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광필의 교육수기] 체험활동, 중요한 것은 내면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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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활동, 중요한 것은 내면의 힘?

 


내면의 그릇(‘고도원의 아침편지’ 중에서)

 

1. 먼저 이우학교의 반성부터

수진 : 많은 학교에서 창의적 체험활동이 활발해졌다. 아마도 대안학교에서 20년 가까이 열심히 노력한 성과들에 힘입은 바 큰 것 아닐까? 그런데 내 경우에 체험활동을 하면서 아이들이 정말로 성장하는 지 잘 모르겠다. 아이들이 뭔가 하는데, 공허하다. 이우학교에서는 뭐가 다른가?

광필 : 아이들이 체험활동을 많이 하면 삶의 동기가 형성되어 학습도 열심히 하고, 인성도 잘 갖추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그런데 이우학교나 다른 대안학교들도, 돌아보면 꼭 그렇지가 않다. 먼저 이우학교의 체험활동에 대한 반성으로 얘기를 시작해보자.
학교를 처음 시작할 때 의욕적인 구상과 준비를 통해 중학교 과정에 매우 다양한 활동이 설정됐다. 연간 학사일정을 정리한 표가 빼곡할 정도로 수많은 활동들이 이어졌으며, 관심 있는 분들이 좋은 프로그램을 자꾸 제안하면서 활동은 더욱 다채로워졌다. 2003년 개교 때 입학해 중학교 3년 동안 온갖 활동 경험을 쌓은 아이들이 2006년 고1이 되었을 때 모두들 기대가 컸다. 특히 고등학교 1학년 과정에는 이우학교의 여러 활동 중 꽃이라 할 수 있는 ‘한여름 밤의 꿈’이나 해외 통합기행이 있다. 동아리나 스터디 그룹들도 젊은 피의 수혈을 기대했다.
그런데 정작 이들 고1들은 매사에 시큰둥했다. 그동안 자신들은 이미 많은 경험을 쌓았으니, 고등학교의 활동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는 투였다. 그리고 이제 놀 만큼 놀았으니 공부 좀 해야겠다는 식이었다. 이렇게 고1들이 무기력해지면서 자치활동도 위축됐다.

또 다른 한 장면. 이우중학교에서 입학전형을 하다 보면 공동육아를 거쳐 대안초등학교에 다닌 아이들, 그리고 부모의 의식적 배려 속에서 다양한 체험활동을 한 아이들을 적지 않게 만나게 된다. 그런데 이들이 정작 이우학교에 들어와서는 몸으로 하는 활동에 소극적인 경우가 종종 있다. 이우고등학교에서의 활동이 신선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교과학습을 잘 따라가지 못하면서 매사 의욕과 자신감을 잃는 아이들도 나타난다. 그리고 자기 좋아하는 것만 열심히 하겠다는 소신으로 게임이나 운동에 매달리는 경우도 있다.
그 동안의 많은 활동 경험은 그 아이들에게 무슨 의미였을까? 왜 이 아이들에겐 그런 풍부한 경험이 내적인 성장으로 연결되지 못했을까? 물론 이들이 보여주는 퇴행적인 모습이 성장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일 수도 있지만 보다 냉정한 평가가 필요해 보인다.
학교라는 공간의 특성을 감안해 살펴본다면 위에 든 모습들은 모두 체험과 교과 학습이 균형을 이루지 못할 때 나타나는 현상일 수 있다. 아이들의 자아존중감은 타인의 시선과 연결되어 있다. 위에 예시한 중1 아이들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일반 초등학교 출신에 비해 학업이 뒤처지자 무기력한 모습으로 지내거나 감각적인 게임과 운동에 빠져든 경우다. 반면 본격적으로 입시의 자장 안에 들어선 고1 아이들은 이우중학교 시절 학습을 소홀히 했다고 여겨 그 반대 편향으로 학습에 강하게 쏠리는 현상을 보였던 것이다. 그나마 이들은 중고 6년 통합과정 속에 있기 때문에 학습에 대한 자신감을 잃지 않는 상태라 다행스럽다 하겠다.

