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광필의 교육수기] 수업에서 아이들은 어떻게 깨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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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에서 아이들은 어떻게 깨어날까

 

1. 바라보는 눈빛이 공허하다?

수진 : 요즘 수업을 혁신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나도 그 중 한 사람인데, 도대체 수업 혁신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잘 모르겠다. 나만 해도 실제 수업 현장에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하는데 실제로 잘 먹히지도 않는다. 좋다고 하는 여러 방법론이 제시 되는데, 이런 방법론이 과연 중요한 것일까?

광필 : 나의 우여곡절 많았던 과거가 나올 차례인 것 같다. 먼저 결론부터 말하자면 수업 방법론과 기술들은 수업 혁신에 도움은 되겠지만 아이들의 배움과 성장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설령 엉성하더라도 우리가 아이들을 바라보는 관점과 열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과연 우리는 아이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
이우학교의 경험을 얘기해 보겠다. 2005년은 이우학교가 개교 3년차가 되어 중1에서 고3까지 모든 학년이 채워졌던 완성년도다. 개교 준비를 7년 정도 했고, 처음 3년간 모두들 열심히 뛰었다. 개교 초창기에는 모든 교사들이 교과서를 다 내던지고 교재를 새로 만들다시피 했다. 그해 가을  대표적인 수업 중 하나인 중학교 2학년 철학 수업을 동영상으로 찍어 국제 워크숍에서 강평하는 자리가 있었다. 많은 선생님들이 저희 수업에 대해서 칭찬을 해주셨다. 제일 끝에 사토 마나부 교수가 강평을 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아이들이 참 열심히 하는데, 정작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공허하다.”
“발표를 참 열심히 하는데, 제각각 자기 발표 준비만 하고 있다.”

처음엔 자존심도 상하고, “이게 무슨 소리야?” 그랬는데, 돌아가서 생각해보니까 생각할수록 이게 복잡한 문제였다. 그래서 그 비디오를 꼼꼼히 봤다. 그랬더니 빨간 잠바의 철수라는 친구가 한 블록 수업 시간 동안 졸다가 깨다가, 온갖 고생을 하고 있었다. 철수뿐만이 아니라 그런 아이가 여럿 있었는데 그 아이들이 이전엔 안보였다.

우리가 주로 ‘수업이 좀 되고 있다’, ‘내용도 있고 깊이도 있고 아이들이 활발하게 반응하고 거기에 맞추어서 선생님이 잘 조절하고 연결도 잘 시키고 있다’고 이야기 할 때의 주된 타깃은 누구인가? 대개 어느 학교나, 어느 반에나 있는 열심히 하는 아이들이었다. 그 아이들과 주고받는 것을 중심으로 보면서 뭔가 잘 되고 있고,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열심히 하는 아이와 잠들어 있고 먼 산을 쳐다보고 있는 아이들과는 수업 내에서 전혀 교류가 없었다.

그 중에서도 선생님 시선을 피해서 졸다가 깨다가 먼 산 쳐다보다가 열심히 하는 아이 뒤에 숨는, 이런 아이들이 새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열심히 가르친다’, ‘우리가 열심히 한다’라는 것이 ‘제대로 되는’ 것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쳤다. 그리고 우리 관점의 문제를 심각하게 돌아보기 시작했다. 처음에 우리가 시작할 때에는 이런 결과를 기대했던 것이 아니었고 포부가 매우 컸다. 특히 잘 못하고, 잘 따라오지 못하는 아이들을 잘 챙기겠다는 욕심이 컸는데, 그 아이들을 다 제치고, 3년이 지난 상황에서는 양극화가 진행된 것이다. 점점 멀어져간 것이다. 그래서 심각한 반성 끝에  ‘수업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하는 고민이 시작됐다. 그래서 학생들의 배움을 중심으로 수업연구회를 하기 시작했다.

 

2. 배우려 해야, 배운다?

