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공부모임] ‘혼불’ 2권 발제 및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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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공부모임 김정희 선생님께서 발제와 토론을 이끌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혼불 2> 줄거리

청암부인은 날로 근력이 쇠하고 있고, 바닥을 드러낸 적 없던 저수지는 오래된 가뭄으로 바닥이 드러났다. 청암 부인이 일흔 살 되던 해 창씨개명을 하였고, 그 때문에 자신의 고희연을 열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리고는 생일 전날 밤 쓰러졌다.

효원은 집안에서 청암부인을 제외하고는 맘 편히 대할 사람이 없었다. 강모와 율촌댁은 말할 것도 없고 시아버지인 이기채 또한 며느리를 곱게 보지 않았다. 부잣집 딸 며느리로 맞이하면 논문서라도 따라올까 싶었는데 그럴 기미가 없으니 곱게 보일리가 없다. 이기채는 종손으로 자신의 시대에 무엇 하나라도 남겨야 겠다는 중압감을 가지고 있는 인물인데 반해 배포는 작고 수완이 없어 가진 것 지키기에 급급하였다. 창씨개명으로 가문에 큰 먹칠을 했으니 다른 것으로 남기려 하는데 그것은 재산이었다. 아끼고 또 아끼는 것이 그가 잘하는 일인데, 보탬 없이 손 큰 며느리는 예뻐할 수 없다. 그것은 율촌댁도 마찬가지이다. 농사꾼들 음식을 푸짐하게 가져다 준 것을 보고 며느리에게 잔소리다. 그러고 보면 효원은 청암부인과 많이 닮았다. 그 배포며 사람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그렇다. 농사꾼들을 잘 먹어야 그들이 힘이 나서 더 일을 열심히 할 것이라고 시어머니에게 항변한다. 그에 반해 강모는 집안 사람 모두에게 받는 기대감을 버거워 하며 현실에서 도망치고만 싶어한다.

강모의 사촌형 되는 강수는 친척 오누이 진예를 좋아하다가 상사병으로 죽고 말았다. 총각 귀신의 한을 풀어준다고 처녀로 죽은 사람과 혼인을 맺어주는 것이 망혼제 이다. 강수의 망혼제가 있던 밤 오류골댁은 다 큰 처자 혼자 집에두기 뭣하여 강실을 큰집에 올려 보내고 망혼제를 보러갔다. 그런데 그날 강실은 강모와 마주쳤고, 멀리서나미 같이 망혼제를 보았다. 망혼제를 보다보니 강모는 죽은자들의 결혼식이 자신과 강실이의 결혼식으로 보인다. 흔들리는 마음을 주체 못하고 강실이를 범하고 만다!!! 그리고는 아무말 없이 먼저 그 자리를 뜬다. 어둠속에 누워 있는 강실이를 버리고 떠난다. 그리고 무엇에 홀린듯 효원에게로 간다.

강모는 고보를 졸업하고 전주 부청에 취직 되었다. 부청 직원들과 모찌즈끼 라는 술집에 갔다가 오유끼를 만났다. 강모가 술먹고 오유끼에게 손찌검을 심하게 했는데 그녀는 도망치지 않고 받아주었다. 그리고 도리어 강모를 위로 하였다. 강모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받아준 사람으로 생각하고 그녀의 빚을 갚아주고 같이 살았다. 하지만 빚을 갚아줄 때 부청의 공금을 사용하였고 오유끼를 풀어준 다음해에 그것이 드러나 잠시나마 유치장 신세를 진다. 숙부 기표의 도움으로 풀려나왔고 그 날로 오유끼와는 작별을 하게 된다.

신사년 음력 오월 열이레 강모의 아들이 태어났다. 이름을 ‘철재’로 하였다. 철재가 태어나기 전후로 청암 부인은 잠시나마 기력을 되찾았다. 그러나 지금은 자리에 누워 잠깐 정신 차리기도 힘들었다. 유치장에서 나온 후 할머니를 뵈었을 때 잠시 정신을 차리시고 꼬깃꼬깃한 수건을 건네시니 그것을 삼백원, 바로 강모가 공금을 횡령한 액수이다. 정신줄을 놓는 와중에도 어여쁜 손자 걱정되어 그 돈을 마련한 것이다.

