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학교’ 아이들은 어떻게 깨어날까
수진 : 처음으로 교육다큐멘터리의 전면에 나서게 된 것이 아닌가. 방송매체 자체에 대한 두려움과 실제 교육보다 더 짧은 기간일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을 것 같다. 어떤 마음으로 바람의 학교를 시작하게 되었는가.
광필 : 처음에 교육다큐멘터리를 찍자고 했을 때 무척 망설였다. 교육의 힘으로 아이들이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주겠다는 계획이 야심차지만 무모하다고 봤다. 한 달 만에 아이들이 바뀔 수 있을까? 그리고 예능 프로그램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 이 치열한 과정이 오락처럼 보이지 않을까도 걱정이었다. 무한도전이나 삼시세끼도 아닌데, 일요일 밤 몇 차례 방영한다고 교육을 흔드는 효과가 있을까 회의도 들었다. 고민 끝에 주변의 조언을 구했더니, 다들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교사 네 명을 모았다. 첫 만남에서 네 가지를 결의했다. 우선 비주얼보다는 아이들 내면의 힘을 키우는 데 집중하자. 여느 학교에서나 가능한 방식으로 접근하자. 그리고 미래의 학교를 보여주자. 준비하는 우리는 재미있게, 서로의 성장을 자극하며!
수진 : 미래의 학교를 보여주고 싶었고 준비를 재미있게 하고 싶었다는데, 실제로 준비는 재미있었나? 구체적으로 어떤 텍스트를 가지고 수업 하려 했었나?
광필 : 연구실도 마련해서 함께 석 달을 준비했다. 처음에는 학교 이름을 뭐라 지을까 고민했다. 한라산 중턱에서 시작하니, ‘태풍의 학교’가 어떨까 싶었는데, 아이들의 간절한 바람, 낡은 것을 쓸어가는 바람의 의미를 살려서 ‘바람의 학교’라 짓고는 모두들 흐뭇해했다. 그 다음 아이들을 어떻게 깨울까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됐다. 다양한 활동을 함과 동시에 그리스 비극 ‘오이디푸스 왕’을 깊이 있게 읽으면서 ‘그동안 회피해 왔던 나의 진실은 무엇인가’, ‘주류적 가치만을 추구하던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어떻게 상상할까’ 등 아이들의 반성적 사유와 상상력도 북돋으려 고심했다. 3D프린터를 이용한 만들기를 해보면서 우리 곁에 슬며시 다가온 미래를 느끼게 해보고 싶었다. 진도가 잘 나가면 제주의 사회적 기업들과 함께 프로젝트도 벌여보려 했다.
수진 : 내가 교사여서 그런지, 이 대목에서 꼭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생각처럼’ 준비한 것들이 잘 됐나?
광필 : 그런데 막상 아이들의 면면을 보고는 몹시 당황스러웠다. 많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잠들어 있거나 무기력한 상태로 지낸다. 왜 그럴까? 낮 시간에 늘 잠들어 있는 호준이는 중학교 때 학원을 억지로 다녀야 했다. 원하지 않는 일들이 반복되자, ‘나는 원래 그래’라며 모든 것을 놓아버렸다. 수업이 재미없다며 자주 투덜대는 일이는 한겨울 자신을 업고 두만강을 건넌 엄마를 생각하면 무엇이든 열심히 하고 싶다. 그런데 학습 결손이 워낙 심해 뭔가 시도를 해보지만 곧 좌절하고 만다. 그러고는 당장의 재미만 좇는 일에 빠져든다. 활력이 넘쳐 온갖 사건을 벌이는 혜림이는 늘 외부 요인을 탓한다. 어려운 가정환경, 학교에서 먼 집, 밤새 놀아주는 친구들, 자신만 야단치는 선생님 등. 매사 남을 탓하니, 자신이 노력할 일도, 변화할 필요도 없다.
