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 『지식의 고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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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현재는 과거와 관계가 없다

푸코 지식의 고고학

 

판옵티콘은 현대의 감시 구조

 

반지 모양의 원형 건물 안마당 중심에 탑이 하나 있다. 탑에는 여러 개의 큰 창문이 뚫려 있고, 지그재그의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어서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는다. 반지 모양의 원형 건물은 독방들로 나뉘어져 있다. 독방은 건물의 앞면에서 뒷면까지 차지하고 있어서 항상 빛이 통과한다. 중앙의 탑에는 감시인이 한 명 배치되어 있고, 각 독방에는 죄수가 한 사람씩 감금되어 있다. 중앙의 탑은 빛이 차단되어 있어서 감시인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할 수 없지만, 수감자들은 역광에 의해 언제나 환하게 모습이 보이도록 되어 있다.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벤담은 1791년에 설계하여 발표한 판옵티콘(panopticon)이란 감옥의 구조이다. 판옵티콘이란 말은 ‘모두’를 뜻하는 그리스어 판(pan)과 ‘본다’를 뜻하는 그리스어 옵티콘(opticon)의 합성어이다. 벤담은 한 사람의 감시인이 효율적으로 전체 죄수들을 감시할 수 있도록 판옵티콘을 고안하였다. 벤담이 판옵티콘을 고안한 목적은 죄수들에 대한 감시보다는 감옥 안에서 생길지 모를 사건, 사고를 방지하자는 것이었다. 벤담은 범죄자에 대한 처벌보다 범죄예방을 주장한 사람으로서, 판옵티콘은 벤담의 생각이 반영된 감옥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잊혔던 벤담의 판옵티콘을 푸코(M. Foucault, 1926~1984)가 다시 불러냈다. 푸코가 판옵티콘을 불러낸 목적은 벤담과 달리 현대 사회의 감시를 폭로하기 위해서였다. 푸코는 판옵티콘이 현대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감시의 구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보았다. 현대의 권력이 인터넷, 데이터베이스 등을 이용하여 개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판옵티콘에서 죄수들은 감시인을 볼 수 없어서 자신들이 감시를 당한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푸코는 현대인들이 자신들을 감시하는 권력을 볼 수 없어서 감시당하는지 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간다고 보았다.

푸코는 지성사를 연구하여 주요 개념을 뒤집어 해석함으로써 현대 사회의 권력을 폭로하고 고발하였다. 푸코는 자신이 하는 일이 “고통스럽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다.”고 하였다. 푸코는 항상 새로운 뒤집기에 도전하였다. 푸코는 “내가 누구인지 묻지 말라. 나에게 거기에 머물러 있으라고 요구도 하지 말라.”고 하였다. 자신의 사고는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계속 새로운 것을 향해 움직인다는 말이다.

푸코는 프랑스 중서부 푸아티에에서 태어났다. 푸코는 대학에서 병리학, 심리학, 정신분석학과 같은 의학 계열의 학문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였다. 그래서 철학 석사 학위뿐만 아니라 병리심리학 석사 학위도 취득을 하였고, 졸업 후에는 과학적 심리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푸코는 1968년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난 봉기에 영향을 받아 본격적으로 정치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푸코는 대학에서 병리학, 심리학, 정신분석학을 공부했지만 역사학을 기초로 철학을 하였다. 그래서 푸코를 두고 “철학자가 되기 위해 역사가가 되었다.”는 평을 하기도 한다. 1969년에 발표한 『지식의 고고학』은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책이다. 푸코는 이 책에서 전통적 역사학을 뒤집는 새로운 역사학을 제시하였다.

 

역사는 연속되지 않는다

 

푸코는 전통적인 역사학이 역사를 하나의 중심, 하나의 원리, 세계관 등과 연결시키려 한다고 하였다.

 

역사가들은 정치적 돌발사건을 다루면서 안정적이고 깨어지지 않는 평형, 항상적인 조절,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정상에 도달했다가 전복되는 경향 등 사건 속에서 복구해낸 커다란 주춧돌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이러한 분석을 위해 역사가들은 스스로 만들어낸 도구들, 예를 들면 경제적 성장 모델, 교환 유통의 양적 분석, 인구통계학적 성장과 후퇴 등을 사용하였다……역사가들은 정치적 지배, 전쟁, 기근 등으로 시끄러운 역사의 이면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는 혹은 극히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역사들을 서술했다. 항로의 역사, 식량과 금광의 역사, 가뭄과 홍수의 역사, 굶주림과 풍요 사이에서 인류가 획득해온 평형의 역사 등.

– 푸코, 『지식의 고고학』

 

푸코가 볼 때 전통적 역사학의 주요 개념은 연속성과 총체성이다. 전통적 역사학은 역사를 연속된 과정으로 다루면서 역사를 움직이는 원인, 사건의 경과 및 결과를 총체적으로 파악하고자 했다. 이런 전통적 역사학에 푸코는 문제를 제기한다. 잡다한 사건들을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 사건들은 어떻게 필연적으로 연결되는가? 연속성과 총체성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이러한 문제 제기 속에 푸코의 역사관이 드러난다. 역사를 결코 연속적이지 않다. 과거와 현재가 단절된 것이다. 따라서 역사 속에서 총체성을 발견해내려는 것은 허황된 일이다.

