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시작] 신채호_ 《조선상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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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아와 비아의 투쟁이다
_ 신채호, 《조선상고사》

 

 

 

내 위장이 왜놈 고기는 받아주지 않는다

신채호(申采浩, 1880~1936)는 최남선이 초안한 독립선언서를 찢어버린다. 신채호가 보기에 독립선언서의 내용은 불과 몇 년짜리 운동에 불과했다. 신채호는 평화운동이나 외교론이 아닌 일제와의 투쟁만이 독립의 길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일제에 대한 신채호의 증오는 대단했다. 신채호는 중국에 망명 중일 때 친구와 함께 음식점에 간 일이 있었다. 신채호 일행은 맛이 좋은 음식을 먹으며 배달하는 소년에게 어디 음식인지를 물었다. 소년은 동양어라는 것으로 일본에서 가져온 고기라고 했다. 신채호는 노발대발하며 화장실로 달려가 먹은 음식을 토해냈다. 그리고 “내 위장이 왜놈 고기는 좀처럼 받아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 신채호에게 역사를 바로 세운다는 것은 단지 과거의 일을 끄집어내는 것이 아니었다.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다. 신채호는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조선의 역사를 바로 세워 민족을 일으켜 세우려 했다. 안재홍이 쓴 《조선상고사》 서문을 보자.

약관(弱冠) 스물의 나이에 신채호는 사상 혁명과 새로운 도덕을 세울 뜻을 가졌다. 청나라와 러시아, 일본이 서로 침략하여 5000년 조국의 명맥이 위태하고 백성이 도탄에 빠져 있을 그때 서울의 평단에 나서 북받쳐 억누를 수 없는 서늘한 열정을 붓 한 자루로 사회에 드러내 민족의 심장을 쳐 움직였다. …… 신채호가 생각한 것은 단 한 가지, 첫째는 조국의 재건이었고 둘째는 그것에 미치지 못한다면 조국의 민족사를 올바로 세움으로써 민족 정기가 면면히 이어져 자유 독립의 그날을 맞는 것이었다.

민족에게 역사가 있다면 개인에게도 역사가 있다. 개인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은 내 아들 딸에게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맹자(孟子)는 “공자가 《춘추》를 저술함에 나라를 어지럽히는 신하와 아비를 해하는 아들인 난신적자(亂臣賊子)가 두려워했다”고 말했다. 지금의 나는 나로 끝나지 않는다. 나는 위로부터 물려져 아래로 이어주는 역사의 고리다. 신채호가 살았던 그때는 참혹했다. 그래서 신채호는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로 위를 밝혀 그때를 일으키려 했던 것이다.

신채호는 충청남도 대덕군 산내면 어남리에서 태어났다. 일곱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할아버지로부터 유학을 배웠다. 그의 재주를 아낀 사람들의 천거로 열아홉 살 때 성균관에 입학했다. 신채호는 성균관에 입학하면서 당시 활성화되고 있던 서재필 등의 독립협회 운동을 접하자 곧바로 독립협회에 가입하여 열성적으로 활동했다. 신채호는 만민공동회 사건으로 처음 투옥되고 나서 더욱 열심히 애국 계몽 운동에 뛰어들었다.

신채호는 1910년에 일본이 조선을 강제 합병하자 만주로 망명했다. 만주와 블라디보스토크를 돌아다니며 독립운동에 헌신하는 가운데서도 역사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1919년에 상하이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했지만 미국의 위임통치를 청원하는 행각을 일삼은 이승만을 국무총리로 추대하려 하자 이에 적극 반대하며 임시정부를 탈퇴했다. 임시정부를 민족주의자가 아닌 친미 사대주의자인 이승만이 주도하는 것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신채호는 1928년에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위조지폐를 만들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0년형을 언도받고 여순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신채호는 일본 경찰의 고문과 혹독한 형무소 생활에 병을 얻어 1936년 2월 한 많은 일생을 마감했다.

《조선상고사》는 1925년 이전에 저술한 것으로 1931년에 <조선일보>에 연재되다가 해방 이후인 1948년에 단행본으로 간행되었다. 《조선상고사》는 ‘총론’을 포함해서 모두 12편의 글로 이루어져 있다.

 

역사는 ‘나’와 ‘나 아님’의 투쟁이다

신채호는 역사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을까? 《조선상고사》 ‘총론’은 신채호의 역사관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글로서 지금도 많은 사람이 애독하고 있는 훌륭한 글이다.

역사란 무엇이뇨? 인류 사회의 ‘아’와 ‘비아’의 투쟁이 시간부터 발전하며 공간부터 확대하는 심적(心的) 활동의 상태의 기록이니, 세계사라 하면 세계 인류의 그리 되어온 상태의 기록이며, 조선사라면 조선 민족의 그리 되어온 상태의 기록이니라.