이렇듯 수업 시간에 잠만 자는 아이가 여럿인데다, 몇 년 사이에 유일하게 읽은 책이 이번에 나누어 준 ‘오이디푸스왕’인 아이들도 있으니, 정말 수업하기 쉽지 않은 구성이었다. 첫날부터 음주, 흡연, 욕설 금지 등의 규칙에 대한 반발로 입학식이 지연되거나 아이들끼리 대판 싸워 살벌한 분위기가 조성된 적도 있었다. 결국 우리는 준비한 것을 대폭 걷어내고 프로젝트와 연극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재구성했다.
수진 : 요즘 힙합 좋아하는 애들이 하는 말이 있다. “역시는 역시”라고ㅋㅋ
처음 다큐멘터리 제목이 ‘꼴통’이었으니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교육과정을 재구성하고, 이끌어나갔는지가 궁금해진다. 지금까지 당신이 이우학교에서 보여 온 위기관리 능력이 또 통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우학교와 비교했을 때 절반의 성공이었다. 왜 그랬을지는 아마도 한 달밖에 주어지지 않은 시간, 그리고 여러 제반여건들이 받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아직 내가 상상한 미래의 학교가 첫 시도였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어떻든 ‘절반의 성공’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 해 보고 싶다.
그토록 난리를 치거나 무기력했던 아이들이 막판에 깨어나기 시작했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아이들이 깨어나는 데는 다음과 같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하나, 활동의 비중이 높은 교육과정. ‘가시리를 부탁해’나 ‘제주 바다를 부탁해’ 등의 프로젝트와 제주 고등학생들 앞에서 연극을 공연하는 등의 다양한 활동이 아이들을 깨우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아이들은 이런 활동을 통해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그리고 뭘 잘하는지 알 수 있었고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기도 했다.
또 그것과 연관된 진로를 탐색하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음악을 좋아하던 도영이나 패션모델 지망생 유진의 경우 때를 만났으니 활기를 찾은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의 변화에는 의외의 요소가 있었다. 늘 컴퓨터게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종성이는 연극 조명을 책임지면서 주눅 들었던 얼굴이 펴지기 시작했다. 이불 깔고 교실에서 잠만 자던 주열이는 카메라맨으로서 주목을 받았는데, ‘청년장사꾼’과 ‘총각네 야채가게’ 이야기를 듣고는 장사꾼이 될 궁리를 하고 있다. 소년교도소에서 출소한 제영이는 연극의 주인공 역을 맡아 열연한 후 무대에서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렇게 자신감을 얻은 제영이는 집으로 돌아가서 인터넷 화장품쇼핑몰을 만들어 열심히 사업 중이다. 물론 앞으로 실패와 좌절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용기를 내서 도전할 힘을 얻었으리라.
둘, 학생자치. 밤낮으로 함께 생활하다 보니, 아이들은 숨을 곳이 없이 서로 부딪혔다. 그리고 과제가 계속 주어졌다. 이렇듯 예전과는 사뭇 다른 상황 속에서 하루도 조용히 넘어간 날이 없었다. 매일 밤 사범대생으로 구성된 멘토들이 기숙사에서 아이들과 씨름하는 동안 교사들은 자정이 넘도록 대책회의를 하며 아이들을 어떻게 깨울까 고민했다. 이런 교사의 노고가 바탕이 되었겠지만 중요한 순간에 힘을 발휘한 것은 아이들의 자치회의였다. 갈등상황에서 아이들은 함께 규율을 만들고, 덜 힘든 아이들이 더 힘든 아이들을 챙겼다. 정말 손을 쓸 수 없을 것만 같던 아이들의 경우도 친구들의 집요한 설득과 조언이 먹혔다.
셋, 인문학 수업. 아이들이 다양한 활동과 자치를 통해 깨어나기 시작했지만 아이들 내면에는 여전히 안 좋은 성향이나 습관이 성장의 걸림돌로 자리잡고 있었다. 이를 넘을 수 있도록 도와준 게 인문학 수업이다. 아이들은 <오이디푸스 왕>을 천천히 읽으면서 함께 슬퍼하고 분노했다. 그리고 오이디푸스에게 감정이입이 되면서 자신의 문제와 연결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중엔 이걸 텍스트로 정한 이유에 대해 ‘자기가 누군지 알아야 나중에 꿈을 찾을 수 있지 않냐’, ‘자기 정체성을 생각해 보라는 것 같다’고 했다. 이후 프로젝트나 연극을 하면서 교사들은 텍스트가 던진 문제의식을 끈질기게 환기시켰다. 그래서 4주차 집중 면담 과정에서 교사들이 자신에게 던진 쓴 소리를 감당하고, 자신의 문제를 마주할 수 있었다. 고통스러운 진실을 외면하지 않았던 오이디푸스의 용기를 아이들이 본받은 것이다.
