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시작] 메를로퐁티, 《지각의 현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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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상생활을 한다_ 메를로퐁티, 《지각의 현상학》

몸의 철학자’

고대 그리스의 저명한 철학자였던 헤라클레이토스(Heracleitos)는 “같은 강물을 두 번 건널 수 없다”라고 말했다. 처음 강을 건널 때 발에 닿았던 강물은 흘러가 버리기 때문에 그다음에 다시 같은 강을 건너며 발을 담갔던 강물은 처음의 그 강물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헤라클레이토스를 찾아갔다. 대단한 말을 하는 철학자의 생활은 무엇인가 보통 사람과 다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실망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난로 앞에서 불을 쬐며 빵을 굽고 있었기 때문이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삶은 보통 사람의 삶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실망한 사람들이 발길을 돌리려 하자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했다. “여기에도 신들이 존재한다.”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 속에 진리가 있다는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전하는 유명한 헤라클레이토스의 일화다. 이 일화는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 1908~1961) 철학의 핵심 주제와 관련된다. 메를로퐁티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생활 속에서 진정한 철학을 발견하라면서 우리 자신을 일상생활과 결부시켜 파악하라고 한다. 우리는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 메를로퐁티 이전의 철학은 이런 당연한 얘기를 무시했다. 메를로퐁티는 우리의 몸을 강조한다. 그래서 메를로퐁티의 철학을 ‘몸의 철학’이라고도 한다.

메를로퐁티는 유명한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Jean Paul Sartre)와 절친한 사이였다. 두 사람은 ‘현대(Les Temps Modernes)’라는 제목의 잡지를 함께 발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공산주의에 대한 시각 차이로 두 사람은 갈라섰다. 그리고 메를로퐁티는 독자적인 자신의 철학을 이룩했다. 그 철학을 보여준 책이 1945년에 출판된 《지각의 현상학(Lα phénoménlolgie de la perception)》이다.

 

전통적 선입견을 넘어서라

메를로퐁티는 ‘전통적 선입견’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시작했다. 메를로퐁티가 말한 전통적 선입견이란 그 이전 철학을 의미한다. 이전 철학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로크와 흄으로 대표되는 영국 경험주의 철학과 실증주의 철학을 가리킨다. 이 철학들의 공통점은 경험, 관찰, 실험 등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메를로퐁티는 이 철학들을 포괄하여 경험주의 철학이라 불렀다. 다른 하나는 데카르트로부터 시작된 합리주의 철학과 칸트의 철학 등을 가리킨다. 이 철학들의 공통점은 지성의 우위를 인정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메를로퐁티는 이 철학들을 지성주의 철학이라고 불렀다.

경험주의 철학과 지성주의 철학은 여러 면에서 대립적이었지만 메를로퐁티는 두 계열의 철학이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두 계열의 철학 모두 고찰하는 대상과 고찰하는 주체를 분리했던 것이다. 눈앞의 책상에 대해 생각한다고 해보자. 우리는 생각의 대상인 책상과 생각하는 주체인 우리 자신을 분리한다. 이런 사고를 철학에서는 주체와 객체의 이원론이라고 한다. 이 이원론은 서양철학의 전통이다. 이 점에서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은 다르다.

동양철학은 천인합일(天人合一), 즉 하늘로 대표되는 세계와 우리가 하나가 되는 것을 최고의 경지라고 한다. 그러나 서양철학에는 동양철학에서 주장하는 주체와 객체의 일체라는 관념이 없다. 메를로퐁티는 주체와 객체의 이원론이라는 서양철학의 전통을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천인합일을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주체와 객체가 결부된다고 말했다. 책상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 메를로퐁티는 책상과 우리 몸의 감각기관인 눈이 결부되어서 책상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원근법은 사실을 왜곡한다

메를로퐁티는 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 편의 글을 썼다. 그는 특히 폴 세잔(Paul Cézanne)의 그림을 높이 평가했다. 폴 세잔은 대표적인 후기 인상파 화가다. 프랑스의 유명한 소설가 에밀 졸라(Émile Zola)와 30년 이상 절친한 관계를 맺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에밀 졸라가 폴 세잔을 모델로 《작품》이라는 소설을 쓰면서 둘의 관계는 끝이 났다. 졸라가 그 소설에서 주인공을 창조성 없는 화가로 그렸기 때문이다. 에밀 졸라는 화가로서 폴 세잔의 능력에 회의적이었지만 메를로퐁티는 폴 세잔을 천재로 평가했다. 그는 <센스와 난센스>라는 논문에 이렇게 썼다.

“천재 세잔은 그림의 전체적 구도를 재배열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전체로서의 그림을 보면 원근법의 왜곡이 더 이상 왜곡되어 보이지 않게 했다. 오히려 그림이 하나의 정상적 시선을 획득하여 새로운 질서가 그 안에서 탄생하고 또 그림 속의 사물은 지금 막 우리 눈앞에 나타나 한데로 집결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원근법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유행한 그림 기법이었다. 가까운 것을 크게, 먼 것을 작게 그림으로써 그림에 입체감을 불어넣는 기법이다. 르네상스 이후 수백 년 동안 인정받은 원근법을 폴 세잔이 뒤바꾸는 혁명을 일으켰다고 메를로퐁티는 평가했다. 메를로퐁티에 의하면 원근법은 화가가 실제로 바라본 모습이 아니라 작위적으로 구성한 시선을 보여주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화가의 시선은 ‘몸’과 떨어져 먼 산에서 물체를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다. 화가의 시선은 눈이라는 ‘몸’과 얽혀 있다. 원근법을 사용하려면 하나의 지점을 설정해야 한다. 그 지점에서 가까운 것과 먼 것을 표현해야 원근법이다. 메를로퐁티는 우리 몸 바깥에 있는 어떤 한 지점을 인정하지 않는다. 화가가 사물을 보는 눈은 우리 몸의 일부다. 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보이는 모습이 다르다. 그러므로 우리 몸 밖의 어느 한 지점을 설정하여 그 지점으로부터 가까운 것과 먼 것을 구분해서 그리는 것은 사물을 왜곡하는 것이다.

