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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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만물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아는가

서경덕 『화담집(花潭集)』

벼슬을 하지 않는 이유

황진이는 비록 기생이었지만 성품이 고결하여 화려한 것을 싫어하였다. 그리하여 비록 관가에서 주연(酒宴)이 있다 해도 빗질과 세수만 하고 나갈 뿐, 화장을 하거나 옷을 꾸며 입지 않았다. 또 방탕한 것을 싫어하여 시정잡배 같은 자들은 천금을 준다 해도 돌아보지 않았다. 선비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을 즐겼고, 글을 좋아하여 당시(唐詩)를 읊었다. 일찍이 서경덕의 학문을 흠모하여 그 문하에 들어가 함께 담소를 나누었다.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한음 이덕형이 지은 『송도기이』에 실려 있는 이야기이다. 서경덕은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있으면 출신을 따지지 않고 가르쳤다. 황진이는 서경덕을 찾아가 제자가 되어 배웠다. 어느 날 황진이가 서경덕에게 “송도에 삼절이 있습니다.” 하고 말했다. 서경덕이 “삼절은 무엇이냐?” 하고 묻자, 황진이가 “박연폭포와 선생님과 저입니다.” 하고 답했다. 이에 서경덕이 크게 웃었다.

서경덕(徐敬德, 1489년 – 1546년)은 조선 11대 임금 중종 때 사람이다. 서경덕은 여러 차례의 벼슬 요청을 거절하고 조용한 시골에서 학문에만 전념하며 살았다. 후배 학자인 홍인우(洪仁祐)가 그 이유를 물었다. 서경덕이 대답했다. “선비가 벼슬을 하거나 은둔하는 이유는 한 가지가 아니다. 자신이 가진 도(道)를 행할 준비가 되었지만 시대가 맞지 않아 그 도를 숨기고 사는 데 불평이 없는 사람이 있다. 세상이 새로워질 수 있는 상황이 되었지만, 자신이 가진 덕(德)이 새롭지 못하여 분수를 헤아려 자숙하는 사람도 있다. 훌륭한 임금이 있어 자기가 배운 바를 시험할 만하지만 산림에 묻혀 구속 없이 사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덕을 아직 다 성취되지 못하였지만 백성들이 잘못 되는걸 앉아서 볼 수 없어서 부득이 세상에 나와 일을 하는 사람도 있다.” 홍인우가 서경덕 본인은 어떤 경우에 해당하느냐고 묻자 서경덕은 말없이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화담집』은 서경덕이 죽은 후인 1605년(선조 38년)에 제자들이 서경덕의 시와 논문을 모아 편찬한 책이다.

천기(天機)를 알다

이이(李珥)는 서경덕과 이황을 비교하며, 서경덕은 스스로 깨우친 사람이고 이황은 옛 학자의 글을 연구하여 깨우친 사람이라고 했다. 훗날 서경덕은 『대학(大學)』에 대해 묻는 제자에게, “글자로 쓰여 진 내용은 옛 사람들의 생각의 찌꺼기에 불과하니, 진짜로 중요한 일은 스스로 알아내는 일이다.”고 하였다. 서경덕이 독학을 한 건 집안이 가난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14살 때 선생을 모셔서 공부를 한 적이 있었는데, 어느 날 선생에게 의문 나는 것을 물었지만 선생은 대답하지 못했다. 결국 서경덕은 보름동안 스스로 생각하여 의문을 해결해야 했다. 그 이후로 그는 스승을 두지 않고 스스로 터득해 가는 공부를 하였다.

