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어터진 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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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퉁퉁 불어터진 ‘국수를 먹는다니요’?
: [경제는 사람] 은유

나익주 (한겨레말글연구소)

통일을 도박판의 판돈에 비유한 ‘통일은 대박’이라는 표현으로 국민들의 많은 관심(?)을 끌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경제’에 대해서도 상당히 창조적인 은유를 사용했다. 다음은 2015년 2월 23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경제에 대해 언급한 발언의 일부이다.

“우리 경제를 생각하면 저는 좀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여러 노력이 필요하지만 지난 번 부동산 3법도 작년에 어렵게 통과가 됐는데 비유를 하지만 퉁퉁 불어터진 국수입니다. 그걸 그냥 먹고도 우리 경제힘을 내어가지고 꿈틀꿈틀 움직이면서 활성화 되고 집거래도 많이 늘어나고 했거든요. 그러면 불어터지지 않고 좋은 상태에서 먹었다면 얼마나 힘이 났겠습니까?”

이 인용문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적시에 통과되지 않은 부동산 관련 법률을 ‘퉁퉁 불어터진 국수’라는 불량 음식이라 묘사하여 2015년 당시의 한국 경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표현했다. “인간의 생활에 필요한 재화나 용역을 생산하여 분배하고 소비하는 모든 활동이나 이러한 활동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사회적 관계”를 지시하는 추상적 개념인 경제에 대해 서술하기 위해 ‘불쌍하다’, ‘불어터진 국수를 먹다’, ‘힘을 내다’ 등의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원래 사람을 서술하는 이러한 표현이 경제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경제를 은유적으로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렇게 창조적인 은유적 서술이 [경제는 사람] 은유에서 나온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을까? 그 순간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더라면 아마 의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그녀의 인식에 결코 동의하지 않았지만, 이 발언을 이해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이것은 바로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이 은유가 인지적으로 거의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태동’하고 ‘걸음마’하고 무럭무럭 ‘성장’하는 경제

경제에 관해 묘사하는 신문 기사이든 전문 학자들의 담론이든 비전문가들의 대화이든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살펴보면 얼마나 [경제는 사람] 은유에 나오는 헤아릴 수 없는 표현을 접할 수 있다. 글자 그대로 “어머니 뱃속에서 태아가 행하는 움직임”을 뜻하는 낱말 ‘태동(胎動)’이 어떤 경제의 출현을 지칭하고 있는 다음과 같은 표현이 바로 개념적 은유 [경제는 사람]에서 나온다.

  • 석기, 청동기, 철기 등 큰 획을 그은 고대, 중세에 이어 화폐경제의 태동과 맞물려 국가 간 무역과 실크로드를 통한 대륙 간 물물교역이 왕성하게 되면서
  • 중세 이후 중앙은행 제도의 기원이 된 이탈리아 리알토 은행이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은행도 근대 시장경제의 태동 과정에서 지급결제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설립되었고
  • 인간 욕망의 꽃, 자본주의 경제의 태동, 교실 밖 펄떡이는 경제 이야기

물론 위와 같은 표현에서 ‘태동’은 한국인들의 머릿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관습화된 글자 그대로의 의미인 “어떤 일이 생기려는 기운이 싹틈”을 전달할 뿐 은유와 전혀 관계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이렇게 주장하면, ‘경제의 태동’, ‘경제의 성장’, ‘경제의 대동맥’, ‘경제의 순환’, ‘경제의 걸음마 단계’ 등의 표현이 어떤 식으로 서로 의미적으로 연결되는지를 포착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들이 바로 [경제는 사람]이라는 개념적 은유의 언어적 발현이라는 점을 인정하면 이들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먼저 한국인들이 어떤 국가의 경제가 발전하기 시작하는 초기 단계를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보여주는 은유적 표현을 살펴보자. 축자적으로 ‘걸음마’는 생후 몇 개월이 지난 어린아이가 걷는 능력을 습득하기 위해 외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일어서서 두 다리를 번갈아 떼며 옮기는 동작을 지칭하는 낱말이다. 그런데 다음 표현에서는 완전히 미개발 상태의 북한 경제가 이제 막 발전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묘사하기 위해 이 낱말을 사용하고 있다. 이 사실은 바로 한국인들이 경제를 사람에 비추어서 은유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러한 표현도 역시 [경제는 사람] 은유에서 나오는 언어적 사례이다.