수진 : 나도 수업할 때 주로 잘하는 아이들이 눈에 뜨였는데, 내 수업이 나름 괜찮다고 여기기 위한 자기합리화였나 보다. 그럼, 이우학교에서는 어떻게 수업 연구를 했나?

광필 : 당신 같은 젊은 선생님이 가졌을 압박감과 불안감이 느껴진다. 우리도 초창기엔 일반학교에서 하듯이 수업연구회를 했다. 공개수업은 보통 학교에 처음 오셨거나, 젊은 선생님들을 시킨다. 초반에 그 학교에서 제일 발언권 있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래도 시작은 예의상 칭찬을 조금 한 다음에, ‘그런데’로 시작하는 본론이 있다. 지난 10년, 20년 동안 배웠던 것, 봤던 책 등 온갖 것을 동원하여 배경 지식을 깐 다음에 그 선생님과 관련된 걸 몇 가지 연결시켜서 온갖 이야기를 늘어놓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주로는 그 선생님의 핵심적인 문제점을 지적한다. 그 많은 말들이 어쩌다가, 특별하게,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그런데 대부분은 등짝에 꽂힌다. 그래서 그 날 수업연구회를 마치고 나면 꼭 술을 먹게 된다. 다시는 이런 거 하고 싶지 않다. 그 심정을 아는 동료들은 마음이 짠해진다. 학교는 한동안 분위기가 싸해진다.

2010년부터는 전국적으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의무적으로 수업을 공개해야 하는 상황이라 수업공개가 있는 날, 그 학교 분위기가 싸해지고 있다. ‘무엇을 위한 수업 연구회인가?’

2006년도부터 우리는 수업연구회 방식을 바꿨다. 아이들이 빠져나가고 아이들이 앉았던 자리에 선생님들이 둘러앉았다. 칠판에 아이들의 이름과 좌석 표를 그려놓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맨 처음에는 ‘이 수업을 보고 내가 무엇을 배웠는지’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런데 이것을 조금 더 자세히 볼 필요가 있다. 지금 선생님이 내가 이 수업을 보고 무엇을 배웠다고 이야기하는 순간 다른 분들도 다 공감이 된다. 또 수업을 본 분들은 ‘모두 다’ 내가 이 수업을 보고 무엇을 배웠는지 이야기한다. 30명이 봤으면 30가지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 분위기가 확 바뀐다. 우선 선생님들이, 전에 볼 때에는 수업을 보면서 ‘아 이번에는 뭐가 문제일까’, ‘이번엔 내가 무슨 이론을 가지고 이 선생님의 어떤 문제를 지적해야 하나’ 하는 눈으로 보다가, ‘이 수업을 보고 내가 무엇을 배웠나’를 이야기해야 한다. 그러면 수업 연구회에서 관찰하는 눈이 어떻게 달라질까?

우리가 동창회에 나가보면 누가 선생님인지 금방 알아챈다. 우선 무슨 이야기가 나오던 설명하려 하거나 가르치려 하고, 문제는 꼭 지적해야 한다. 교사가 본래 타고난 성격이 그럴까? 지난 몇 10년의 열악한 교육현실이 선생님들을 이렇게 내몰았다. 그런데 우리가 늘 가르치고, 지적질 하면 범생이들은 늘 따라서 지적질 한다. 선생님이 배우려 하면 아이들도 배우려 한다.

이렇게 다 같이 배우는 분위기로 바뀐다. 이 점이 중요하기도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수업을 공개한 분의 변화다. 우리나라의 많은 선생님들은 콤플렉스에 시달린다. 그 이유는 그동안의 일반적인 수업 연구회 장면에서도 그랬지만, 위로는  부장, 교감, 교장 선생님, 또는 아이들, 혹은 학부모들로부터 선생님의 문제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들어왔다. 그리고 이런저런 자리를 통해서도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자각할 수밖에 없는 조건에서 살아왔다.

