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레이 『두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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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중세와 결별한 과학관

갈릴레이 두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

 

그래도 지구는 돈다

 

1616년 2월 26일, 추기경 벨라르미노의 경고 후 위원회는 갈릴레이(G. Galilei, 1564 ~ 1642)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한다.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고 돌지 않으며 지구는 운동을 한다는 견해를 완전히 포기해야 한다. 지금부터 말과 글을 포함하여 어떤 방식으로든 그 견해를 지속적으로 주장하거나 가르치거나 옹호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재판에 회부될 것이다.

– 1616년 2월 26일 로마 교황청 추기경위원회 의사록

 

갈릴레이가 약식 종교 재판에 회부된 건, 태양중심이론(Helio-centric theory)을 옹호했기 때문이다. 특히 1613년에 출간된 『태양 흑점 서신』이 문제였다. 그리고 갈릴레이는 1632년에 다시 『두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를 쓴다. 다시 교황청으로 소환된 갈릴레이는 무릎을 꿇고 유죄선거를 받아야 했다. 갈릴레이는 굴욕적인 맹세를 한다.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앞으로 이단적인 행동을 절대 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갈릴레이에게 유죄 선고가 내려졌던 1633년 6월 22일에 갈릴레이는 혼잣말로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을 믿을 수는 없다. 그러나 두 차례의 종교재판에 회부되면서까지 갈릴레이는 지구가 움직인다는 사실을 밝히려 했다.

무엇이 갈릴레이에게 그런 신념을 갖게 했을까? 갈릴레이는 자신의 두 눈으로 보고 세운 이론을 포기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갈릴레이의 재판을 종교에 의한 과학의 탄압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단지 종교와 과학의 갈등 만이었을까? 아니다. 그것은 지나간 과학과 새로운 과학의 충돌이었고, 나아가 우주를 바라보고 세상의 현상을 이해하는 세계관의 충돌이었다.

갈릴레이는 이탈리아 피사에서 태어났다. 갈릴레이의 성과 이름이 비슷한 이유는 장남인 경우 성을 겹쳐 썼던 토스카나 지역의 관습 때문이었다. 어렸을 때 수도원 학교에서 인문학을 배우고, 피렌체 교외의 바론브로사수도원 부속학교에서 초등교육을 마친 후 쳤다. 18살 때 피사대학 의학부에 들어갔다. 그러나 수학에 흥미를 느껴 3년 반 만에 대학을 중퇴하고 가정교사를 하며 수학을 연구했다. 수학 분야의 논문을 발표하여 명성을 쌓은 결과 26살 때 피사 대학의 수학 교수가 되었고, 나중에는 파도바 대학에서 가르쳤다.

이때 갈릴레이의 인생을 뒤바꾼 계기가 생긴다. 망원경과의 만남이었다. 당시의 망원경은 성능이 좋지 않았다. 그저 귀족들의 장난감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그러나 갈릴레이는 망원경의 원리를 간파하여 고배율의 망원경을 발명해냈다. 고배율 망원경을 통해 천체를 관측한 갈릴레이는 새로운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목성의 위성과 달의 반점 그리고 태양의 흑점 등 새로운 발견을 했는데, 이 발견들은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이론을 입증하는 증거이기도 했다.

갈릴레이의 연구 성과는 당시의 기독교적 원리와 대립하는 것이었기에 상당한 비난을 받아야 했다. 이 때문에 로마를 방문하여 변명을 했으나, 1616년에 종교 재판에 회부되어 태양중심이론을 포기하도록 명령받았다. 그러나 갈릴레이는 굽히지 않고 태양중심이론을 주장하여 1632년에 『두 개의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를 발표하였다. 『두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는 그때까지 세상을 지배하던 철학과 천문학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를 공격하라

 

『두 개의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는 두 개의 우주론, 즉 지구중심이론(Geo-centric theory)과 태양중심이론을 다룬다. 그러나 갈릴레이는 이 책에서 어떤 결론도 내지 않고 지구중심이론과 태양중심이론의 쟁점만 정리하였다. 그러나 태양중심이론을 옹호하고 그 논거를 제시하고 있음은 명확하다. 『두 개의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는 세 명의 대화로 이루어진다. 살비아티는 코페르니쿠스의 지지자로 태양중심이론을 주장하고, 심플리치오는 프롤레마이오스의 지지자로 지구중심이론을 주장하며 사그레도는 중립적인 인물이다. 이들 세 사람은 4일간 대화를 나누는데, 갈릴레이는 대화를 통해 태양중심이론의 장점을 독자들이 인식할 수 있게 하였다.

지구중심이론은 고대 그리스의 프톨레마이오스의 저작 『천문학 집대성』에서 비롯되었다. 지구중심이론의 핵심은 ‘지구는 움직이지 않는다.’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다.’이다. 이 지구 중심의 세계관에 대한 믿음 뒤에는 지구가 움직인다면 어떻게 사람들이 지구에 서 있을 수 있느냐 하는 단순 논리가 자리하고 있었다.

첫째 날 대화의 주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천체론이다. 사실 지구중심이론의 바탕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천상계와 지상계를 구분한다. 그러나 갈릴레이는 천상과 지상의 구분에 반대하여 천상과 지상이 모두 같은 운동법칙에 지배받는다고 하였다. 지구중심이론과 태양중심이론에 대한 사그레도의 정리를 보자.

 

첫 번째 견해는 천상의 물질이 본래 생성되지도 부패하지도 변형되지도 않으므로…….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천상의 물질은 생성하고 부패하며 변화하는 우리 지상의 물체와 아주 다른 원질인 에테르라는 것이다, 두 번째 견해는 천상과 지상이 다르지 않다고 말하며…….지구도 달, 목성, 금성이나 다른 행성들과 마찬가지로 운동을 하는 천체라고 주장한다.

– 갈릴레이, 『두 개의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

 

물론 중립적인 사그레도는 태양중심이론이 더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갈릴레이는 관측을 통해 천상 역시 지상처럼 변화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천체관을 비판했던 것이다.