  • 그래도 로켓 발사를 강행한다면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려는 북한 경제는 다시 주저앉고 주민들은 또 다시 시련의 시기를 맞을지 모릅니다. 선택은 김정은의 몫입니다.
  • 북한 시장 경제 걸음마 단계로 이익금 분배 체제로: 북한이 시장경제 체제에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음이 확인됐습니다.

‘걸음마’를 뗀 어린아이는 약 20세 전후까지 점점 더 힘이 세지고 몸무게와 키가 계속 늘어나고 정신적으로도 점점 더 강인하게 되어 사회적으로 자립할 역량을 지니게 된다. 간단히 말하면, 인간은 유아기에서 청년기까지 이어지는 성장의 과정을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성숙한 단계에 이른다. 글자 그대로 이러한 과정을 지칭하는 낱말이 바로 ‘성장’이다. 그런데 이 낱말이 ‘경제’와 결합한 어구인 ‘경제 성장’은 국가 경제의 규모가 점점 커지는 과정, 즉 국민 소득이나 국민 총생산과 같은 국민 경제의 지표가 점점 높아지고 국민 경제의 역량이 커지는 과정을 가리킨다. 다음 표현에서 보듯이, 인간의 성장 과정과 그 양상을 묘사하는 낱말들인 동사 ‘자라다’나 동사 ‘성숙하다’, 명사 ‘성숙’, 부사 ‘무럭무럭’도 역시 낱말 ‘경제’와 결합해 경제 규모의 확대 과정을 묘사하는 데 사용된다. 글자 그대로의 의미로 ‘인간’에 대해 서술하는 이러한 낱말이 경제 규모의 확대 과정을 서술하는 데 사용된다는 이 사실 자체가 바로 한국인들의 머릿속에 [경제는 사람] 은유가 들어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 연대와 네트워크로 사회적 경제 무럭무럭 (성장)
  • 자본주의 경제의 성숙에 따라 고도의 금융 산업이 발달하였다.
  • 주가의 진정한 상승은 그 나라 제가 무럭무럭 자랄 때가 아닌, 그 나라 경제가 성숙해 가는 것과 직결되어 있다고

인간의 몸이 성장하려면 우선 체형(體型)을 이루고 몸을 지탱하는 골격이나 뼈대가 튼튼하게 자리를 잡아야 하는 것처럼, 한 나라의 경제가 제대로 성장하려면 도로, 철도, 항만, 공항, 통신, 학교, 병원, 산업단지 등 기반 시설과 금융, 법원, 행정 등의 제도, 그리고 가계나 기업 활동과 같은 내부 요소를 먼저 탄탄하게 갖추어야 한다. 경제 성장을 위한 이러한 기반 시설과 제도, 내부 요소가 은유적으로 인체의 골격이나 뼈대에 해당한다는 것은 실제로 다음과 같은 한국어 표현에 반영되어 있다.

  • 건설업계를 포함해 학계와 정치권에서는 경제의 골격이자 혈관인 도로, 철도, 공항 등 SOC 투자를 지속해야 한다는
  • 군현제는 시대에 따라 다소 변형되기는 했으나 중국뿐만 아니라 한반도에 영향을 미쳐, 조선시대까지 2000년이 넘는 행정, 경제의 골격을 형성했다.
  • 대전산단 재생사업이 마무리되는 2020년까지 10개의 신규 산업단지를 조성해 대전 제의 골격을 키워나갈 계획
  • 시장 경제의 골격은 자유로운 기업 활동이다. 그러나 이대로 가면…… 서민 자영업자들은 사실상 대기업의 임금 노동자들로 전락할 것이다.
  • 생산 부진과 일자리 부족은 대증요법으로 해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 경제의 뼈대를 바꿔야 하는 구조적인 문제다.
  • 국가 경제의 뼈대인 가계를 튼튼히 해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겠다는 ‘지도에 없는 길’은 표류했다. 이제라도 대기업·수출 위주의 ‘성장 우선주의’에서 탈피해 대안을 찾아야 한다.

인간이 성장 과정에서 키가 크고 몸무게 늘어났다고 해서, 근력이나 지구력을 비롯한 체력이 강하지 않을 수도 있고 상체와 하체의 균형이나 몸의 좌우 균형, 키와 몸무게의 균형이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러한 불균형은 근본적으로 체질을 바꾸어 신속하게 고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것은 은유적으로 사람으로 간주되는 경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경제의 규모가 외형적으로는 거대해졌다고 해서 그 내부 구조도 반드시 튼튼한 것은 아니다. 한 나라의 경제에서 산업 간 비중이나 지역 간 비중이 어느 한쪽으로 너무 치우쳐질 수 있다. 이러한 불균형을 바로 잡지 않으면, 그 나라의 경제는 결국 심각한 내부 문제에 봉착하기 때문이다. 다음의 표현은 바로 이러한 은유적 이해에서 나오는 사례이다.

