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광필의 교육수기] 학교 혁신은 누구와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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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혁신은 누구와 어떻게

 

 

수진 : 요즘 연수를 가보면 학교를 배움의 공동체로 만들어야 한다, 마을 공동체를 복원해야 한다 ‥ 등등 공동체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온다. 이렇듯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사실 정확히 공동체가 뭔지도 모르겠다.


광필 :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게 된 것을 일면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공동체가 무너진 것에 대한 위기감과 공동체를 복원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그만큼 폭넓게 형성되었다고 볼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얼마나 공동체를 실현하기 힘들어 그런 주장을 할까 안타까운 심정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구호나 말만 무성하니, 공동체라는 말의 뜻이 변형되는 것은 아닌지 다소 걱정스럽다.

수진 : <학교가 두렵다(엄기호)>는 책이 교사들에게 많이 읽히고 있다는 게 공동체가 무너졌다는 반증인 것 같다. MB 정권 때 교원평가와 그것을 기반으로 한 성과급제가 실시되면서, 그리고 NEIS가 정착되면서 교무실의 분위기가 썰렁해진 곳이 많다. 반면 혁신학교에서는 교사회를 관료제적 조직에서 공동체 조직으로 탈바꿈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한 것 같다. 그렇지만 혁신학교에서도 공동체를 향한 길은 그리 녹록치 않은 것 같다. 실상 제가 있는 곳은 한 마음이 되어 으쌰으쌰 하지도 못하는 것 같기도..

 

1. 학교 혁신의 비전 : 좋은 말만 모아놓은 것인가

1) 이우는 이우스타일로

광필 : 그렇다. 사실 학교가 하나의 방향성을 정하고 그 방향을 함께 나아가는 경우도 그렇게 많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를 혁신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학교 혁신의 비전을 만드는 일이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비전을 말한다. 하지만 학교 구성원들이 비전에 합의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과정이다. 학교 구성원의 상당수가 비전에 합의하려면 대체로 몇 년 걸린다.

이우학교도 개교 초창기에 학교의 정체성과 비전을 놓고 구성원들마다 제각기 이해하고, 그런 만큼 꽤 시끄러웠다. 학교 설립 과정에서의 가장 큰 혼란은, 이우학교도 풀무학교나 간디학교와 같은 학교가 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것이었다. 이우학교 설립 당시 풀무학교나 간디학교와 같은 학교가 있었고, 이들 학교에서 시사 받은 부분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우리가 고민했던 학교의 성격은 다소 달랐다. 그래서 몇 차례 논의를 거듭한 끝에, 이우학교는 이우학교만의 성격으로 가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2005~2006년에는 공교육 개혁 모델을 제도화하는 것과 맞물려 새로운 문제에 부딪혔다. 당시 교육인적자원부를 중심으로 공영형 혁신학교, 개방형 자율학교 등 공교육 개혁 모델들을 제도화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때 나와 이광호 선생(현 이우학교 교장)이 시안 작업에 적극 참여했는데, 일부 학교 설립자들이 대안학교로서의 정체성도 채 확립하지 못했는데 외부의 여러 일에 결합하는 게 맞느냐를 문제 삼았다. 그 과정에서 매우 격렬한 내분이 있었다. 그것을 수습하고, 이우학교가 더 적극적으로 공교육 개혁의 모델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기존의 공립학교들과 적극적으로 연대하자고 합의하는 데 한 1~2년이 걸렸다. 지금 돌아보면 이우학교가 그때 내부 일에만 집중하고 있었다면 지금쯤 고사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다른 한편으론 공립의 학교혁신 모델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이우학교는 이제 다음 단계의 고민을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졌다고 봐야 한다.
이렇듯 학교의 비전은 학교의 주객관적 조건과 문제의식이 결합해서 만들어진다. 학교 혁신의 비전과 관련 고정된 틀이 있을 수 없다. 100개의 학교가 있으면 100개의 유형이 있을 수 있다. 각각은 자신의 조건과 문제의식에 맞추어 가야 한다.

