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 역사콘서트

0
23
This post is last updated 36 days ago.

<역사콘서트>를 위한 랩

 

1. 역사를 잃어버린 민족

1950년대 어느 날이었지.
김수영은 노래했어.
‘나는 비숍 여사와 연애하고 있다.’고
김수영은 노래했어.
‘비숍 여사를 안 뒤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고
김수영은 노래했어.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고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고
김수영이 왜 이렇게 노래한 줄 알아?

시인은 1921년 생이었어.
한국어를 금지하던 시절이었지.
1937년대 말이야.
일제는 말을 없애고 혼마저 없애려 하였어.
윤동주가 청춘을 고뇌하던 그 시절 말이야.
김수영이 배운 국어는 일본어였고
김수영이 배운 국사는 일본사였어.
김수영은 말을 빼앗겼고 역사를 빼앗긴 청년이었어.

그렇게 자랐어.
해방이 되고
한국전쟁이 터지고
시인은 청계천 헌책방에서 비숍의 책을 만나지.
날밤을 지새.
비숍이 조선을 방문한 해는 1894년이었어.
동학의 횃불이 남도의 밤을 불사르던 그 시절 말이야.
김수영은 몰랐어.
김수영은 동학을 몰랐고 전봉준을 몰랐고 명성황후를 몰랐어.
김수영은 자신의 할아버지를 까마득히 몰랐던 거야.

비숍의 글을 읽어나간 그 날 밤,
김수영은 잃어버린 역사를 다시 만나고 있었던 거야.
그랬어. 우리는 역사를 잃은 민족이었어.
애비, 애미를 잃은 고아였던 거야.
잃어버린 부모를 만났을 때,
고아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저 부모를 부둥켜안고 울 뿐이지.
시인의 영혼은 그날 밤 떨렸던 거야.
휘몰아치는 떨림을 그렇게 노래했던 거야.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고 말이야.

김수영만이 아니었어.
기개 높은 선비, 함석헌 선생도 그랬어.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도 식민사관의 연장이었어.
‘한반도의 지세를 보면 큰 민족을 길러낼 수가 없대나.
이씨왕조는 애시당초 축이 부러진 수레였대.
사화니 당쟁이니 환국이니 세도니
이파, 저파, 대파, 쪽파, 갈라져 쌈박질이나 하고,
양반들의 집안 다툼이 조선의 역사래.
이런 놈의 역사를 왜 배워?
우리는 잘못된 역사를 배운 민족이고 역사를 잃은 민족이었어.

김수영과 함석헌만이 그런 게 아니었어.
박정희는 더 그랬어.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안고 태어났다’고 박정희는 가르쳤지.
알고 보니 박정희는 천황을 숭배한 자였어.
비 내리는 울적한 날이면, 일본군복을 갈아입고,
큰 칼 차고, 천황에게 경례를 올린 진정한 천황 숭배자였어.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리자’고 그는 호소했지.
학교마다 이순신의 동상을 세워놓고 말이야.
알고 보니 그는 이순신을 팔아, 독재의 성을 쌓아나간 자였어.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자고 가르쳤지.
알고 보니 대한민국은 친일파의 후손들이 떵떵거리는 나라,
독립투사의 자식들은 달동네 판자촌에서 끼니를 연명하는 나라였어.
그 시절 국민교육헌장을 암송하지 않으면 집엘 보내주지 않았어.

’공익과 질서를 앞세우자‘. 그들의 말은 좋았지.
알고 보니 박정희의 패거리들은 공익을 앞세워 나랏돈을 빼먹는 부정축재자였어.
뭐 질서를 앞세워?
지나가는 아가씨들 치마를 단속하고
지나가는 청년 머리를 자르고
송창식, 윤형주, 한대수 저항가수들 대마초를 잡아들이고.
그게 질서였어.

’명랑하고 따뜻한 협동 정신‘
말은 좋았지.
알고 보니 그들이 만든 세상은
이웃이야 굶어죽든 말든 나만 잘 살면 그만인 나라
각자도생(各自圖生)의 나라,
재벌과 졸부들의 나라,
경쟁만능주의의 나라였어.