  • 우리 경제의 근본적인 체질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 1997년 환란 이후 한국 경제몸집만 볼 때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 이제는 우리 경제의 몸집이 많이 커졌다. 그런데 체력도 많이 떨어지고 몸의 균형도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 빨리 가려고 해도 쉽지 않게 되었다. 이제 우리 경제는 몸의 균형을 맞추고 체력도 키워야 한다.

 

‘경제’에도 ‘심장’과 ‘혈관’이 있는가?

만일 경제가 은유적으로 사람이라면, 경제에는 인간의 삶과 죽음을 판별하는 데 가장 결정적인 인체 기관인 심장에 대응하는 요소가 있는가? 물론 한국인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대개 그들은 포스코나 현대자동차와 같은 거대 기업을 사람으로 개념화되는 국가 경제의 심장으로 간주한다. 또한 화폐를 발행하고 환수하며 통화정책을 수립하는 한국은행도 경제의 심장을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때로는 중요한 산업단지나 금융기관이 밀집되어 있는 특정 지역을 경제라는 사람의 심장으로 인식한다. 한국인들의 이러한 인식은 다음과 같은 표현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 포스코와 현대자동차는 한국 경제의 심장이기에 우리 경제에 혈액을 공급해 주지 않으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올 수도
  • 지금 한국 경제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려면 과학기술과 노사관계에서 크나큰 혁신이 있어야…… 경영 불확실성은 개별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 기업은 자본주의 경제의 심장이며 원동력
  • 한국은행은…… 대내적으로는 각종 자금의 효율적인 배분으로 한국 경제의 심장으로서의 기능을 훌륭히 수행했다.
  • 세계 경제의 심장부라 불리는 뉴욕이 미국 내 50개 주 가운데 경제 전망 순위 꼴찌를 기록했다.

인간의 생명 유지에 절대적인 심장은 주기적으로 수축과 이완을 하며 혈관을 통해 혈액을 온몸으로 내보내고 받아들인다. 이러한 혈액순환 활동에 중요한 것은 온몸에 걸쳐 있는 혈관이다. 그래서 혈관이 제대로 뚫려 있다면 혈액순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만, 조금이라도 막혀 있다면 혈액순환에 문제가 발생한다. 더 나아가 혈관이 완전히 막혀버린다면 심장이 수축과 이완을 하나도 할 수 없게 되고 인간은 사망에 이른다. 인체의 그러한 중요한 장기를 묘사하는 낱말인 ‘동맥’과 ‘실핏줄’, ‘모세혈관’, ‘혈맥’이 경제의 내부 구조를 기술하기 위해 사용된다. 어떤 나라의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대규모 산업단지나 금융제도, 공항시설, 고속도로망, 고속철도망, 화폐유통은 은유적으로 인간의 혈관에서 동맥이나 혈맥에 해당한다.

  • 일본경제가 장기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중국의 경제 대동맥 지대에 홍수가 덮친다면 세계경제는 걷잡을 수 없는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란 전망
  • 경제의 대동맥인 금융 관련 정보들이 외환 금리 등 각종 시세표와 함께
  • 공항시설의 태부족으로 경제의 대동맥이 경화현상을 일으키는 심각한
  • 한국 경제의 대동맥인 경부고속도로 건설도
  • 모쪼록 고속철이 한국 경제의 대동맥으로서 제 몫을 충분히 해 줄 것을 기대한다.
  • 박근혜 대통령은 어김없이 ‘금융개혁’이란 단어를 꺼냈다. “경제 재도약을 위해 경제의 혈맥 역할을 하는 금융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 경제의 혈맥인 돈 흐름이 비정상

반면에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이나 전통시장, 구멍가게는 심장과 바로 연결된 동맥이 아니라 심장과의 거리가 더 멀리 떨어져 있는 인체 내의 가장 미세한 혈관으로 인식된다. 이러한 은유적 이해 방식은 다음과 같은 표현에 반영되어 있다.

