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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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로 읽는 청문회 화법:

“∼ 아시죠?” 질문에 “∼ 보았어요” 응답은 어떻게 가능할까?

나익주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

 

2017년이 시작되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텔레비전으로 중계되는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를 진실이 조금은 밝혀질까 기대하며 지켜보았다. 박근혜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계 인사와 단체를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기 위해 작성한 이른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존재와 작성 경위를 두고 국회의원들과 관련 증인들이 질의와 응답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약간의 고성과 감정 섞인 다음 질의응답이 특별히 나의 주의를 끌었다.

(1)
A: 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과) 관련된 4인방 김○덕, 김○률, 신○철, 정○주 구속영창 청구된 것 아시죠? 자꾸만 말꼬리 돌리지 말고 아시죠?
B: 제가 언론보도를…….
A: 그러니까 아시느냐구요?
B: 제가 언론보도를 보았습니다.

위의 대화에서 의원 A는 증인 B에게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했는지를 따지기 위해 동사 ‘알다’로 묻는데, 증인 B는 ‘알다’나 그 부정형인 ‘알지 못하다’나 반의어인 ‘모르다’를 사용하지 않고 동사 ‘보다’로 응답한다. 증인 B는 이 동사를 사용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한 주요 인사 4명의 구속영장 청구 사실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다”는 어감을 전달한다. 이들의 질의응답에서 나는 아무런 어색함도 느낄 수 없었고, 오히려 증인 B가 자신이 그 블랙리스트 작성과 전혀 관련성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거의 무의식적이지만 전략적으로 동사 ‘보다’를 사용하고 있다고 느꼈다.

다음 대화에서도 의원 A는 동사 ‘알다’와 반의적인 동사 ‘모르다’를 반어적으로 사용하여 증인 B에게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했음을 인정하라고 추궁하는 질문을 하지만, 증인 B는 “면밀히 살폈지만 본 적이 없다”는 의미로 동사 ‘보다’를 사용하여 누가 누구의 지시를 받아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는지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다는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또한 의원 A와 증인 B는 ‘보다’의 피동형으로 역시 시각적 활동을 지시하는 동사 ‘보이다’를 사용하여 “생각하다” “이해하다” “판단하다” 등의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2)
A: 조○선 장관은 혼자 몰랐다?…… 아니 어떻게 혼자 모르냐고요?
B: 그 관련된 사람들이 김○춘 실장님이 저한테 지시해서 제가 (문화예술계 블랙 리스트) 작성에 관여했다는 진술이 있습니까?
A: 있어요.
B: 어디 있습니까?
A: 아니 그런 진술이 어디 있습니까? 보도 보십시오, 보도. 최○ (보좌관) 보도 못보았어요?B: 의원님 제가 작성에 관여했었다는 보도는 제 문제기 때문에 면밀히 보았습니다.
A: 보세요. …… 제가 보도 이만큼 갖다 드릴게 보세요, 헛소리하지 말고.
B: 의원님, 제가 지금 헛소리하는 것으로 (보이세요?)
A: 보입니다. 헛소리하는 걸로 보여요.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보다’의 축자적인 의미는 신체적 활동, 즉 시각적 활동을 지시하고 ‘알다’의 축자적 의미는 인지적 작용을 지시한다. 그런데 어떻게 동사 ‘보다’를 동사 ‘알다’의 의미로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을까? 인지언어학자들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의 마음속에 ‘아는 것’이라는 지적 활동을 시각을 통해 은유적으로 개념화하는 방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아는 것은 보는 것] 은유는 [아이디어는 보이는 물건], [어떤 아이디어를 아는 것은 어떤 물건을 분명하게 보는 것], [아는 사람은 보는 사람], [마음속 이성은 빛], [지적 정확성은 시각적 예리함], [지식에의 장애물은 시각적 장애물] 등의 하위은유로 구성된다.

 

미디어에 편재하는 개념적 은유 [아는 것은 보는 것]의 사례들: 국정농단 보도의 경우

시각적 활동을 지시하는 ‘보다’로 판단이나 이해, 생각, 믿음과 같은 인지적 활동을 지시하는 사례는 미디어의 기사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을 다룬 보도 기사와 논평 기사에서 따온 다음 사례는 ‘보다’의 이러한 사용을 예시하는 수많은 사례의 극히 일부이다.

(3)
a.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하야를 서로 다르게 보는 우파와 좌파
b.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어떻게 하는 게 맞다고 보는가?
c. 특검팀은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김 전 실장의 지시로 청와대 정무수석실 산하 국민소통비서관실에서 작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d. 김 사무총장은 오늘 “자유한국당은 사실상 앞으로 극우보수, 수구보수라고 보아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유한국당은 어제 당명을 ‘새누리당’에서 ‘자유한국당’으로 개정한 바 있다.