수진 : 이우학교도 처음부터 잘한 것이 아니고, 반성을 통해 조금씩 진전시켜 간다는 것이 실감난다. 체험활동과 학습의 균형에도 공감이 간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도 그 줄다리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체험활동과 지적 작업의 관계는 어떻게 보아야 하나?

광필 : 이우학교의 시행착오를 통해서도 확인했지만 이미 오래 전에 존 듀이가 이론적 기초를 제공했다. 듀이는 <경험과 교육>에서 반성적 경험을 통해 얻게 된 지식을 문제 사태에 적용하고 문제를 해결해가면서, 학습자의 경험은 재구성되고 재조직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학습자는 경험사태에 대한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인식하게 된다. 듀이의 이론은 아동의 전인적 성장을 중시하고, 실제 활동과 지적 교과, 하는 것과 아는 것을 이분법적으로 봤던 시각을 극복했다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
그러면 이우학교의 체험활동은 듀이가 얘기한 대로 지식·사고 교육을 체험활동 속에 아우르는 통합적 관점을 잘 실현하고 있을까?

해외통합기행은 ‘해통 방문지의 역사와 문화, 주요 사회적 문제에 대한 학습 → 교류 혹은 봉사 프로그램 계획 ‧ 준비 → 기행(기행과정에서 매일 저녁 하루 돌아보기와 다음날 일정 준비하는 시간 갖기) → 해통보고서 작성 → 학년 전체 학생 및 교사들 앞에서 발표회 진행’의 흐름으로 진행된다.

인턴십 역시 ‘희망 진로에 관한 학습 → 인턴십 계획서 작성 →  인턴십 장소와 멘토 섭외(정보 교류) → 실행(인턴십 일지 작성) → 인턴십 보고서 작성 → 학년 전체 학생 및 교사들 앞에서 발표회 진행’의 흐름으로 진행된다.
반면 사회체험의 경우 ‘이론 학습 → 현장 견학 → 프로젝트 기획’까지는 비교적 잘 이뤄지는 것 같은데, ‘프로젝트 실행과 후속 작업’이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다. 주제기행과 인턴십의 압박 속에서 샌드위치 패티가 된 느낌이랄까?
그럼 주제 기행은 어떤가? 힐링 성격이 강한 주제나 팀원들의 구성이 널널한 경우 이론학습이 잘 안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후속작업 역시 해마다 기복이 있다. 이렇듯 고2 주제기행이 느슨하게 진행되는 까닭은 교과 학습과 창체 등으로 에너지가 소진된 학생들이 밀도 있는 주제로 기행을 기획하고 추지하기 어려워서 그런 것 같다.

네 가지 사례를 보았다. 해통과 인턴십의 경우 가장 모범적으로 통합적 관점을 실현한 반면 사회체험과 주제기행은 통합적이지 못한 만큼 한계를 드러냈다. 이 경우 정확한 원인 분석이 필요하다. 각각의 완성도를 높이려는 접근은 오히려 헛수고일 수 있고, 문제는 중학교의 경우와 비슷하게 과도한 활동 탓일 수 있다. 학년별 과제에 맞게 집중할 부분과 덜어낼 부분을 명확히 해야 한다.

수진 : 현재 많은 학교에서 다양한 체험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고입의 자기주도 전형이나 대입의 수시 때문에 더 과열된 경우도 많다. 그동안의 축적된 시행착오를 통해 많은 학교에서 체험활동을 하며 나타날 수 있는 문제를 더 날카롭게 볼 수 있지 않나. 내가 보기에도 문제지만, 미리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광필 : 앞에서는 주로 과도한 체험활동의 문제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교육현장에서 흔히 보게 되는 체험활동의 그림자는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었다는 데 있다.
어른들에게 중고등학교 시절 교실 밖 활동으로 익숙한 것은 소풍과 수학여행이다. 삶은 계란과 칠성사이다 맛으로 기억하는 그때의 추억이 지금의 청소년들에게는 낯설 것이다. 요즈음은 빨간 모자 쓴 조교의 통제 아래 진행되는 극기훈련이나 수련회가 유행이다. 학교는 프로그램을 선택하고 오고 가는 인솔 과정을 담당할 뿐, 프로그램의 진행은 거의 전적으로 수련원 측에 맡겨진다. 서로 낯선 관계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방식은 빨간 모자의 물리적 권위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두려움이 아이들을 길들일 수는 있지만 성장으로 이끌 수는 없다.

