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공/모] 제자가 쓰고 스승이 답하다(2)_ 스승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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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김지헌군에게

 

이 글을 쓴 김지헌군은 조선대 애니메이션학과 1학년에 재학 중에 있는 나의 제자이다. 지헌군은 중학생 때 나에게 공부를 배웠다. 그때 지헌군은 게임에 몰입하여 책 보길 싫어했다. 나는 매 번 수업 때마다 맛있는 것 사 먹으라고 용돈을 주곤했다. 그랬던 지헌군이 이런 글을 쓸 정도로 자라다니 감개무량하다.

역사를 보는 관점(viewpoint)를 사관(史觀)이라 한다. 왕과 장군 등 영웅들에 의해 역사가 결정된다고 보는 사관을 영웅사관이라 한다. 이순신이 거북선을 만들었나, 물으면 모두 ‘예’라 답한다. 아니다. 거북선은 목수가 만들었다. 거북선은 누구의 힘으로 진격했을까? ‘격군’(노를 젓는 수군)의 무쇠 팔뚝에 의해 진격했다. 이렇게 보는 사관이 ‘민중사관’이다.

역사의 진보를 놓고 세 가지 사관이 나뉜다. 인류의 역사는 세월과 함께 일직선으로 진보한다는 것은 진보사관이다. 젊은이는 미래에 대한 부푼 꿈을 꾸어야 한다.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꿈꾼다. 젊은이는 진보사관을 지녀야 한다. 반대로 늙은이는 과거를 향수한다. 젊은 그 시절이 찬란하게 아름다웠다. 늙은이의 눈에는 역사가 반복한다. 이른바 순환 사관이다.

마르크스는 역사가 반동을 통해 전진한다고 하였다. 혁명과 반동이 교체하면서 역사가 나선형으로 나아간다고 보는 이 사관은 나선형 사관이다.

기독교는 인간의 역사 속에 십의 섭리가 작동하여 신의 나라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보았다. 헤겔은 절대정신의 자기 전개 과정이 인간의 역사라고 보았고, 카를 마르크스는 인류의 역사가 공산주의의 도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보았다. 특정의 목적, 가치, 관념을 전제로 하여 역사를 본 것이다. 이에 반해 인간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의 사실’의 재구성으로 기술하려는 입장이 있다. 이른바 랑케의 실증주의(positivism) 사관이 그것이다.

 

황광우
30만부가 나간 '철학콘서트'에 이어 '역사콘서트'와 '촛불철학'을 출간했다. 지난 5년 동안 운사 여창현의 문집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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