그런데 30명이 내가 수업하는 모습을 보고 뭘 배웠다고 이야기하는 것 하나하나가 수업을 공개한 선생님한테는 보약이 된다. 별안간 내가 뭘 잘하는지 정리가 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모아놓고 보니까, 내가 어떤 강점이 있는지 딱 정리가 된다. 스스로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까지 떠오른다.
그런데 이분이 그 이전에 수많은 콤플렉스에 시달리면서도 자기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던 주된 이유는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몰라서 그랬던 게 아니다. 그 문제를 해결할 힘이 없어서, 그 문제를 피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분 한 분이 내가 이 수업을 보고 뭘 배웠다고 하는 이야기가 모아져서 정리되는 순간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할 힘이 생긴다. 그래서 보약이 된다.

그리고 부수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전에는 공개수업 하기 한 달 전부터 준비했다. 무슨 연구수업 하는 것처럼. 수업 시나리오도 짜고, 말 그대로 ‘쇼’를 준비한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 것도 준비하지 못하게 한다. “준비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 일상적인 수업 그 자체로 하자. 자료? 만들지 말자. 필요한 것은 아이들의 좌석 표다. 그리고 이번 차시에 하는 것이 뭔지에 대한 것만 간단하게 한 장 이내로 준비하자.”고 했다. 2007년부터 공개 수업하는 분이 준비해야 할 것이 하나 더 늘어나긴 했다. ‘이 수업에서 내가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데, 참관하는 선생님들이 이런 부분을 좀 꼼꼼히 봐주세요.’ 이런 내용을 한 문단 정도 추가했다.

그동안 우리는 수업 연구회 때 무수히 지적질을 해왔다. 이제는 수업을 보고 내가 무엇을 배웠는지를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3. 그래서, 아이들은 어떻게 깨어날까

수진 : 수업연구회에서 나온 얘기들이 등짝에 꽂힌다는 말이 정말 실감난다. 내가 수업 연구의 타겟이 되는 ‘젊은 교사’였으니. 그런데 관점을 ‘무엇을 배웠는지’로 바꾸자 선생님들도 지적질 대신 배우려 하고 아이들의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고 하는 게 신기하다.  그런데 솔직히 이런 생각도 들었다. 과연 수업연구회에서 아이들이 깨어나는 모습을 실제 목격한 적이 있는지?

광필 : 그동안 글과 말로만 요란한 경우가 많아서 의심을 하는 심정도 이해가 된다. 실제로 내가 참관했던 중학교 2학년 과학 수업의 사례를 얘기해 보겠다. 중학교 2학년 시기의 남학생들은 반인반수에 가깝다. 그리고 옆의 여학생을 누님으로 모시고 산다. 이것은 발달단계의 차이 때문이다.

철수와 영희가 있다. 철수는 수업시간에 졸다 깨다 하는 아이다. 공개 수업이 시작되었다. 평소와 다르게 선생님들이 왔다고 해서 별안간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는 모습을 보이기엔 자존심이 상한다. 그래서 난감하다.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어야 하나, 졸기도 뭐하고. 그런 심정을 짝인 영희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뭘 같이 해보자고 섣불리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때를 기다린다.

한 15분쯤 지났다. 생물의 역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철수가 역사를 좋아한다. 그러니까 영희가 “철수야, 이거 네가 설명해줘야 할 부분인데…” 라고 한다. 사실 철수도 15분 동안 헤매고 있다 보니까 견디기 힘들었다. 그 고생을 하느니 차라리 공부를 하고 말지 하는 심정인데 영희의 말에 명분 있게 모둠 활동에 끼어든다.

그런데 끼어드는 그 순간을 본 선생님이 그 장면을 놓치지 않고 철수에게 다가가서 “어, 철수가 이제 시작했네.” 라고 한다. 이 한 마디만 하고 싹 빠진다. 철수는 남은 시간 내내 막 달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끝날 때는 그 모둠에서 분위기를 잡고 한창 신이 났다. 이 모둠을 담당하던 4명의 선생님이 이 장면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보고 있었다.

