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공부모임] ‘혼불 읽기’_ 혼불의 소리와 장자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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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의 소리와 장자의 소리

 

하기야 대숲에서 바람 소리가 일고 있는 것이 굳이 날씨 때문이랄 수는 없었다.
청명하고 볕발이 고른 날에도 대숲에서는 늘 그렇게 소소(簫簫)한 바람이 술렁이었다.
울타리 삼아 뒤안에 우거져 있는 대밭이나,
고샅에 저절로 커 오르는 시누대,
그리고 마을을 에워싸고 있는 왕댓잎의 대바람 소리는
그저 언제나 물결처럼 이 대실(竹谷)을 적시고 있었다.
그저 저희끼리 손을 비비며 놀고 있는 자잘하고 맑은 소리,
강 건너 강골 이씨네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 이쪽 대실로 마실 나온 바람이 잠시 머무는 소리,
어디 먼 타지에서 불어와 그대로 지나가는 낯선 소리,
그러다가도 허리가 휘어질 만큼 성이 나서 잎사귀 낱낱의 푸른 날을 번뜩이며 몸을 솟구치는 소리
그런가 하면 아무 뜻없이 심심하여 제 이파리나 흔들어 보는 소리,
그리고 달도 없는 깊은밤 제 몸 속의 적막을 퉁소 삼아 불어 대는 한숨 소리,
그 소리에 섞여 별의 무리가 우수수 대밭에 떨어지는 소리까지도 얼마든지 들어 낼 수가 있었다.

-혼불 1권


 

남곽자기가 팔뚝은 안석에 기대고 앉아서, 하늘을 우러러보며 길게 한숨을 쉬는데, 멍하니 몸이 해체된 듯이 자기 짝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안성자유가 앞에서 모시고 서 있다가 말했다.

“어쩐 일이십니까? 육체는 진실로 시든 나무와 같아질 수 있으며 마음은 진실로 불꺼진 재와 같아질 수 있는 것입니까? 지금 안석에 기대고 계신 모습은 이전에 책상에 기대 계시던 모습이 아니십니다.”

자기가 이렇게 대답했다.

“언아, 너의 질문이 참으로 훌륭하구나. 지금 나는 나 자신을 잃어버렸는데, 너는 그것을 알고 있는가! 너는 인뢰는 들었어도 아직 지뢰는 듣지 못했을 것이며 지뢰는 들었어도 아직 천뢰는 듣지 못했을 것이다.”

자유가 이렇게 물었다.

“감히 그 방법에 대해 묻겠습니다.”

자기가 대답했다.

“대지가 숨을 내쉬면 그것을 일러 바람이라고 한다. 이것은 일어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일단 일어나면 온갖 구멍이 소리를 낸다. 너만 유독 ‘윙윙’ 울리는 바람 소리를 듣지 못했는가. 험하고 높은 산림 속에서 둘레가 백 아름이 넘는 큰 나무의 구멍은, 어떤 것은 콧구멍 같고, 입 같고, 귀 같고, 기둥 받치는 가로 지른 나무 같고, 나무 그릇 같고, 절구통 같고, 깊은 웅덩이 같은 것, 얕은 웅덩이 같은 것이 있는데, 거기서 나는 바람 소리는 물 부딪치는 듯한 급격한 소리, 씽씽거리며 화살 날으는 것처럼 높은 소리, 꾸짖는 듯 질타하는 소리, ‘헉헉’ 들이마시는 것 같은 소리, 외치는 소리, 볼멘 듯한 소리, 웃는 듯한 소리, 귀여운 소리이다. 그런데 앞의 바람이 웅웅 불어대면 뒤의 바람이 따라서 윙윙 소리를 낸다. 산들바람이 불면 가볍게 화답하고, 거센 회오리바람이 불면 크게 화답을 하는데, 만일 크고 매운 바람이 그치면 곧 모든 구멍들이 텅 비어서 고요해진다. 너만 유독 <바람이 지나간 뒤에 나뭇가지들이> 흔들흔들거리고 살랑살랑거리는 모습을 보지 못했는가.”

자유가 이렇게 말했다.

“지뢰는 곧 여러 구멍에서 나온 소리가 바로 이에 해당하고, 인뢰는 비죽 같은 악기에서 나온 소리가 바로 이에 해당하는 줄 알겠습니다만 감히 천뢰란 무엇인지 묻겠습니다.”

자기가 이렇게 대답했다.

“무릇 불어대는 소리가 일만 가지로 같지 않지만 그 소리는 그 자신의 구멍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인데 모두가 다 그 스스로 취하는 것이니, 그렇다면 <그 구멍으로 하여금> 힘찬 소리를 내게 하는 것은 그 누구인가.”

[출처] 장자 – 제 2편, 제물론 1장 -인뢰, 지뢰, 천뢰

황광우
30만부가 나간 '철학콘서트'에 이어 '역사콘서트'와 '촛불철학'을 출간했다. 지난 5년 동안 운사 여창현의 문집을 풀었다.

1개의 댓글

  1. ‘소리’하면 얼른 떠오르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 노자의 ‘대음희성’大音希聲!
    하나. 박지원의 < 일야구도하기>에서 하성재청지여하이河聲在聽之如何爾!!
    하나. 존 케이지의 <4분 33초>
    이 소리들을 한번 탐구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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