둘째 날 대화의 주제는 지구의 자전이다. 심플리치오는 하늘을 향해 던진 돌멩이가 제자리에 떨어지는 예를 들어 지구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지구가 움직인다면 돌멩이는 수직으로 떨어질 수 없고, 돌멩이가 하늘에 떠 있는 동안 지구가 움직이기 때문에 돌멩이는 처음 던진 자리와 다른 곳에 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갈릴레이는 움직이는 배의 예를 들어 지구가 움직인다고 설명한다. 움직이는 배 안에서도 물방울은 수직으로 떨어진다. 떨어지는 자리 역시 변하지 않는다. 물고기는 어항에서 배가 움직이지 않을 때와 똑같이 움직인다. 갈릴레이는 지구의 회전 속도가 매우 미미하다고 말하며, 원심력이 작기 때문에 원심력의 작용은 그것보다 몇 배 강한 중력의 작용에 의해 지워져 버린다고 논증한다.

 

지구는 자전하고 또 공전한다

셋째 날 대화의 주제는 지구의 공전이다. 지구중심이론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지구를 중심으로 천체가 움직인다고 주장한다. 그것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이기도 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주가 유한한 공모양이고 그 중심에 지구가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지구는 우주의 중심, 세상의 중심, 항성 천구의 중심이어야 한다.

이에 대해 갈릴레이는 지구가 공전과 자전을 한다면서 반박한다.

 

지구는 운동하는 천체들 사이에 놓여 있다. 지구는 금성과 화성 사이에 있다, 금성은 아홉 달에 한 바퀴 돌고 화성은 2년에 한 바퀴 돈다. 그러니 금성과 화성 사이에 있는 지구가 정지해 있다고 보기 보다는 1년에 한 바퀴 도는 운동을 한다고 보는 게 훨씬 우아하고 정연한 일이 되리라 생각한다…….지구가 자전하지 않으면서 태양 둘레를 도는 운동만 한다면 1년은 한 번의 낮과 한 번의 밤만 나타날 것이다. 다시 말해 여섯 달 동안 낮이 되고, 여섯 달 동안 밤이 된다.

– 갈릴레이, 『두 개의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

 

마지막 넷째 날 대화에서는 태양중심이론의 필연성을 확립한다. 갈릴레이는 태양중심이론의 근거로 바다에서 일어나는 밀물과 썰물을 예로 든다. 만약에 지구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바다에서 밀물 썰물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 물론 밀물 썰물 현상은 지구의 회전에 의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직 만유인력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갈릴레이에게는 바닷물이 들고 나는 현상이 지구의 회전에 의해 일어나는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갈릴레이는 지구중심이론이라는 하나의 학설과 논쟁을 한 것이 아니다. 뿌리 깊게 이어 온 구시대의 세계관과 논쟁을 하였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당시 종교와 과학의 버팀목이었다. 그래서 갈릴레이의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비판은 동시에 아리스토텔레스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당시의 학자들에 대한 공격이었다. 갈릴레이의 대변인 격인 살리아티의 말을 들어보자.

 

내 얘기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에 귀 기울여서는 안 된다는 뜻이 아니다. 사실 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읽고 세심하게 연구하는 일에 갈채를 보낸다. 내가 비판하는 건, 오로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라면 맹목적으로 찬동하고, 어떤 다른 근거도 찾아보려하지 않으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불가침의 신조처럼 모시는 식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노예가 되려는 사람들이다.

– 갈릴레이, 『두 개의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

 

살비아티의 말에서 당시의 과학자들이 관측과 실험을 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실험과 해부를 통해 얻어진 결과에 대해서도 당시 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글귀를 들이밀며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당시 과학은 낡은 권위에 목매여 있었던 것이다.

『두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는 코페르니쿠스의 『천체의 회전』, 뉴턴의 『프린키피아』와 함께 천체 물리학의 진보를 이룩한 획기적인 3대 저서로 꼽히고 있다. 더욱이 교회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이런 책을 펴낸 갈릴레이의 용기는 모든 과학자의 태도에 귀감이 되었다.

 

  1. 근대 과학 혁명을 매듭짓다

뉴턴 프린키피아

 

만유인력의 발견자

 

신화와 역사에는 세상을 바꾼 사과가 등장한다. 그 첫 번째 사과는 아담과 이브를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만든 선악과다. 뱀의 유혹을 떨치지 못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계율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었고 그로부터 원죄가 생겨났다. 트로이 전쟁의 원인도 한 알의 사과였다. 바다의 여신 테티스와 아킬레우스의 아버지 펠레스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파리스는 헤라와 아프로디테, 그리고 아테네의 앞에 사과 한 알을 던지며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준다고 말한다. 이로써 트로이 전쟁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뉴턴(I. Newton, 1642 ~ 1727)의 머리 위로 사과가 떨어진다. 1666년 어느 날의 일이었다. 사과는 지구의 중력으로 인해 아래로 떨어진다. 중력 개념은 고대 시대부터 상식에 해당하는 지식이었다. 갈릴레이는 지구의 중력에 관한 모든 것을 이미 알아냈다. 뉴턴의 머릿속에 순간 번뜩이는 생각이 떠올랐다. “지구와 사과 사이에 작용하는 중력이 지구와 달 사이에도 작용하는 것일까? 그리고 만약 작용한다면 그 힘은 얼마나 될까?” 문제가 주어지면 해답은 나오기 마련이다. 다만 그 해답을 증명할 길이 아직은 없었다. 21년 후 드디어 뉴턴은 자신의 해답을 수학적으로 완벽하게 논증하였다. 중력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 하여 작용한다. 이 중력의 힘은 사과와 달에 동일하게 작용한다. 이렇게 하여 ‘만유인력의 법칙’이 세상에 공포되었다.

뉴턴은 진리를 찾기 위해 항상 깊은 사색을 했다. 뉴턴은 생각에 잠겨 종종 가야할 교회가 아니라 엉뚱한 교회에 갔고, 예배 가운을 입은 채로 식당에 가기도 했다. 식당에 가서도 생각에 잠겨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도 잊었다. 그리고 뉴턴은 자신이 찾아낸 것들에 대해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뉴턴의 사과 이후에 우리는 애플의 사과를 만난다. 여기에서 우리는 멈추지 않고 새로움을 향해 가는 정신을 보게 된다.

뉴턴은 영국 링컨셔의 울즈소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었고 어머니는 3살 때 재혼을 했다. 어머니는 뉴턴이 농부가 되기를 바랐다. 뉴턴이 학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외삼촌의 도움 때문이었다. 20살 때 케임브리지 대학의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하여 수학을 공부하고, 28살 때 수학과 교수가 되었다. 뉴턴의 연구는 특정 분야에 한정되지 않았다. 수학에서 이항정리와 무한급수 그리고 미적분법을 연구했고, 중력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만유인력의 법칙을 확립하였다. 또한 뉴턴은 명예혁명 기간 동안 의회에 참여하였고, 조폐 업무를 총괄하는 조폐 소장을 맡기도 하였다. 62살 때부터 왕립학회 종신 회장이 되었다.