이 장면을 지켜본 4명의 선생님이 수업 연구회에서 이야기하니까, 다른 모둠만 보고 있던 선생님들 입장에서는 철수가 어디 한 둘 인가?  ‘아, 이 아이들을 이렇게 하면 깨어나게 할 수 있구나’ 하게 된다. ‘맞아. 내가 저번에 철수 같은 아이한테 괜히 끼어들어서 “철수 시작했네. 딴 짓 하느라 힘들었는데 수업에 참여하니까 한결 좋지?”하고 늘어놓다가 걔가 삐져버렸어. 저렇게 해야 하는데.’ 이렇게 정리가 막 된다.

철수 이야기를 할 때, 사회 담당 선생님이 ‘아, 철수가 과학시간에 그렇게 졸다 깨다 하는지 미처 몰랐다. 수업시간에 역사와 관련된 이야기만 나오면 아이가 말이 너무 많아서 브레이크 거느라 애로사항이 많았다.’ 라고 얘기한다. 그러면 철수의 담임선생님이 “1학년 2학기 때부터 부모님 사이가 나빠지면서 별안간 무슨 일만 있으면 반항하고 그렇게 되었다. 요새 부모님이 성당에서 하는 부부상담 프로그램에 다녀오시더니 사이가 괜찮아진 것 같다. 그래서 한동안 이야기 하면 들은 척도 안하더니 요샌 다시 대화가 좀 된다.” 이런 이야기를 한다. 그러니까 수업 연구회 안에서 철수가 수업 시간에 깨어난 장면만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철수와 관련된 매우 풍부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4. 니들이 C를 알아?

수진 : 수많은 철수들이 이렇게 반등의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 같은 선생들로부터 버려지고 있었다는 게 느껴진다. 방법이 없는 게 아니라, 방법을 찾지 못한 것인데 지금껏 반쯤 포기했던 것 같아 그들에게 미안해진다. 철수처럼 수업 시간에 먼 산만 쳐다보거나 딴 짓하는 아이들 얘기를 더 들려주었으면 좋겠다. 내 수업시간에 있는 수많은 철수들을 위한 단초를 부탁한다.

광필 : 내 경험이 당신의 열정에 불을 붙인 것 같아 기쁘다. 좀 더 디테일하게 ‘철수의 입장’에 대해 이야기 해 보겠다. 철수를 굳이 분류하자면 A, B, C 중에서 C에 해당한다. 그런데 철수가 왜 C인가 하는 점에서 우리가 이해하는 방식이 매우 특이하다. 흔히 철수는 기초가 부족해서 C라고 분석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대책도 구체적으로 보면, 쉬운 것을 오랫동안 반복해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철수 입장에서 쉬운 것을 반복해서 오랫동안 가르치면 심정이 어떨까? 아마 미치고 환장할 것이다.

그래서 철수 입장에서는 ‘자신이 못해서’가 아니라 ‘하기 싫다’로 바뀐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올라오면 더 복잡해진다. 밤 10시까지 잡아놓는다. 미친다. 그래서 그것을 견딜 수 없으면? 학교를 떠나야 한다. 그런 아이들을 감당하기 쉽지 않으니까, 지금 많은 학교들을 보면 고등학교 1학년 3~4월 사이에 10개가 넘는 반 중 아예 한 개의 반 정도가 없어지기도 한다. 아이들을 털어내거나 폭탄 돌리기를 한다.

그런데 아까 우린 철수가 영희와 선생님 사이에서 깨어나는 장면을 봤다. 이 장면을 꼼꼼하게 새겨볼 필요가 있다. 철수가 많은 수업에 참여하는 동안, 아무 것도 안한 것은 아니고 배움의 경험을 그냥 낱낱으로 쌓아만 두고 있었다. 그러다가 영희가 한마디 거들고 선생님이 한마디 더 거든 순간, 철수가 관심을 갖고 참여를 하는 바로 그 순간, 쌓여 있던 여러 경험들이 연결되기 시작한다. 한 번 연결되면 급격히 연결되고 정리가 쫙 된다. 철수가 1시간 넘는 수업시간 동안 쫙 나갔다는 것은, 그동안 철수가 그냥 손을 놓고 있었던 많은 배움의 경험들을 모아내기 시작했고, 한 번 모아내기 시작하니까 정리가 되고 튀어 오른 것이다.