서경덕은 매우 총명한 사람이었다. 스스로 “20살이 되면서부터 한 번 저지른 실수를 두 번 저지르지 않았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의 공부 방법은 한마디로 무식(?)하였다. 18살 때, 『대학』을 읽다가 ‘사물을 연구하여 앎에 이른다는 뜻의 격물치지(格物致知)’의 대목에 이르러 학문의 방법을 크게 깨달았다. 서경덕은 격물치지의 방법을 실천하였다. 알고 싶은 사물이 있으면, 그 이름을 적어 방 벽에 붙여놓고 사색과 관찰을 하였다. 그 사물을 알 수 있을 때까지 몇날 며칠이고 식음을 전폐한 채 연구를 하였다. 서경덕은 끊임없이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에 대해 연구와 관찰을 하였다. “주변에서 원리를 만날 수 있는데 사람들은 원리가 있는 곳을 찾고자 한다.”고 했다. 서경덕은 자신의 학문이 “모두 고심하며 전력을 다해 얻어낸 것”이라 했다. 그만큼 스스로 터득하여 진리에 이르는 길은 험난한 것이었다. 훗날 서경덕은 “나는 스승을 얻지 못해 공부하는데 지극한 어려움 겪었다. 후인들은 나의 말을 따르면 공부하기가 나처럼 힘들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서경덕은 20세를 전후 한 3년 동안의 공부를 통해 ‘천기(天機)’ 즉 근본적인 진리를 알아냈다고 했다. 서경덕은 자신이 쓴 논문에 붙여 이렇게 말했다. “이 논문들은 여러 성인들이 다 전하지 않은 경지까지 이해한 것을 담고 있다. 중간에 잃어버리지 않고 후세 학자들에게 전해주고 온 세상에 두루 알리면, 먼 곳이든 가까운 곳에서든 우리나라에 학자가 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세상은 스스로 움직인다

서경덕은 우주만물의 근원에 대해 이렇게 썼다. “태허(太虛)는 맑고 맑으며 형체가 없다. 그것을 가리켜 선천(先天)이라 한다. 그 크기는 끝이 없고, 그것 이전에 시작은 없으며,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다. 그 맑고 맑으며 텅 비어 고요한 것이 기(氣)의 근원이다.” 태허는 선천이라 했다. 선천은 우주만물이 탄생하기 이전 시기를 말한다.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생겨나기 이전의 상태가 태허이고, 그 태허가 곧 기라고 했다. 그러므로 기 이외의 다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관점은 주희에서 시작된 전통적 성리학과 다르다. 주희 역시 우주만물은 기로 이루어져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기(氣)와 전혀 다른 이(理)가 존재함을 말한다. 더욱이 그 이가 기를 낳는다고 했다. 그러므로 전통적 성리학의 입장에서 볼 때 우주만물의 근원은 이(理)이다. 이에 대해 서경덕은 비판한다. “기(氣) 바깥에 이(理)가 없다. 이는 기의 주재(主宰)이다. 주재는 바깥에서 와서 하는 게 아니다. 주재한다 함은 기가 작용하는데 저절로 그렇게 될 수 있게 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기보다 앞설 수 없다.” 이(理)는 기와 별도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기가 운동하는 원리 또는 법칙일 뿐이다. 어찌 사물의 운동법칙이 사물보다 먼저 존재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 우주만물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서경덕은 기(氣)가 문득 도약하고 문득 열린다고 말한다. 누가 시켜서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한다. 기가 스스로 운동하여 우주만물이 생겨났다. 그 과정을 서경덕은 이렇게 썼다. “하나의 기가 나뉘어 음기와 양기가 된다. 양기가 진동하여 하늘이 되고 음기가 모여서 땅이 된다. 양기가 진동하면서 그 정수(精髓)가 해가 되고, 음기가 모이면서 그 정수가 달이 된다. 나머지 정수가 흩어져 별이 된다. 그런 작용이 땅에서 일어나면 불과 물이 된다. 그것을 가리켜 후천(後天)이라 한다.” 후천은 우주만물이 생겨난 이후의 시기를 말한다. 또한 서경덕은 생성(生成)과 극복(克服)의 관점에서 기의 운동을 설명하기도 하였다. “하나의 기(一氣)라 하였지만 하나(一)는 이미 둘(二)을 포함하고 있다. 커다란 하나(太一)라고 했지만 하나(一)는 둘(二)을 지니고 있다. 하나가 둘을 생성하지 않을 수 없다. 둘은 스스로 생성하고 극복한다. 생성이 극복이고, 극복이 생성이다. 기의 미세한 움직임에서부터 큰 진동에 이르기까지 생성과 극복이 그렇게 하게 한다.”

