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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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성리학의 바이블

주희 『근사록近思錄』

위대함과 좋음은 무엇이 다를까

영화 ‘아마데우스’의 두 축을 이루는 인물은 살리에르와 모차르트다. 살리에르는 모차르트에 대한 시기에 몸부림친다. 자신도 좋은 작곡가였지만 살리에르는 모차르트의 위대함에 치를 떤다. 위대함과 좋음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 차이는 새로움과 기성에 있을지도 모른다. 기성의 체제 안에서 잘 만들어진, 잘 쓰인, 잘 다음어진 것들을 우리는 좋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시대를 집약하여 새로운 시대를 연 예술과 사상을 우리는 위대하다고 말한다. 위대함과 좋음의 차이는 새로운 시대를 여느냐 아니면 기성의 시대에 잘 맞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새로움도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전 시대는 현 시대를 예비하고 현 시대는 다가올 시대를 다시 예비한다. 새로워지는 것은 전과 달라진 것이다. 이전이 없다면 새로움도 없다. 문제는 그 이전의 과거라는 우물에서 새로움을 만들 그 무언가를 길러내느냐 마느냐다.

중국 송나라 때 유학자 주희(朱熹, 1130~1200)를 기점으로 유학은 신유학(新儒學)이라는 새로운 시대로 접어든다. 주희는 옛것을 집대성하여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유학의 경전을 ‘사서오경(四書五經)’이라고 한다. 오경은 『시경(詩經)』, 『서경(書經)』, 『역경(易經)』, 『예기(禮記)』, 『춘추(春秋)』를 말한다. 사서는 『논어(論語)』, 『대학(大學)』, 『중용(中庸)』, 『맹자(孟子)』를 말한다. 주희 이전까지 유학은 오경에 집중되어 있었다. 한나라 때에는 오경박사(五經博士)를 두어 유학을 보급했다. 주희는 사서를 확정하면서 새로운 유학을 열었다. 그 새로운 유학을 ‘신유학’이라고도 하고 ‘성리학’ 또는 ‘주자학’이라고도 한다.

『근사록(近思錄)』은 주희가 친구인 여조겸(呂祖謙)과 함께 앞선 학자들인 주돈이, 정호, 정이, 장재 등 네 학자의 글에서 학문과 일상생활에 필요한 부분을 뽑아서 편집한 책이다. ‘근사록’이라는 책의 이름은 『논어』의 「자장」 편에 나오는 “가까운 것부터 생각한다.(근사, 近思)”는 구절에서 따왔다. 이 책을 짓게 된 계기와 과정, 목적, 주된 내용 등에 대해 주희는 서문에서 밝혔다. “순희 을미년(1175년) 여름, 여조겸이 내가 있는 한천정사에서 열흘 동안 머물렀다. 우리는 함께 주돈이, 정호, 정이, 장재의 책을 읽고 그들의 학문이 넓고 크며 휑하고 두터워서 끝이 없음에 감탄하였다. 처음 배우는 사람들이 입문하는 방법을 모를까 걱정하여 도(道)의 근본을 익히고 일상생활에 알맞는 내용을 가려 함께 엮었다……학자들이 천도(天道)와 성품에서 실마리와 힘쓸 곳을 찾고, 자기의 처신과 남을 다스리는 방법을 구하고, 이단을 분별하고 성현을 본받는 일의 대략을 알 수 있도록 나타내었다. 그러므로 궁벽한 시골에서 사는 후학이 배움에 뜻이 있으나 지도할 좋은 선생이나 벗이 없는 사람은 진실로 이 책을 얻어 마음을 다해 공부하면 족히 배움의 길에 들어갈 것이라 여겨진다.”