똑같은 사물이라도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인다. 이런 사실은 우리가 우리 몸 밖의 어떤 지점에서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인 눈을 통해 사물을 인식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의 몸을 배제한 인식은 사물을 왜곡할 뿐이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처럼 우리는 몸을 통해 세계를 인식한다. 메를로퐁티가 그림에 주목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똑같은 사과를 보고도 화가들은 다른 그림을 그린다. 우리가 몸을 통해 사물을 인식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그림이다.

 

이분법에 반대하다

메를로퐁티의 철학을 ‘현상학’이라고 한다. 그러면 현상학이란 무엇인가? 현상이란 단어는 영어 페노메논(phenomenon)의 번역어다. 페노메논은 그리스어 ‘파이노메논(phainomenon)’에서 유래했다. 파이노메논은 ‘자신을 그 자체로 내보여준다’는 의미다. 이 현상이란 말에 ‘말하다’는 의미의 ‘로고스(logos)’가 합쳐져서 현상학이라는 단어가 생겼다. 그러므로 현상학이란 세상이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는 모습을 밝히는 철학이다. 즉 현상학이란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려는 철학이라는 말이다. 세상이 자신을 드러내는 모습이 우리의 일상생활이다. 메를로퐁티는 우리의 일상생활을 ‘생활세계’라고 부른다. 우리는 몸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생활세계에서 살아간다. 우리가 몸이 없고 정신만 있는 존재라면 생활세계에서 살지 못한다. 정신은 모양이 없고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어서 하나의 울타리 안에 머물지 않는다. 매일매일 접하는 울타리가 없다면 일상생활은 없다. 몸이 있어서 우리는 하나의 울타리 안에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매일매일 부딪히는 낯익은 세상, 즉 일상생활이 있는 것이다. 메를로퐁티는 일상생활에서 몸을 통해 인식하라고 말한다.

메를로퐁티는 경험주의 철학과 지성주의 철학에 반대한다. 경험을 인식의 원천이라고 주장하는 경험주의 철학은 인식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보자. 같은 길이의 선이 다른 길이로 보이는 착시 현상이 있다. 시력이 손상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같은 사물을 다르게 본다. 경험에 따라 사물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 그렇다면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인식했다고 할 수 있는가. 경험주의 철학에 반대하는 지성주의 철학 역시 인식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지성주의 철학은 의식의 구성으로 인식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환영(幻影)과 같은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의식의 구성으로 인식할 수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탐구할 것이 없다. 우리가 세상의 모든 일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험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메를로퐁티는 인식에서 우리의 몸이 담당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강조한다. 경험주의나 지성주의 철학들은 몸을 연구 대상으로만 파악했다. 이에 반대하여 메를로퐁티는 몸이 대상이 아니라 주체라고 말한다. 몸은 생활세계와 유기적으로 통일되어 있다. 즉 우리의 몸은 일상생활 속에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헬리콥터를 타고 하늘에서 집들을 관찰하듯이 세계를 인식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집 안에 사는 집의 일부이고 그 집의 일부로서 집에 대해 인식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라 몸을 가지고 살아가는 생활세계의 일원일 뿐이다. 그래서 메를로퐁티는 인간을 생활세계와 분리시키는 이분법적 사고에 반대했다. 경험주의 철학은 세계가 있고 그 세계를 경험으로 인식하는 인간이 있다는 이분법, 지성주의 철학은 인간이 있고 인간의 인식에 의해 구성되는 세계가 있다는 이분법을 전제로 한다. 메를로퐁티는 이런 이분법을 반대한다.

“우리는 원초적으로 자연적 세계와 관계를 맺고 있으며, 따라서 그 안에 거주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타인들, 그리고 인간 세계와 유대를 맺고 있다. 우리는 일상생활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계의 형세를 결정하고 우리의 공통된 역사의 행로를 결정짓는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 1908~1961), 《지각의 현상학(Lα phénoménlolgie de la perception)》
메를로퐁티는 20세기 프랑스 현상학을 주도한 철학자다. 후설(Husserl, Edmund)의 현상학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어떤 특정의 문제에 관해선 후설과 견해를 달리했다. 타인에 대한 앎이 어떻게 구성되는가가 바로 그런 문제다. 메를로퐁티는 이 문제에 대한 후설의 이론을 거부하고 인간의 신체와 지각에 근거하여 타인의 앎을 설명하려는 새로운 이 론을 내세웠다. 《지각의 현상학》은 이런 이론을 상세히 다루고 있는 메를로퐁티의 대표적인 저작이다. -김효명

 

홍승기
인민노련 홍보부를 담당하면서 6월 항쟁을 현장에서 이끈 숨은 일꾼. 술만 사 준다면 지옥에도 함께 들어갈 천진무구한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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