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도시 상트페테르스부르그 여행 다녀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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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고을의 고전공부 모임, 혁명의 도시 상트 페테르스부르그 여행 다녀오다. (2017년 4월 28일-5월 4일)

2017년 4월 28일

28일 새벽 5시, 상트 페테르스부르그 여행 길에 나서다. 오전 10시 인천 공항에 도착하다. 12시 30분 비행기에 오르다.

<러시아어 첫걸음>을 읽다. 러시아 키릴 문자를 공부하다. B는 V이고, H는 N이며, P는 R이다. 영어 알파벳트와 다른 음가이다. 좀 혼란스럽다. Г는 G이고, Д는 D이다. 이건 명확하다. Л은 L이고, П은 P이다. 요게 늘 헷갈린다. У는 우이고, Я는 야이며 ю는 여이다. 이것만 분명히 하면 키릴문자는 끝이다.

아도르노의 <미학이론>(Aesthetic Theory)을 보다. 칸트와 헤겔을 자유롭게 논평하는 그의 지적 세계가 부러웠다.

옆 좌석에선 젊은 여성이 2살 아이를 돌보고 있다. 엄마 옆에선 5살 아이가 재롱을 피우고 있었다. 기내식이 나왔는데 나는 와인을 석 잔이나 마셨다. 비행기가 인천에서 늦게 이륙하는 바람에 우리는 예정 보다 한 시간 늦게 모스크바에 도착하였다. 따라서 모스크바에서 상트 페테르스부르그로 가는 비행기를 놓치게 되었다.

먼저 온 세경씨를 상트 호텔에서 만나니 무척 반가웠다. 비행기에서 하루 종일 나는 이번에 쓴 책의 제목을 찾느라 고심하였다. <광장에 간 철학>이 어떨까? 짐을 풀고 나니 호텔 측에서 서비스 와인을 주었다. 우리는 로비 식당에서 와인 파티를 열었다. 이제 시작이다.

상트 크라운 플라자 호텔

2017년 4월 29일

눈을 뜨니 오전 5시였다. 이국의 새벽 거리는 늘 호기심을 자아낸다. 호텔 주변을 돌았다. 한참 걸었는데 호텔 입구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전에 보지 못한 대로가 펼쳐졌다. 순간 당혹스러웠다. 나에겐 아무 통신 수단이 없다. 가만히 생각하니 충분히 걷지 않은 것이었다. 힘껏 더 걸었다. 이내 호텔 앞 도로가 나타났다. 호텔에 들어와 상트 안내 책자를 펼쳐들었다. 도처에 재즈 빠와 와인 빠가 있었다.

아침 식사는 예정보다 일찍 개시되었다. 이국의 호텔 조식은 여행이 주는 선물이다. 먼저 채소류를 고른다. 토마토와 오이, 상추와 요구르트로 접시를 채운다. 다음엔 버섯과 감자, 빵과 우유로 접시를 채운다. 마지막으로 커피를 마신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도스토예프스키 기념관 근처를 걸었다. 아주 가까운 곳에 기념관이 있었고, 시장과 교회가 있었다. 상트의 하늘은 음울하였다. 오는 길에 가게에 들러 와인 몇 병을 구입하였다.

버스를 타고 마린스키 극장에 가기로 하였다. 비가 한 두 방울 떨어졌다. 내가 쌍트에 온 것을 제우스가 모르나 보다. 버스비는 40루블, 900여원이었다. 버스에서 내렸다. 길을 물었으나 현지인들도 마린스키 극장으로 가는 길을 잘 몰랐다. 운하를 지나고 도로 공사장을 지나고 마침내 극장이 나왔다. 극장은 구관과 신관 두 곳이었다. 우리가 볼 ‘잠자는 숲 속의 미녀’는 신관에서 공연될 예정이었다. 옷을 벗어 맡겼다.

극장은 널찍하였다. 나와 아내, 지정순과 서정휴는 맨 앞줄에 앉았다.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이 코 밑에서 연주를 하고 있었다. 유미정과 박남일, 신영록과 조세경은 1층 맨 뒤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김용범과 손난용, 김정희와 정은아는 2층 앞줄에 자리를 잡았다.

