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은유

0
19
This post is last updated 159 days ago.

‘벌레’ 은유의 만연에서 드러나는 우리들의 인식

나익주 (전남대학교 영미문화연구소)

“저 식충食蟲이 자식, 밥도 주지 마라!”

 

어린 시절 보리베기나 모내기, 가을걷이를 하는 날에 농사일을 거들기 싫어 아침 일찍 나갔다가 해가 넘어간 뒤에 집에 돌아오곤 했던 나를 꾸짖기 위해 할아버지가 어머니를 향해 하신 말씀이다. 이 말씀은 나의 게으름에서 비롯된 꾸짖음이고 손자에 대한 분노와 염려, 기대를 담고 있었을 것이다. 손자를 꼭 벌레에 비유해야 했을까? 수십 년이 지난 지금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것을 보면, 이 ‘벌레’ 은유의 힘은 정말 강력하다.

 

차별과 혐오, 배제를 정당화하는 ‘벌레’ 은유

‘충蟲’은 “벌레”를 뜻하는 한자어이고 ‘벌레’는 “곤충을 비롯하여 기생충과 같은 하등 동물”을 통틀어 가리키는 낱말이다. ‘벌레’는 ‘일 벌레’ ‘책벌레’ ‘공부벌레’ ‘연습벌레’ 등의 표현에서 보듯이 그 의미가 은유적으로 확대되어 ‘어떤 일에 열중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데에도 사용된다. 이러한 표현에서 ‘벌레’는 부정적인 어감이 아니라 오히려 긍정적인 어감을 준다. 하지만 요즈음 미디어에서 심심치 않게 접한 “벌레”를 의미하는 ‘충’을 포함한 합성어(예: 맘충, 수시충, 지균충)는 사람을 혐오하고 차별하고 배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수능점수가 낮은 명문대입학생은 벌레]
  • 몇 년 전부터 대학생들 사이에서 떠도는 말인 수시충, 기균충, 지균충
  • 분교충’들 마음에 안 드는 게, 자꾸 기어오른다는 거다.

‘수시충’과 ‘기균충’ ‘지균충’은 두 번의 환유와 한 번의 은유를 통해 그 의미를 전달한다. ‘수시’와 ‘기균’ ‘지균’은 대학입학시험의 부류인 ‘수시전형’과 ‘기회균등선발전형’ ‘지역균형선발전형’의 약어로서 언어 내부에서 작용하는 ‘부분으로 전체를 대신함’ 환유의 일종이다. 이 약어는 다시 환유적으로 이 전형방식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 즉 이 전형방식을 통해 이른바 명문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을 가리킨다. 그 다음에 이 표현을 사용하는 화자들은 수학능력시험 점수가 자신들보다 낮은 학생들을 벌레라고 묘사한다. 이것은 사람을 벌레를 통해 이해하는 개념적 은유의 사례이다. ‘분교충’의 경우에도, 의미의 전달은 환유적으로 ‘대학의 분교에 다니는 학생’을 가리키는 환유와 사람을 벌레로 이해하는 은유를 통해 이루어진다.

[비상식적인 사람은 벌레]
  • 맘충, 맘충 하기에 남의 일인 줄로만 알았더니 제 여동생이 그러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이씨는 몇 달 전 가족모임에서 황당한 일을 경험했다.
  • 한남충’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았는가?
  • 성적 소수자들에 대해 비난하는 대표적인 단어는 ‘똥꼬충’이다.

‘맘충’은 어린 아이를 둔 엄마를 지칭하는 외래어 ‘맘mom’과 벌레를 뜻하는 ‘충蟲’을 결합한 합성어로서, 식당이나 버스, 극장과 같은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떠들거나 뛰어다니며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어린 자녀를 나무라고 제지하기는커녕 오히려 적반하장의 행동을 하는 일부 엄마를 지칭한다. ‘한남충’은 ‘한국 남자’의 약어인 ‘한남’과 벌레를 뜻하는 ‘충蟲’의 합성어로, 여성을 비하하거나 혐오하는 발언이나 행동을 하는 남자들을 가리킨다. 이러한 엄마나 남자들이 지닌 특성은 사회의 통상적인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으로 주변에 해악을 끼친다는 점이다. “항문”을 귀엽게 표현한 낱말인 ‘똥꼬’에 ‘충’을 덧붙인 합성어 ‘똥꼬충’은 사회적 약자인 남성 동성애자들이 윤리에 어긋나는 죄악을 저지르는 비정상적인 행악자이며 따라서 배제당하고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함축을 전달한다.