수진 : 이우학교는 설립자나 교사들이 모두 비전에 합의하고 시작한 학교라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우학교조차 초창기에 학교의 비전을 둘러싸고 그렇게 논란이 많았다니, 뜻밖이다. 초창기 학교의 비전을 둘러싸고 의견이 서로 어떻게 달랐는지 보다 자세히 이야기해 달라. 내가 참여하지 않은 싸우는 이야기, 듣기 참 좋다ㅎㅎ 물론 의미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광필 : 당신은 남들의 문제를 듣는 걸 참 좋아하는 것 같다. 좋은 이야기만 들으려 하는 것 보다 훨씬 좋은 태도라고 생각한다. 방 구할 때도 파는 사람이 들려주는 좋은 점만 듣는 것 보다 안 좋은 점이 뭔지를 알려 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나.  나도 삐그덕 대는 이야기에 조금 더 많은 진실이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무슨 일을 해낸 다는 게 사실 아름다운 과정은 아니니까. 어쨌든 질문에 답을 하자면 이우학교는 전교생 420명이 성남시 분당 인근에서 통학하는 학교다. 2003년에 개교했는데 개교 당시부터 학교의 정체성을 놓고 상당한 혼란이 있었다. 이우학교를 흔히들 도시형 대안학교라 불렀는데, 우리가 대안학교를 택한 이유는 약간 복잡했다. 공교육을 바꾸는 하나의 모델을 만들고 싶었고, 거기에 적합한 형식을 찾다보니까 정규 대안학교(법적 위상은 인성교육을 중시하는 특성화학교)였다. 학교 운영의 자율성이 가장 많은 학교가 특성화 중학교, 특성화 고등학교로 흔히 말하는 정규 대안학교였다. 그래서 그 형식을 하나의 방편으로 택한 것이다. 그래서 대안학교이기도 하고, 특성화학교이기도 하고, 혁신학교이기도 했다. 여러 가지 성격이 중첩되어 있다 보니까 학교의 정체성을 놓고 구성원들의 이해방식도 제각각이었고 분란도 꽤 있었다.

“대안학교에서 가치를 내면화하는 일에 주력해야 하는데, 수업이나 학업 쪽을 너무 중시하는 것 아니냐?”
“가치 지향만이 아니라 수업이나 교육과정에서도 대안이 되어야 공교육 개혁에 영감을 줄 수 있다.”

“그러다 보면 결국 입시 명문으로 가는 것 아닌가?”
“우리가 지향하는 길은 변두리에서 ‘당신들의 천국’을 만드는 게 아니다. 주류로 뚫고 들어가 안으로부터 주류 문화를 바꿀, 뜻과 능력을 갖춘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농부도 되고 목수도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왜 사회의 엘리트 쪽으로만 생각하는가?”
“우리의 과제는 ‘도시에서 공동체적 삶을 일궈내는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도시화된 삶 속에 우리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은 상당한 능력을 요구하는 것 아닌가?”

“학교가 지역과 함께 공동체 사업을 벌려야 하는데 선생님들의 관심이 부족한 것 아닌가?”
“우리 역량이 부족하다. 먼저 학교가 자리를 잡고, 이어서 지역사업으로 확대할 수 있다.”

나는 그때 최선을 다해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7년 동안 학교 설립을 준비하면서 궁리한 것도 많았고, 석사학위 논문을 ‘학교 설립 기획안’을 주제로 작성했으니 나름 논리도 있었다. 좋은 뜻으로 모인 관계에서 ‘어느 입장이 옳은가?’ 시시비비를 가리면 된다고 생각하고, 성심성의껏 회의 자리에서, 술자리에서, 기회만 되면 그 이야기를 했다.
당시에는 진심으로 설득하려 했고, 아무런 변화가 없는 00 선생님이 이해되지 않았다. 나의 생각에 대한 확신이 강한 만큼, 그 선생님의 귀가 꽉 막힌 것으로 보였고, 거의 모든 자리에서 나와 부딪히는 그가 미워졌던 것 같다.
오가는 이야기는 선명한 두 입장으로 평행선을 달렸다. 결국 이우학교의 상징과 같은, 특성화 교과를 책임진 00 선생님이 학교를 떠났다. 그리고 지금껏 그 빈틈이 메워지지 않아 이우학교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다.

2) 30%의 양보가 중요하다?

수진 : 당시를 떠올리니, 선생님 마음이 많이 아프시고 후회가 크신 것 같다. 싸우는 이야기가 재밌을 줄 알았는데, 결론이 슬프니.. 그런데 그 과정이 불가피한 것은 아니었을까? 사람이 25살 정도 되면 그때부터 뇌가 굳는다고 한다. 다 큰 어른의 신념을 설득한다는 게 가능한가?

광필 : 아니다. 이제 돌아보니, 내 책임이 컸다. 이야기를 하자면 좀 길어질 것 같은데, 우리 교육 현장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참 힘들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적당히 타협하면서 흔들리고 결국은 소시민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그 상황을 견디기 위해 ‘선비’처럼 일관되게 소신을 지키는 사람들을 높이 샀다. 세월이 흐를수록 소신파들은 더욱 단단해지고, 전투적이게 됐다. 그래서 학교에서 소수파로 산다는 것은 지조 있는 선비의 길에 가까웠다. 나도 그랬다.
그러다보니 다들 힘들어 했다. 분란은 많고, 늘 시끄럽고. 중간에 끼어있는 사람들은 진이 빠져 점점 이런 자리에 끼고 싶어 하지 않았다. 결국 소수파는 점점 더 다른 이들로부터 멀어져 갔다. 결국 다들 소모적인 ‘감정노동’에 지쳐갔다. 사실 학교만이 아니라 뜻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뭔가 의미 있는 일을 도모하는 경우에는 상황이 대개 비슷하지 않을까?