기가 스스로 운동하여 우주만물이 생겨났다. 기로 이루어진 현실세계의 바깥에 있는 힘은 필요하지 않다. 그것이 전통적 성리학의 이(理)이던 기독교의 하느님이던 서양철학자들이 주장하는 최초의 원인이던 현실세계 바깥에 있는 그 어떠한 것도 현실세계를 움직이는 힘이 되지 못한다. 현실세계는 오직 스스로 움직여 생겨나고 변화하고 발전한다.

부채를 부치면 바람이 생기는 이유

서경덕은 기의 운동으로 다양한 사물 현상을 설명한다. 부채를 부치면 바람이 생겨난다. 왜 그럴까? 서경덕의 설명을 들어보자. “부채를 부치면 바람이 생기니 바람은 어디로부터 나오는가. 만약 부채에서 나온다고 말하면 부채 속에 언제 바람이 있었는가. 만약 부채로부터 나오지 않는다고 말하면 그렇다면 바람은 어디서 나오는가. 부채에서 나온다고도 할 수 없고 부채에서 나오지 않는다고도 할 수 없다. 허공에서 나온다고 하면 부채가 없는데 어떻게 갑자기 허공이 바람을 생기게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부채는 바람을 쳐낼 수 있는 것이지 부채가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바람이란 기(氣)다. 기가 공간에 꽉 차 있음은 물이 골짜기에 가득 차 있는 것과 같다……부채를 휘두르면 부채가 기를 치게 되고 기가 움직임을 받아 물결치듯 바람이 되는 것이다.”

사람의 삶과 죽음에 대한 설명 역시 마찬가지이다. 서경덕은 어느 날 어떤 사람의 죽음에 대해 추모한 글 「만인(挽人)」을 썼다. “만물은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음기와 양기가 모이고 흩어지는 이치가 오묘하구나. 구름이 생겼다 없어졌다 하는 것을 깨우쳤는가, 깨우치지 못하였는가. 맑은 휴식 오는 것 보니 달이 차면 기우는 것이구나.” 사람의 삶과 죽음은 음기와 양기가 모였다 흩어지는 것일 뿐이다. “음기와 양기가 모이면 삶을 얻고, 그것이 흩어지면 죽음에 이른다.” 서경덕은 이런 이치를 사람들이 깨우쳤는지, 아직 깨우치지 못하였는지 묻는다.

서경덕이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에 대한 기록이 전해져 온다. 죽기 2년 전부터 큰 병을 앓았다. 그래서 자신의 죽음이 멀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 1546년 7월 7일에 병석에 누워 있던 서경덕은 제자들에게 목욕을 시켜달라고 하였다. 목욕을 하면서 한 제자가 물었다. “지금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서경덕이 답했다. “삶과 죽음의 이치를 오래 전에 알았으므로 생각이 편안하다.”

서경덕, 『화담집』 徐敬德, 『花潭集』

조선중기 기철학의 완성자인 서경덕의 성리학설과 시문을 그의 제자들이 편집한 책이다. 우리는 이 책에서 중국 성리학의 단순한 수용이 아닌 한국 성리학의 독자적인 이해 과정과 정치한 철학적 사유의 백미를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연과 인생을 관조하며 담담하게 살아가는 철학자의 삶의 모습도 아울러 볼 수 있다.(허남진)

홍승기
인민노련 홍보부를 담당하면서 6월 항쟁을 현장에서 이끈 숨은 일꾼. 술만 사 준다면 지옥에도 함께 들어갈 천진무구한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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