’우리의 창의와 협력을 바탕으로‘
열심히 일하자고 호소하였지.
우리는 진짜 열심히 일했어.
알고 보니 그들은 입으로는 ’근로자를 가족처럼‘ 대우한다고 하고서,
’노동자를 가축처럼‘ 사육하는 자들이었어.
필요하면 갖다 쓰고 필요 없으면 팽하고.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민주 시민이 되자고 떠들었지.
그들은 매일 하오 5시 국기를 내리면서 길가는 시민을 멈춰 서게 했어.
극장에서 영화 한 편 보는데도 일어섰다 앉았다 강제하였지.
그들은 군국주의자들이었어.
일본 천황으로부터 황국 신민의 교육을 배운 그들은,
알고 보니, 국민 알기를 벌레만도 못한 존재로 아는 자들이었어.
그래서 헌법을 불사르고,
국회를 탱크로 밀어버리고,
체육관에서 대통령을 뽑았던 것이야.

딱 한 가지는 진실이 있었지.
’반공 민주 정신에 투철한 애국 애족’이라는 구절 말이야.
알고 보니, 박정희는 국군에 잠입한 남로당의 프락치였대.
동료들을 형장으로 보낸 댓가로 목숨을 구걸한 프락치 말이야.

 

2절, 식민사관 넘어서기

<역사콘서트>, 황광우는 왜 이 책을 썼을까?
잘못 배운 역사,
잃어버린 역사를 찾기 위한 것이지.
졸부의 뒤만 졸졸 따라가는 한국인,
독재자의 딸을 따라가는 한국인, 왜 그럴까?
말로는 ‘조상의 빛나는 얼’을 외우지.
허구헌날 삽질만 하는 게 대한민국이잖아.
자신의 뿌리를 잃고 살기 때문이야.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고 사는 거야,

조상의 빛나는 얼이 뭘까?
식민사관 넘어서기, 이거 쉽지 않은 거야.
국토의 아름다움을 예찬하고,
조상의 빛나는 전통을 떠든다고 식민사관을 넘는 거야?
우리는 과거를 잃어버렸어.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모른 채 살아가고 있지.
세계 문화유산에 화성이 등재되고 왕릉이 등재되면
식민사관을 넘어서는 거야?
‘우리 강산 최고라네, 우리 민족 최고라네.’ 노래 부르면,
식민사관을 넘어서는 거야?
우리는 ‘과거의 연속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고.
극단적인 단절감 속에 몸부림치고 있어.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구.

식민사관, 말로는 식민사관을 씹어도 식민사관 넘어서기 힘들어.
조상을 찬양하면 식민사관의 저주를 쉽게 벗어날 수 있겠지.
하지만 우리는 정직해야 돼.
조상의 부끄러운 모습도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식민사관을 넘어서는 또 하나의 길이 영웅사관에 있어.
을지문덕을 칭송하고, 강감찬을 칭송하고, 이순신을 칭송하면 돼.
그렇게 영웅을 칭송하다 보면 우쭐해지지.
근데 역사는 한 두 명의 영웅의 일기가 아니잖아.
수천만 민중의 땀과 피로 얼룩진 게 역사이잖나?
영웅사관은 어린이 동화일 순 있어도 역사일 순 없어.

사기치지 말자구.
거북선은 이순신이 만든 배가 아니야.
목수들이 만들었지.
거북선은 이순신이 저은 배가 아니야.
똑똑히 알라구.
거북선은 64명의 격군, 그들의 무쇠 같은 팔뚝이 저은 배였어.

식민사관을 넘어서려면 당신은 오늘밤부터 왕조실록을 뒤져야해.
한국인이라면 세종대왕실록은 읽어야할 것 아니야?
그래 광화문 앞에 세종이 앉아 있어.
한국인들이 세종의 성취를 알고 있을까?
한글을 창제하기까지의 비밀 프로젝트를 알고나 있을까?
왜 <용비어천가>를 만들었어?
왜 <월인천강지곡>을 지었지?
왜 <동국정운>을 작성했나?
왜 <두시언해>를 작업했지?

 

3. <역사콘서트>의 줄기

<역사콘서트>, 황광우는
조선 500년의 역사를 세계사의 지평 위로 끌어 올려.
정도전의 실천을 플라톤의 철인정치와 비교해
태종 이방원을 당태종 이세민과 비교하지.
이순신을 그리스의 테미스토클레스와 비교하고,
서경덕을 코페르니쿠스와 비교하며.
조광조를 토마스 모어와 비교해
정조를 루이16세와 비교라고
신재효를 호메로스와 비교하여 고찰한다네.