비싼 공연이었다. 러시아의 할머니들은 손주들을 데리고 공연을 관람하였다. 아이들은 깜찍하게 예뻤다. 그들은 현대의 귀족이었다. 발레는 말이 없는 예술이었다. 너무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지 않는다. 영어로 된 안내의 글을 읽고서야 ‘잠자는 숲 속의 미녀’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공주는 악마의 저주로 깊은 잠에 빠진다. 공주를 깨어나게 하는 것은 왕자의 키스였다. 세 번이나 막이 내렸고, 공연 시간은 네 시간 대로 접어들었다.

극장을 나온 것은 오후 4시였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가까운 식당에서 요기를 채웠다. 식사로는 파스타 요리를 주문하였다. 와인은 마실 수 없다 하여 대신 맥주를 주문하였다. 생각 밖으로 맥주가 좋았다. 파스타도 종류별로 나왔고, 모두 먹음직하였다. 상트의 첫 외식은 만족스러웠다.

발레에 대해 제법 안목을 갖춘 이는 김용범이었다. 한때 그는 발레를 구경하러 서울을 왕래하였다곤 한다. 오늘 출연한 주연 발레리나가 처음으로 배역을 맡게 되어 실수를 하였단다. 중간 부분에서 지친 발레리나로 인하여 발레리나를 보조하는 발레리노도 함께 지치게 되었다는 것. 이후 오케스트라의 연주 보다 한 박자 늦게 춤을 추었다는 것이다. 아하, 그랬던가?

돌아오는 길에서 택시가 잡히지 않아 애를 먹었다. 조세경은 여성 회원들을 선동하여 걸어가기로 하였다. 비는 오는데 낯선 거리를 걸어 올 수 있을까? 호텔에 들어와 다시 주연을 가진 것은 오후 8시였다. 지정순과 서정휴가 자리를 만들었다. 김용범, 신영록과 함께 파티를 시작하였다. 올리브와 치즈, 오이와 김이 안주의 전부였다.

김용범의 발레 강연이 이어졌다. 하나의 발레 작품이 만들어지려면 먼저 이야기가 있어야 하고, 다음 이 이야기에 맞는 음악이 작곡되어야 한다. 마지막에 안무 전문가들이 발레리나의 춤 동작을 결정하는 것이란다. 문학과 음악과 무용의 종합 예술이 발레라는 것이다.

마린스키 극장의 발레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발레란다. 무대도 무대지만, 발레리나들의 의상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이다. 마린스키 극장에선 발레리나가 입는 여러 벌의 옷을 관리하는 전문 의상 담당자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김용범의 강의를 듣고나서야 마린스키 극장의 품격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아는만큼 보인다.

2017년 4월 30일

5시 기상했다. 호텔 로비에서 자리를 잡은 다음 아도르노를 읽었다. 모국어로 칸트와 헤겔을 읽을 수 있는 그들의 지적 전통이 부러웠다. 어려서부터 모차르트와 베토벤을 감상할 수 있는 것도 독일인의 특권 아닐까? 아침 식사로 콩조림과 올리브를 골랐다.

오늘은 에르미따쥐를 들러 궁전의 미술품을 보고, 저녁에 지젤 발레를 관람한다. 우버 택시는 우리를 에르미따쥐 광장으로 실어주었다. 광장은 시원하였다. 한가운데 전승기념탑이 서 있었다. 박남일은 이 전승기념탑이 제2차 세계대전 승전 기념비라고 설명하였다. 가까이 다가가 보았더니 알렉산더 1세의 이름이 보였다. 그것은 나폴레옹 전쟁 승전 기념탑이었다. 러시아 귀족의 옷을 입고 사진을 찍어주는 분들이 있었다. 300루블을 주고 기념 사진을 찍었다. 김용범 팀이 뒤늦게 합류하였다.