교장 직을 떠난 후에야 비로소 나는 이 진실을 깨닫게 되었다. 눈을 감고 곰곰 생각해보니, 교장 시절 내 표정이 그려진다. 진지하고, 단호하게 내 생각을 말하는. 새삼 부끄럽다. 2012년 서울교육청에서 일할 때는 그 일을 반성한 후라, 많은 변화가 있었다.
흔히 딱딱하고 권위적이라 얘기되는 교육청의 간부들과도 ‘30%는 양보한다’는 마음으로 접근하니, 한결 여유가 생겼다. 표정도 부드럽게 바뀌면서, ‘당신 이야기도 한 번 들어보자!’는 마음이 우러났다. 전에는 의견이 다른 사람의 발언을 들으면 반박할 논리만 준비하기 급급했는데, 그가 그런 이야기를 하게 된 배경과 맥락, 속뜻을 차분히 묻게 되었다. 내가 귀담아 들으려 하는 만큼, 상대의 눈빛과 어조도 누그러졌다.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도 한두 마디씩 말을 거들 수 있게 되었다.
학교컨설팅이나 교사 강의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면 반응이 의외로 뜨거웠다. 몇 달 후 다시 만난 선생님들이 들려주는 말씀.
“회의에서 제각각 자기주장이 늘어질 때 ‘30% 양보!’를 외치고 나면 험악한 분위기가 누그러지면서 신기하게도 의견이 모아져요.”

요즘 교육도 변화의 시기이고, 정치도 그런 것 같다. 다들 멋진 명분과 정연한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과 타협하는 것을 자신의 지조를 꺾는 것으로 생각하여 한 치의 양보도 허락하지 않는 대쪽 같은 분들이 많은 것 같다. 마치 지난날의 나처럼 말이다. 그러나 조직의 문화를 바꾸고 교육을 혁신하기 위해선 ‘나부터 조금 양보한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상대방의 말을 경청할 수 있고,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 결국 뜻한 일을 해낼 수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선 대쪽 같은 선비보다는 처지와 경험, 신념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허심(虛心)과 큰 귀를 지닌 ‘일꾼’이 필요한 것 아닐까?

민주주의 사회에선 대쪽 같은 선비보다는 허심과 큰 귀를 지닌 ‘일꾼’이 필요하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100이라면 30%는 접는다는 마음으로 임할 때 교사회가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림  교장은 반박할 궁리가 앞서, 남 얘기 귀 담아 듣기가 어렵다.

3) 한 3년은 꾸준히 해야, 조금 변한다

수진 : 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 뭔가 잘해 보자고 모였던 교사들의 사이가 왜 뒤틀리는지, 그리고 회의를 거듭할수록 열정이 왜 식어가는지 잘 알 것 같다. 그리고 목소리를 높이기 급급했던 제 모습이 떠올라 속이 뜨끔했다. (웃음) 이제 학교 혁신을 위한 다른 노하우를 들려 달라.

광필 : 매년 교육 계획을 세우고 또 뭔가를 새로 시작하게 된다. 그런데 그동안의 경험으로 미루어보면 한 3년은 밀고 가야 학교가 그나마 조금 바뀌는 것 같다. 학급에서야 당장 할 수도 있겠지만, 학교가 바뀌는 것은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다. 앞에서 70%의 타협 얘기도 했지만 뭔가를 합의 했으면 한 3년은 해보고 평가해서 목표와 방향을 수정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수시로 이랬다저랬다 해가지고는 되는 일이 없다. 이우학교의 경우도 3년마다 그 줄기를 새로 잡았다.
개교 초기에 이우학교는 기존 학교의 관행들을 깨기 위해서 교과서를 버리고 모든 교재를 직접 만들었다. 그리고 교사 문화를 새롭게 일구기 위해 인적 구성도 일반 학교와 달리하는 등 여러 시도를 했다. 3년을 그렇게 하다가 사실 그것조차도 한계에 부딪히면서 2006년도부터는 수업 연구를 중점 과제로 설정했다. 사토 마나부의 ‘배움의 공동체’철학과 이론을 적극 배워 학교 운영에 반영하려 했다. 수업연구회의 형식을 바꾸고 교사들이 수업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문서와 회의도 간소화하고, 수행평가도 줄였다. 그리고 교과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등 여러 변화를 주게 됐다.

그림  교장이 앞장서도 쉽지 않다

이렇듯 수업을 혁신하면서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고 생각했는데, 3년 지나 2009년쯤 되니까 수업 역시 타성화된 모습을 보게 됐다. 뭔가 그럴 듯하게 보이긴 했지만, 그 속에서 아이들의 성장을 자극하는 부분들이 확인되지 않았다. 선생님들도 현재의 수준에 만족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래서 이를 깨기 위한 새로운 시도들을 2009년에 하게 되었다. 수업 속에서 도전적 과제를 제시한다든가, 프로젝트 수업이나 학생자치활동 등에서 학생들의 익숙한 관행을 뒤흔든다든가 ‥ 등등.
이렇듯 3년을 주기로 큰 틀을 바꾸고 혁신을 시도했던 것 같다. 중1에서 고3까지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는 그런 긴 호흡 속에서 그에 대한 평가도 가능하지 않을까?