  • 우리 경제의 모세혈관인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기능과 서민금융을 맡는 여신금융업이 국민과 동반성장 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규제개혁과 시장원리에 따른 정책을 추진해 달라
  • 한국 경제의 실핏줄 ‘골목상권’이 꽉 막혀 있다. 덩치가 큰 대기업들이 이 핏줄 사이에 둥지를 틀면서다. ‘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라는 백신을 서둘러 놨지만 자본의 탐욕은 더 거세졌다.
  • 국가 경제의 모세혈관이며 서민경제 주체인 전통시장이 하루아침에 생겨나지 않았듯이
  • 소상공인은 지역 경제의 모세혈관
  • 박 대통령은 “금융이 본연의 기능을 회복해서 경제의 실핏줄까지 신선한 혈액을 공급하고 원기를 불어넣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에 밀린 ‘경제 실핏줄’이 좀처럼 탈출구를 찾지 못하는 것

경제의 내부 구조를 서술하기 위해 사용되는 인체 관련 용어는 ‘심장’이나 ‘혈관’만이 아니다. 인체의 신경계를 묘사하는 낱말인 ‘중추(신경)’와 ‘말초신경’이나 인체의 틀을 유지하는 골격기관을 나타내는 낱말인 ‘골격’이나 ‘뼈대’, 외형을 묘사하는 낱말인 ‘몸집’, 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인체의 생리적 성질이나 건강상의 특질을 나타내는 낱말인 ‘체질’도 경제의 특성을 기술하는 데 사용된다. 먼저 중추신경과 말초신경으로 이루어진 인체의 신경계에 대응하는 경제의 요소는 무엇일까? 흔히 부동산업이나 건설업, 조선업과 같은 핵심적인 분야별 산업이나 주요 산업단지는 물론 사드 배치로 인해 중국이 한국에 부과한 경제적 보복과 같이 한 국가의 경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외적 영향이 인체의 중추(신경)에 비유된다. 반면에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비교적 작다고 평가를 받는 전통적인 시장이나 영세 중소기업은 흔히 인체의 말초 신경에 비유된다.

  • 대한민국 경제의 중추 산업이 될 때까지 부동산산업계 종사자들이 모두 힘을 모아 힘차게 전진해 나가자.
  • 건설 산업은 지역 경제의 중추 산업임에도 지난 10년간 도내 토목 부문 수주액은 연평균 1.6%에 불과해 전국 최하위
  • 국가 간 기업 간 글로벌 무한경쟁 시대에 우리 경제의 중추적 기능을 수행할 고부가가치 산업활동 공간
  • 제조업과 일자리창출의 근간인 산업단지는 우리 경제의 중추임에도 4차 산업혁명 대비와 제조업의 융복합 부가가치 활동이 미흡한 실정
  • 최근 우리나라 경제의 중추신경은 중국의 사드 보복이다. 거시경제, 미시경제 모든 영역의 촉각이 중국의 보복 수위에 쏠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시장, 중소서민, 바닥부터 돈이 돌도록 해야 한다. 경제의 말초신경인 ‘없는 자’들에게도 돈을 쉽게 융통할 수 있도록 금융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 대기업 부도사태와 금융시장 불안이 장기화하면서 경제의 말초신경격인 재래시장 사채시장까지 꽁꽁 얼어붙어

 

‘동맥경화’에도 걸리고 ‘노화’를 겪고 ‘수술’도 받는 ‘경제’

사람은 뼈대가 튼튼하게 자라고 이 뼈대에 살이 어느 정도 붙어야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하지만 신장에 비해 살이 너무 쪄서 비만하게 되면, 동맥의 벽이 두꺼워지고 굳어져서 탄력을 잃어 혈액이 원활하게 순환하지 않는 질환인 동맥경화가 발생할 수 있다. 이 동맥경화는 다시 치명적인 질병인 심근경색이나 뇌출혈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하게 치료하지 않으면 사람이 사망에 이르게 된다. 우선 동맥경화의 한 원인이 되는 비만을 해소하고 면역력을 강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체는 바이러스의 침입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비만 해소나 충분한 영향 섭취, 면역력 강화로도 회복되지 않는 중병에 걸린 환자는 수술을 받아야 하고, 수술 중 피가 부족한 경우에는 긴급 수혈을 받게 된다. 그런데 인간의 건강이나 질병, 치유 과정을 묘사하기 사용되는 어구인 ‘동맥 경화’ ‘중병’ ‘바이러스’ ‘치유’ ‘회복’ ‘수술’ ‘수혈’ 등은 돈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는 경제 상태나 탄탄하지 않은 경제 구조, 침체 상태에 빠진 경제 상황을 묘사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아래의 표현 참조). 이것은 한국인들이 경제를 사람의 관점에서 은유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 동맥 경화에 걸린 경제, 살부터 빼야: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필요한 때
  •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 수출부진 등 4대 중병에 걸린 인도 경제
  •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중병에 걸린 미국 경제를 치유하기 위해 처방한 링거 투여량을 줄일지 여부가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 중병에 걸린 경제를 회복시키고
  • 불공정한 저성장, 깊어지는 사회 양극화, 국민행복 추락, 3가지 바이러스가 한국 경제를 병들게 하고 있다는 것
  • 한국 경제는 모든 수술을 다 해보아도 방법이 없어
  • 한국 경제가 강력한 구조조정을 전제로 IMF로부터 긴급 수혈을 받기로 했다.
  • 그러기 위해서는 경제의 환부를 도려내기 위해 우리 스스로 그보다 훨씬 강도 높은 구조조정 계획을 세우고 실천해
  • 현재 세계 경제는 튜브 끼고 겨우 버티는 형국

