이 나오면 곤위지(坤爲地) 괘이며, 세 번 음이 나오고 세 번 양이 나오면 천지비(天地否) 괘다. 《주역》에서 이들 괘에 대한 설명을 찾아 읽으면 된다. 그런데 그 의미를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그냥 읽어서는 그 온전한 의미를 체득할 수 없다. 오직 깊은 고뇌가 있어 그 고뇌를 호소해야만 《주역》은 자신의 음성을 들려준다.

 

우리가 읽기 나름이다

공자는 평생에 걸쳐 《주역》을 연구했다. 얼마나 《주역》을 자주 보았던지 책을 묶은 가죽 끈이 세 번 떨어졌다. 공자는 평생의 연구 성과를 《주역계사전(周易繫辭傳)》으로 남겼다. 공자는 《주역》의 효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주역》에는 성인의 도가 네 개 있다. 《주역》을 이용해 말하려는 자는 그 풀이를 숭상하고, 《주역》을 이용해 움직이려는 자는 그 변화를 숭상하고, 《주역》을 이용해 도구를 만들려는 자는 그 모양을 숭상하고, 《주역》을 이용해 미래를 알려는 자는 그 점을 숭상한다.”

공자는 《주역》의 효능이 다양함을 말한다. 그러나 좁혀서 보면 두 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 《주역》은 인간사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위한 책이거나 아니면 미래 사건에 대한 예측을 위한 책이다. 《주역》에 대해 “지나간 것을 통해 미래를 살피고, 미미한 것을 드러내며, 그윽한 것을 드러내고, 마땅한 이름을 지어 분별하여 말을 바로 하고 사를 판단하면 갖추어진다”라고 하는 평가가 있다. 이 평가에 따르면 《주역》은 인간사를 성찰하는 철학적 사유다. 그런가 하면 “시초(점에 쓰이는 톱풀이나 대나무)의 수를 궁구하여 다가오는 사건의 성격을 아는 것을 점이라 하고, 변화를 완벽하게 아는 것을 일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주역》을 알면 마음 깊은 곳까지 꿰뚫어보아 천하의 뜻과 통하고, 일의 기미를 궁구하여 천하의 일을 능히 이루며, 신묘한 힘을 얻어 서두르지 않아도 빨리 가고 재촉하지 않아도 이른다”라는 평가가 있다. 이 평가에 따르면 《주역》의 효능은 미래의 예측이다. 어떤 쪽으로 읽어도 무방하다면 중요한 것은 《주역》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다.

 

동양 사상의 원류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한 후 정인지에게 창제의 정신을 풀이하는 해설문을 쓰게 했다. 정인지는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가 천지인삼재(天地人三才)의 묘합이라고 썼다. ‘천지인’은 《주역계사전》에 쓰인 말이다. 공자는 말했다. “변화는 진퇴의 상이고 강유(剛柔)는 낮과 밤의 상이다. 육효의 움직임은 천지인삼재의 도다.” 모음과 자음은 소리의 음과 양이고, 초성과 중성과 종성은 소리의 삼재다. 한글과 《주역》이 이렇게 연결된다. 이황이 선조의 성리학 공부를 돕기 위해 지었다는 《성학십도》의 첫 번째 그림에 붙인 태극도설은 이렇다. “무극(無極)이 태극(太極)이다. 태극이 움직여서 양을 낳고, 움직임이 극한에 이르면 고요해져서 음을 낳으며, 고요함이 극한에 이르면 다시 움직인다. 한 번 움직임과 한 번 고요함이 서로 뿌리가 되어 음과 양으로 나뉘어 양의(兩儀)가 된다.” 이것은 《주역계사전》에 나오는 “역에는 태극이 있고 태극이 양의를 낳으며 양의가 사상(四象)을 낳고 사상이 팔괘(八卦)를 낳는다”에 토대한 것이다.

《주역》은 동양 사상의 보고(寶庫)다. 《주역》을 읽으면 노자가 보인다. “음과 양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것, 이것이 도”라는 《주역》의 원리를 살짝 바꾸면 “뒤집어지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라는 《도덕경》의 내용이 된다. 또 “힘들게 일하고서 내세우지 않고 공을 세우고서 자랑하지 않는 것은 후덕의 극치이고 그 공을 아랫사람에게 돌리는 것이다. 덕은 성대하고 예는 공손하다. 겸손한 사람은 공손을 다하여 자리를 보존한다”라는 겸괘(謙卦)에 관한 공자의 해설을 뒤집으면 “공을 이루었으면 몸은 물러선다”는 《도덕경》의 내용이 된다.