큰 어른인 청암부인이 자리에 누워있으니 집안 분위기가 말이 아니다. 그런 중 강실이의 나이도 어느덧 스물이라 혼사를 치러야 하는데, 마땅한 데가 없다. 할머니 정신이 온전하셨으면 그리 예뻐했던 손녀 혼사에 앞장섰을 텐데 지금 누구하나 도와주는 이가 없다. 사람만 좋았지 돈도 권세도 없는 기응의 마음은 답답하기만 하다. 딸의 혼삿길이 순탄치 않으니 기응이나 오류골댁이나 심성이 이전과 다르다. 기응은 별일 아닌 것에 역정을 내고 오류골 댁은 전에 없이 꼬박꼬박 말대답을 한다. 자신 때문에 부모님 마음이 편치 못하니 강실이 스스로도 자괴감이 든다. 그러나 정작 그것보다 마음 쓰이는 일은 따로 있었다. 사촌 오라비 강모에게 순결을 빼앗기고 아무에게도 내색하지 못한 채 혼자서 눈물을 삼키기를 이년째이다. 그 뒤로 작은 발걸음 소리에도 놀라고 잠도 제대로 잘 수 없다. 안 좋은 조짐이 보이면 소문이 났구나 걱정하며 한 편으로 강모 생각을 한다. 이 대목에서 강실이도 강모를 남자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강모를 머릿속에서 지워 버리려 하지만 도저히 지울 수 없는 사람이다. 그에게 순결을 빼앗겼기 때문만은 아니다.

 

<토론>

[토론 1]
이 책의 제목인 ‘혼불’의 외면적 의미와 내면적 상징에 대해 아래 작가의 말을 참고하여 알아보자.

  • 지난 세월, 일제(日帝)에 무참히 짓밟히고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참상(慘狀)을 치르면서도 우리가 이만큼이나마 일어서 있는 것도 다 저 위로부터 내리 받은 혼불을 꺼뜨리지 않았음에 연유(緣由)하는 것이리라. /전남일보 1990. 12. 22 최명희 <우리 민족 삶의 근원 추적>
  • 이미 혼불이 나가버린 사람의, 껍데기만 남은 어둡고 차디찬 몸을 살아 있다고 믿는 어리석음이여. 그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것일 수도 있고, 너의 것일 수도 있었다. 그것은 또 나와 너의 ‘관계’나 역사와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에 대한 두려운 인식은 오래도록 나를 사로잡았다.
    간단히 말해서, 어떤 사람의 몸에 혼불이 있으면 산 것이고, 없으면 죽은 것이다. 그러니까 ‘혼불’은 목숨의 불, 정신의 불, 삶의 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것은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힘의 불이기도 하다.
    즉, 혼불은 존재의 핵이 되는 불꽃인 것이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지혜와 감정을 지니고, 자신은 물론 주변을 환하게 비춰주는 등불 같은 혼불이 밝은 사람과 불빛이 어둡고 미약한 사람이 있듯이, 한 개인이나, 가문이나, 지역 사회나, 나라나 세계가 서로 밝은 혼불로 환한 세상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불이 나가버린 암흑 속에 캄캄한 세상도 있을 터인데, 역사와 문명도 역시 그러하지 않겠는가. … – 1996년 작가의 시카고 강연 <소설 “魂불”을 통하여 본 한국인의 정서와 문학적 상상력, 그리고 작업 과정> 중에서 발췌
  • ‘혼불’이 훨훨 타오르는 인간, 사회를 꿈꾸고 싶다. 혼불은 존재의 불, 혼불이 살아있는 시대를 꿈꾸다
    사람이 죽게 되면 그 몸에서 혼불이 먼저 빠져나가고 혼불이 빠져나가면 사흘 안에는 반드시 초상이 난다고 합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이야기가 신화냐 미신이냐의 차원을 넘어서서 정말로 한 사람이 살아있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형체는 살아있는데 혼불은 이미 나가 버린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자기가 혼불이 나갔는데도 혼불이 나간 줄도 모르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 (1997년, 11회 단재상 수상소감 중에서)

 1) 혼불의 의미 :   


 2) 혼불의 상징 :

 