무엇을 ‘아’라 하며 무엇을 ‘비아’라 하느뇨? 깊이 팔 것 없이 얕게 말하자면 무릇 주관적 위치에 선 자를 ‘아’라 하고 그 외에는 ‘비아’라고 하나니, 이를테면 조선인은 조선을 ‘아’라 하고 영국 러시아 등을 ‘비아’라고 하지만 영국 미국 등은 각기 제 나라를 ‘아’라 하고 조선을 ‘비아’라 하며 …… 그 밖에 무엇이든지 반드시 본위인 아가 있으면, 따라서 아와 대치하는 비아가 있고, 아 중에 아와 비아가 있으면 비아 중에도 또 아와 비아가 있어, 그리하여 아에 대한 비아의 접촉이 번극(煩劇)할수록 비아에 대한 아의 탈투가 더욱 맹렬하여 인류 사회의 활동이 휴식될 사이가 없으며 역사의 전도가 완결될 날이 없나니, 그러므로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의 기록이니라.

역사란 아와 비아의 투쟁이라고 했다. 아란 무엇인가? 자신이 속한 쪽이 ‘아’이고 그렇지 않은 쪽이 ‘비아’다. 신채호는 이렇듯 자아를 중시했다. 국권 상실은 자아의 상실이다. 상실된 자아를 찾는 것이 시대적 과제다. 자아는 비아가 있음으로 비로소 자아가 된다. 자아는 비아와 맞서는 투쟁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의 본모습을 회복하게 된다. 식민지 현실을 타파하고자 하는 독립운동가의 시대적 요구가 역사관으로 표현된 것이다.

신채호는 자신의 역사관을 조선의 역사에 대한 연구에만 적용하지 않았다. 신채호는 세계의 역사 역시 아와 비아의 투쟁 기록이라고 했다. 그럼으로써 신채호는 자기중심적 독단에 빠지지 않을 길을 열어주었다. 조선의 입장에서 보면 조선이 ‘아’이고 외국이 ‘비아’다. 외국의 입장에서 보면 외국이 ‘아’이고 조선이 ‘비아’다. 상대적 세계관의 제시였다.

《조선상고사》 ‘총론’에서 신채호는 역사를 쓸 때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역사는 역사를 위해 쓸 뿐, 다른 목적을 위해 쓰지 않는다. 말하자면 사회가 변화하고 움직이는 상태와 그에 따라 일어나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쓴 것이 역사다. 저작자의 목적에 따라 그 사실을 바꾸고 고치고 덧붙이는 것이 아니다. 만일 화가가 초상화를 그릴 때 연개소문을 그린다면 크고 준수한 연개소문을 그려야 하고 강감찬을 그린다면 작은 몸에 못생긴 강감찬을 그려야 한다. 만일 한쪽을 드러내고 한쪽을 억압하려는 마음에 그 얼굴을 바꾼다면 화가는 자신의 일을 망각한 것이며 다른 얼굴을 그린 것이다.

역사 서술에서 자기 독단은 용납되지 않는다. 신채호가 역사를 연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역사를 왜곡해서 그 왜곡이 민족의 신음이 되었기에 신채호는 역사를 연구하고 역사를 썼다.

 

낭가사상이 끊어지다

신채호는 우리 민족을 협소하게 바라보지 않았다. 우리 역사의 무대가 넓어지는 것처럼 우리 민족도 확장된다. 특히 신채호는 흉노족에 관심을 기울였다.

《사기》 <흉노전(匈奴傳)>에 보면 흉노도 조선과 같이 5월에 제천의례를 거행하고 구리로 된 사람 모습의 천제(天帝)를 만들어 그것을 ‘휴도(休屠)’라고 이르니 이는 ‘수두’의 음역이다. 휴도의 제사장을 휴도왕이라 이르니 이는 단군의 뜻과 비슷하다. …… 고대의 종교와 정치는 분리되지 않아 종교의 제사장이 곧 정치의 군장이 되니 종교가 다다른 곳이 정치적으로 속한 곳이 된다. 단군 이래 조선의 교화가 중국, 흉노 등의 여러 민족에 전해졌으니 강토의 구역이 광대함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에 말갈족이 수없이 등장한다. 《삼국유사》에는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 살았던 여러 민족과 종족이 소개되어 있다. 오늘날 우리는 그 민족들과 우리 민족의 관계에 대해 제대로 연구하지 않는다. 단일민족, 단일국가라는 신화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구려는 우리 민족과 말갈족이 함께 어울려 살았던 다민족 국가이고, 발해는 말갈족이 다수인 다민족 국가였다. 신채호는 우리 민족과 흉노족이 어울려 살았음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신채호의 연구는 오늘날 다민족 사회로 급속히 변화하고 있는 우리나라에 시사점을 던져준다.