한편 수 년 전부터 봉사활동과 체험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학교생활기록부에 봉사활동과 체험활동을 기록하는 난이 생겼다. 학교에서 이를 해결하기 어려우니 부모가 뛰고, 각종 상업적 캠프가 등장했다. 또 동사무소를 비롯한 관공서에서 2~3시간 편히 일하고 2배의 봉사시간을 인정받는 일이 흔하다. 이웃과 사회를 위한 봉사정신이 길러지는지, 자아정체성을 탐색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따져보는 일은 대학 입시를 위해 생활기록부를 잘 갖추는 일의 뒷전으로 밀려난다.
물론 이런 체험활동조차 없는 것보다는 나을 수 있다. 다들 이런 엉터리 활동에서 고통을 받는 만큼 변화의 노력도 나타난다. 그런데 아이들이 활동을 기획하거나 준비하는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주어진 프로그램대로 움직이는 것은 엄밀히 말해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활동을 ‘당하는’ 것이며, 결국 아이의 내적인 성장으로 이어질 수 없다.

다음의 설문결과는 위와 같이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우리 교육현실의 문제점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낸다.(2006년 일본청소년연구소 조사, 동아일보 2007년 4월6일자에서 재인용)

네 나라의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성장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잘 드러난다. 특히 우리나라와 다른 세 나라 청소년들의 꿈과 소망은 크게 다르다. 우리나라의 경우 ‘평생 사귈 친구를 얻고 싶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지향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성장보다는 ‘좋은 결혼상대’를 찾고 ‘돈을 벌고 싶다’고 한다. 입시와 경쟁에 내몰려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잃은 우리 청소년들을 지켜보면서 우리 교육은 어디서부터 그 매듭을 풀어야 할까?
이런 현상이 나타나게 된 원인은 다양한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겠지만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청소년들이 하는 체험의 폭과 깊이다.

 

2. 체험활동에서 무엇을 배우나

수진 : 학생시절의 차이가 본격적으로 사회에서 활동할 성인에는 얼마나 큰 차이로 나타날까 우려가 된다. 그러면 체험활동을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다양하고, 깊이 있는 체험을 줄 수 있을까? 내 학생들이 무의미하게 나의 체험활동을 듣고 있는 것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광필 : 앞의 표에 나타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 답변은 결코 쉽지 않다. 우리 아이들이 세상을 어떻게 보고 어떤 삶을 살려고 하는지 그 시야의 협소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에 더욱 그렇다. 아이들이 자기 인생을 긴 안목에서 조망하며 주인으로 살아가고,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고 넓은 세상을 도전적으로 헤쳐 나가게 하려면 우리는 이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까?