[토론 2]
혼불의 인물들은 그들이 몸담고 있는 공간에 따라 매안에 살고 있는 이씨 가문의 양반들, 고리배미의 상민들, 거멍굴의 천민들로 나누어진다. 이런 공간 구성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에는 계급적 갈등이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토론 3]
강모는 결혼식 날 밤 신부를 그대로 둔 채 혼자 잠들고 강실이의 꿈을 꾼다. 효원을 싫어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2권 124~125, 185 참고)

  • 강모와 한 살 차이였던 사촌누이 강실은 살구나무 아래 앉아 서 소꿉장난하는 것이 일이었다. 납작한 판자 위에 사금파리들을 늘어놓고, 솔잎이며 싱건지 나물 같은 것, 그리고 황토흙을 빚어 만든 시루떡과 그 시루떡에 좁쌀이나 수수를 박은 콩떡들을 챙길 때, 작은 콧등에는 땀방울마저 솟아났다. 그리고 모처럼 얻어내는 조개껍질이야말로 잔칫상을 차리기에는 오금이 저리게 즐거운 그릇이었다. 떨어진 살구꽃잎을 수북이 담아 밥상을 보아오면 강모는 나뭇가지 젓가락으로 꽃잎을 집어먹는 시늉을 하는 것이엇다.
    “맛있어?”
    “응”
    “더 주까”
    “응”
    그러면 강실은 다른 조갑지에다가 또 꽃잎을 수북이 담아 주었다.
    그 빛깔이 비치는 둥 마는 둥 하는 엷은 분홍의 꽃잎들은 강실이의 뽀얀 뺨과 더불어 강모를 까닭 모르게 설레게 하였다. (1권 58~59쪽)
  • 강모가 때린 것은 오유끼가 아니었다. 메다 붙이고 후려치고, 패대기치며, 물어뜯으며, 짓이긴 것은 오유끼가 아니었다.
    그것은 대실의 혼행에서 맞닥뜨린 태산 같은 효원의 그림자였다. 집어삼킬 듯 우뚝하던 효원의 어깨였다. 어찌보면 그것은 강실이 이기도 했다. 무너지며 괭괭거리는 징소리가 귀에 울려, 그 소리를 몰아내려고 길길이 뛰어오를 때, 텃밭에 낭자하던 꽃대부러지는 소리와 강실이의 등뼈가 내려앉던 소리, 방바닥에 쓰러지는 오유끼는 안개마냥 자욱한 강실이였다. 그런가 하면 강실이가 아니라 청암부인이기도 했다. (2권 185쪽)

 

[토론 4]
청암 부인이 일어설 수 있었던 힘의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자신의 주체적인 인격에서 나온 것 일까? 가부장적의식의 결과인가?)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청암 부인과 청암 저수지와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자.

  • “막바지로 공사가 치달아 마무리가 되려는데, 꼭 기다렸다는 듯이, 나라가 망했다, 하지 않는가. 나는 믿을 수가 없었네. 하늘과 땅이 합벽을 하고 맷돌을 갈아, 천지가 캄캄한 일이었지. 그런대 묘한 것은 그 와중에서도 남모르게 벅찬 희망이 샘솟았다는 것이야. 맷돌질을 해보면, 왜, 우아래짝이 맞물려 돌면서 곡식을 가루로 만들어버리지만, 껍질도 벗겨지지 않은 채 통째로 빠져나온느 놈이 있지 않던가? 신기하지. 꼭 그 통밀이나 통팥, 녹두같이 또글또글 살아서 튀어나온 희망, 그것이 저수지였어. 그때 나는 믿었네. 우리 조선이 망했다 하지만, 결코 망할 수 없는 기운을 갊아서 여기 우리 매안이 저수지에다 숨겨둔 것이라고 남모르게 그득 채워 놓고 우리를 살려 줄 것이라고. 예사로운 일이 세상에 어디있는가. 모두가 다 뜻이 있지. 밖으로 난 숨통을 왜놈이 막았다면, 한 가닥 소중한 정기는 땅밑으로 흘러서 예 와 고인 것이라, 난 확신했었네.아무한테도 발설한 일은 없었지만, 나는 누구인가 내게 맡긴 이물을 잘 간수하리라 다짐했어.“ 청암부인은 인월댁한테 그렇게 말했었다. (2권 28~29쪽)
  • “저수지 어떠냐.” 메마른 소리로 물었다. (2권 206쪽)

 

[토론 5]
이기채는 가문을 지키기 위해 눈에 핏발을 세우며 재산을 관리하기 시작한다. 망국의 시대에 가문을 지탱하는 힘은 무엇일지 생각해 보자.