더 나은 교육을 위해 세간에서 좋다고 하는 것들을 도입하고자 하는 유혹이 있다. 하지만 새로운 교육적 실험을 한 3년은 꾸준히 해야 비로소 변화가 조금 나타난다.

 

2. 혁신은 누가 하나

수진 : 3년을 주기로 끈기 있게 밀고 나간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교장이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교사가 어디서 좋은 걸 들으면 신이 나서 추진 하다가 한 1년 지나려고 하면 식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학교 구성원들이 비전에 합의했다고 해서 열정을 갖고 비전을 실현할 주체가 바로 형성되지는 않을 것 같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광필 : 비전 합의 다음으로 중요한 문제가 주체를 어떻게 만들 것이냐다. 교장, 그리고 교장과 함께 할 핵심 그룹이 일차 주체이고, 그 다음에 이분들이 나머지 분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학교를 교육공동체로 만드느냐 여부를 좌우한다.

1) 교장의 역할 : 모든 것은 교장 탓?

우선, 공립학교에서 교장이 매우 중요하다. 흔히 말하면 인사와 재정, 그 다음에 중요한 결재 라인을 책임지고 있다. 그래서 지난 십여 년 사이 학교 혁신과 관련 가장 많이 나온 이야기는 교장 때문에 못하겠다는 말이다. 막강한 교장의 권한과 역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역으로는 이런 생각들을 해봤다. 교장 때문이라고 말하는 순간 나의 책임이 없어져 일을 안 해도 된다. 교장 탓이니까. 그런데 다 교장 탓이라고 떠넘기면 될 문제일까?
여러 교장 선생님들과 많은 얘기들을 나누면서 이런 걸 느꼈다. 교장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모든 교장 선생님은 학교를 개판 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좋은 학교를 만들고 싶고, 폼 나게 학교를 혁신하고도 싶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다. 답답하다. 그동안 보고 배운 것이 걸림돌로 작용한다. 대개는 한 30년쯤 되어야 교장을 하게 되는데, 매우 익숙해진 틀과 관행들이 많고, 얽매이는 관계들이 많다. 이 틀을 깨기가 너무 어렵다. 그런 가운데 뭔가를 해보려고 나름 궁리를 해서 제안을 하는데 선생님들의 반응이 영 뜨악하다. 속으로는 열 받지만 드러내기도 어렵다. 그래서 교장의 의지도 꺾인다.

그러면 선생님 입장에서 뭔가를 바꾸려고 하는 경우는 어떨까? 앞에서 소수파 얘기를 했는데, 소수파 예컨대 전교조 분회가 자신이 속한 학급이나 특정 분야를 바꾸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런데 그분들이 학교를 바꾸려고 하는 경우는 얘기가 다르다. 분회에서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학교가 잘 변하지 않는다. 열심히 하면 하는 만큼 분란만 커지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교장, 교감파와 전교조 분회 간의 싸움이 시작되어서, 가운데 끼어있는 이도 저도 아닌 사람들은 점점 학교 일에 마음이 멀어져 가기 십상이다. 그래서 점점 더 소수로 몰리기 쉽다.
그러면 이 과정에서 어떻게 돌파구를 찾을 것인가? 저는 이분들이 교장선생님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 돕는다는 게 뭐냐? 뭔가를 하고자 하는 교장선생님의 마음에 맞추어 조금은 타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장선생님이 교육의 주체로, 혁신의 주체로 나서지 않게 될 경우 그 한계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교장을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것만이 아니라 교장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공감대와 신뢰 관계가 형성이 된다.
학교를 바꿔야겠다는 의지가 강한 분들의 경우 교장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것을 대개 머리로는 안다. 그런데 겉과 속이 다르기 쉽다. 진짜 함께 하려는 마음을 먹기가 힘들어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된다.

학교를 혁신해야겠다는 의지를 지닌 분들은 우선 학교 비전 실현의 구심인 교장과의 관계를 풀어야 한다.

2) 비주류와 만나기 : 마음의 착한 싹을 자극한다는 건

수진 : 선생님 말씀에 공감이 많이 된다. 제 마음을 놓고 봐도 두 마음이 항상 같이 있다. 늘 악한 마음과 착한 마음이 같이 있다. 무엇을 결정할 때, 저는 중요한 순간에 이 꽥꽥이를 잠재우고 착한 마음 쪽에 귀 기울여서 결정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런데 가끔씩 영 싸가지 없고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만날 때 반대쪽이 확 튀어나온다. 이것을 조절하는 것이 늘 어렵다.

광필 : 그렇다. 학교 현장에서 부딪힌다고 할 때 대개는 서로 이런 악한 쪽이 맞부딪치는 것이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우리는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하는지 좋아하는지 바로 안다. 그렇기 때문에 애매하게 노력하는 정도로는 잘 안 된다. 진짜 속을 내놔야 한다. 그래도 이렇게 해내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어 고무적이다.