조금 전에 얘기했던 ‘쉬운 것을 반복해서 오랫동안 가르치는 것’과 달리 이 과정의 핵심적인 고리는 철수가 ‘내가 배우겠다!’고 맘을 먹었다는 점이다. 결국 중요한 부분은 ‘이 아이를 어떻게 맘을 먹게 하느냐’다. 결국 우리가 수준별 수업이라든지, 안 되는 아이들을 붙잡고 뭘 막 하는데, 엄청나게 열심히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철수가 깨어나는 이 과정을 우리가 어떻게 만들어야 할 것인가 하는 부분에서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다. 2006년도에 수업 연구회를 몇 번 하다가 바로 깨쳤다. 그리고 지금 위와 같은 관점으로 C를 이해하는 데는 한 2년 반 정도 걸린 것 같다.

그동안 우리는 C에게 쉬운 것을 오랫동안 반복해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 C는 어떻게 깨어나는가?

 

5. 가짜A 전성시대?

수진 : 결국 우리가 무엇을 하든 ‘철수의 입장’에서 납득할 수 있는 연결지점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지금까지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철수가 깨어나는 과정에서 철수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영희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런데 혹시 영희 엄마가 학교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지 염려된다. 대체 영희는 언제 자기 공부를 하느냐고. 솔직히 그런 엄마들 많지 않나.

광필 : 그렇다. 그런 엄마들 진짜 많다. 그렇지만 그런 엄마들을 설득할 수 있을법한 경험을 이야기해 보겠다. 이번에도 과학 수업의 사례다.

창문을 열면 찬바람이 쏟아져 들어온다. 폭을 좁게 하면 바람이 빠르게 들어온다. 활짝 열면 바람이 느리게 들어온다. 이것을 물리에서 베르누이의 정리라고 한다. 지금 이 이야기를 물리 시간에 선생님이 한참 설명하고 있는데 철수는 답답하다. 그래서 그것을 옆의 영희에게 ‘야 근데 그게 왜 좁아지면 빨라지고, 넓어지면 느려져?’ 하고 묻는다. 그럼 대개 우리 시대의 A인 영희는 ‘그게 베르누이의 정리야’ 라고 대답한다. ‘베르누이의 정리가 뭔데?’ ‘응 좁아지면 빨라지고 넓어지면 느려지고’ ‘그거 똑같은 말이잖아’.

이 시대의 A가 대부분 가짜라고 할 때, 지적인 측면에서도 가짜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이것이다. 대부분의 것들을 그냥 외우고 있다. 왜 그런지 설명할 능력이 없다. 더군다나 철수와 같은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은 더더욱 없다.

그런데 이렇게 된 것이 아이들 탓이 아니다. 예전에는 선생님이 철수에게 다가가 ‘야! 뭘 따지고 그래. 그냥 외워!’ 그러면 철수는 주눅이 들어 말문이 막히고 다시는 그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영희는 우쭐해서 앞으로 웬만한 것은 다 외워 버린다. 요즘에는 상황이 바뀌었다. 선생님이 영희에게 다가가 ‘지금 철수가 던진 질문은 굉장히 중요하다. 네가 철수가 알아듣도록 설명할 수 있게 된다면 너는 베르누이 정리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게 될 거야. 모둠 내에서 같이 궁리해 봐!’

‘EBS 문제집에서 수능 문제가 70% 나온다는데 그건 사기다’, 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수능이 아이의 암기 능력을 테스트하는 것이란 말인가?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면 어떻게 응용하든 다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난 다 외우고 있는데 왜 똑같은 게 안 나왔냐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가 지적으로 가짜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C가 모르는 부분이 교과에서 가장 본질적인 부분이라는 것이다. 수학으로 말하면 정리나 공식에 해당 되는 부분들이다. 그게 왜 그런지, 증명하기가 제일 어렵다. 그런데 그것을 해내야만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 학교의 A들은 지적으로 사이비다.