  • “가문 가문 하지만 그도 다 선대쩍 말입니다. 팔한림에 열 두 진사가 나고 정승, 판서 즐비하게 했다는 족보가 자랑이 아난 것은 아니올시다마는 이 당장에 그 후손인 우리는 무엇으로 가문을 빛냅니까? 벼슬을 하려니 조정이 있기를 합니까아, 충신이 되자니 임금이 계시기를 합니까. 거기다가 선비로서 갈고 딱은 학문으로 후학을 기르자니 학동이 있기를 합니까. 죽림칠현이 되자 해도 대밭이 없는 세상 아닌가요? 도대체 무억 가지고 이 가문을 번창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체면, 체면, 지금 이 세상 돌아가는 난국이 어디 체면 있는 세상인가요? 상놈이 상전 되는 세상 아닙니까아. 왜놈들이 상감노릇 허는 것을 눈 뜨고 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무력한 백성이라면 솔직히 무력헌 것을 인정하고 쓸데없는 양반 체면 따위에 매이지 말 일입니다. 힘도 없는 주제에 정신만 살어 가지고 앉은 방석을 못 돌리면 결국 앉은뱅이 노릇밖에 더 헐 게 무에 있단 말입니까? 이럴 때는 시대를 이용해야 합니다. 시대를 거슬러 산 사람치고 성명 삼자를 온전허게 보존헌 사람이 없습니다. 형님. 도대체 지금 이 가문에 구체적인 힘이 될 수 있는 게 무업니까? (중략) ” -기표 (2권 71~72)
  • “다만 선조에게 누가 되지 않고 사람 사는 도리에 어긋나지 않으면서 가산을 늘리자니 안 먹고 안 쓰는 게 제일이라. 피가 나게 절약하고 살고 잇지만 그것만으로는 신통치가 않어”- 기채 (2권 72~73)

     

[토론 6]
청암 부인이 대의명분을 끈으로 한평생을 살았다면 인월댁은 어떤 곳에도 애착의 끈을 두지 않음으로써 한평생을 보낸 인고의 여인이다. 방죽에 몸을 던진 인월댁을 다시 살린 건 베틀이었다. 인월댁은 스러져가는 생명의 한 부분을 엮듯 북을 움직였다. 새벽녘, 닭이 홰를 치는 소리를 듣고서야 베틀에서 내려왔던 인월댁이 만든 것은 한 필의 명주가 아니었을 것이다. 인월댁의 삶을 보고 느낀 점은 무엇이며, 자신의 삶에서 베틀은 무엇인지 말해보자.

  • 사립문을 지그려 닫고 허청허청 원뜸의 방죽을 향하여 걸어가던 인월댁은 어둠 속에서 초가를 돌아보았다. 집은 마치 벗어 놓고 온 신발처럼 봄밤의 어둠을 쓸어안고 있었다. (2권 33쪽)
  • 누가 올 리도 없고 달리 갈 데도 없는 세월이, 베틀에 짜여지는 무명필처럼 흘러갔다. (2권 41쪽)
  • 논 사고 밭을 사면 무얼 하겠는가. 그것도 애착의 끈이 된다. 내 무엇을 위하여 흙덩어리에다 마음을 묶어 두리오. 내 마음 하나도 나한테 묶여있는 것이 짐스럽고 무거운 것을…., 삼간초가에 이 한 몸 의탁하고 있다가, 때 되면 툇마루에서 일어나 길 떠나가면 그뿐이랴. 무엇에든지 나를 묶어두면, 떠나는 발걸음이 또 얼마나 무거우리)
    그런 인월댁의 생각에 청암 부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혼자서 깊이 고개만 끄덕이었다. 인월댁은 인월댁대로 그러한 청암 부인의 모습에서 풍우를 가려주는 지붕을 느끼었다. (2권 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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