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서석(瑞石)
입석에서 만년의 이끼를 보고
서석에서 구름 위 상상봉을 노닐자
큰 새(大鵬) 되어 날아오르면
나주벌 사행(蛇行)하는 영산강이 보일 것이다
2월, 설화(雪花)
하늘과 땅이 흰 눈에 잠길 때
잣고개 넘어 산장에 들어가자
원효사 너머 저편 너덜겅을 기어오르면
새하얀 눈꽃, 문득 설화가 나타난다
3월, 취가정(醉歌亭)
개구리 겨울잠에서 깨어날 때
햇볕 따사로워 아득한 마을 충효동 취가정에 가자
돌에 새긴 장부의 취가, 따라 부르면
꽃에도 바람에도 취하지 않을 것이네
4월, 무릉도원(武陵桃源)
벚꽃이 피면
터져 나오는 꽃 따라 피안으로 들어가자.
토끼봉에 올라 어딘가로 내려가면
저 건너 꽃잎 나부끼는 무릉도원이 보인다.
5월, 빛고을(光州)
빛고을은 가는 곳이 다 역사다.
능주에 가면 정암(靜庵)의 유허비(遺墟碑)가 있고
담양에 가면 송순(宋純)의 면앙정(俛仰亭)이 있다.
한가하면 창평에 가서 미암(眉庵) 유희춘도 만나자.
6월, 무동(舞洞)
폭우가 쏟아진 다음 날 무동에 가자
아득한 저 곳에서 허옇게 부셔지는 폭포
아무나 볼 수 없다 동네 사람들은 ‘시무지기’라고 하는데 아마도 ‘새무지기’일 것이다
7월, 소쇄원(瀟灑園)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라고
시인은 노래하였다 세상 같은 건 그냥 버리는 것이다
기묘년에 세상을 버린 양산보
소쇄(瀟灑)란 빗자루로 마당을 쓰는 일이란다
8월, 정곡(鼎谷)
무등산은 가는 곳이 다 명소이다
정곡에 가면 졸졸졸 계곡물이 흐르는데
이 물은 무등산에서 내려오는 물이다
골짜기에 발을 담그고 있는 선녀를 볼 것이다
9월, 명옥헌(鳴玉軒)
고서 후산마을에 가면 명옥헌이 있다
햇볕이 아직도 뜨거운 구월
명옥헌에 가면
세상에서 가장 붉은 백일홍이 하늘을 덮고 있을 것이다.
10월, 안양산(安養山)
길은 혼자 걷는 게 좋다
가을이 익어갈 때 안양산에 가자
저 혼자 외롭게 가을을 맞이하는 호수가 나오고
저 혼자 외롭게 세상을 불태우는 단풍이 나올 것이다
11월, 장불재(藏佛峙)
아직도 장불재를 오르지 않았다면
당신은 인생을 더 살아야 한다
늦가을의 중봉은 쓸쓸하지만
억새밭에 몸을 안기면 그대, 신선이 될 것이다
12월, 큰바위 얼굴(大岩顔)
첫 눈이 내릴 때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고 광주를 빠져나가라
멀리 송정리에서 홀연 뒤를 돌아보라
그때 큰바위 얼굴이 승천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