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시작] 일연_『삼국유사(三國遺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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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는 단군신화에서 시작되었다_일연 『삼국유사(三國遺事)』

 

삼국시대를 알려주는 두 고전

무릇 옛날 성인이 예악(禮樂)으로 나라를 창건하고 인의(仁義)로 백성을 가르쳤다. 그래서 괴상한 일이나 어지러운 일, 귀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왕이 나타날 때는 하늘이 내리는 명령인 부명(符命)을 얻고 미래를 점치는 예언인 도록(圖籙)을 받았다. 따라서 보통 사람과는 다른 점이 있은 후에야 능히 큰 변을 틈타 정권을 잡고 큰 사업을 성취하였다. ······ 그러므로 삼국의 시조가 모두 신비스러운 데서 나왔다고 하는 것이 괴이할 바가 무엇이랴. 신비스러운 이야기인 기이(紀異)편을 이 책의 첫머리에 싣는 것은 그 뜻이 실로 여기에 있다.

일연(一然, 1206 ~ 1289)의 『삼국유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나라의 삼국시대를 알게 해주는 역사서는 두 가지가 았다. 고려 전기에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와 고려 후기에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가 그것이다. 그런데 두 책에는 차이가 있다. 어떤 점이 다를까?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지으며 임금에게 올린 글에서 “옛 기록은 문장이 거칠고 졸렬하며 사적도 빠진 것이 많습니다.”라고 했다. 그래서 김부식은 옛 기록에서 ‘임금과 왕비의 선과 악, 신하의 충성스러움과 사악함, 나라의 안정과 위태로움, 백성의 도리’와 관련 없는 내용을 삭제해버렸다. “공자께서는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말하지 않았다.”는 유학적 역사관에 따라 옛 글에 나타난 신비로운 일, 신기한 일, 괴이한 일을 기록에서 제외하였다. 원효 대사의 아들 설총이 창안하여 널리 사용되었던 이두문자로 기록된 것들은 ‘거칠고 졸렬한 문장’이라 하여 기록하지 않거나 문장을 바꾸어버렸다.

일연의 생각은 달랐다. 일연은 나라가 처음 생겨날 때 신비로운 일, 신기한 일, 괴이한 일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그래서 단군신화, 고구려의 건국신화인 주몽신화, 신라의 건국신화인 박혁거세신화 등을 다루는 것부터 시작하였다. 이두문자로 쓰인 기록을 살리고, 향찰로 쓰인 향가를 기록하였다.

김부식과 일연의 생각 차이는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고려 전기에는 중국의 문화를 모방하자는 ‘모화주의(慕華主義)’가 지배적이었다. 무신란이 일어나 고려 전기의 문벌귀족세력이 타파되고 새로운 세력들이 등장하면서 고려 후기가 시작되었다. 새로운 세력들은 우리나라의 독자적 문화에 관심을 기울였다. 여기에 몽골의 침략을 받으면서 민족적 각성이 더해졌다. 『삼국유사』는 이런 시대적 배경에서 탄생한 대표적 저작이다.

경상북도 군위시의 인각사에 보각국사비가 남아 있어 일연의 생애와 저작에 대해 개략적으로 알 수 있다. 일연은 경상북도 장산군(오늘날의 경산)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이름은 김견명이라 하였다. 14살 때 설악산 진전사에서 출가를 하였다. 44살 때 경상남도 남해의 정림사 주지가 되었고, 78살 때 국사(國師)가 되었다. 지눌이 일으킨 불교개혁운동에 적극 참여하였고, 전국을 다니며 흩어져 있던 자료를 모으고 백성들 사이에 입으로 전해지던 수많은 이야기를 수집하였다. 76살 때인 1281년경 『삼국유사』를 편찬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삼국유사』가 공식적으로 간행된 것은 1310년경이었다. 보각국사비에는 일연이 저술한 책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그중에는 『삼국유사』가 빠져있다. 그러나 일연의 이름이 오늘날까지 빛나는 이유는 오직 『삼국유사』 때문이다.

 

민족적 각성이 낳은 책

『삼국유사』는 어떤 책인가? 당대에는 역사서, 승려들의 행적을 기록한 ‘고승전’, 민간의 설화를 모은 설화집이 구분되어 있었다. 그러나 『삼국유사』는 이 세 가지를 한데 모아놓은 별난 책이다. 일연이 이런 별난 책을 쓸 수 있었던 배경에는 민족적 각성이 놓여있다.

일연의 나이 26살 때인 1231년에 몽골이 고려를 침입해왔다. 이후 몽골은 7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략하였고, 결국 고려가 조건부 항복을 하여 몽골의 간섭을 받아들임으로써 전쟁이 끝이 났다. 근 30년에 가까운 전쟁으로 국토를 유린되었고 백성의 삶은 피폐해졌다. 더욱이 몽골의 간섭을 받게 되는 상황은 대단히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몽골과 전쟁을 겪으며 당시의 지식인들 사이에 민족적 각성이 일어났다.

일연은 전쟁 중임에도 전국을 돌며 우리나라 고유의 역사와 문화가 담긴 자료를 모았다. 그리고 백성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오던 이야기를 기록하였다. 헤로도토스와 사마천이 역사서를 쓰기 위해 방대한 자료를 모으는 노력과 흡사하였다. 일연은 보고 듣고 모은 자료를 그대로 글로 옮겼다. 서로 상반된 얘기일지라도 모두 기록하였다. 일연은 특별한 체계를 세우지 않고 글을 썼다. 그래서 그때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별난 책이 탄생하였다.