다음으로 A들이 자신이 잘난 줄 알고 우쭐해 하는 것을 얘기해보자. 지금 우리 시대에는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게 용납 된다. 집에서도 그렇고, 학교에서는 내신점수를 몰아주기까지 한다. 사회에 나가서도 처음엔 그렇다. 그런데 최근 이 문제가 복잡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이우학교 얘기부터 해보자. 이우학교에서 근래 선생님을 모실 때 첫 번째로 SKY 출신을 제일 경계한다. 안 뽑는다는 얘긴 아닌데, 경계를 한다.

‘얼마나 이 사람이 범생이일까. 애들을 과연 이해할까. 이해? 당연히 못하겠지. 그런데 노력해서 아이들을 이해해 보려고 스스로 여러 변화들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을까. 힘들 거야.’

이런 의심으로 선생님을 본다. 대기업 인사 담당자들이 요새 SKY 출신을 매우 경계한다. 기가 막힌 성적으로 여러 스펙을 갖추고 들어왔다. 그래서 더 좋은 자리가 나타나면 바로 떠나갈 가능성이 많다는 점이 첫 번째 문제다. 두 번째 문제는 팀 플레이가 힘들다는 점이다. 어느 팀에 배치가 됐는데, 그러면 당연히 못하는 사람도 많고 부족한 사람도 많다. 그런데 그 사람들과 뭔가를 같이 하고 팀 차원에서 무언가를 협업하는 걸 잘 못한다. 급하면 그냥 혼자 해치워버리거나, 늘 칭찬만 받아왔으니까 무슨 일이 생기면 공은 자기가 차지하려 하고. 그러니까 인사 담당자 입장에서는 SKY 출신을 경계하게 된다. 그런데 이 문제는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게 용납되는 분위기에서 왔다고 보아야 한다.

이 시대 A는 대부분 가짜다. 제대로 된 A를 길러내려면 학교 교육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수진 :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서 속으로 많이 움찔했다. 과연 나는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인지, 사범대나 교육대학원에서 내가 배운 것들이 정말로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었는지, 더 나아가 과연 그런 내가 ‘그런’ 엄마들을 설득해 낼 수 있을지, 어쩌면 내 자신이 그런 엄마들이 원했던 학생이고, 또 그런 어른이 된 건 아닐지.

광필 : 설령 당신이 그렇다 하더라도 당신처럼 그걸 자각하게 됐다면, 괜찮다. 소크라테스도 말하지 않았는가. 네 자신의 무지를 알라고. 모든 것은 거기에서부터 시작이다. 해서 좀 더 교사가 되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다. 우리 사회에서 교사가 되는 과정은 특별하다. 엄청난 범생이가 아니고서는 사범대생, 혹은 교사 자격증을 얻기가 힘들다. 설령 교사 자격증을 얻는다 하더라도 교사로 임용되는 과정이 만만치 않다. 대단한 범생이들만 교사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교육 현실은 어떤가? 어디 철수가 한둘 인가? 그런데 그런 어려운 처지에 있는 아이들을 만나는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자. 이건 내 이야기기도 하고, 우리가 초반에 겪었던 이야기기도 하다. 반인반수로 살아가는 아이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이 말이 익숙한 말 아닐까?

인간은 이성적 존재라기보다는 욕망과 감정을 지닌 동물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인류는 지난 오백만 년 동안 야생으로 살아왔다. 최근에 온갖 이론과 학설을 동원해서 뭐라고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논리적으로 타당한 말을 한다고 설득이 될까? 논리 때문에 설득이 되는 일은 없다. 그것은 인간이 감정을 지닌 동물이기 때문이다. 공감하고 마음에 와 닿을 때만 사람이 움직이는 법이다.

지금 우리가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느냐 마느냐는 아이들과 마음으로 만날 수 있느냐 없느냐와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저는 가능성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가짜 A인가를 냉정히 보고 거기서 시작해야만 아이들과 온전히 만날 수 있다고 얘기하려는 것이다.