뉴턴의 수학과 과학의 업적은 1687년에 출판된 『프린키피아』를 통해 집대성되었다. 『프린키피아』의 원제목은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이다. 『프린키피아』는 3권으로 구성되는데, 1권과 2권은 일반적인 명제를 담고 있고, 3권은 우주 체계에 대한 설명을 담고 있다.

 

만유인력, 아리스토텔레스를 부수다

 

뉴턴은 『프린키피아』의 서문에서 자신의 연구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기술이 아니라 철학을, 인공적인 힘이 아니라 자연의 힘을 설명하고자 한다. 즉, 낙하시키는 힘과 부상하게 만드는 힘, 탄성력, 유체의 저항, 그 밖에 다른 형태의 끌어당기거나 밀치는 힘들이 주요 연구 대상이다. 따라서 나는 이 책이 철학의 수학적 원리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철학의 모든 문제가 바로 이러한 힘들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운동 현상으로부터 자연의 여러 가지 힘들을 연구하고, 이렇게 해서 알게 된 힘들로부터 다른 자연현상들을 설명하는 것이다.

– 뉴턴, 『프린키피아』

 

뉴턴의 방법은 현상으로부터 수학적 법칙을 유도해 내고, 그 수학적 법칙을 다시 자연현상에 적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관찰과 실험 그리고 추론을 통일시키는 것으로 후대의 자연과학자들로부터 특히 칭송을 받고 있는 부분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만유인력은 뉴턴의 중력이론이다. 만유인력은 질량을 가진 모든 물체가 서로 잡아당기는 힘이다. 만유인력은 과학적 측면에서 보면 혁명적인 발견이었고, 사상사적 측면에서 보면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벗어나는 사건이었다. 당시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때문에 새로운 과학은 아리스토텔레스와의 싸움이었다. 갈릴레이 역시 그 작업을 수행하였다. 뉴턴의 만유인력이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를 무너뜨린 이유는 만유인력이 지상과 천상에서 동일하게 작용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뉴턴은 만유인력을 벗어날 수 있을 만큼 세게 사과를 던지면 사과가 지구를 벗어나 달처럼 지구의 주변을 돌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지상의 법칙은 천상의 법칙에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뉴턴은 그런 아리스토텔레스의 구분을 무너뜨렸다. 결국 과학의 발견이 사상으로 확대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역학관은 뉴턴의 다른 법칙에 의해서도 깨지게 된다.

 

만유인력, 우주와 행성에 적용되다

 

뉴턴은 『프린키피아』에서 3가지 운동법칙을 제시한다. 이것이 바로 뉴턴의 3가지 법칙이다. 뉴턴의 제1법칙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관성의 법칙이다. 뉴턴은 관성의 법칙을 이렇게 설명한다. “외부에서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운동하는 물체는 계속 그 상태로 운동하려고 하고, 정지한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으려고 한다.”

지금 우리는 관성의 법칙을 상식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뉴턴 이전의 운동법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역학관에 지배받고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물체가 계속 운동을 하려면 끊임없이 외부에서 힘이 제공되어야 했다. 그러나 뉴턴에 의하면 운동하는 물체는 계속 그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고 그 물체가 정지하는 것은 외부의 힘이 제공될 때이다.

관성의 법칙은 생활의 영역에서도 적용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습관은 이전의 상태를 반복하는 것이다. 밤이면 꼭 드라마를 챙겨보는 것도 일종의 습관이다. 그런데 그 드라마를 보지 않으려면 이전과 다른 상황이 벌어져야 한다. 즉 관성처럼 드라마를 보는 습관이 다른 상황의 개입에 의해서 멈추게 되는 것이다.

뉴턴의 제2법칙은 가속도의 법칙이다. 뉴턴은 가속도의 법칙을 이렇게 정의한다. “운동의 변화는 가해진 힘에 비례하며 힘이 가해진 직선 방향으로 일어난다.”

물체의 운동이 변화되는 원인은 힘이다. 때문에 속도의 변화, 즉 가속도는 힘에 비례한다. 여기에서 또 다른 변수는 질량이다. 질량이 크면 같은 힘을 주어도 변화가 적고 질량이 작으면 같은 힘에도 변화는 커진다.

가속도의 법칙 역시 우리 주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무겁고 큰 것은 조그만 힘에 움직이지 않지만 가볍고 작은 것은 조금만 힘을 가해도 움직인다. 조직으로 비유하면 크고 복잡한 대기업이나 정부가 무겁고 큰 것이고, 벤처기업 같은 소규모의 조직이 가볍고 작은 것이다. 대기업이나 정부는 한 번에 바꾸기도 쉽지 않고 웬만한 자극에도 끄떡없지만, 소기업은 외부의 힘에 요동치고 쉽게 바꿀 수 있다.

뉴턴의 제3법칙은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다. 모든 작용에는 그와 반대의 작용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뉴턴은 반작용의 법칙을 이렇게 설명한다. “모든 작용에는 크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인 반작용이 항상 존재한다. 즉 두 물체가 서로에게 미치는 힘은 항상 크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이다.”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은 총이나 로켓을 떠올리면 쉽다. 군대에서 사격을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총을 쏘면 총알이 나가는 것과 함께 개머리판에 진동이 전해진다. 때로는 이 진동 때문에 조준관에 대고 있던 얼굴을 다치기도 한다. 이를 우리는 반동이라고 한다. 반동이란 바로 반작용을 말하는 것이다. 로켓도 마찬가지다. 로켓이 하늘로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연료를 태워 바닥을 향해 밀어내야 한다. 그 힘으로 로켓은 하늘로 날아간다. 이것이 바로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다.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도 우리 생활에 적용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과응보’ 역시 작용과 반작용의 결과이다. 자신이 한 행위는 어떤 식으로든 결과를 만들어낸다. 도움을 주면 도움을 받고 욕을 하면 욕을 먹게 된다. 이것 역시 작용 반작용의 원리이다.

뉴턴의 법칙은 물체의 운동을 설명한다. 그러나 물체의 운동과 역학 관계는 사회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것은 뉴턴이 보편법칙을 찾아 나섰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뉴턴이 추구했던 것은 세상의 법칙이자 진리였다.