신채호는 민족주의자였다. 그렇지만 국수적 민족주의자가 아니라 열린 민족주의자였다. 민족의 지평을 넓히는 일이 결코 과거 우리의 영토가 넓었음을 자랑하려는 것일 수 없다. 오히려 우리가 수많은 민족, 종족과 어울려 살아왔음을 인식하는 일이다. 따라서 우리를 알게 모르게 옥죄고 있는 단일민족, 단일국가의 신화를 극복하는 일이기도 하다.

신채호는 단군조선, 부여, 고구려로 이어지는 역사의 본류를 강조하고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을 비판했다.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했다면 우리의 영토는 더 넓었을 것이라는 국수주의적 사고방식 때문에 신채호가 고구려를 강조한 것이 아니다. 신채호는 우리 민족정신의 원류를 낭가사상(娘家思想)에서 찾았다. 낭가사상이란 주체적으로 삶을 개척하는 진취적인 사상을 말한다. 신채호는 낭가사상이 신라의 삼국통일로 끊어졌음을 한탄한 것이다.

 


생각 플러스

신채호는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사실을 변조할 수 있다는 점을 주장했다. 독일의 사회학자 베버(Max Weber)는 학문 연구에서 가치 중립성, 즉 객관성을 강조했다. 다음의 두 글을 읽고 ‘역사 서술에서 주관성과 객관성의 문제’를 생각해보자.

왕건이 궁예의 은총을 받아 대병(大兵)을 맡게 되자 드디어 궁예를 쫓아내어 객사(客死)하게 했다. 그러나 왕건은 신하가 임금을 살해했다는 ‘이신시군(以臣弑君)’의 죄를 싫어하여 전력을 기울여 궁예를 죽이지 않으면 안 될 죄를 만들어냈다. 고려의 사관(史官)은 “궁예는 신라 헌안왕(憲安王)의 자식인데, 왕은 그의 생일이 5월 5일임을 미워하여 내다버렸다. 궁예가 이를 원망하여 군사를 일으켜 신라를 쳐서 멸망시키려 했는데 그는 어느 절에서 벽에 그려져 있는 헌안왕의 초상화까지 칼로 쳤다”고 했다. …… 만약 사관의 말이 맞는다면 궁예가 비록 헌안왕의 아들이라 하더라도 그가 태어난 날, 죽으라고 내다버린 날부터 이미 아버지와 관계가 끊어진 것이니, 궁예가 헌안왕의 몸에 직접 칼질을 하더라도 아버지를 죽인 죄가 될 수 없을 터인데, 왕의 초상화를 치고 문란한 신라를 혁명하려고 한 것이 무슨 큰 죄나 논란거리가 되겠는가. 그렇지만 고대의 좁은 윤리관으로는 헌안왕의 초상화를 칼로 친 일과 신라를 치려 한 일만으로도 궁예가 죽을죄를 지은 것이니, 궁예를 죽이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래서 왕건은 살아서 고려를 통치하고 죽어서 태조 문성의 시호를 받은 일에 대해 추호도 부끄러울 게 없게 된 것이다. 이것이 고려의 사관이 구태여 세달사(世達寺)의 일개 걸승(乞僧)이던 궁예를 가져다가 고귀한 신라 황궁의 왕자를 만든 이유일 것으로 생각한다.
-신채호, 《조선상고사》 중에서

개인의 가치판단이 학문적 주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다. 그로 인해 끊임없이 혼동이 일어나고, 심지어 간단한 인과관계를 확정하는 것에까지 과학적 주장에 다양한 해석들이 개입되기에 이르렀다. …… 우리가 해결해야 할 현실 문제에 대한 규범적 가치의 공감대를 만드는 것은 경험적 학문의 과제가 될 수 없다. 경험적 분석에 근거하여 특정한 문화적 가치를 바람직한 규범으로 도출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 지식의 나무를 먹고 자라는 시대에 세상에 대한 분석 결과로부터 세상의 의미에 대해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경험적 지식이 늘어난다고 인생과 세상에 대한 보편적인 가치판단이 등장한다고 할 수 없다. 우리는 인생과 세상에 대한 보편타당한 견해가 경험적 지식의 축적 결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경험적 지식과 가치판단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사실에 근거한 진실을 추구하는 과학적 의무의 실행이 우리가 해야 할 바다.
-베버, 《사회과학 연구에서의 가치중립성》 중에서

 


신채호, 《조선상고사》

신채호가 1931년부터 <조선일보> 학예란에 연재했던 것으로, 1948년에 단행본으로 간행되었다. 신채호는 이 책에서 과거 유학자들의 역사서술과 일제의 식민사관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민족주의 사관에 입각하여 단군시대로부터 백제 멸망과 그 부흥 운동까지의 한국 고 대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는 관점에서 서술했다. 20세기 전반기의 민족주의사학을 대표하는 저술이다. -권태억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홍승기
인민노련 홍보부를 담당하면서 6월 항쟁을 현장에서 이끈 숨은 일꾼. 술만 사 준다면 지옥에도 함께 들어갈 천진무구한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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