[논쟁의 상대자는 벌레], [특정 이념의 지지자는 벌레]
  • 여성주의 사이트 ‘메갈리아’ 이용자를 일컫는 ‘메갈충이나 극우성향 인터넷 사이트 ‘일간베스트’ 회원인 일베 회원들에 대한 비하를 담아 쓰이는 ‘일베충’ 같은 사회충도 있다.
  • 2017년부터 폐지되는 사법시험을 놓고 사시 존치를 주장하는 측과 폐지를 주장하는 측이 상대방을 향해 사시충’이니 ‘로퀴벌레’니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비속어를 사용하며 서로를 비방하고 있다
  • 한 팝 칼럼니스트가 여성 잡지에 ‘IS보다 페미니즘이 위험하다’는 궤변을 펼쳤다. …… ‘페미충’(페미니스트와 벌레를 결합한 말), ‘꼴페미’(꼴통 페미니스트) 등 여성 비하 단어가 등장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 상류층이 EU 싫어하면 ‘Eurosceptic(유럽 연합 통합에 회의적인)’이라고 고상한 이름 붙여주고, 노동자 계급이 싫다면 ‘무식하고 인종차별주의자에 아마도 실업자, 정부 등골 빼먹는 복지충’이라 ……
  • 증세충—세금 안내는 백수나 학생 ……

‘메갈’은 여성혐오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진 네티즌들이 여성혐오 프레임을 그대로 남성에게 거꾸로 적용하는 ‘되비추기mirroring’를 운동 전략으로 삼아 여성주의를 옹호하는 웹사이트 ‘메갈리아’의 약어이다. ‘일베’는 민주화 운동을 폄하하고 지역감정을 유발하며 여성을 혐오하는 글로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는 극우적인 정치성향의 웹사이트인 ‘일간베스트 저장소’의 약어이다. 각 웹사이트의 사용자들은 자신의 견해가 타당하고 상대방의 견해가 옳지 않다고 주장을 펼치기 위해 상대방을 열등한 생명체인 벌레로 규정한다. 이것은 사법시험의 존치 대 폐지를 주장하는 논쟁에서도 상대방은 각각 ‘사법시험을 지지하는 벌레’(사시충)와 ‘로스쿨을 지지하는 바퀴벌레’(로퀴벌레)가 된다. 논쟁에서만 사람을 벌레로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일상의 대화에도 우리는 다른 이념의 소유자를 벌레로 간주하여, 페미니즘을 주창하거나 지지하는 사람을 ‘페미충’으로 부르고, 세금 인상과 복지 확대를 주창하는 진보주의자들을 ‘증세충’이나 ‘복지충’이라 비난한다.

비상식적인 사람들이나, 논쟁 상대자, 경쟁자, 특정 이념의 지지자를 벌레로 간주하는 은유적 표현들 이외에도, 미디어에는 특정 계층이나 집단을 벌레로 간주하는 은유도 등장한다. ‘노인충’은 노동을 하지 않으면서 무임승차나 노령수당과 같은 경로우대 혜택을 받는다는 이유로 노인들을 벌레로 간주하는 은유의 사례이다. 마찬가지로 ‘급식충’도 학교에서 제공하는 점심이나 저녁을 무상으로 또는 저렴한 비용으로 먹는다는 이유로 중학생과 고등학생을 벌레로 간주하는 은유적 표현이다. ‘이백충’은 한 달 소득이 200만원에 못 미치는 가난한 사람들을 벌레로 간주하는 표현이다. ‘유족층’은 ‘세월호 참사’의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들을 폄하하는 합성어로서, 그들이 자식들의 죽음을 돈벌이에 이용하는 아주 나쁜 사람들이라는 인상을 전달한다.

[노인은 벌레], [저임금 노동자는 벌레]
  • 어버이란 이름으로 권위를 지키려 애썼지만, 이미 ‘꼰대’로 전락한지 오래. 현실은 ‘노인충老人蟲’ …… “경로 무임승차를 없애라” …… 세금을 축내는 존재로 비하되기도 하죠.
  • 수입 200만 원 이하면 ‘이백충’이다.
  • 최근 특정집단을 싸잡아 비난하는 혐오 표현들이 급증하고 있다. …… 중고등학생들에게는 ‘급식충‘, 할아버지에게는 ‘노인충’이라는 식이다.
  • 세월호 유가족들을 ‘유족충’의 비하어로 공공연하게 지칭하고 있다.

 

[X는 벌레] 은유: 왜 위험한가?

은유는 단지 언어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인지과정과 개념 차원의 문제로서, 우리의 행동 방식을 제약한다. 따라서 ‘벌레’ 프레임에 근거한 [특정한 (집단)의 사람은 벌레]라는 개념적 은유도 당연히 사람의 어떤 측면은 부각하고 다른 어떤 측면은 감추는 방식으로 우리의 사고를 반영하고 제약한다.