뉴턴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제시했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행성의 운동과 그 영향에 적용한 예로 다음과 같은 뉴턴의 언급을 들 수 있다.

 

모근 행성은 서로 인력을 미친다. 예컨대 목성과 토성은 그 합의 위치 부근에서 서로 끌어당겨 그 운동을 상호간에 현저하게 교환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태양은 달의 운동을 교환하고 또한 태양과 달은 지구의 바닷물에 작용한다.

– 뉴턴, 『프린키피아』

 

우리가 흔히 보는 밀물과 썰물 현상은 이러한 운동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뉴턴은 이 만유인력의 법칙에 관하여 많은 부분 구체적인 검증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뉴턴 이후의 물리학과 천문학은 이 법칙을 검증하기 위한 시도들로 점철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뉴턴의 이론은 아인슈타인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물리학에 있어서 절대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16, 17세기에 진행되었던 소위 과학 혁명을 매듭짓는 것이었고, 고전 역학의 진정한 출발이었다.

 

 

 

 

 

 

  1. 생물은 어떻게 진화하였는가?

다윈 종의 기원

 

종의 기원을 찾아가는 고난의 탐험

“세상이 정말 6일 만에 창조되었습니까? 태양이 만들어지기 전 어떻게 밤과 낮을 알 수 있었지요. 그때도 하루는 24시간이었나요? 지구가 태양을 도는데, 여호수아는 어떻게 태양에게 멈추라고 명령할 수 있었지요?” 변호사 대로우는 증인석에 앉은 검사 브라이언을 몰아붙였다. 재판이 진행되는 중에도 사람들은 피켓을 들고 “원숭이와 우리를 같이 보지마! 무신론자들은 너희 조상 원숭이에게 돌아가라!”며 시위를 하고 있었다.

스탠리 크리이머가 1960년에 발표한 영화 「침묵의 소리」의 한 장면이다. 이 사건은 1925년에 미국 테네시 주에서 있었던 일명 ‘원숭이 재판’의 실제 상황이기도 하다. 1925년에 테네시 주에서는 공립학교에서 진화론 교육을 금지하는 버틀러법이 통과되었다. 당시 고등학교 교사였던 존 스콥스는 이 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게 되었다. 그때 변호사는 검사를 증인으로 불러 창조론의 모순을 조목조목 따졌다. 그러나 논리적인 승리에도 불구하고 존 스콥스는 100달러의 벌금형을 받았다.

창조론을 무너뜨린 사람. 그가 바로 다윈(C. Darwin, 1809 ~ 1882)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인간의 오만에 경종을 가했고 생물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그러나 진화론과 창조론의 대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1968년에 미국 대법원은 진화론 교육을 금지하는 법률이 위헌이라고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창조론은 윌리엄 팔레이의 ‘지적 설계론’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팔레이는 바닥에 떨어진 돌멩이가 어디에서 왔는지 설명할 수 없지만, 인간과 같은 생물은 너무나 정교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진화에 의해 우연히 생겨날 수 없다고 말한다. 돌멩이가 아니라 시계가 바닥에 떨어져 있다면 시계는 어떤 지적존재에 의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눈먼 시계공』의 저자 리차드 도킨스는 “누군가가 자연의 시계공 노릇을 한다면, 그는 눈먼 시계공일 것이다.”라고 비판한다. 이 모든 논쟁의 시작에 다윈과 그의 저서 『종의 기원』이 있다.

다윈은 잉글랜드의 서부 지방인 실즈베리에서 태어났다. 17살 때 아버지의 권유로 에든버러 의과대학에 들어갔지만 의사가 될 마음은 없었다. 의학 공부 대신 동식물의 채집과 관찰을 하며 박물학 공부를 했다. 23살 때 다윈은 해군 조사선 비글호에 탑승하여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되었다. 비글호는 전 세계를 돌며 탐사를 하였는데, 예정보다 길어져 탐사 기간이 무려 5년이나 걸렸다. 다윈은 이 탐사에서 안데스 산꼭대기에 있는 조개의 화석, 파타고니아 평원에서 발굴한 절멸 동물의 화석, 아메리카산의 절멸한 말의 유물, 갈라파고스 섬의 도마뱀과 바다거북 등 많은 새로운 것들을 목격하였다. 귀국 후 다윈은 탐사 과정에서 기록한 노트를 정리하면서 서서히 진화의 사상을 싹틔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신의 사상을 정리하고 발표하는 데 무려 20여 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리하여 51살 때인 1859년에 역사적인 『종의 기원』이 출판되었다.

 

적응하지 못하면 사라진다

 

『종의 기원』의 원제는 ‘자연 선택 혹은 생존경쟁에 유리한 종의 보전에 의한 종의 기원’이다. 이 제목은 다윈이 종의 기원을 자연 선택 혹은 생존경쟁에서 찾고자 했음을 알게 해준다. 다윈은 자신의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종의 기원을 논함에 있어 박물학자들이 생물 상호간의 유사성, 그 발생학적 관계, 그들의 지리적 분포, 지질학적 변천 및 그 밖의 사실을 검토하여 종이 개개의 독립성을 갖고 창조된 것이 아니라, 변종과 같이 다른 종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 결론은 그 논거가 충분한 것이라 할지라도, 지구상에 살고 있는 무수한 종이 어떻게 변화되어 우리들을 놀라게 할 만큼 완전한 구조와 상호 적응을 얻을 수 있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 증명될 때까지 만족할 수 없는 것이다.

– 다윈, 『종의 기원』

 

다윈은 신이 생물을 창조했다는 창조설을 부정하고, 지금의 다양한 생물이 다른 종으로부터 유래한 것임을 강조한다. 다윈의 문제의식은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그의 진정한 문제의식은 수많은 종들이 어떻게 변화하여 왔는가를 밝히는 데 있다. 다윈은 당시 진화론자들 사이에 유행하던 생각, 즉 종의 변이가 외적 조건에 의해 일어난다는 생각이 불충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윈은 변화와 상호 적응의 방법에 대한 명확한 관찰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다윈은 사육하고 있는 생물에서 나타난 ‘인위 선택’에 의한 변이에 주목하였다. 그리고 여기에서 밝혀진 사실을 자연 상태에 적용하려고 했다.