한편 요즘 젊은 교장선생님들도 많아졌다. 그리고 뭘 해보려고 나에게 상의를 하러 오는 분들도 많은데, 이분들이 답답해하는 것이 있다. 몇몇 혁신학교에서 교사들 중심으로 일을 추진하면서 교장의 권한을 N분의 1로 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말하자면 교장을 교사의 대표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인데, 그 구조로 성공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학교의 비전에 기초해서 학교의 각 주체들 즉 교사, 학부모, 학생의 의견을 조율하고 또 그런 관계들을 촉진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교장이 단순히 N분의 1의 역할에 머물게 되면 학교 혁신의 비전을 실현하기 어렵다. 교장의 권한이 1/N로 축소되면 그런 교장은 교장이 아니라 교무부장에 불과하게 된다.

수진 : 학교 혁신을 추진하는 교사들의 입장에서 제일 큰 어려움은 교장의 마음을 사로잡기인 것 같다. 그러다보니 1/N로 축소시키자는 이야기도 나오는 게 아닐까? ㅎㅎ 핵심주체와 나머지 비주류 선생님들과의 관계는 상대적으로 쉬워 보인다. 그런데 뭔가를 좀 하려고 하면 옆에서 늘 봉창 뚫는 분들이 있다. 이분들 얘기를 듣다 보면 은근히 부아가 치민다.

광필 : 우린 교사니 애들 이야기로 시작해보겠다. 애들 개판 치는 것을 보면 열 받는다. 사고 친 아이를 만나면‘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이런 얘기를 한다. 이는 본질적으로 같은 문제다. 우리는 그 아이가 왜 저러는지 이해를 못해서 화가 난다. 그런데 이해를 못한 책임이 그 아이한테 있는 것이 아니라, 내내 범생이로 살아온 우리한테 있다. 저 아이가 왜 저러는지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독특한 문화와 생활공간, 인식체계를 우리가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걸 뛰어넘지 못해서 그 아이한테 열 받는 것이다. 그러다가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사고치는 아이들을 이해하게 되면서 그 틀을 조금씩 뛰어넘는 거다.
그런데 우리가 동료 선생님들을 보고 화를 내는 이유도 사실은 비슷하다. 이해가 안 되니까 화가 나고, 그래서 열을 받는 것이다. 이해가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우리 내부에 있다. 이것을 뛰어넘기가 참 어렵다. 그런데 열 명으로 시작해서 교사의 60~70%까지 마음과 뜻을 모아내는 과정의 열쇠가 사실은 그렇게 봉창 뚫고 먼 산을 쳐다보는 그 사람들과 어떻게 만나느냐에 달려 있다.
겉으로 사이를 원만하게 만드는 좋은 기법들이 있다. 감정 코칭이나 비폭력 대화법 ‥ 등등. 그런데 그분들이 왜 저러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절반 이상 실패했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그분들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그분들이 지난 2~30년 동안 교육 현장에서 입은 마음의 상처들을 공감해주고, 그것이 치유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수진 : 말썽쟁이 아이들과 봉창 뚫는 선생을 상대하기 위해선, 결국 이해해야 한다니. 이해한다는 건 결국 그들의 아픔을 느끼고 그들에게 ‘호’를 갖게 된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선생하기 참 힘들다. 선생님의 경험을 들어 구체적으로 얘기해 주시면 좋겠다. 이게 가능한가.. 싶다.

광필 : 물론 이우학교에도 늘 봉창 뚫는 사람들이 있었다. 모두의 뜻을 모으고 싶으니, 처음 몇 년 동안 이분들에게 많은 공을 들였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분들 상태도 나빠졌고, 관계도 나빠졌다. 학교를 떠나고 나서 뒤늦게 깨달은 것은 제가 공을 들였다 했지만, 말로만 그런 척 했지, 사실은 미워했다는 것을 알았다. 정말 나도 나를 모른다. 사람은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느냐보다 무슨 마음인지 귀신 같이 안다. 그렇게 많은 시간 공을 들였지만 독을 뿌려댔으니 결과는 뻔하다.
그분들이 늘 뒤에서 봉창을 뚫게 되기까지는 많은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그 동안 교직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입은 경우도 있고, 가족 관계나 주변 여건이 어려워져 꼬이다 보니 비뚤어진 경우도 있을 것이다. 교장이 자꾸 뭐라 하면 더 방어적이게 된다. 오히려 그냥 놔두고, 준비된 사람들끼리 열심히 하다보면 그분들도 속으로 고민을 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다가 여건이 좋아지면 조금씩 움직이게 된다. 그럴 때 주변에서 조금씩 거들면 된다.