이우학교의 사례를 검토하면서 체험활동의 의미를 정리해 보자. 이우학교 체험활동의 성과는 무엇일까?
우선, 다수 아이들이 그 과정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자기의 정체성을 찾아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우고등학교 학생들이 학교에서 경험하는 모든 교육활동 중 자신의 성장에 가장 의미 있었다고 하는 해외통합기행의 경우도 그러하다.
몽고 대초원의 지평선과 푸른 하늘, 쏟아지는 별들. 필리핀의 거대한 쓰레기 산과 그곳에서 끼니를 잇는 사람들, 밀림 속 난민촌의 찢어지게 가난한 삶, 그런 가운데도 해맑은 아이들의 모습, 이런 것들이 아이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에게 특별히 의미 있었던 것은 일찍이 자신들이 만나보지 못한 순박한 사람들과의 깊은 교감, 가진 것과 행복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생생한 경험이었다. 이로 인해 아이들은 욕망의 좌절을 거의 겪어보지 못한 채 부족함 없이 살아온 자신의 삶, 사소한 불편에 툴툴대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둘째, 기획, 조직, 갈등조정, 행사진행 등을 비롯한 다양한 실무 능력을 익힐 수 있었다. 그 옛날에는 선비들의 책상물림을 경계했고, 지금은 대학입시, 취직시험, 고시 준비로 공부밖에 할 줄 모르는 공부벌레들을 경계한다. 일을 기획하고,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서로 갈등하거나 이견이 있을 때 이를 조정해내는 능력은 시험공부로 해결되지 않는다.
이우학교의 경험을 돌아보아도 상당히 긴 시간의 다양한 활동을 거쳐 조금씩 이런 능력이 길러진다. 체육대회나 축제를 학생들 스스로 기획하고, 진행하며, 평가하는 과정, 수업에서의 협동적인 모둠 활동, 다양한 자치 활동에서 이견을 조정하고 여러 사람의 뜻과 힘을 모아가는 경험, 그리고 동료들과 조언과 도움을 주고받는 끈끈한 관계의 경험 등이 쌓이면서 가능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서로 협력적인 관계를 이룰 때 아이들의 기획력, 조직력, 갈등 조정능력이 쉽게 형성된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체험활동의 가장 큰 의미는 ‘마음의 착한 싹’을 틔우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아이들은 자기중심적이고 ‘뺀질이과’에 속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이들 자신보다는 그 아이가 갖고 있는 마음의 착한 싹을 키워주지 못하고, 친구와 경쟁하게 하고, 자기 혼자 잘 나가도록 몰아쳐서 아이 내면의 ‘어두운 싹’을 키워준 우리 가정과 학교, 사회에 그 책임이 있다.

그럼, 마음의 착한 싹을 어떻게 틔울 수 있을까? 도덕적인 설교나 훈련으로 이를 틔우기는 어렵다. 훌륭한 인품을 보고 느끼는 벅찬 감동, 남이 어려운 처지에 놓인 것을 보고 느끼는 측은한 마음, 남에게 좋은 일을 하고 느끼는 흐뭇함이 쌓이면서 마음의 착한 싹이 튼실한 줄기와 잎으로 자라는 것이다. 학교 현장에서 단 하나의 활동을 하더라도 이 고민을 중심에 놓고 접근해야 그나마 마음의 착한 싹이 조금씩 돋아난다.

구체적인 예를 살펴보자. 중학교 2학년은 질풍노도의 시기이자 대개는 여학생의 발달이 빠른 시기다. 늘 누님 같은 여학생에게 눌려 지내는 남학생들의 모습이 애처롭다. 그러다가 2박3일 도보기행을 떠나서는 남학생들이 힘들어하는 여학생의 배낭을 2~3개씩 들고 뛰면서 서로 균형을 맞추어 간다. 그리고 아이들은 농촌 봉사기행에서 이혼한 아들의 자식을 키우는 할머니의 고단한 삶을 보며 측은한 마음을 갖는다. 재작년 남한강 홍수 때는 아이들이 자기네끼리 뭉쳐서 휴일에 수해를 복구하러 갔다. 또 뮤지컬 ‘한여름 밤의 꿈’을 공연할 때에는 어떠했나? 학급에서 늘 소극적이던 동료를 주연으로 내세우고 도와주면서 그의 눈부신 변화를 지켜보는 흐뭇함이 있었다. 이 험한 세상에서 마음의 착한 싹은 상당히 긴 시간에 걸쳐 조금씩만 자라난다.
이렇듯 우리 아이들은 체험활동을 통해 자신을 찾고, 남과 함께 일을 해내는 능력을 갖추며, 마음의 착한 싹을 틔워간다.

 

3. 꿈꿀 수 있는 여백과 일을 저지를 수 있는 장을!