가축이나 조류를 사육하는 사람을 생각해 보자. 그는 동물의 특수한 변이, 즉 사소한 변이라도 선택하여 짧은 시간 내에 매우 다른 종류를 만들어 낸다. 이런 인위 선택을 통해 사람들은 수십 종의 개, 150여 종에 달하는 집비둘기 등을 만들어 냈다. 이런 현상이 자연계에서 일어난다면 인위 선택에 의한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여기에 착안하여 자연 선택에 의하여 최적자가 생존하고 부적자가 소멸할 것임을 입증한 것이 다윈의 자연선택설이다.

자연선택설을 이해하기 위해 생존 경쟁을 먼저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다윈은 “생존할 수 있는 수보다 더 많은 개체가 생겨나기 때문에, 어떤 개체와 다른 개체 사이에 생존 경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한 마리의 송어는 한 번에 6~10만 개의 알을 낳는다. 만일 이 알들이 모두 부화되어 성장을 한다면 얼마 안 가 지구상의 모든 담수는 송어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현상을 일어나지 않는다. 어떤 것은 알에서 부화되기 전에 다른 물고기의 먹이가 된다. 또 어떤 것은 부화는 하지만 새끼 시절에 다른 물고기의 먹이가 된다. 또 어떤 것은 먹이를 찾지 못하여 죽기도 한다. 이런 과정은 자연계 내에서 치열한 생존경쟁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면 이런 생존 경쟁 과정에서 어떤 것이 살아남게 되는가? 다윈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복잡 미묘한 생명의 싸움을 하고 있는 모든 생물에게 몇 세대를 거듭하는 동안 어떤 방법으로든 유익한 다른 변이가 생기게 된다는 사실을 상상해 볼 수는 없는 것인가? 만약 그런 사실이 일어난다면 조금이라도 다른 개체보다 발전된 어떤 이익을 가진 개체가 생존과 번식을 위해 절호의 기회를 얻는다는 것을 의심할 수 있을까? 생존할 수 있는 수보다 더 많은 개체가 나온다는 것을 상기할 때 말이다. 이와는 반대로 조금쯤 유해한 변이는 엄격하게 파괴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이런 유익한 개체의 차이와 변이의 보존, 이와 함께 자기에게 유해한 형질을 가진 생물은 파멸되고 만다는 사실을 나는 선택 또는 최적자 생존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 다윈, 『종의 기원』

 

풀밭에 사는 늑대의 다리는 자연 선택으로 인해 길고, 뛰어다닐 기회가 적은 밀림 지대 늑대의 다리는 짧다. 독수리의 시력은 필연적으로 높아질 수밖에 없다. 시력이 낮으면 먹이를 빨리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과학은 신학의 지배를 거부한다

 

그러면 자연 선택은 생물의 모든 기관의 능률을 높이는 방향으로만 작용하는 것일까? 다윈은 마데아 섬에 사는 날개가 짧은 딱정벌레의 예를 든다. 마데이라 섬 부근은 세계에서 바람이 가장 거센 곳이다. 날개가 길고 튼튼한 딱정벌레는 공중을 날 때 갑자기 돌풍이 불면 바다 속으로 밀려 떨어져 죽는다. 반면에 공중을 날지 못하는 딱정벌레는 섬에 남게 된다. 날개가 짧고 날지 못하는 딱정벌레는 살아남은 반면 날개가 크고 튼튼한 딱정벌레는 자연 선택 과정에서 소멸되고 만다. 이 경우 날개라는 기관은 진보한 것이 아니라 퇴화한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 선택은 반드시 가장 좋다고 인정하는 것만 보존시키지 않는다. 그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한 것만 보존시킨다. 따라서 다윈이 말하는 자연 선택은 이상적인 것이 아니라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한 것만이 생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윈은 이를 최적자 생존이라고 불렀다.

19세기에 나타난 저서 중 가장 위대한 저서를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종의 기원』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종의 기원』은 생물학계뿐만 아니라 인문 사회 과학계에도 엄청난 파급과 영향을 주었다.

다윈의 학설이 인문 사회 과학에 미친 영향에는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 다윈의 학설을 사회 영역에 적용하고자 한 것을 ‘사회적 다위니즘’이라고 부른다. 사회적 다위니즘은 지배자를 생존 경쟁의 승리자, 피지배자를 패배자로 인식하게 만든다. 이 이론에 따른다면 모든 지배, 독재가 정당화된다.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지의 야만적인 지배와 통치는 물론 나치 정권의 야만적인 지배 등도 당연한 것이 된다. 그리고 이에 반대하는 운동은 낙오자들의 이유 없는 반항에 불과한 것이 된다.

물론 이런 부정적 영향은 다윈 자신이 의도했던 것이 아니다. 다윈은 자신의 학설에 대해 항상 조심하며 하나의 가설로서 제시하고자 했을 뿐이다. 다윈의 학설에 불완전함이 있다 하더라도, 다윈 학설의 위대함은 종의 불변론, 즉 신에 의한 창조론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었다는 점이다. 다윈은 과학을 신학으로부터 완전히 분리시켰다. 그리고 인간도 동물의 일종임을 증명함으로써 인류의 기원을 밝히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동물원의 원숭이를 보며, 그들과 인간은 처음부터 달랐다고 생각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겠지만 말이다.

 

 

 

 

 

 

  1. 양자물리학을 등진 물리학자의 생명탐구

슈뢰딩거생명이란 무엇인가

 

생명의 비밀을 파헤친 물리학자

 

자연법칙은 확률에 의해 지배되지 않는다. 이것이 슈뢰딩거(E. Schrodinger, 1887 ~ 1961)의 입장이다. 양자물리학자들이 확률을 중요시하자 슈뢰딩거는 1935년에 독일의 잡지 「자연과학」에 이런 실험을 제안한다.

 

우습지만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고양이 한 마리를 철제 상자에 가둔다. 상자 안에는 방사선을 검출할 수 있는 가이거 계수관과 미량의 방사성 원소가 들어 있다. 방사선 원소의 양은 아주 적어서 한 시간 동안에 한 개의 원자가 붕괴할 확률과 한 개도 붕괴하지 않을 확률이 각각 50%이다.