한시도 현실세계를 떠날 수 없다

주희는 사서(四書)를 정했다. 왜 그랬을까? 이렇게 한데에는 남다른 뜻이 있었다. 한나라 시대에 중국에 들어온 불교는 당나라, 송나라를 거치면서 중국 전역에 넓게 퍼졌다. 또한 제자백가의 하나였던 도가는 위진 남북조 시대에 지식인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졌고, 송나라에 들어와서도 그 영향력은 결코 약해지지 않았다. 유학은 주로 정치적인 분야에 집중하여 철학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홀하였다. 그래서 많은 유학자들이 철학을 연구할 때에는 불교와 도가 사상을 참조했다. 따라서 당시 유학에는 불교와 도가의 영향이 컸다. 주희가 걱정한 게 바로 이 점이었다. 주희는 불교나 도가와 다른 유학의 정통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희는 ‘도통설(道統說)’을 내세웠다. 주희의 도통설에 따르면 유학은 공자에서 시작되어 자사, 맹자로 이어졌고, 송나라에 들어와서는 정호, 정이 형제로 계승되었다. 이런 도통의 흐름을 보여 주는 게 사서(四書)이다. 사서의 확정은 동시에 유학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주희는 방대한 철학체계인 성리학(性理學)을 완성했다. 성리학은 불교나 도가, 특히 불교의 영향으로부터 유학을 지켜내고자 한 노력이었다. 주희는 유학에 부족했던 철학을 발전시켰다. 송나라 이전의 유학은 학자들에게 매력이 없었다. 유학이 국가의 통치 이념이 되면서 입신출세를 위한 학문이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유학자들이 하는 일은 다른 사람이 해석해놓은 유학경전을 이해하고 암기하는 지루하고 따분한 것이었다. 따라서 인간의 삶과 죽음, 우주의 본질과 인간의 본성 등을 다루는 불교에 유학은 적수가 되지 못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불교에 심취하고 도가에 빠져들었다.

주희는 우주만물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그리고 우주만물의 근원은 무엇인지에 대해 다루었다. 이때 등장하는 개념이 ‘이(理)’와 ‘기(氣)’이다. 우주만물은 기(氣)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과 사회와 자연, 즉 우리가 사는 현실세계는 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면 기만 존재하는가? 주희는 기와는 다른 이도 역시 존재한다고 했다. 더욱이 이가 기를 낳는다고 하여 우주만물의 근원은 이라고 했다. 주희는 ‘이(理)’란 우주와 사회와 인간을 관통하는 근본이치라고 말한다. 사람의 순수한 마음과 도리, 사회와 자연의 이상적 질서가 이(理)이다. ‘이’가 ‘기’를 낳았다 함은 사람의 순수한 마음과 도리 그리고 사회의 이상적 질서가 현실세계를 변화시킬 것임을 말한다. 이것은 주희의 희망이자 이상이었다. 주희의 철학은 그 자신의 희망과 이상의 표현이었다.

그런데 주희 철학의 의의는 ‘이’를 내세운데 있지 않고 ‘기’의 중요성을 밝힌데 있다. 주희는 평생을 두고 겨루었던 불교와 도가에 맞서 현실세계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불교와 도가는 현실세계가 헛된 것, 허망한 것, 거짓된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속세를 떠나고 은둔하는 삶을 선택하였다. 주희는 불교와 도가의 현실인식에 반대한다. 현실세계는 기로 이루어져 있어 허망하거나 헛되지 않다. 더욱이 현실세계 안에는 이상적 질서인 ‘이’가 있다. 우리는 단 한시도 현실세계를 떠나 살 수 없다. 현실세계가 어지러울수록 현실을 떠나는 삶이 아니라 현실을 변화시키는 삶을 살아야 한다. 현실세계 안에서 ‘이’를 발견하고 ‘이’에 맞게 현실세계를 바꾸어가야 한다. 현실세계와 부딪혀 현실세계 안의 ‘이(理)’를 연구하라. 그래서 주희는 『대학』의 ‘격물치지(格物致知, 사물에 부딪혀 앎에 이름)’를 높이 평가하였다.

성리학의 모태, 주돈이, 장재, 정호, 정이

성리학은 주희 혼자만의 힘으로 완성된 게 아니다. 주희는 주돈이, 정호, 정이, 장재 등의 이론을 계승하는 한편, 이를 더욱 깊이 연구했다. 그리고 그에 근거하여 자신의 독자적이고 체계적인 이론을 세웠다. 그래서 주희는 그들의 책에서 뽑아 『근사록』을 편찬하였다.