우리는 4층부터 관람하기로 하였다. 렘브란트와 모네, 마티스와 피카소 그림을 보았다. 나는 이런 곳에 오면 기념으로 가져갈만한 그림을 산다. 남는 것은 이것뿐이다. 300 루블 짜리 그림 사진도 샀고, 1000루블이 넘는 복제 그림도 샀다. 4층에서 2층까지 많은 그림을 보았다. 나는 서둘러 전시장을 빠져나왔다. 예정보다 한 시간 일찍 관람을 완료하였다.

식당은 만원이었다. 이곳에서도 파스타를 종류별로 주문하였다. 나의 관심은 오직 와인에 있었다. 색다른 맛의 와인을 만나는 것은 뒤늦게 얻은 나의 호사이다.

점심을 먹고 우리는 맞은편 에르미따쥐 궁을 관람하였다. 용범씨가 나의 유일한 동행자였다. 보아야할 그림이 너무 많았고, 기억할 수 있는 그림은 너무 적었다. 쫒기듯 출구를 찾아 나왔다. 광장에는 한 떼의 젊은이들이 거리 가수의 기타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길거리의 공연은 언제나 자유롭다.

우버 택시가 말썽을 피웠다. 30분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마린스키 극장까지 걷기에는 너무 멀었다. 지나가는 택시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목적지의 반대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그때 한 대의 시내 일주 관광버스가 지나갔다. 얼른 탔다. 다시 내려야했다. 결국 에르미따쥐 광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택시 한 대를 비싼 요금에 흥정했다.

저녁 식사를 포기하기로 하였다. 박남일과 유미정은 대원들을 위한 요깃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근처 가게로 향했다. 극장의 3층에 오르니 그곳에 간이 빠가 있었다. 나는 얼른 와인 한 잔과 연어 알을 바른 빵조각을 주문하였다. 그런데 나에겐 한 푼의 돈도 없었다.

발레 공연은 화려했다. 5층에서 내려다보는 발레리노들의 발동작이 현란했다. 순간 나는 고소추락 충동을 느꼈다. 난간에 기대어 관람하는 것을 그만 두었다. 자리를 빠져 나와 5층 중앙에 있는 좌석으로 몰래 들어갔다. 그곳에서 ‘졸다 보다’를 반복하였다.

2017년 5월 1일

5시에 일어나 아도르노를 읽다. “경험과 형식, 예술의 죽음, 예술의 자율성과 사회성, 예술의 분열, 예술적 완전성, 칸트의 주관주의, 예술과 욕망, 칸트의 숭고는 거세된 쾌락주의, 욕망 없는 욕망, 예술품의 물신숭배, 삶과 예술의 차이, 낭만주의와 예술적 환상, 카프카의 힘, 현실 부정, 새로움은 죽음과 친하다, 새로움의 폭력, 갈등, 예술은 추의 개념을 부정으로 요청한다, 형식이 순수할수록 자율성은 몰락한다” 미학은 정신계의 정상에서 노는 지적 유희임에 틀림없다.

10시, 러시아의 메이데이를 보다. 경찰들은 즐비하였고, 시위는 평화로웠다. 1917년 4월 16일 레닌이 독일 열차를 타고 들어온 곳이 이곳 상트였다. 2017년 5월 1일 상트는 혁명의 도시가 아니었다.

이삭 성당에 갔다. 먼저 지붕 위에 올랐다. 힘들게 올라갔다. 시가지의 전경을 훑어보았다. 우버 택시를 타고 피의 성당으로 이동했다. 피의 성당은 화려했다. 옆에 운하고 흐르고 있었고, 노점상등이 즐비하였다.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모자를 샀다. 신영록, 유미정과 함께 길을 걸었다. 발레 그림을 샀다. 우리는 카잔 성당까지 걸었다. 성당 뒤켠에서 식당을 잡았다.

이 식당 역시 맥주 맛이 좋았고 와인 맛도 좋았다. 비프, 램, 포크 고기 요리를 맘껏 주문했다. 모두들 포만감을 즐겼다. 우리는 또다시 길을 나섰다. 오후의 네바 거리는 한가로웠다. 이번에 가는 것은 러시아 미술관이다. 피의 사원 근처에 있었다. 또 옷을 벗었다. 샘물로 얼굴을 씻는 농부 부부 그림과 청소하는 소녀 그림이 나의 시선을 땡겼다. 사회주의 리얼리즘 그림이었다. 우편 엽서를 구입했다. 박남일과 함께 택시를 타고 호텔로 왔다.