 

이때 방사성 원소가 붕괴되면 스위치가 떨어져 독약이 나온다. 그러나 방사성 원소가 붕괴되지 않으면 독약은 나오지 않는다. 확률은 50%다. 그렇다면 고양이는 죽었을까? 살았을까? 양자 물리학에서는 고양이가 죽었을 때, 나오는 파동함수와 살았을 때 나오는 파동함수가 중첩된다. 그럼 고양이는 살아있기도 하고 죽어있기도 한 상태가 된다. 그러나 슈뢰딩거는 살아있으며 죽어있는 고양이는 없다고 반박한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아는 방법은 상자를 열어 고양이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뿐이다. 이것이 그 유명한 슈뢰딩거의 고양이다.

물리학자들은 여기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한다. 고전물리학자들은 확인과 상관없이 고양이가 죽었거나 살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슈뢰딩거는 관측을 강조한다. 열어 보지 않은 상태에서는 알 수 없는 것이고, 관측에서 중요한 것은 열어봤을 때 만이다. 통계학자들은 실험을 반복해 고양이가 죽을 확률을 계산할 것이다.

이러한 논란에 대해 해답을 내릴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논란이 양자물리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놓았음은 분명하다. 슈뢰딩거는 기존과 다른 이론을 제시했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물리학의 길을 열었다. 그리고 슈뢰딩거는 물리의 법칙을 유기체에 적용했다. 그럼으로써 그는 생명의 비밀을 파헤치려고 했다.

슈뢰딩거는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태어났다. 20살 때 빈 대학에 입학하여 물리학을 공부하였고, 제1차 세계 대전 때에는 군 복무를 하기도 하였다. 했다. 39살 때인 1926년에 양자 파동 역학에 관한 논문을 썼는데, 이 논문에서 슈뢰딩거는 행성 천문학에서 뉴턴의 운동 방정식과 같이 양자 역학에서 기본적인 방정식이라고 할 수 있는 원자의 역학에 대한 편미분 방정식을 기술했다. 슈뢰딩거 방정식의 해법은 뉴턴 방정식의 해법과 달리 물리적 사건들의 확률적 발생에만 관련된 파동 함수들이다. 절대적이고 쉽게 가시화되는 뉴턴의 행성 궤도의 사건들의 결과가 양자 역학에서는 훨씬 더 추상적인 관념인 확률로 대체되었다. 46살 때인 1933년에 물질의 파동 이론과 양자 역학의 기초를 세우는 데 기여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는 원자와 생명체 사이의 관계를 논의한 책이다. 슈뢰딩거는 1943년에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한 강연을 토대로 하여 이 책을 저술하였다. 과학의 발달에 따라 슈뢰딩거의 오류가 지적되기도 하지만, 슈뢰딩거의 연구는 생물학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데 커다란 의의가 있다.

 

슈뢰딩거의 방정식에서는 해답이 하나가 아니다

 

슈뢰딩거의 이론을 이해하려면 고전물리학과 양자물리학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물리학은 미래의 이야기에 많은 것을 할애한다. 외부에서 힘이 가해지지 않는 한 원래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고 하는 성질이 뉴턴의 제1운동법칙인 관성의 법칙이다. 정지해 있는 물체는 계속 정치해 있고 운동하는 물체는 계속 운동하려고 한다. 그래서 버스가 급제동할 때, 승객은 앞으로 쏠리게 된다.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려는 관성 때문이다. 관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외부의 힘이다. 움직이던 물체는 마찰이나 공기의 저항 등으로 인해 멈추게 된다. 만일 움직임의 에너지와 마찰 및 저항을 계산한다면 물체가 어디에서 멈추게 될지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미래에 대한 예측이다.

물리학은 물리법칙을 이용해 미래를 예측하려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만약 자연의 법칙을 알게 된다면 그 법칙에 따라 미래에 어떤 모습이 펼쳐지리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방정식이다. 방정식은 그 법칙을 계산해내는 식이다. 앞서 든 예처럼 마찰과 저항, 그리고 운동 에너지를 계산할 수 있게 해 주는 식인 것이다.

법칙만 안다면 미래는 예측 가능한 것이 된다. 너무 많은 변수를 계산해야 하기 때문에 해답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거나 답을 구하지 못할 수는 있어도 답을 구하기만 한다면 미래는 예측된다.

그러나 이러한 법칙은 양자물리학에서 깨지게 된다. 그 문제를 제기한 방정식이 바로 슈뢰딩거의 방정식이다. 슈뢰딩거의 방정식에서는 하나의 답이 도출되지 않는다. 여러 개의 답이 도출된다. 이는 동일한 물리법칙에서도 서로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도출된 여러 값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이다. 이것이 슈뢰딩거를 양자물리학을 거두로 만든 이유이다. 하지만 슈뢰딩거의 방정식에 대한 해석에 이견이 나타나고, 그 때문에 양자물리학의 공헌자였던 슈뢰딩거는 양자물리학에서 등을 돌려 생명현상을 연구하게 된다.

 

물리학으로 본 생명체

 

슈뢰딩거는 물리학자이면서 생물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슈뢰딩거는 분자생물학을 들고 나왔다. 분자생물학이란 물리학의 분자 이론을 생물학에 적용시킨 것이다. 여기에서 핵심은 유전자다. 슈뢰딩거를 기점으로 생물학은 유전자에 대한 연구에 집중하게 된다. 슈뢰딩거 역시 유전자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부모로부터 자식에게 전해지는 것이 단지 이러저러한 특성들, 예를 들어 매부리코, 짧은 손가락, 류머티즘에 잘 걸리는 성향, 혈우병 등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특성들은 유전법칙을 연구하기 위해 편의대로 우리가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특성이 결합하여 한 개의 수정란을 만드는 정자와 난자라는 두 세포의 핵 속에 있는 물질구조에 의해 전달된다. 그것은 가시적이고 뚜렷한 성질로서 몇 만 년에 걸쳐서 변할지 몰라도 몇 세대 사이에는 큰 변화 없이 유전되어서 몇 백 년 동안은 유지된다.