수진 : 생생한 체험, 책상머리에선 얻을 수 없는 갈등 조정 능력과 협력 능력, 경쟁에 지친 아이들이 키워나가던 어두운 싹이 아닌 착한 싹을 틔어 주는 일. 체험활동이 그 정도로 아이의 성장을 돕는 다고 생각하진 못했다. 하지만 역시 아이들이 체험활동의 주체가 되어 스스로 성장하도록 돕는 일은 결국 교사가 ‘보이지 않는 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면 아이들이 의미 있는 체험활동을 하도록 도우려면 우리는 어떻게 보이지 않는 손이 될 수 있을까?

광필 : 기업의 인사 담당자들은 고용 없는 저성장 시대라 새 일자리가 적기도 하려니와 설령 신입사원을 뽑으려 해도 뽑을 20대가 많지 않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 암기 위주의 주입식 교육에 길들여져 입시 매니저인 엄마의 코치에 따라 대학에 간 20대. 상상력과 창의력이 빈곤하고 스스로 뭔가를 저지를 힘도 모자란 데에다 인내심과 끈기도 약한 이들을 뽑자니, 기업 입장에서는 재교육비가 너무 든다고도 한다. 설령 재교육을 시킨다 하더라도 30대, 40대들과 일손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수틀린다 싶으면 직장도 쉽게 박차고 나간다.
그러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만년 고시준비생과 백수가 늘어나게 된다. 30대가 되도록 이도 저도 안 되면 부모가 30대 자식과 그 가족을 부양하는 일까지 발생하게 된다. ‘돈을 벌고 싶다’, ‘좋은 결혼 상대를 찾고 싶다’며 유치원, 초등학교 시절부터 엄마의 코치를 따라 열심히 뺑뺑이 돌았건만, 그 결과는 이렇듯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참담하기 그지없다.
청소년은 우리의 미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 청소년들을 다른 나라의 청소년들처럼 자신의 꿈을 키우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을 단련하고 도야하게 만들 것인가?
앞에서 살펴보았듯 우선, 청소년들에게 꿈꿀 수 있는 여백을 제공해야 한다. 이들의 머리를 메모리 스틱 하나만 있으면 손쉽게 꺼내 쓸 수 있는 정보들, 입시에 필요한 지식들로 가득 채워선 안 된다. 이들에게 자신의 꿈과 가능성을 탐색하고 세상에 대해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기회와 여유를 줘야 한다.

그리고 친구들과 뭔가를 공모하여 저지를 수 있는 장을 만들어줘야 한다. 축제나 체육대회와 같은 행사를 스스로 꾸려보게 한다거나, 취미․학술․봉사 동아리를 운영해 보게 하는 것도 좋다. 이 과정에서 힘들어 지치거나 일이 잘 안 풀려 좌절해 보는 것, 친구들과의 갈등으로 속을 끓여보는 것도 거친 세상을 향해 도전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데 좋은 자양분이다. 다만 신뢰할 수 있는 교사가 아이들 옆을 든든히 지켜주고 있을 때 이들이 안심하고 자란다는 점을 마지막으로 유념하는 게 좋겠다. 그렇지 않았을 때, 아이들은 자유를 방종이라 착각하곤 한다.

수진 : 앞의 생활지도에서 선생님과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꿈꿀 수 있는 여백과 저지를 수 있는 장을 주면서도 신뢰할 수 있는 선생이 되어 도움을 줘야 한다는 점 역시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여백을 채워나가는 의미는 불확실한 미래를 채워나갈 아이들인 건가.

광필 : 잘 봐줬다. 청소년이 우리의 미래이기에, 교육은 미래를 위한 농사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의 가장 큰 난제는 미래를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우리의 능력이다. 물론 봉건제 사회때야 10년 전이나 10년 후나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10년 후, 20년 후는… 4차산업혁명이니 여러 이야기가 나오는 지금, 어떤 이도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 장담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교육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며 그 미래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라기보다는 예측할 수 없는 무언가가 튀어 나와도 그것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아닐까.

 

정광필
대안학교 이우학교를 설립했고, 지금은 ‘50+인생 학교’를 이끌고 있다. 그를 만나면 ‘호연지기’의 뜻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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