아이들은 반인반수다. 동물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본능이 발달한다. 선생님이 자기를 이해하는지, 자기를 좋아하는지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안다. 어릴수록 더 그렇다. 철수와 같이 C면 C일수록 동물에 가깝기 때문에 더 잘 안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사범대, 교육대학원 등 교사 양성과정, 그리고 교사임용과정은 가짜 A를 만들고 있다. 그러면 재교육, 연수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수진 : 교사들이 대부분 가짜 A라는 말씀이 비수처럼 가슴을 파고든다. 논리로만 C를 상대하려고 했던 내 모습도 떠오른다. 그렇다면 이미 교사가 된 나 같은 교사들이 성장하기 위해선 수업연구회와 같은 교사 연수가 중요할 텐데, 수업연구회가 성공적으로 정착되려면 어떤 접근과 노력이 필요할지 얘기해 달라. 나에게도 희망이 있다고 말해 달라.

광필 : 어떻게 수업 연구회를 통해 교사가 변화하는 지에 대해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 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교사가 변화하는 것이지 수업 연구회 하나로 변화한다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분명 변화할 수 있다. 또 그 전체적인 맥락 중 수업연구회는 학교혁신의 가장 중요한 고리라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교장, 교감의 적극적인 역할이 요구된다.

먼저 모든 수업연구회에 참여하여 의미 있는 발언을 해야 한다. 예전처럼 수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게 아니라 이 수업에서 내가 무엇을 배웠는지를 진솔하게 얘기해야 한다. 이렇듯 교장 교감이 수업연구회를 주도하지는 않지만 강력한 후원자가 된다면 성공할 확률이 높다.

둘째,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1학기 정도는 앞선 학교의 수업연구회에 참여해보고 수업 혁신에 관한 세미나를 자발적으로 열어볼 필요가 있다. 학교장 재량 휴일을 실시해서라도 단체로 타 학교의 수업연구회를 견학하고 그에 대해 함께 얘기하는 시간을 갖는 게 정말 중요하다. 그리고 수업혁신을 돕는 연수가 많은데, 방학을 이용해 교사가 그런 연수를 받을 수 있도록 학교에서 연수비 등을 지원하면 좋겠다. 2학기부터는 자신 있는 분들부터 수업을 공개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다음년도에 학교 전체로 확대하면 좋을 것이다.

셋째, 수업을 공개한 교사를 주인공으로 모신다. 꽃다발도 준비하고, 작은 선물도 마련해 보라. 그리고 수업연구회 자리에 최고의 간식을 준비하라. 그러면 교사들 사이에 따뜻한 분위기가 형성된다.

수업연구회는 학교혁신의 가장 중요한 고리. 그러니, 연구부에만 일임하지 말고 교장, 교감도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야 한다.

 

6. 혁신도 3년이면 시들하다?

수진 : 수업 연구회 하나로 교사가 성장할 수 없다는 말에 동감이 가긴 한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학교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교사가 성장할 수 있다는 말이 힘이 된다. 전에 있던 혁신학교에서는 수업 연구회를 시작한 지 3년째 되니까, 교사들 사이에 이제 수업연구회를 그만하자는 의견들이 나왔다. 수업 혁신은 이 정도면 됐다 싶은 거다. 비슷한 이야기들이 반복되니까. 이우학교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는지 궁금하다.