– 슈뢰딩거, 『생명이란 무엇인가』

 

슈뢰딩거에 의하면, 우리는 유전자를 통해서 부모와 그 윗세대의 특성을 부여 받는다. 그것은 유전자에 특정한 능력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전자와 분자 이론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원리는 간단하다. 유전자는 세포로 구성된다. 그리고 그 세포를 구성하는 것이 분자다. 때문에 분자를 지배하는 물리 화학적인 법칙은 유전자에 적용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문제가 생긴다. 물리학의 절대 개념 중 하나는 열역학 제2법칙이다. 이는 시간에 따라 엔트로피가 증가된다는 것이다. 엔트로피의 증가는 질서의 상태에서 무질서로의 이행을 의미한다. 즉,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은 무질서하게 변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치우지 않는 방과 같다. 사람이 살면서 방은 점점 더 지저분해지는 쪽으로 바뀐다. 청소를 했을 상태가 엔트로피가 감소한 질서의 상태라면, 청소를 하지 않아 점점 지저분해지는 상태는 엔트로피가 증가한 무질서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 엔트로피가 문제가 된 이유는 생명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질서의 상태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물리학의 법칙으로는 이를 설명하기 곤란하게 되었다. 슈뢰딩거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열역학적 평형, 즉 죽음으로의 이행을 지연시키는 살아 있는 유기체의 신비하고도 탁월한 재능을 통계 이론적으로는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우리는 앞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생명은 음의 엔트로피를 먹고 산다.” 다시 말해 음의 엔트로피의 흐름을 자신에게 끌어당겨서, 살아가느라고 만든 엔트로피의 증가를 보상하여 비교적 낮은 엔트로피 수준에서 일정하게 자신을 유지하는 것이다.

– 슈뢰딩거, 『생명이란 무엇인가』

 

슈뢰딩거의 관심은 생명현상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슈뢰딩거가 『생명이란 무엇인가』에서 말한 내용의 많은 부분이 분자생물학의 발전에 따라 수정되었다. 유전자의 구조와 기능을 핵단백질로 논하지 않은 점, X선에 의한 돌연변이를 다루면서 핵단백질의 화학변화를 다루지 않은 점 등이 그런 경우이다. 그러나 이 책은 여전히 그 주제에 관한 가장 유용하고 심오한 개론서 중의 하나로 남아 있다.

토마스 쿤의 말처럼 패러다임은 바뀌게 되어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떠한 현상을 대하는 태도일 것이다. 슈뢰딩거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분명 다음과 같이 느끼고 있다. 우리는 지금에 와서야 세계를 전체로서 온전하고 제대로 이해하는 데 필요한 믿을 만한 재료들을 얻기 시작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누구든 자신의 매우 좁은 전문분야를 넘어서 세계 전체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앞에서 말한 우리의 진정한 목적이 영원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면, 나는 우리들 가운데 누가 되든지 비록 어떤 것은 불완전하고 간접적인 지식일지라도, 그리고 그 때문에 이러한 작업을 하는 사람이 웃음거리가 되더라도 여러 가지 사실과 이론들을 종합하는 작업을 시작하는 것 말고는 이 딜레마에서 벗어 날 길이 없다고 생각한다.

– 슈뢰딩거, 『생명이란 무엇인가』

 

 

 

 

 

  1. 패러다임은 어떻게 변화하는가?

토마스 쿤과학 혁명의 구조

 

하버드 대학 최우등 졸업자

 

중세 시대에는 모든 지식이 진리로 인정되기 위해 종교의 권위를 빌려야 했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고자 할 때 권위 있는 증거로서 과학을 제시하고 싶어 한다. 그리하여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주장을 과학적이라고 주장하거나, 최소한 과학이 제시하는 사실들에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음을 보이려고 노력해 왔다.

그러면 과학에 대한 신뢰감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언뜻 생각해 본다면 원자 폭탄이나 여러 가지 문명의 이기들이 만들어 낸 과학의 위력에 대한 존경심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 더 따지고 들어간다면 과학에 대한 일반화된 관념과 관련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즉, ‘과학은 객관적이며 경험적으로 증명할 수 있고, 과학적 연구는 항상 엄밀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과학관이 과학에 대한 신뢰감의 밑바닥에 깔려 있다. 이러한 과학관은 전문가든 비전문가든 관계없이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적어도 1950년대 중반까지 거기에 이의를 제기한다는 것은 생각하기조차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1950년대 후반부터 이러한 과학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하다가, 1962년 토마스 쿤(Thomas Kuhn, 1922 ~ 1996)의 『과학 혁명의 구조』가 발표되면서 이 과학관에 결정적인 타격이 가해졌다. 쿤은 과학이 반드시 객관적이거나 합리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과학사 연구를 통해 제시하였다. 쿤은 실제의 과학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져 온 생각과는 달리 과학자 집단의 권위와 과학자 개인의 주관적 신념이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과학의 역사는 하나의 신념에 입각한 지배적 이론이 새로운 신념에 입각한 또 다른 이론에 의해 ‘혁명적’으로 교체되는 방식으로 발전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쿤은 미국의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에서 태어났다. 하버드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여 최우등으로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2년간 무기 연구 기관인 ‘과학 연구 및 개발 연구소(OSRD)’에서 일하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하버드 대학원으로 돌아가 다시 이론 물리학의 세계로 들어섰다. 그러나 쿤은 곧 관심분야를 바꿔 과학사와 과학 철학을 연구하면서 심리학과 언어학 그리고 사회학을 두루 섭렵했다. 36살 때인 1957년에 처음으로 과학사인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발표하였다. 이 책에서 쿤은 과거의 과학 이론들을 연구하면서 실제로 진행되었던 과학적 사실들이 당시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과학관과 전혀 다른 면모를 보여 주고 있다는 데 크게 충격을 받았다고 하였다. 쿤은 자신의 과학사에 대한 접근법을 발전시키며, 스탠퍼드 대학의 ‘행동과학 고등 연구 센터’에서 사회과학자들과 생활하며 창안한 ‘패러다임’이란 개념을 결합하여 새로운 과학 철학은 창안하였다.

그러면 패러다임이란 무엇인가? 패러다임은 어느 일정한 시대에 과학자들이 공유한 신념이나 가치, 문제 풀이 방식 등을 말한다. 쿤은 1962년에 역사적인 『과학 혁명의 구조』를 저술하였다. 이 책에서 쿤은 “과학은 누적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패러다임이 불연속적으로 교체되는 방식으로 발전한다.”라고 주장하였다. 이 책을 통해 ‘패러다임’이라는 유행어가 만들어졌다. 지금은 학문 연구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패러다임’이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다.

 

과학에서도 혁명은 일어난다

 

기존의 정치 제도가 거기서 파생되는 문재들을 해결할 수 없게 될 때 혁명이 일어나듯, 자연 과학에서도 혁명이 일어난다. 과학 혁명의 구조를 가장 단순화할 경우, 과학에서 정치, 사회 제도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패러다임’이다. 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 뉴턴의 『프린키피아』등을 예로 들면서 패러다임을 설명한다.