푸코는 당대에 새롭게 대두하고 있던 역사 연구의 한 경향에 주목하였다. 지성사, 과학사, 철학사, 사상사, 문학사 등과 같이 지식의 역사를 다루는 분야에서 새로운 경향이 나타났다. 지식의 역사를 연구하는 역사가들은 전통적인 역사가들과 다른 방식으로 연구를 하였다. 지식의 역사 연구자들은 어떤 시대에 대해 서술하려는 게 아니라 ‘비약’에 주목했다. 그래서 비약이 일어나는 우발적인 사건, 계기를 추적하였다. 비약이 일어나면 비약 이전과 이후는 완전히 다르다. 그러므로 비약은 곧 전과 후의 단절이다. 그 단절을 어떤 학자는 ‘인식론적 활동과 문턱’이라 표현하기도 하고, 어떤 학자는 ‘인식론적 단절’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푸코는 문턱이라고 표현하든 아니면 비약이라고 표현하든 ‘역사의 불연속과 단절’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푸코는 그 개념들을 받아들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푸코는 불연속과 단절을 지성사뿐만 아니라 역사 전체를 다루는 개념으로 확대하였다. 역사 연구에서 어떤 분야는 연속이고, 어떤 분야는 불연속이고 하는 식으로 왔다 갔다 해서는 안 된다. 역사는 연속되지 않는다. 따라서 역사에 대한 연구는 불연속에 대한 연구이어야 한다. 푸코는 『지식의 고고학』에서 “새로운 역사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은 아마도 불연속으로의 전회이다.”라고 말했다.

 

광기는 비정상인가

 

그러면 어떤 방법으로 역사를 연구할 것인가? 푸코는 ‘고고학’을 제안하였다. 고고학은 “과거 인류들이 남긴 물질적인 자료를 통해 당시의 문화, 즉 행위, 사회적 조직, 이념 등을 복원하고, 과거 인류의 문화가 어떻게 그리고 왜 변화되었는지 연구하는 학문”이다. 고고학에서 중요한 물질적 자료는 텍스트이다. 푸코는 자신의 방법을 한 마디로 요약하여 “텍스트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텍스트 연구가 텍스트의 해석이 아니라 텍스트의 가공으로 변질되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역사학이란 분야가 생긴 이래 사람들은 텍스트를 이용하고 조사하며 텍스트가 의미하는 것뿐만 아니라 텍스트가 진짜인지 가짜인지에 대해서도 연구하였다. 그렇게 해서 텍스트가 말해주는 바에 따라 과거를 재구성하고자 했다. 그러나 텍스트에 대한 입장이 바뀌기 시작했다. 텍스트는 해석의 대상이 아니라 역사를 가공하고 정교화 하는 수단으로 되었다. 역사가들은 텍스트를 통해 통일성, 집합, 관계를 정의하고자 한다.

– 푸코, 『지식의 고고학』

 

푸코는 텍스트가 역사 연구의 바람직한 도구가 아니라고 말한다. 텍스트에 의존하면 역사가 방대한 텍스트를 정교화 하는 일이 되어버린다. 푸코는 텍스트 이외의 것, 예를 들면 감옥, 병원 등과 같이 말없이 서 있는 과거의 흔적을 찾아 그것들을 고고학적 방법으로 역사를 새롭게 인식하고자 하였다. 특히 푸코는 유럽의 르네상스 이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집중적으로 연구하였다. 연구의 목적은 과거와 오늘이 단절되는 지점을 찾는 것이었다.

푸코는 현재를 과거와 단절시키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그 이유는 현재의 권력이 과거를 이용해 현재를 정당화 하려 하기 때문이다. 푸코는 『광기의 역사』를 통해 ‘이성’이란 말이 가진 위험성을 폭로하였다. 고대 그리스 이래로 광기는 창조성과 관계있는 것으로 중요시되어 왔다. 플라톤은 “광기는 신이 준 것 중 가장 좋은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광기는 오늘날 정신병 현상으로 격리와 치료의 대상이 되었다. 푸코는 르네상스 이후의 역사를 분석하여 광기가 어떻게 배제되고 억압되었는지를 밝혔다. 르네상스 시대에 광인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지닌 사람으로 이해되었다. 17~18세기에 이르러 이성과 광기 사이의 관계에 근본적인 변형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성과 비이성을 구분하면서부터 광기가 배제되었다. 배제의 실행이 광인으로 몰린 사람들을 대대적인 감금하는 것이었다. 광기는 이성으로부터 일탈로 규정되었다. 광기의 정의는 단지 ‘이성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이성을 어떻게 정의되느냐에 따라 광기에 대한 정의가 달라진다. 광기는 이성이 아닌 비이성으로 정의되기도 하고, 정상이 아닌 비정상으로 정의되기도 하였다. 이것이 오늘날 흔히 사용하는 정상과 비정상이란 말이 생겨난 역사이다.

푸코는 광기의 역사를 통해 이성은 ‘광기가 아닌 것’에 불과함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이성에 대한 맹신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그 맹신을 이용하여 정상과 비정상을 갈라 유지하려는 현재의 권력을 폭로하고자 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역사에서도 이런 사례는 무수히 발견된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권력자들은 광주시민들을 비이성적 폭도, 즉 광기어린 집단이라 매도하지 않았는가.

푸코가 현재를 과거와 단절시키고자 하는 이유는 현재의 역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현재에 발생하고 있는 억압, 편견 등은 현재의 권력에서 생겨난 것이다. 권력은 과거를 들추며 자신들을 정당화하려고 하지만, 현재의 문제는 현재에 생긴 것이다. 푸코에서 있어 역사 단절은 역사의 부정이 아니라 역사의 발전을 위한 것이다.

홍승기
인민노련 홍보부를 담당하면서 6월 항쟁을 현장에서 이끈 숨은 일꾼. 술만 사 준다면 지옥에도 함께 들어갈 천진무구한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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