넷, 교사와 학생 간 신뢰. 아마도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아야 한다. 이것 없이 다른 요인들이 힘을 쓰기는 어렵다. 그런데 역으로는 꼰대와 보모 사이에서 늘 갈팡질팡하는 존재가 바로 교사다. 기존에 접해 보지 않았던, 그래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아이들의 작태 앞에서 교사는 분노를 제어하기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많은 사고를 치면서 교사들도 권위를 내세워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아직 신뢰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들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무의미한 잔소리라는 것을 체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양한 사연을 함께 엮어가면서 교사의 진심이 아이들에게 조금씩 전달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지각과 결석, 흡연, 싸움 ‥ 등등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때까지 기다려주자, 아이들은 교사에 대한 불신과 적의를 거두었다. 프로젝트와 연극 등 주요 과업을 성공적으로 마친 4주째가 되자, 아이들은 자존감이 높아지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교사에 대한 신뢰도 높아졌다. 우리는 이때야말로 교사의 권위를 발휘할 수 있는 최적기라 판단했다. 그래서 아이 한 명 한 명에게 그의 성장에 꼭 필요한 따끔한 소리를 했고, 아이들도 용기를 내서 그것을 직시했다. 그날 아이들이 쏟아낸 눈물을 평생 잊지 못하리라. 그렇게 그날 이전과 이후는 다른 날들이 되었다.
수진 : “그날 이전과 이후는 다른 날들이 되었다”는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면 ‘절반의 성공’을 뛰어 넘은 것이 아닌가? 기존의 학교에선 소외되었던 활동 중심의 커리큘럼으로 아이들의 자존감을 일깨워 준 것. 학생자치를 통해 어떤 조직에서나 존재하는 갈등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갈등 조정능력과 상대적으로 힘든 아이들을 끌고 가게 하는 연대감을 길러 준 것. 오이디푸스란 인문학 텍스트를 통해 자기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게 해 준 것. 지금껏 교사와 형성하지 못했던 신뢰관계를 형성하게 해 ‘믿을 수 있는 어른’이 되어 준 것. 이 모든 것들은 사실 현재의 학교에서는 이루지 못한 성과들이 아닌가? 무엇이 당신의 마음에 불만의 씨앗이 발아하게 한 것인지 궁금하다.
광필 : 당신이 짚어 준 것처럼 아이들을 흔들어 깨우긴 했지만 배움에 대한 열정까지 불러일으키진 못한 것 같아 아쉽고 미안하다. 그것은 이제 돌아간 학교와 아이들 자신의 몫이다. 바람의 학교의 마지막 부분에서 나오듯이 바람의 학교 마지막 순간엔 깨어났지만, 학교로 돌아간 학생 중 대다수는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또다시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건 바람의 학교가 아이들에게 심어준 싹이 그렇게 알차진 못하다는 의미가 아닐까.
수진 : 그렇게 비관적으로만 바라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당신이 생각하는 미래의 학교가 빨리 도입되어야 하는 최고의 이유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의 학교는 절대 아이들의 미래가 될 수 없다는 걸 보여주는 것 아닐까?
광필 : 그렇게 봐주니 고맙다. 그렇지만 작금의 현실에서 새로운 시도가 될 미래의 학교들은 ‘전환학교’의 형태일 수밖에 없다. 그건 길어봤자 1년의 시간이 주어진다는 소리다. 그 후엔 다시 원래 다니던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게 돌아가서도 짧게는 1달, 길게는 1년 동안 기른 자신의 싹을 틔어내고자 힘껏 나아갈 수 있는 힘을 길러줘야‘만’ 한다.
* 다음에 [정광필의 교육수기] 조금 먼저 시작한 교육의 미래? – ’50+인생학교’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