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당 앞에 연못을 파고 작은 채마밭을 가꾸며 글 읽고 시쓰는 일상은 우리의 로망이다.
인생의 책임을 다한 선비들은 자연과 함께하는 소박한 귀거래사를 꿈꾼다.
자연은 귀천을 가리지 않는다.
달빛이 주는 고아한 시적 느낌, 살랑이는 봄바람이 볼을 스치는 그 부드러움이 사람을 가리지 않는 것처럼..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간의 밝은 달은 귀로 그것을 들으면 소리가 되고,
눈으로 그것을 보면 아름다운 경치가 되니,
이를 가져도 금할 이 없고, 이를 써도 다함이 없으니,
이는 조물주의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나와 그대가 함께 누릴 바로다.“(赤壁賦)
이미 1000여 년 전 옛 시인이 평등한 자연의 감회를 갈파하였다.
차별하지 않는 자연을 삶의 곁에 장치하는 취미가 수석 취미이다. 수석에는 변하지 않는 바위가 있고 산이 있고 강이 있다. 그 바위와 산과 강에 달빛이 흐르고(月流) 달빛이 머물며(月留) 달이 놀고(月遊) 간다. 꿈같은 찰나의 인생에 장자의 메타적 삶을 수석을 통해 관조하는 것이다.
‘덧없음’! 우리의 삶을 한마디로 정의하는 적절한 단어이다. 꿈 같은 한 순간의 인생길은 그 과정이 아무리 화려하더라도 결국 空, 無, 虛無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그가 그의 곳간을 다 채웠을 때 그의 시간은 끝났다”라는 쉽고도 통찰적인 성경의 구절이 있다. 따라서 인간에게 가장 평등하고 가장 중요한 것이 시간일 것이다. 부자나 빈자나 귀천을 떠나 각각의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차이가 없다.
짙은 안개 속처럼 우리는 허무 속에 살고 있다. 고독하고 우울한 순간 뿐 아니라 지극히 여유로운 때에도… 어김없이 다가오는 허무한 생각은 우리를 허무를 다시 생각할 수 없는 삶의 현장으로 내 몰고 만다.
그러나 그 무상의 귀결 속에서도 허무에 대항하는 사랑과 우정 그리고 사유를 통한 관조와 통찰의 즐거움이 있다.
靜中觀物理 조용한 가운데 만물의 이치를 들어다 보니
居室一乾坤 방안이 하나의 우주로다.(허목)
고적한 작은 석실에 말 없는 오랜 친구들이 놓여 있다.
삶의 허무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깨끗하고 불빛 환한 곳’(헤밍웨이) 이 필요 한 것처럼 수석인들의 작은 석실에는 허무를 밀어내는 설레임이 있다.
2019년 5월, 유용상, 이동욱, 박태환, 박행수 4인의 소박한 석담 전시회가 수석 문화의 작은 촛불로 기억되기를 바라며 여러 원로님들과 수석인들의 왕림을 부탁드리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