 

그것들의 성취는 과학 활동의 경쟁 방식으로부터 끈질긴 옹호자들의 무리를 떼어낼 만큼 전대미문의 것이었다. 동시에 모든 유형의 문제들을 연구자들의 재편된 그룹이 해결하도록 남겨놓을 만큼 상당히 융통성이 있었다. 이 두 가지 특성을 띠는 성취를 이제는 패러다임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 쿤, 『과학혁명의 구조』

 

패러다임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다. 패러다임은 특정 시기의 과학자 집단이 공유하는 문제 해결의 모델이다. 그런데 이 패러다임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증가할 경우, 혁신적인 과학자들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들고 나온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과거의 패러다임과 경쟁을 통해 과거의 것을 대체하게 된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교체가 바로 ‘과학 혁명’이다.

패러다임은 쿤의 이론에서 핵심적인 개념이다. 쿤에 따르면 대부분의 과학적 연구 활동은 새로운 이론을 탐구하는 작업이 아니라 패러다임을 적용해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작업이다. 자연 과학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의 전제에 대해 물음을 던지고 새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과학자 집단에 의해 공인된 패러다임을 전제하고, 그 위에서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한다.

쿤이 제시한 과학 혁명의 구조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전 패러다임기 – 정상 과학 – 위기 – 경쟁적 패러다임의 출현 – 과학 혁명 – 새로운 정상 과학

 

자연 과학에서 하나의 패러다임이 아니라 여러 학파들이 난립하여 경쟁하는 시기가 있다. 이를 ‘전 패러다임기’라고 한다. 그러다가 하나의 학파가 승리하여 ‘정상 과학’의 단계가 시작된다. 정상 과학은 ‘그 분야의 모든 과학자가 하나의 패러다임에 근거하여 연구 활동을 하는 과학’을 의미한다. 그런데 과학 연구를 하다 보면 기존의 이론과 맞지 않는 현상들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이때 과학자들은 패러다임을 변형시키거나 보조적인 가설을 세움으로써 기존 패러다임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현재의 패러다임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실이 증가함에 따라 기존의 패러다임은 ‘위기’ 상태가 된다. 소수의 혁신적인 과학자이 새로운 패러다임들을 제기하고, 새로운 패러다임들은 ‘기존 패러다임과 경쟁’을 벌이게 된다. 그러다가 새로운 패러다임들 중 하나가 승리하게 되면, ‘새로운 정상 과학의 시기’가 시작된다.

과학 혁명은 마치 정치 혁명처럼 기존의 패러다임이 위기 상황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체되는 과정을 가리킨다. 과학 혁명과 정치 혁명의 유사성은 또 다른 점에서도 발견된다. 정치 혁명에서 새로운 정치 체제의 선택이 논리적 합리적인 방식이 아니라 설득이나 다수의 지지에 의해 결정된다.

마찬가지로 과학 혁명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선택 또한 객관적 증거와 논리가 아니라 하나의 패러다임이 과학자 집단을 설득하여 다수의 동의를 얻음으로써 이루어진다. 쿤은 이러한 과학 혁명의 예로서,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중심이론에서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이론으로서의 변혁, 뉴턴의 역학에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으로의 변혁 등을 제시한다.

갈채받는 실증주의의 분해자

 

과학은 객관적인가? 쿤은 과학의 객관성, 합리성, 엄밀성에 비판을 가하였다. 하나의 패러다임이 과학자들 사이에서 공유되는 정상 과학의 시기 동안, 과학자들은 엄정하게 객관적인 눈으로 자연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교과서에서 습득한 세계관과 가치 기준, 그리고 문제 해결 방식에 따라 대상을 바라보고 연구한다. 과학자의 연구에는 그의 주관이 강력하게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실제 관찰에서 패러다임에 부합하지 않는 사례들이 발견되어도 초기에는 과학자 집단이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패러다임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패러다임에 부합하지 않는 사례는 기껏해야 ‘예외’로 치부되어 버릴 뿐이다.

엄정한 자연관찰과 실험을 통해서 과학적 이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귀납적 과학방법론에서나 이론을 끊임없이 반증하여 폐기할 것이냐 살려둘 것이냐를 결정하기로 한 반증주의에서나 한결같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것으로 신성시되던 과학 연구는 이쯤에서 그 신화적 광채를 잃어버린다.

쿤은 여기서 더 나아간다. 과학 연구의 대상이 되는 자연 현상조차 사람에 따라 달리 선택된다는 것이다. 바라보는 사람의 선입견과 그 사람의 시대를 지배하는 패러다임에 따라 연구하는 자연 현상이 달라지고, 그 현상 중 강조하는 측면이 달라진다. 과학자들은 주로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에 유리한 현상들만을 강조하고 불리한 현상들은 외면하려 한다.

관찰 대상의 선택에 관찰자의 주관이 영향을 미치고, 관찰자의 생각은 특정 패러다임의 지배하에 있을 때, ‘과학 연구는 과학자의 주관적인 가치관과는 별개로 경험적 관찰만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과학의 가치중립성’을 믿는 실증주의적 전통이 무너지지 않을 수 없다.

유럽의 중세가 ‘종교의 시대’로 기록되었듯, 유럽의 20세기는 ‘과학의 시대’로 기록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갈릴레이를 심판하던 중세 기독교의 영토는 유럽으로 제한되어 있었지만 과학은 전 지구에서 힘을 떨치고 있다. 이러한 20세기의 한복판에서 쿤은 ‘과학관’의 혁명가 역할을 했다. 쿤은 실중주의적 과학관이라는 견고한 체제를 전복시킨 ‘실증주의의 분해자’였다.

이제 과학을 얘기하면서 쿤을 빼놓을 수는 없게 되었다. 쿤의 연구 덕분에 과학이 반드시 객관적인 것만은 아니며 과학에도 비합리적 요소가 다소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 어느 정도 공인된 사실이 되었다. 어느 특수한 분야에서 혁명적인 사상을 제시하기란 쉽지 않다. 더욱이 그 분야를 넘어서 다른 분야들에까지 그 영향을 미치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쿤은 이 두 가지 모두를 이루었다.

 

 

홍승기
인민노련 홍보부를 담당하면서 6월 항쟁을 현장에서 이끈 숨은 일꾼. 술만 사 준다면 지옥에도 함께 들어갈 천진무구한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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