동사 ‘보다’와 ‘보이다’만이 이러한 의미로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전망’ ‘불찰’ ‘밝히다’ ‘밝혀지다’ ‘규명’ ‘투명하다’ ‘불투명하다’ ‘분명하다’ ‘명백하다’ ‘명확하다’ 등 시각적 활동이나 시각과 관련된 상황을 지시하는 많은 다른 어구도 역시 앎이나 이해, 생각, 믿음, 판단과 같은 인지적 작용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된다. 시각 관련 낱말의 이러한 은유적인 의미 확대 현상은 다음 기사의 사례를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4)
a.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의결, 탄핵 심판 전망은?
b. 박한철 헌재소장과 이정미 재판관이 각각 내년 1월 31일과 3월 14일 임기를 마치게 돼 탄핵 결정 여부의 중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c. 조○선 장관은 사과문을 통해 “문체부가 전모를 밝히지 못하고 블랙리스트를 명확히 밝혀내지 못한 건 불찰“이라며 …… 사과했다

축자적으로 “넓고 먼 곳을 멀리 바라봄”이나 “멀리 내다보이는 경치”를 의미하는 ‘전망(展望)’이 (4a-b)에서는 탄핵 사건이 어떻게 결말이 날지를 미리 예측하는 심적 작용을 나타낸다. 또한 축자적으로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꿰뚫어 보지 못함”을 의미하는 ‘통찰(洞察)’이 (4c)에서는 “세심한 주의력을 집중하지 못해서 생긴 잘못된 판단”을 가리킨다.

(5)
a. 특검으로 최순실 국정 개입 전모를 밝혀야 한다.
b. 지난해 최순실 국정농단의 전모가 밝혀졌지만 주요 야당의 지도자들마저 남의 산에 불을 보듯 했다.
c.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

‘밝다’의 축자적 의미인 “불빛 따위가 환하다”는 분명히 시각과 관련이 있다. 축자적으로 “빛을 내는 물건에 불을 켜서 주위를 환하게 하다”를 뜻하는 ‘밝다’의 사동형인 ‘밝히다’도 역시 시각과 관련이 있으며, 물론 피동형인 ‘밝혀지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5a)에서는 ‘밝히다’가 “진리, 가치, 옳고 그름 따위를 판단하여 알리다”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5b)에서는 ‘밝혀지다’가 “알려지지 않은 사실, 내용, 생각 따위가 알려지게 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즉, ‘밝히다’와 ‘밝혀지다’가 축자적으로 시각을 지시하기보다 오히려 인식이나 인지, 판단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5c)에서 “어떤 사건이나 사태의 진상을 따져서 밝히는 일”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한자어 명사 ‘규명(糾明)’도 마찬가지다.

(6)
a. 바른정당은 만일 탄핵이 기각된다면…… 그리고 모든 논의 과정을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하자는 주의입니다.
b.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대국민담화로 탄핵 발의된 소추안 통과 여부가 불투명한 상태다. 더군다나 탄핵의 표결 결과는 공개되지 않는다.
c. 여전히 박근혜 대통령과 측근들이 각종 방해를 하고 있는 것 아니겠어요. …… 그 점에 대해선 헌법재판소도 분명한 판단을 하리라 생각합니다.
d. 김경진 “박근혜 대통령 뇌물죄 혐의 명백하다
e. 박근혜 탄핵 사유에 명확한 증거가 없다고 탄핵이 어렵다는데 이대로 기각되는 건가요?

‘투명하다’의 축자적 의미는 “물 따위가 속까지 환히 비치도록 맑다”이고, 반대로 ‘불투명하다’의 축자적 의미는 “물 따위가 맑지 못하고 흐릿하다”이다. 그리고 ‘분명하다’의 축자적 의미는 “모습이나 소리 따위가 흐릿함이 없이 똑똑하고 뚜렷하다”이고 ‘명백하다’의 축자적 의미는 “엉클어지거나 흐리지 않고 아주 분명하다”이며 ‘명확하다’의 축자적 의미는 “명백하고 뚜렷하다”이다. 축자적으로 ‘투명하다’ ‘불투명하다’ ‘분명하다’ ‘명백하다’ 등의 형용사는 시각과 관련이 있는 상태를 지시하는 것이 확실하지만, (6)의 사례에서 이러한 형용사는 탄핵 사건의 현재 상황이나 미래의 귀결에 대한 예측이나 판단, 인식을 지시한다.

위에서 살펴본 실례는 아무런 어려움 없이 자연스럽게 이해되기 때문에 아예 은유로 인정하지 않거나 기껏해야 예전에는 은유적이었으나 이제는 그 흔적조차 희미한 완전히 죽은 은유의 사례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은 오히려 아주 분명히 살아 있는 마음속의 은유적 체계를 반영한다. 달리 말하면, 이러한 표현은 우리가 앎, 사고, 예측, 인식, 판단 등의 지적 활동을 시각의 측면에서 개념화하는 방식―[아는 것은 보는 것] 은유―의 언어적 발현이다. 이러한 표현을 별다른 의식적인 노력을 들이지 않고 말하고 이해하는 것은 바로 은유가 시인들이나 능변가들이 사용하는 특별한 언어적 사용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장기기억 속에 이미 자리 잡은 사고 체계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낮에는 영어 교사, 밤에는 언어학자로 살아온 두 얼굴의 사나이. ‘동고송’의 전신인 '고전을 공부하는 교사모임'의 창립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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