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원천리] 황광우 작가, 목포고 학생들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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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0일(월) 7시. 목포고 강당. 30여 명 정도의 학생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목포고에서는 올해부터 <5대 고전 읽기 운동>을 시작했다. 한 학기 동안 ‘백범일지’·’삼국사기'(1학년), ‘국부론’·’오뒷세이아'(2학년), ‘이기적 유전자'(3학년)를 읽고 있다.
하지만 학생들에게는 고전 읽기가 너무 낯설고, 특히 국부론을 읽어야 하는 2학년 학생들의 원성이 자자했다고 한다.
이러한 가운데 “고전을 왜 읽어야 하고,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를 주제로 황광우 작가의 강연이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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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학생들과 황광우 작가가 주고받은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 작가님이 생각하는 고전문학의 필요성은 무엇입니까?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물려준 유언이 있다면, 어떨까요? 300년 전 살다 가신 10대 조 할아버지가 10대 후손들에게 읽으라고 남겨준 ‘삶의 비밀’이라는 유언이 있다면 어떨까요? 3000년 전 살다 가신 100대 조 할아버지가 후손들에게 읽으라고 남겨준 ‘인간의 길’이라는 유언이 있다면 어떨까요? 고전은 현자들이 남겨준 유언집입니다.

내 집 앞에 사는 유명한 지식인이 있습니다. 서울대 철학과 모 교수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책을 들고가 싸인을 받고 싶겠죠. 그런데 4차원의 세계에서는 그 서울대 철학교수가 흠모하는 플라톤을 나는 만납니다. 플라톤 아저씨가 나에게 싸인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 대해 충고를 줍니다. 공자 아저씨가 나에게 옛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소크라테스 아저씨를 나는 만납니다.

고전은 현자의 유언집이요,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현자를 만나 대화를 나눈다는 것입니다. 삶은 만남입니다. 고전을 읽으면 3천 년 전의 과거가 나에게 현재가 되고, 3천 년 전의 현자가 나의 멘토가 됩니다.

 

  • 『오뒷세이아』에서 오뒷세우스의 이야기는 트로이 전쟁과 어떤 연관성 있나요?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의 이야기’이고, 오뒷세이아는 ‘오뒷세우스가 겪은 이야기’입니다. 일리아스는 9년 동안 전개된 트로이 전쟁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전개하고 있고, 오뒷세이아는 트로이 전쟁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기까지 겪은 모험담입니다.

아가멤논은 고향에 돌아가 배신한 아내 클리스테네스에게 죽임을 당하구요, 메넬라오스는 되찾은 아내 헬렌과 노후를 즐깁니다. 오뒷세우스만은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지중해 전역을 떠돌아다닙니다.

 

  • 『오뒷세이아』에 나오는 여신 칼립소는 왜 오뒷세우스를 동굴에 가두고 강제로 정부를 만들려고 했을까요?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지요. 여신 칼륍소의 입장에서 봅시다. 오뒷세우스가 신보다 더 매력적인 대상이었다는 거죠. 또 몸이 없는 신보다 몸이 있는 인간이 더 나을 수도 있었겠지요.

오뒷세우스의 입장에서 봅시다. 오뒷세우스가 칼륍소의 품에서 원치 않는 세월을 보냈다고 합니다만, 저는 반대로 생각합니다. 7년의 세월 정부(情婦)와 놀아난 거죠. 그러다 뉘가 난 것입니다.

그리고 떠납니다. 칼륍소는 오뒷세우스에게 다가오는 고난을 예고합니다만, 오뒷세우스는 자신의 뜻대로 뗏목을 저어갑니다. 가장 자유로운 사람, 그가 오뒷세우스였습니다.

 

  • 오뒷세우스가 폴리페모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아무것도 아닌’이라고 말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말장난(word play)이지요? 누가 너의 눈을 쑤셨느냐고 물었는데 ‘아무것도 아닌’ 자가 나의 눈을 찔렀다고 말하는 것은 마치 ‘언제 눈을 다쳤냐?’고 물을 때, ‘언제나 눈을 다쳤어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우스개 이야기이지요.

 

  • 오뒷세우스가 쉽게 집에 가지 못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야기에는 포세이돈의 저주 때문으로 나오지요. 오뒷세우스가 포세이돈의 아들인 폴리페모스의 눈을 찔러버린 것에 대한 벌이라고 하지요. 나는 오뒷세우스의 자유로운 정신 때문이라고 봅니다. 일상의 삶에 안주할 수 없는 자유로운 영혼 말이어요.

 

  • 애덤스미스가 주장한 자유방임주의와 현재 ‘한국, 미국의 경제체제’의 차이점이 궁금합니다.

애덤 스미스의 자유방임주의는 작은 국가를 지향하였습니다. 군대도 없고 관료 조직도 없고 도둑을 지키는 경찰 몇 명이 있는 야경국가를 지향하였습니다. 한국은 500조 원의 재정을 운영하는 초거대 국가이지요. 한국 사회를 이끄는 원리가 아담 스미스의 자유주의라고 주장한다면, 아담 스미스가 코웃음 칠 거에요.

 

  • 철학자 맑스에 대해 자세히 평론해 주셨는데요. 보통 현대 사회학의 기초를 맑스가 세웠다고 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사회학(Soclology)의 창시자는 오귀스트 꽁트이구요, 마르크스는 사회과학(Social science)의 기초를 놓은 이라고 말해야할 것입니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철인왕을 제창하면서 대중의 창의성을 경멸했습니다. 토마스 모어는 <유토피아>에서 인민 대중의 자치공동체를 제창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플라톤의 이상국가를 뛰어넘은 책입니다.

아담 스미스는 현실의 환경을 개혁해나가는 주체를 근로대중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은 <유토피아>를 뛰어넘었습니다.

카를 마르크스는 새로운 사회의 조직자를 노동자계급으로 보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마르크스는 스미스를 뛰어넘었습니다.

물론 마르크스의 이론은 프랑스혁명, 1789년에서부터 1848년까지 진행된 격동의 역사 체험을 바탕으로 작성된 것입니다. 자기 사회를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프랑스, 독일의 노동계급을 보면 마르크스의 이론이 맞고, 아직도 자기 사회를 주도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노동계급을 보면 마르크스의 이론은 맞지 않는 듯합니다.

 

 

동고송
안녕하세요. 사단법인 인문연구원의 웹진 동고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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