3) 젊은이들과 칙칙하지 않게 다가가려면

수진 : 그동안 사고치는 아이들은 이해하려 노력하면서도 회의 때마다 봉창 뚫는 동료 교사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는 않았다. 나름 상처가 많은 교사라고 보면 그분들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가 생기는 것 같다.
한데 요즘 학교에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젊은 선생님들이 꽤 있다. 특히 교사들이 부임하길 기피하는 학교는 지원하는 분들이 없어서 젊은 선생님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문제는 젊은 선생님들이 학교에서 겉돌고 있다는 것이다. 이분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광필 : 젊은 교사들은 무척 똑똑하고 뭐가 옳은지도 잘 안다. 그런데 학교에서 혁신적인 무언가를 하는 데에 있어서는 어정쩡한 포즈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요즘 젊은 애들은 싸가지가 없다’는 등의 여러 말이 나온다. 그런데 젊은 교사들의 문제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이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교사가 되었을지 생각해 보자. 서울에 있는 대학을 기준으로 말하면, 대체로 수능 1 등급 이내여야 사대나 교대를 들어온다. 그 중 가장 범생이들이 졸업하고 몇 년을 고생해서 임용고시를 통과해 교직에 들어온다. 그동안 고생도 했으니까 방학에는 해외에도 나가야 한다.
그렇게 보면 정말 이 친구들이 학교 현장에서 초등학교 5~6학년, 거의 동물에 가까운 중2 애들을 어찌 상대할 수 있을지, 과연 애들이 왜 저러는지를‘이해’할 수 있을지가 걱정된다.
나도 ‘요즘 젊은이들 왜 저래?’하면서 이해를 잘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몇 년 전 서울 어느 초등학교 1박 2일 연수에 특강을 하러 갔다. 강의를 한참 신나게 하는데, 젊은 친구가 등짝에 ‘시간관리자’라는 종이를 붙이고 지나간다. 아? 알아들었다. 바로 5분만에 강의를 마무리하고, 질의․응답과 토론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이어지는 연수프로그램이 예사롭지 않았다. 늘 익숙했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고, 선생님들의 열의가 뜨거웠다. 끝나고 뒷풀이 자리에서 궁금증을 풀었다. 이번 연수는 신임 교사 5명이 기획부터 진행까지 전 과정을 책임졌다고 한다. 이때 젊은이들의 의욕과 능력을 높이 산 부장들의 지혜를 한 수 배웠다.
소위 7080세대는 매우 엄숙하고, 진지하고, 젊은이들 표현대로 얘기하면‘칙칙’하다. 놀 줄도 별로 모르고, 뒤풀이라고 해봐야 술밖에 먹을 줄 모른다. 그런데 젊은 친구들 입장에서는 재미난 게 정말 많고,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 그런데 노인네들이랑 놀러 다녀봐야 별 재미가 없다. 그래서 점점 멀어져간 것이다.

사고치는 아이들, 무기력한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봉창 뚫는 선생님들, 학교 혁신에 애매한 포즈를 취하는 젊은 선생님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3. 학교 조직은 어떻게?

1) 교사의 업무 다이어트?

수진 : 사실 내가 한 3년 전만해도 그런 ‘젊은 교사’였다. 열심히 뭐 좀 하려고 하다가,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꼰대 같은 선생님들 때문에 풀이 죽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중간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는 시점이니 가교 역할을 잘 수행해야겠다.
그건 그렇고 학교 구성원들이 학교 혁신의 비전에 합의하고 혁신의 주체도 어느 정도 형성했다면 기존 학교 조직을 안 바꿔도 괜찮을까? 기존 학교 조직이 아이들의 배움과 성장과는 무관하다는 지적이 있다.

광필 : 맞는 지적이라 생각한다.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중앙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학교도 재정과 인사를 중앙에서 관리해 왔다. 현실적으로 말하면 교육지원청과 교육청을 통해서 철저히 장악해 왔다. 그래서 단위학교에서는 교육청의 눈치만 보게 되어 있다. 업무나 공문이 펑크가 나면 관리자들이 긴장한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선생님들에게, 또 아이들에게 파급된다. 이제 학교 현장이 무엇을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 아이들의 배움과 성장과는 상관없이 행정상의 편의를 위해 굴러가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제 경험을 말씀드리면 학교 조직을 어떻게 되돌릴 것인지 2004년, 2005년부터 많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배움을 중심으로 수업을 혁신하고자 수업연구회를 강화하려다 보니, 교사가 엉뚱한 데 힘을 빼앗기고 있다는 반성을 한 게 그 주된 계기였다.
학생의 배움을 중심으로 조직을 재편성하자는 문제의식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했다. 대부분의 선생님은 학년 팀에 배치되어 자신의 수업과 생활 지도에 집중하고, 공문이나 업무는 교무팀이 교감 책임 하에 전담한다. 학년 팀 선생님들은 아예 손을 뗀다. 몇 년째 그렇게 해왔는데, 이우학교에서 이렇게 하고 있다고 이런저런 자리에서 이야기 했더니, 다른 데서도 그렇게 하는 곳이 생겼다. 특히 안산의 해양중학교에서는 보다 체계적인 방식으로 교무업무 보조를 훈련시켜 전형을 만들었다. 2010년에는 시흥의 장곡중학교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지금 경기도는 교무 업무 경감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학교에 이를 적용 하고 있다.
그런데 교무팀 입장에서는 이게 간단치 않다. 중학교는 성남교육청에서, 고등학교는 도교육청에서 각각 공문과 업무가 내려온다. 보통 한 학교의 두 배나 되는 업무를 다섯 명이 감당했다. 수업 다 하면서 업무를 감당하다 보니, 1년이 지나고 나서 반 이상 후송을 가게 생겼다. 그리고 학교의 오랜 관행상 수업 시수에 차이가 나면 난리가 난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는 사람 잡을 판이다. 그래서 교무팀 선생님의 수업 시수를 확 줄여줬다. 그리고 학년팀 선생님들이 수업을 더 맡았다. 그리고 2년마다 업무를 교대해주고 있다.
근래는 교육청에서 한 술 더 떠서 교무업무보조 인건비를 지원해주고 있다. 이 제도는 오래전부터 시작했는데 실상을 보면 대부분 그냥 복사, 전달 등과 같은 잡무를 맡기고 있다. 그런데 교무 업무 보조를 뽑으면 우수한 사람들이 온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취업이 힘드니까. 그런데 그 우수한 인력들이 단순 노동을 하고 있다. 이분들이 공문 처리 전문가인 교감 선생님 밑에서 배우면 3개월 이내에 공문 처리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은 각 학년 팀별로 무엇이 진행되고 있는지를 교무팀에서 얼마나 잘 종합하느냐 인데, 기본 틀만 주어지고 전달만 잘된다면 공문을 작성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리고 이 사람 저 사람 나눠서 하다보면 빠지는 부분이 많은데, 모아서 하다보면 그런 일도 없다. 지금 경기도만 그러는 게 아니라 여러 교육청에서 이런 방식을 권하고 있다. 빨리 바뀌어야 한다. 학교가 본래 무엇을 하는 곳인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2) 학교 안에 여섯 개의 작은 학교가?