저녁 식사를 위해 우리는 인근 식당을 찾았다. 뿌쉬긴 동상도 보였다. 돌아 돌아 어느 식당 6층에 들어섰다. 미녀 아가씨가 우리를 맞이하였다. 밤 9시인데도 상트의 해는 지지 않고 있었다.

2017년 5월 2일

오늘은 여름 궁전을 가는 날이다. 우버 택시는 우리를 이삭 성당 맞은편 선착장에 실어다 주었다. 배의 좌석이 없어 1시간을 기다려야했다. 오히려 잘 되었다. 우리는 네바 강의 다리를 걸었다. 네바 강은 어쩜 이스탄불의 바다를 닮았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강 건너 편을 향해 걸었다. 이 다리는 노파를 살해한 라스꼴리니코프가 정신없이 걷던 다리이다.

저편엔 페테르스부르그 요새가 있고, 그 옆엔 카메라 예술 연구소가 있다. 나는 왼편으로 걸었다. 세경 씨가 동행했다. 햇볕은 따사로웠다. 어느 골목길에 들어서니 카페가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음료수 한 잔 마시고 나왔다. 장사를 할 태세가 아니었다. 다리 밑으로 배가 지나갈 때마다 다리가 출렁거렸다.

여름 궁전으로 가는 배는 만석이었다. 갈매기도 보였다. 김용범과 유미정은 열심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여름 궁전으로 가는 바닷물은 누런 쇳물 같기도 하고 흙탕물 같기도 하였다.

여름 궁전은 특이하였다. 바닷가에 위치한 것이 독특하였고, 분수가 솟구치고 있는 것이 남달랐으며, 조각상이 황금으로 빛나고 있는 게 특이하였다. 그 외에는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과 오스트리아의 쇤부르그 궁전을 합성한 형국이었다.

점심 식사가 없다기에 나는 허겁지겁 핫도그 가게로 갔다. 세경 씨가 이것 저것 사주었다. 궁전은, 궁전의 정원은 광활하다. 나는 용범 씨와 함께 열차에 의존하여 궁전 투어를 하기로 하였다. 그게 현명한 선택이었음을 나중에 알았다. 열차는 서쪽으로 달려가 판테온 신전 모양의 건축물로 우리를 안내하였다. 다시 열차는 북쪽으로 달려가 별장을 보여주었다. 다시 열차는 동쪽으로 달려가 계단 위로 흘러내리는 분수를 보여주었다.

이곳은 왕의 궁전이다. 왕과 왕비, 왕자와 공주, 이들을 시중하는 귀족들만이 향유하던 궁전이었다. 지금 그들은 없다. 불과 100년 전의 사건이었다. 앞으로 100년이 지나면 또 세계사는 무엇을 목격하고 있을까? 국민국가가 소멸하고 세계국가가 출현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여름 궁전의 어느 한 곳에 앉아 따스한 햇볕을 쪼이고 있었다. 중국인, 독일인, 미국인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여름 궁전을 찾고 있었다. 용범씨와 나는 그냥 콜라 한 잔 마시면서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다. 그 시각 우리의 대원들은 궁전에 입장하지 못하여 애를 태우고 있었으나 나는 그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나는 용범 씨가 가져온 오페라 토스카의 줄거리를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우리는 여름 궁전을 빠져나왔다. 바람이 더욱 거세게 불었다. 아직 오지 않은 대원을 위해 먼저 온 우리들은 선착장 한 켠에 옹기종기 앉았다. 용범 씨에게 토스카의 줄거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세경 씨가 왔다.