주희는 장재의 사상으로부터 ‘기’ 개념을 받아들였다. 장재는 『정몽』에서 “태허(太虛)는 형체가 없으니 기의 본래 모습이며, 기가 모이고 흩어지며 다양한 변화가 일어난다.”고 했다. 태허는 천지만물의 근원을 가리킨다. 주희는 장재의 주장으로부터 기가 운동하여 우주만물이 생겨났음을 받아들였다. 또한 주희는 주돈이의 사상으로부터 ‘태극’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였다. 주돈이는 『태극도설』에서 “양이 변하고 음이 합해져 수화목금토(水火木金土)의 오행이 생긴다. 오행의 다섯 기운이 순조롭게 퍼져서 사시(四時)의 운행이 이루어진다. 오행은 음양에 하나 되고 음양은 태극에 하나 되니, 태극(太極)은 무극(無極)이다.”라고 했다. 태극은 태허와 같이 우주만물의 근원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 태극에서 음과 양의 기가 생긴다고 했다. 주희는 주돈이로부터 ‘태극’의 개념을 받아들이며, 태극이 바로 ‘이(理)’라고 했다.

주희는 정호와 정이 형제로부터 ‘이’와 ‘기’를 인간의 행동에 적용하는 수양론을 받아들였다. 두 사람의 글을 모은 『이정집(李程集)』에서 정호는 “타고난 그대로를 성(性)이라 한다. 성은 곧 기(氣)이며 기가 곧 성이다. 타고난 그대로를 말한다.” 같은 『이정집』에서 정이는 “성(性)은 선하지 아니함이 없다. 그런데 선하지 않음이 있음은 기질 때문이다. 성이 곧 이(理)이다. 이(理)인즉 요순에서부터 평범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똑같다.”고 했다. 성을 기로 보느냐 이로 보느냐의 차이는 있지만 성을 누구나 타고 난다는 점에서는 같다. 정호, 정이 형제는 누구나 태어나면서 받은 성을 깨닫기 위해 스스로 몸과 마음을 닦아야 한다고 했다. 주희는 이 수양론을 받아들이면서 정이가 말한 “성이 곧 이(성즉리, 性卽理)”라는 개념을 받아들여 중심적 사상으로 내세웠다. 주희의 철학을 성리학(性理學)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근사록에서 시작하여 근사록으로

『근사록』은 집대성이다. 주희는 과거의 유학을 모아 새로운 성리학을 열었다. 공자가 죽고 유학은 여러 갈래로 나누어졌다. 또한 유학은 현실과 밀접했지만 철학적인 사유에서 맹점을 드러냈다. 『근사록』의 의의는 이 두 가지 면에서 찾아진다. 『근사록』을 통해 주희는 유학의 계통을 세운다. 이는 마치 집안의 족보를 정리하는 것과 같다. 즉 사상의 체계와 인물의 체계가 확립되었음을 의미한다. 두 번째, 『근사록』은 유학의 새로운 철학적 사유를 종합하고 심화시킬 계기를 마련했다. 즉 성리학이라는 새로운 유학의 토대가 되는 길을 열은 것이다. 『근사록』은 지나간 것을 익혀 새것을 안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현실적 실체였다. 그래서 유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근사록』에서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그래서 『근사록』 「여씨후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일 낮고 가까운 것을 비천하게 여기고 높고 먼 것만으로 가려하고 차례와 준거의 절도를 무시하고 나아가려한다면 공허하게 되어 의지할 곳이 없을 것이다. 이를 어찌 근사(近思)라 하겠는가? 이 책을 펴는 자 마땅히 그것을 먼저 깨쳐야 할 것이다.

『근사록』은 성리학이 유학의 정통으로 우뚝 서면서 학문하는 사람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이는 중국에서뿐만 아니라 조선이나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유학경전을 깊이 공부하기 전에 『근사록』을 읽고, 또 유학경전을 공부한 다음에도 다시 『근사록』을 읽으면서 성리학에 다가갔던 것이다.

주 희, 『근사록』 朱 熹, 『近思錄』

중국의 성리학 집대성자인 주희가 그의 친구 여동래(呂東來)와 함께 성리학을 공부하는 데 긴요한 622대목을 발췌하여 분류, 편찬한 책이다. 1권에서는 자연과 인간의 본질에 관해 설명하고 있고 2권에서는 유학적 삶의 태도에 관한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다. 예로부터 성리학 입문서로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고 조선성리학의 형성에 미친 영향도 크다.(허남진)

홍승기
인민노련 홍보부를 담당하면서 6월 항쟁을 현장에서 이끈 숨은 일꾼. 술만 사 준다면 지옥에도 함께 들어갈 천진무구한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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