수진 :  맞다. 내가 선생이 된 이유가 서류 만지려는 건 아니였는데. 당신의 이야기는 결국 교사 조직의 개편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렇게 교사 조직을 개편해서 아이들의 성장을 도모하자는 것인데, 그 방향성은 어떤가?

광필 : 그렇다. 선생들 모두 서류나 만지려고 교사가 된 게 아니다. 따라서 교사들의 조직을 교사들의 열정과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개편해야 한다. 이우학교는 이를 위해 교사들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교사들이 서로 배우고 협력하는 관계망을 형성하도록 도왔다.
우선 학교를 6개의 학년팀과 이를 지원하는 부서로 구성해 각 학년팀에 학년의 교육활동에 관한 권한을 상당부분 위임했다. 각 학년팀은 토요전일제 수업, 자기탐구과제 등 교육과정을 직접 기획하고 진행했다. 그리고 농촌봉사활동, 통합기행 등 다양한 활동을 주관한다. 교복, 두발, 생활지도와 관련된 대부분의 권한을 학년팀에 위임하고, 학년 학생회 활동에 대한 지원도 학년팀에 맡겼다.
중등에서는 행정업무 중심의 업무 분장과 교과별 업무 분장이 교육 혁신의 큰 걸림돌이다. 우리는 학년팀을 기본 조직으로 삼고 교과협의회는 필요할 때만 열리는 보조 조직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수업연구회도 학년 단위로 열어 학년 아이들의 배움과 성장을 깊이 있게 협의했다.
이렇듯 학년팀을 아이들의 성장을 책임지는 단위를 만들었더니, 학년팀 선생님들이 집단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면 학년 아이들도 같이 성장한다. 학부모들도 함께 큰다. 중1 부모들은 중1 부모같이 행동하고, 고1 부모는 고1 부모같이 행동한다. 그리고 서로 어려움을 나누고 도움을 주면서, 그리고 사고 친 아이들을 함께 추스르면서 같이 크는 것 같다.
그리고 선생님들의 변화도 학년팀이 좌우한다. 가끔씩 이우에서 궁합이 맞지 않는 학년 팀이 있다. 그래서 일 년을 고생한다. 그래서 다음번엔 어떻게 학년팀을 조직해야 할까, 인사위에서 온갖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런데 그렇게 실패했던 경험조차도 전체적으로 공유하게 되면 굉장히 풍부한 이야깃거리가 된다. 어떻게 보면 어떤 선생님이 내내 성공하는 학년팀에만 있었다면 그 선생님은 성장하지 못할 것 같다.

아이들의 성장을 책임지는 학년팀과 이를 지원하는 부서로 학교 조직을 바꿔라. 그러면 교무실이 살아난다.