비교하여 보니
조선에는 세계사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분들이 있었대.
코페르니쿠스와 뉴턴과 같은 과학자는 없었어도
그윽한 인격의 높은 경지에 도달한 선비들이 있었대.
은일의 서경덕,
강직의 조식,
물러섬의 이황
개혁의 이이.

물론 음풍농월한 개 같은 선비들도 많았어.
하지만, 이익처럼 농사짓는 선비도 있었고,
박지원처럼 양반의 위선을 목숨걸고 비판한 선비도 있었어.
정약용처럼 시대는 그를 버렸지만 마지막까지 시대를 버리지 않은 선비도 있었던 거야.
마침내 민중의 선두에 서서 민중과 함께 세상을 바꾸고자 나선
진주의 유계춘과 고부의 전봉준이 출현하지.
<역사콘서트>, 황광우는 온 몸으로 역사 속의 인물을 만나고 있어.

전태일을 아는가?
1970년 11월 13일 청계천 골목길에서 몸을 불사른 전태일 말이야.
전태일의 가슴에도 한줄기 선비 정신이 꿈틀거리고 있었는지 몰라.
어린 소녀봉제공들에게 풀빵을 사주어야 직성이 풀린 전태일의 마음,
그 마음이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아니고 뭐야?

윤상원을 알아?
1980년 5월 26일 고등학생들에게 그렇게 말했지.
‘너희는 나가 역사를 증언하라’고 말이야.
그 날 밤 목숨을 놓은 윤상원의 가슴에도 한줄기 선비 정신이 꿈틀거리고 있었는지 몰라..
민중의 편에 서서 역사를 책임지기 위한 그 정신 말이야.
일신을 역사의 제단에 기꺼이 바치기로 한 그 초연한 눈빛,
그것은 살신성인(殺身成仁)이었고,
선비정신의 현현이었어.

박종철을 알아?
1987년 1월 14일 치안본부에 끌려가 고문에 죽은 박종철 말이야.
박종철의 가슴에도 한줄기 선비 정신이 꿈틀거리고 있었는지 몰라.
초겨울 서리 내린 자취방 유리창 앞에서
‘독재 타도’ 네 글자를 써넣곤 했어.
박종철의 손끝, 불의와는 타협할 수 없다는 그의 결의는
바로 수오지심(羞惡之心)이었어.

 

4. 역사의 의미

인간은 두 번 산다고 해.
한 번은 사랑하면서 살고
또 한 번은 그 사랑을 기억하면서 산다고 해.
첫사랑만큼 아프고 시린 기억이 또 있을까?
이루지 못한 사랑이었기에 사랑은 아름다운 거지.
청춘의 아름다운 추억이 없다면 이 삶은 얼마나 황량하겠어?

마찬가지야. 인간은 두 역사를 갖는다고 해.
하나는 살며 사랑하며, 소유하고 투쟁하는 역사이고
다른 하나는 그 삶을 기록하는 역사이지.

“지금까지 모든 철학은 세계를 해석하여 왔다.
이제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라는 금언이 있어.
투쟁은 십년의 현실을 바꾸지만
기록은 백년의 역사를 바꾸는 거야.
그래.
우리의 삶을 어떻게 기억하고, 어떻게 기록하느냐가 삶만큼 소중한 거야.

우리의 역사는 증언하고 있어.
진주의 유계춘, 고부의 전봉준과 함께 죽창을 든 민중들은
제 한 목숨 구하고자 일어선 소인배가 아니었어.
세상을 바꾸자고 일어선 호민(豪民)들이었지.
그랬어.
조선의 민중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역동적 민중이었어.
평시에는 제 잇속만 차리는 것으로 알았던 그 어리숙한 민중이,
한번 일어서니,
화산이 되고 해일이 되어,
못된 세상을 휩쓸어 버려.
민중에겐 그 힘이 있는 거야.

 

황광우
30만부가 나간 '철학콘서트'에 이어 '역사콘서트'와 '촛불철학'을 출간했다. 지난 5년 동안 운사 여창현의 문집을 풀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