그러면 『삼국유사』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삼국유사』가 없었다면 알 수 없었을 이야기를 몇 개 보도록 하자.

옛날 환인의 서자 환웅이 인간 세상에 뜻을 두었다. 환인이 이를 알고 삼위태백을 내려다보니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만 했다. 이에 환인은 천부인 세 개를 환웅에게 주어 인간 세상을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은 삼천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신단수에 내려와 신시를 열었다. 그가 바로 환웅천왕이다. 환웅천왕은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리고 곡식, 수명, 질병, 형벌, 선악 등을 주관하며 인간의 360가지 일을 주관하여 세상을 다스렸다. 이때 같은 굴에 살던 호랑이 한 마리와 곰 한 마리가 환웅에게 사람 되기를 빌었다. 환웅이 신령스러운 쑥 한 줌과 마늘 20개를 주며 말하기를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곧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 이에 곰과 호랑이가 이것을 받아먹고 삼칠일을 지키니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으나 호랑이는 지키지 못하였다. 웅녀는 혼인해서 같이 살 사람이 없으므로 날마다 단수 밑에서 아이 갖기를 빌었다. 환웅이 잠시 사람으로 변하여 웅녀와 혼인하여 아들을 낳으니 바로 단군 왕검이다.
– 일연, 『삼국유사』 기이 제1

단군신화이다. 일연은 『삼국유사』의 첫머리에 단군 신화에 관한 기사를 실었다. 일연은 『고기(古記)』를 인용한다고 하였다. 『고기』가 어떤 책인지 알 수 없지만, 『고기』의 저자는 구전되던 단군신화를 기록해놓았을 것이다.

일연은 단군신화를 통해 우리나라의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음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단군이 고조선을 개국한 시기가 중국의 요 임금 때라고 하였다. 중국에서 최초로 국가가 성립하는 시기와 불과 50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역사가 오래되었으니 자부심을 갖고 몽골의 침략과 간섭에 맞서자고 한 것이라고 해석하면 일연이 단군신화로부터 『삼국유사』를 시작한 이유를 제대로 이해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일연이 기록한 우리나라의 기원은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받아들여 대표적 역사서인 『동국통감』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기원전 2333년에 단군이 고조선을 개국한 날인 10월 3일을 개천절이라 하여 기념하고 있다.

 

상상력의 자극제

『삼국유사』에는 향가 14수가 실려 있다. 향가는 삼국시대 말부터 고려 초까지 존재하던 우리 고유의 시다. 향가는 향찰 및 이두로 표현되는데, 이는 한자의 음과 훈을 이용한 것이다. 향가의 하나인 ‘처용가’를 보자.

서울 밝은 달 아래 밤 늦도록 놀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가랑이가 넷이구나
둘은 내 아내 것인데 둘은 누구 것인가
본디 내 아내이지만 뺏겼으니 어찌할까
– 일연, 『삼국유사』 기이 제 2

처용은 본래 동해용의 일곱 아들 중 하나라고 하였다. 다른 나라에서 온 외국인이라는 얘기이다. 신라 헌강왕은 처용을 환대하여 아름다운 처녀와 결혼하게 하였다. 처용 이야기는 당시 국제적, 문화적 교류의 상황을 보여준다. 민간에서는 처용의 모습을 문에 붙여 나쁜 귀신을 물리쳤다.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섣달그믐에 궁중이나 관아에서는 처용의 가면을 쓰고 잡귀를 쫓는 처용무가 행해졌다. 처용 이야기는 민간신앙이 정치, 경제, 사회를 아우르는 우리 고유의 문화에서 생겨나 발전하였다고 보면 일연이 처용 이야기를 기록한 이유를 제대로 파악한 것이라 할 것이다.

『삼국유사』에는 단군신화를 비롯한 숱한 신화, 설화, 전설들이 실려 있다. 또한 『삼국유사』에 실린 지명, 성씨, 민속, 토속신앙 등은 역사학뿐만 아니라 민속학, 금석학, 고문학 연구의 귀중한 원천이 되고 있다. 특히 이 책에 실려 있는 단군신화나 14수의 향가는 매우 값진 자료이다. 또한 ‘탑상’ 편에 실린 탑, 불상, 사원 건축에 관한 기록은 한국 고대 미술의 주류를 이루는 불교 미술 연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자료 가치를 갖고 있다.

일찍이 최남선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고 하면 나는 서슴지 않고 후자를 택하리라.”고 하여 『삼국유사』의 독창성과 가치를 높이 평가한 바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삼국유사』는 열려있는 텍스트라는 데 진정한 가치가 있다. 일연은 다양한 식재료를 제공해주었다. 어떻게 요리하는가는 독자들의 몫이다. 『삼국유사』에 실린 글 한 편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여 글을 쓰면 훌륭한 논문이 된다. 『삼국유사』에 실린 글 한 편을 모티브로 UCC를 만들면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독창적인 작품이 된다.

일연은 민족적 각성을 바탕으로 수많은 우리의 고유의 것을 발굴해냈다. 일연이 발굴한 자료는 우리의 역사이면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자극제이기도 하다.

 

홍승기
인민노련 홍보부를 담당하면서 6월 항쟁을 현장에서 이끈 숨은 일꾼. 술만 사 준다면 지옥에도 함께 들어갈 천진무구한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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