그러면 ‘벌레’ 프레임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주변의 사물들을 범주화하면서 살아가는 우리 인간은 어떤 사물을 ‘벌레’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할까? ‘벌레’에 대해 복잡하고 정교한 정의를 내리는 전문가들(예: 곤충학자나 박물학자)과 달리, 세속의 범인인 우리들은 낮잠을 방해하는 파리나 여름이면 우리를 괴롭히는 모기, 방바닥을 기는 바퀴벌레, 속옷 속에서 간지럽게 하는 벼룩이나 이 등을 떠올릴 것이다. 그래서 ‘벌레’라는 낱말을 들으면, 우리의 머릿속에서 모기, 파리, 바퀴벌레, 벼룩, 이 등의 모습과 함께, ‘해를 끼침’ ‘전염병을 일으킴’ ‘짜증나게 하니까 싫음’ ‘살충제를 뿌려 죽임’ ‘파리채로 죽임’ ‘밟아 죽임’ 등의 영상이 떠오른다. 이러한 영상들이 바로 ’벌레‘ 프레임을 구성한다.

벌레에 대해, 우리는 짜증나게 하니 피해야 하고 해를 끼치면 죽여도 좋다고 생각한다. ‘벌레’ 프레임의 이 측면이 부각될 때, ‘벌레’ 은유는 특정한 사람(의 집단)에 대한 혐오와 배제를 정당화한다. ‘지균충’ ‘수시충’ ‘분교충’ ‘맘충’ ‘사시충’ 등의 표현을 빈번하게 사용할수록 ‘벌레’ 프레임은 우리의 마음(뇌)에서 그만큼 더 활성화되고 강화된다. 반면에 혐오의 대상인 사람들도 역시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공동체를 함께 가꾸어 나가야 할 동료 구성원이라는 사실은 배경으로 밀려난다. 이것이 바로 개념적 은유 [X는 벌레]의 언어적 발현 사례인 합성어 ‘-충’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아야 할 이유이다. 수능점수가 낮은 사람이든 비상식적인 사람이든 논쟁 상대자이든 특정 이념의 소유자이든, 어떤 부류의 사람이든 ‘벌레’로 보아서는 안 된다.

사회적으로 해악을 끼치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는 데 ‘벌레’ 은유만큼 강력한 장치는 없다. 하지만 이 은유의 사용은 최대한 절제해야 한다. 단지 경쟁자라는 이유로, 다른 특성을 지녔다는 이유로, 다른 세대라는 이유로, 사람들을 벌레로 간주하는 은유는 더 이상 사용해서는 안 된다. ‘-충’ 표현을 지속적이고 무분별하게 사용한다면, 우리는 다른 집단의 사람들을 혐오하고 배제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죽이는 데까지 나아갈 수도 있다. 이 ‘벌레’ 은유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음은 미국이 벌인 이라크 전쟁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이라크 전쟁 시기에 미국의 언론은 이라크 병사를 바퀴벌레나 뱀으로 묘사하는 기사나 풍자만화―[이라크 병사는 벌레] 은유의 언어적인 사례와 비언어적 사례인―를 자주 실었다. 이 은유적 사고 덕택에 미국인 병사들은 이라크 병사를 죽이는 것으로 인한 죄책감을 줄이고 인간으로서 아무런 가책이나 고통 없이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에서 이라크 병사들의 얼굴에 오줌을 누고 그들의 목에 개줄을 달고 잡아당기는 고문을 자행할 수 있었다.

아무런 원한 없이 단지 혐오한다는 이유만으로 여성을 무참히 죽인 강남역 화장실 사건이나 구의역에서 노예처럼 일하다가 희생당한 가난한 청년의 죽음을 애도하기보다 그의 가난을 조롱하는 일부 네티즌들의 행태는 한국에서 보게 된 이 ‘벌레’ 은유의 비언어적 발현―즉 (행동으로 드러난) 살인과 조롱―이 아닐까?

왜 이렇게 공격적인 ‘벌레’ 은유가 난무할까? 모든 사람들을 잠재적인 경쟁자로 간주해야 하는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의 마음(뇌)에 [경쟁자는 적] 은유와 [적은 벌레] 은유가 너무 깊숙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말과 글󰡕 2016년 가을호. pp.76-80.

 

나익주
낮에는 영어 교사, 밤에는 언어학자로 살아온 두 얼굴의 사나이. ‘동고송’의 전신인 '고전을 공부하는 교사모임'의 창립자이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