배는 출렁이는데 한 러시아 아가씨가 책을 팔고 있었다. 몸은 비대했다. 불행하리만치 비대하였다. 그 몸으로 출렁이는 배 안에서 열심히 책을 사달라고 선전하였다. 한 권만이 아니었다. 무려 스무 종의 책을 꺼내들었다. 손님들은 잠에 들어가고 있었다. 아가씨는 또 꺼내들었다. 우산이었다. 비는 오지 않았다. 무거운 짐을 들고 아가씨는 회랑을 거닐었다. 아무도 사지 않았다. 나는 고민했다. 일어섰다. 그리하여 비가 오지도 않은 어느 날, 상트 페테르스부르그로 가는 배 안에서 나는 우산 한 개를 샀다.

선착장엔 vacant taxi가 있었다. 남일은 계속 우버 택시를 불렀다. 우버는 오지 않았다. 세경 팀과 용범 팀은 먼저 떠났다. 가는 곳이 피의 성당 옆이었다. 걸을만하였으나 우리는 vacant taxi와 흥정하였다.

오페라 극장 옆에서 식당을 찾았다. 조지아 식당이었다. 두 테이블을 잡았다. 양고기 수프, 들깨 수프, 닭고기를 주문하였다. 나는 조지아 와인을 시켰다.

오페라 극장에 들어갔다. 또 옷을 벗었다. 맨 앞줄에 앉았다. 오케스트라가 코앞에 있었다. 토스카는 나폴레옹의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작성된 오페라이다. 무대는 1800년 6월의 로마였다. 나폴레옹 군이 이탈리아 북부를 침입하여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을 세운 그 시기의 로마 말이다.

제1막에서 토스카는 애인 카바라도시와 열렬히 애무한다. 카바라도시는 정치범 안젤로티를 숨겨 준다. 토스카를 짝사랑한 경시총감 스카르피아 남작은 카바라도시를 의심한다.

제2막에서 스카르피아는 카바라도시를 고문하고, 토스카에게 카바라도시를 사형에 처하겠다고 한다. 토스카는 자기의 몸을 바칠 것을 거짓 맹세하고 스카르피아로부터 거짓 사면장을 받아낸 후 그를 찔러 죽인다.

제3막은 감옥의 옥상이다. 감옥 옥상에 끌려나온 카바라도시에게 토스카는 사면장을 보이며 총살은 형식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사면장은 위조였고 카바라도시는 총살된다. 토스카는 형장(刑場)의 높은 벽에서 몸을 던져 죽는다.

토스카에 나오는 음악은 예전에 익히 들었던 선율이었다. 그 선율이 토스카의 음악이었던 것을 나는 이제 알았다. 두 번의 발레 공연과 두 번의 미술관 구경, 그리고 한 차례의 오페라 관람, 쉽지 않은 예술 여행이다.

2017년 5월 3일

오늘은 에카테리나 궁전에 가는 날이다. 신영록과 정은아, 지정순과 서정휴, 손난용과 박경옥과 함께 갔다. 자브고르 역에 갔다. 러시아 처녀 갈리나가 왔다. 그녀는 ‘백야의 나라’라고 적힌 조그만 깃발을 들고 왔다. 그녀가 소속한 여행사의 이름이었다. 나는 역 안의 가게에 들어가 빵을 사 먹었다. 상트의 역 풍경은 뉴욕의 풍경처럼 스산했다. 우리를 태운 열차는 상트의 전경을 보여주었다. 그러니까 내가 본 상트의 시가지 풍경은 아주 작은 도시의 일부였다. 상트의 외곽엔 공장이 서 있었고, 고층 빌딩이 올라가고 있었다.

갈리나의 설명을 통해 러시아의 속내를 많이 알 수 있었다. 러시아의 최대 도시는 인구 1500만 명의 모스크바이고, 두 번째 큰 도시는 인구 500만 명의 상트 페테르스부르그이다. 레닌은 훌륭한 인물로 간주되지만 스탈린은 그렇지 않다. 1992년 러시아는 아주 힘들었다. 공산주의가 사라졌다. 빵도 없고 고기도 없다. 지금은 석유를 팔아 많이 안정되었다. 애국심이 생겼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파블로브스키 공원이었다. 러시아적인 공원이었다. 자작나무가 쭉쭉 올랐다. 갈리나에 의하면 자작나무는 러시아 처녀를 상징한단다. 러시아인들은 산택을 즐긴다. 황제의 궁궐보다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없기에 높은 건물은 없다. 러시아의 궁전에 많은 그림이 있는 것은 세 가지 이유란다. 옛날 러시아는 전쟁을 자주 하였고,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받았다. 모피를 많이 만들어 팔았으며, 보석을 가공하여 팔았다.