3) 교장, 교감은 뭘 하나

그런데 학년팀은 그것이 하나의 철옹성이 될 수도 있다. 혹은 학년팀 차원에서 감당하기 힘든 일을 스스로 책임지려 붙들고 있다가 정작 집중해야 할 학년 학생들과의 결합이 힘에 부칠 수도 있다.
‘학년 팀 내에서 선생님들 간에 생활지도나 교육적 관점의 차이로 주요 사안마다 부딪치지만 팀 내에서 해결이 되지 않아 제각각 다른 방식으로 아이들을 만난다.’
‘팀 내에서 학년의 주요 과제가 해결되지 않아 어려운 처지에 놓였지만 팀 차원에서는 심각하게 다루지 않고 넘어간다. 주요 과제에 대한 외부의 문제제기는 팀의 자율적 운영에 대한 부담으로 간주된다.’
위와 같은 경우 일차적으로는 학년팀장의 주도하에 학년 팀 내에서 문제가 진단되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가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벽에 부딪치거나 역부족일 때 교장, 교감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면 한다. 내부의 요청만 기다릴 게 아니라 사안에 따라서는 교장, 교감이 팀을 찾아가야 한다.
그동안 교장, 교감이 대외 업무나 행정 업무 등을 탓하며 학년팀장과의 결합을 강화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업무 분장을 결정하는 인사위원회에서 각 학년팀을 구성할 때 그 조건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여 선생님들을 어려운 조건에서 1년 동안 고생만 시킨 경우도 있었다. 다른 한편 문제가 드러났을 때 교장이 분명한 입장을 보이거나 대응을 하지 않고 자신의 책임을 회피한 채 온정적으로 접근해서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들기도 했다. 위와 같은 징후의 가장 큰 책임은 교장의 리더십이 발휘되지 못한 데 있다.
그리고 학교 운영의 뼈대를 책임진 학년팀장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교장, 교감이 다양한 방법으로 도와야 한다. 그동안 대표자회의가 일정공지, 업무연락․ 점검 중심의 행정적 업무에 치우쳐 교육적 접근을 잘 하지 못했다. 이제 행정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태도와 능력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면 전자결재를 통한 해결책도 있다. 대표자회의와 팀장회의에서 교육적 현안을 중점적으로 검토하여 학년팀장들이 교육적 리더십을 갖도록 도와야 한다.
이리하여 학년팀 단위의 성공적인 교육활동 경험을 통해서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모두 함께 성장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4. 모든 교사가 훌륭하면 안 된다?

수진 : 학년팀 단위로 움직이면 교사도, 학부모도 집단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게 마법같다. 아마 그 이전에 다루었던 만수 이야기 등도 학년팀의 집단적 성장의 예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실패했던 경험을 통해 선생이 성장한다는 것도 와 닿는다. 내가 지금까지 실패했던 수많은 경험들도 결국 내가 좋은 선생이 될 수 있는 거름과 같은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놓인다. 어쨌든 어떻게 학교가 조직되어야 하는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신 것 같으니, 마지막으로 학교 혁신을 추진하는 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을 들려 달라.

광필 : 모든 실패는 사실 성장의 원동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그 실패가 집단적으로 공유되어야 하고, 더 많이 거론될 수 있어야 한다. 그건 먼 미래에도 마찬가지이다. 미래가 어떻게 변화한다 하더라도, 사람이 성장하는 원리가 변하진 않을 테니. 그렇기 때문에 미래의 학교 조직도 뭔가 거창하게 변화 할 필요는 없다. 그저 아이들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면 그만이다.
그런 맥락에서 마지막으로 얘기하고 싶은 것은 모든 선생님이 훌륭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제가 학교를 떠나고 난 후에 깨달은 것, 그래서 늘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애들에게는 다양한 선생님이 필요하다. 못된 선생님, 독한 선생님, 개기는 선생님이 꼭 필요하다. 그래야 학교가 온실이 안 되고 적당한 비바람이 들이치게 된다. 이런 조건에서 아이들의 성장판이 골고루 자극된다.
또, 이분들이 학교가 추진하는 사업과 방향에 대해 다양한 검증 역할을 한다. 뒤에서 봉창 뚫는 사람이 없을 때, 교장이나 추진 주역들이 꼭 오버하게 되어 있다. 사람 수준이라는 것이 뻔해서 결국 건방을 떨고, 막 밀고 나가다 보면 사고를 치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분들이 적절한 제동장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분들을 미워하지 않고, 그냥 놔두고, 우리끼리 열심히 하다보면 봉창 뚫는 사람이 사라지게 된다. 그럴 때는 반드시 새롭게 봉창 뚫을 사람을 스카웃해야 한다. 조직의 건강을 위하여!

수진 : 저번에 아이들이 맥을 못추면 붕어 양식장에 쏘가리를 풀 듯, 말썽쟁이 아이들을 데려와야 한다는 이야길 들었다. 그런 것처럼 못된 선생이 필요하다는 맥락으로 이해가 된다. 생각해보면 그런 선생님들이 있기에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내 내면을 더 들여다 보고, 타인을 더 들여다보게 되는 것 같다. 그런 과정이 성장 아닐까 싶기도 하고. 단순히 조직의 건강만은 아닌 것 같다.

광필 : 그렇다. 성장이란 본디 삐그덕 대는 것 아닐까. 어떤 조직도 사람과 같이 성장하기 위해선 삐그덕 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수없이 삐그덕 대기를 기원한다!

 

정광필
대안학교 이우학교를 설립했고, 지금은 ‘50+인생 학교’를 이끌고 있다. 그를 만나면 ‘호연지기’의 뜻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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