인간은 스무 살 안팎까지는 신체적으로 성장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자연스럽게 노화 과정에 들어간다. 이 노화 과정은 섭생 방식, 생활 습관, 운동량, 흡연·음주 여부 등에 따라 사람에 따라 진행 속도가 빠를 수도 있고 느릴 수도 있다. 은유적으로 사람으로 간주되는 경제도 이와 유사한 과정을 거칠 수 있다. 한 국가의 경제는 한없이 성장할 수 있는가? 아니다. 이미 어느 정도 성장한 경제는 그 이전의 높은 성장률을 유지하기 힘들며, 오히려 규모가 줄어들고 침체 상태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정책 결정자들이 어떤 정책을 펼치는가, 사회에 경제 활동의 기반 시설이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는가, 산업의 내부 구조가 어느 정도 균형이 잡혀 있는가 등에 따라 경제의 침체 상태는 가속화할 수도 있고, 예방할 수도 있다. ‘경제 성장’이라는 어구와 마찬가지로 ‘경제(의) 노화’라는 어구도 역시 경제를 사람으로 이해하는 한국인들의 은유적 사고를 예증하며, 경제의 지속적인 침체는 은유적으로 인간의 노화 과정에 해당한다.

  • 정년 연장, 여성 참여 경제 노화 막는 1차 저지선
  • 결국 공정거래제도는 시장의 경쟁 기능을 활성화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감시함으로써 고도화된 자본주의 경제의 노화 현상을 방지하고 경제의 민주화를 이룩하는 데 그 본질이 있다.

 

한국 경제를 살리겠다면서 서로 다른 목소리: 어디 살을 빼자는 것인지?

‘동맥경화에 걸린 경제, 살부터 빼야: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필요한 때’라는 기사 제목에서 보듯이, 경제의 ‘침체 상태’는 인체의 ‘동맥경화’에 대응하며 경제 규모가 필요 이상으로 거대한 상태는 인체가 불균형적으로 살이 찐 상태에 대응한다. 동맥경화를 치료하기 위해 비만을 해소해야 하듯이, 침체 상태에 빠진 경제도 회복하기 위해서는 그 규모를 줄이는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은유적으로 말하자면, 경제라는 사람도 ‘살을 빼야’ 한다. 빼야할 ‘살’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정반대의 목소리가 있다. 한편에서는 이 ‘살’을 기업의 경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정리 해고’를 해야 할 노동자들이라고 말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영세자영자들의 골목상권마저도 다 빨아들이는 대기업의 문어발이라고 말한다. ‘규제’에 대해서도 정반대의 목소리가 대립한다. 한편에서는 ‘규제’를 꼭 필요한 정리 해고를 가로 막아 경제를 죽이는 암 덩어리라고 말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약탈적인 신자유주의 시장에서 포식자들의 탐욕과 횡포로부터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보호해 주는 최소한의 장치라고 말한다.

지난 10년간 둘 중의 어떤 목소리가 우리를 지배해 왔던가. 규제를 과감히 철폐해 정리 해고를 쉽게 해 경제를 살리겠다는 외침을 들어왔지만, 우리의 삶은 점점 더 팍팍해지지 않았든가.

󰡔말과 글󰡕 2017년 겨울호.

 

나익주
낮에는 영어 교사, 밤에는 언어학자로 살아온 두 얼굴의 사나이. ‘동고송’의 전신인 '고전을 공부하는 교사모임'의 창립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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