광필 : 이우학교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했다. 수업연구회를 3년쯤 하다보니까 ‘이 수업을 보고 내가 무엇을 배웠는지’ 더 이상 할 얘기가 없어졌다. 그리고 아이들 이야기도 심드렁해졌다. 그래서 수업연구회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2009년 가을 어느 날 수업을 참관하다가 묘한 느낌을 받았다. 제가 볼 때도 다른 학교와 우리 학교 수업의 질이 다르다. 아이들의 집중도도 그렇고, 분위기도 다르다. 그래서 항상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때 형용할 수 없는 묘한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이 선생님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수업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고, 그래서 거기에 맞춰 발언하고, 눈빛도 맞추고, 활동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선생님은 기대했던 수준만큼 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만족해하고, 현재 자신이 갈고 닦아 만든 활동지 내지는 수업 준비 내용에 대해 매우 흡족해 하고 있었다. 가끔 다른 학교에 가서 본 수업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좋으니까. 그런데 제가 느낀 것은, 이렇게 불현 듯 1년만 가면 한 방에 무너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의 핵심은 이렇다. 이전과 비교하여 대단히 훌륭하다. 질적인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그런 질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의 자극과 성장을 이끌어낼 수 없다면 그 수준마저 무너지게 되지 않을까? 그런 위기감을 느꼈다.

수업 장면만이 아니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 2학년 때 아이들이 직접 기획하고 추진하고 평가까지 하는, 주제가 있는 통합기행을 간다. 한 3~4년 동안 그 과정이 아이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었다. 멋진 기획안이 나오고 아이들이 그것을 준비하면서 성장했다. 근데 그게 4~5년쯤 되니까 그 전까지 선배들 사이에서 나왔던 좋은 안들 중 하나를 골라서 다듬은 후, 지원자를 모으면 된다. 게다가 기획안뿐만 아니라 여행에 필요한 체크리스트도 이미 홈페이지에 선배들이 다 올려놨다. 그래서 때 되면 한 열흘 준비했다가, 3박 4일 잘 다녀온 후 보고서까지 깔끔하게 만들어 잘 마무리한다. 멋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것이 너의 성장에 어떤 의미가 있느냐, 라고 묻는 순간 아무 대답이 없다. 싱거워진 것이다. 고2쯤 되면, 중1때부터 이것저것 웬만한 것 다 할 줄 안다. 더 이상 자신의 성장을 자극하는 새로운 도전이 없다.

당시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의 야성이, 도전정신이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수업 연구회의 초점을 바꿨다. ‘내가 이 수업에서 뭘 배웠느냐’, ‘아이들이 어디에서 배움이 멈칫거리느냐’, ‘어디서 깨어나느냐’ 같은 이야기는 더 이상 예전처럼 중요하지 않다. 영희의 입장에선 뻔한 것들이 너무 많아졌고, 철수마저도 이제 대충 풍월은 읊기 때문이다. 이제 아이들의 배움과 성장을 자극하는 도전적인 문제, 그러니까 영희와 철수가 함께 20여 분 정도 고민하지 않고는 풀 수 없는 문제를 수업에서 잘 던지고 있느냐가 중요해졌다. 그래서 2010년부터 이런 문제를 중심으로 수업 연구회를 하는 것으로 뜻을 모았다.

그런데 결과는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다섯 번을 하면 겨우 한두 번 정도 아이들이 그 장벽을 뛰어넘어 반짝이는 걸 볼 수 있을까? 아이들의 머리를 뒤흔들어 지적 도약을 일으키는 게 그렇게 만만치 않았다. 2011년 2월에 제가 이우학교를 떠났으니까, 그 이후 상황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후에도 선생님들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3년 정도 수업연구회를 하다 보면 아이들이 비교적 수업에 잘 참여한다. 그러다 보면 교사도 매너리즘에 빠진다. 하지만 이때야말로 수업연구의 도약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수진 : 다양한 시도가 있다고 하는 말이 복선처럼 느껴진다. 지금의 당신이 준비하고 있는 교육에 그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나.

광필 : 그렇다. 이우가 아닌 다른 곳에서의 시도이다. 그리고 미래 교육이 나아갈 지점이기도 하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겠다. 지금의 이야기도 사실은 ‘나중의’이야기를 위한 포석이다. 이미 현재에 와 있는 미래의 단초를 당신이 캐치한 것 같다. 그러니 지금의 궁금증을 갖고 앞으로의 글도 읽어주길 바란다.

 

정광필
대안학교 이우학교를 설립했고, 지금은 ‘50+인생 학교’를 이끌고 있다. 그를 만나면 ‘호연지기’의 뜻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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