노자만이 아니다. 《주역》에는 맹자도 보이고 한비자도 보인다. “장차 반역하려는 사람은 그 말이 부끄럽고, 마음에 의심이 있는 자는 그 말이 갈라지며, 훌륭한 자는 말수가 적고, 저급한 사람은 말이 많다. 착한 사람을 모함하는 자는 그 말이 종잡을 수 없고, 지킬 것을 잃어버린 자는 그 말이 비굴하다”라는 《주역계사전》의 구절은 《맹자》의 <지언(知言)>에서 되풀이된다. 또 “난리가 일어나는 시발점은 잘못된 언어다. 임금이 비밀을 지키지 않으면 신하를 잃고, 신하가 비밀을 지키지 않으면 몸을 잃는다”는 절괘(節卦)에 대한 공자의 해설은 조금만 바꾸면 한비자의 말이 된다.

《주역》은 동양의 변증법이다. 해가 지면 달이 뜨고 달이 지면 해가 뜬다. 해와 달이 번갈아 떠서 밝음이 생긴다. 추위가 가면 더위가 오고 더위가 가면 추위가 온다. 추위와 더위가 번갈아 와서 1년이 이루어진다. 가는 것은 굽은 것이요, 오는 것은 펴는 것이다. 수축과 팽창의 상호작용에 의해 이가 생긴다. 영원히 반복되는 자연의 운행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낳고 또 낳는 것’이다.

 

1000년에 한 명이 이해할 수 있는 책

정약용은 오랫동안 유배 생활을 하면서 《주역》을 공부했다. 그러나 자신의 미래를 점쳐 보기 위해 공부한 것은 아니었다. 정약용은 말했다. “갑자년(1804년)부터 《주역》 공부에 전념하여 지금까지 10년이 되었지만 하루도 시초를 세고 괘를 만들어 어떤 일을 점쳐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 왜 정약용은 오랫동안 《주역》을 공부했을까? 《주역》의 목적은 상제(上帝)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듣는 것이다. 점을 치는 이유는 상제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것이다. 인간은 상제의 뜻을 청취하기 위해 상징을 고안했다. 그것이 역의 괘상들이다. 상제는 하느님 혹은 신령님이다. 그래서 점법에서는 자연의 흐름과 일치하는 마음의 특별한 상태를 요구한다. 자연의 흐름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대자연이든 상제든 말씀을 구할 수 없다. 따라서 점치는 자는 아무나 될 수 없다. 특별한 수련이 필요하다. 그 수련의 경지가 무심(無心)이다. 정약용은 한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주역》을 공부하려 할 때는 반드시 조용한 장소를 먼저 구해야 합니다.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 아기 보채는 소리, 아낙네 탄식하는 소리 등이 가장 꺼려집니다. 어떻게 해야 그런 곳을 얻을 수 있을까요?”

정약용은 쉰일곱 살이 되었을 때 《주역사전(周易四箋)》을 마무리했다. 정약용은 《주역사전》에 대해 “하늘의 도움을 얻어 지어낸 책”이라 했다. 덧붙여 “절대로 사람의 힘으로 알아내지 못하고 지혜로운 생각만으로도 알아낼 수 없는 것이다. 이 책에 마음을 기울여 오묘한 뜻에 통달할 수 있는 사람은 자손이나 친구 중에도 1000년에 한 번쯤 만날 정도로 어려울 것이다”라고 했다. 《주역》에 통달할 수 있는 사람은 1000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정약용은 《주역사전》에 대해 “이 책만이라도 후세에 전해진다면 나머지 책들은 없애버려도 괜찮다”라고 했다. 공자의 《주역계사전》이 《주역》을 스스로 읽을 수 있게 하는 자습서라면 정약용의 《주역사전》은 완벽한 참고서다.

《주역》은 음(陰)과 양(陽)을 들어 천지자연의 변화를 설명한다. 이것을 깨달으면 하늘과 땅의 이치는 물론 죽음과 삶의 이치를 알게 된다고 한다. 세상은 변한다. 순식간에 변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변화를 예측할 수 없고, 그래서 미래에 대해 불안한 마음을 갖는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주역》을 뒤적이며 점을 치는 이유다. 그러나 《주역》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변화하는 세상에 대처하는 자세다. 즉 《주역》은 우리에게 변화에 대비하라고 말한다.

 


《주역(周易)》
《주역》은 원래 중국 고대 주(周, 기원전 11~9세기) 이래 점치는 데 쓰인 책이다. 그 최초의 체계인 《역경(易經)》은 기원전 11세기경에 기본 틀을 갖추었다. 그리고 기원전 3세 기 한(漢) 초에 10편의 주석서[10익十翼]가 마련되면서 《역전(易傳)》으로 확정되었다. 우주와 사회 변화의 총 원리인 <태극(太極)>과 그것을 움직여나가는 상보 대립적인 두 계기인 양(陽) 과 음(陰)의 조합과 배열의 순서에 의해 자연세계와 인간세계의 변화를 설명하는 《역전》은 중국적 사유체계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책이다. -송영배

 

홍승기
인민노련 홍보부를 담당하면서 6월 항쟁을 현장에서 이끈 숨은 일꾼. 술만 사 준다면 지옥에도 함께 들어갈 천진무구한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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