모스크바의 평균 임금은 120만 원 대이고, 상트 페테르스부르그의 평균 임금은 80만 원 대이다. 집은 비싸다. 보통 1억 원을 호가한다. 이자는 연리 16%이다.

파블로브스키 공원은 러시아의 어느 곳보다 더 러시아적이었다. 공원 도처에서 다람쥐들이 뛰놀고 있었다. 날씨는 차가웠다. 공원은 한적하다기 보다 고즈녁하였다. 그런데 조금 더 걸으니 멋진 풍광이 눈에 들어왔다. 그랬다. 먼저 이 수려한 풍광이 있었고, 이후 이곳에 공원이 들어선 것이다.

파블로스키 공원에 궁전을 앉힌 이는 독일 출신의 왕비 마리아였다. 그녀는 열 두 명의 자녀를 생산했다. 그리고 남편의 추억을 기리기 위해 이 궁전을 지었다. 궁전의 서재가 인상적이었다. 독일어, 영어, 프랑스어, 라틴어로 쓰인 책이 2만여 권이 보관되었다. 비극은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독일은 이 궁전을 침탈했고, 병사들은 이 궁전의 보물을 다투어 가져갔다. 러시아인들은 900일 동안 독일의 봉쇄를 견디며 이 도시를 지켰다.

얼른 걸었다. 빨리 걸어 나왔다. 기념물을 판매소에서 그리스 조각상을 샀다. 역시 숲이 좋았다. 넓고 쓸쓸하고 고요한 숲이었다. 그 숲 속에 그리스 풍의 신전이 있었다. 옆에는 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점심은 푸쉬킨 시에서 먹기로 하였다. 러시아의 중학생들은 푸쉬킨을 싫어한단다. 40 편의 시를 암송해야 하기 때문이다. 식당엔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공원에서 목격한 그 명소들이 이 그림들 속에서 그대로 재현되어 있었다. 이럴 수가!!!!

여행이 저물어가고 있었던 것일까? 나는 연거푸 와인을 주문하였다. 첫 와인은 서정휴가 샀고, 두 번째 와인은 정은아가 샀다. 이곳 음식도 만족스러웠다.

정작 가고자 하였던 에카테리나 2세의 궁전, 호박방으로 유명한 이 궁전은, 본시 나로선 오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나는 파블로브스키 공원으로 충분하였다. 함께 온 대원들 때문에 궁전에 들어섰다. 한번 들어서니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궁전의 이곳 저곳을 본 것은 나의 뜻이 아니었다. 궁전을 빠져나와 정원의 벤취에 안고서야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인파가 많았다.

이제 돌아가는 열차에 몸을 실을 때가 되었다. 기차는 소박하였다. 서울에서 춘천 가던 열차 비슷하였다. 갈리나와 헤어질 때가 오고 있었다. 역에서 내린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시내로 갔다. 갈리나가 동승해주었다. 나는 저녁 식사를 함께 하고 싶다고 하였다. 그날 저녁 갈리나는 별도의 선약이 있었나 보다. 우리는 시내의 식당에 가서 난생 처음 킹 크랩을 먹었다. 대원들은 아내의 환갑잔치를 해주었다.

2017년 5월 4일

오늘은 이별하는 날이다. 먼저 조세경과 이별하였다. 그녀는 상트에 며칠 더 남아 있을 거란다. 묘한 이별이었다. 우리는 도스토예프스키하고도 이별하였다. 마지막으로 상트와 이별하였다. 차는 우리를 공항으로 데려가고 있었다.

황광우
30만부가 나간 '철학콘서트'에 이어 '역사콘서트'와 '촛불철학'을 출간했다. 지난 5년 동안 운사 여창현의 문집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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