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스트로스 『슬픈 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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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지막 남은 원주민들의 발버둥

레비스트로스 슬픈 열대

 

지적 자서전을 쓰다

 

나는 여행이란 것을 싫어한다. 또 탐험가들도 싫어한다. 그럼에도 지금 나는 나의 여행기를 쓸 준비를 하고 있다. 내가 여행기를 쓸 결심을 할 때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브라질을 떠나온 지도 15년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이 책을 쓸 생각을 수없이 해봤다. 그러나 그때마다 부끄러움과 혐오감이 들어서 그만두었다. 무엇 때문에 그 시시콜콜하고 무미건조한 사실과 사건들을 자세하게 기록해야 한다는 말인가.

레비-스트로스(C. Levi Strauss, 1908~2009)는 『슬픈 열대』를 이렇게 시작했다. 레비-스트로스는 무엇을 부끄러워하고, 무엇에 대해 혐오감을 가졌을까? 『슬픈 열대』는 결코 시시콜콜하고 무미건조한 사실과 사건들의 기록이 아니다. 레비-스트로스는 이 책을 통해 소위 문명인이 얼마나 부끄러운 존재인지, 그리고 문명이 얼마나 혐오스러운지를 보여준다. 레비-스트로스가 책의 시작을 이렇게 한 이유는 슬픔과 비관이 교차하였기 때문이다.

레비-스트로스는 1908년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와 삼촌이 모두 화가였고 할아버지가 유대교 율법 선생으로서 교회를 관리하였기 때문에, 레비-스트로스는 어려서부터 교회의 벽화, 성화, 명화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 또한 일찍부터 그림, 조각, 골동품 등을 수집하였기 때문에 그림에 대한 안목과 식견을 가질 수 있었다. 레비-스트로스는 파리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여 23살 때 철학 교수 자격시험에 최연소자로 합격하였다. 대학 졸업 후 국립 중 고등학교에서 근무를 하다 28살 때인 1935년에 선배의 소개로 브라질의 상파울루 대학 사회학 교수로 취임하게 되었다. 레비-스트로스는 브라질에 체류하는 동안 주말이나 방학을 이용하여 아마존 강 유역의 원주민 사회를 답사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원주민들과 접촉하면서 인류학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1936년에는 인류학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레비-스트로스는 영국과 프랑스 간의 통역 장교로 근무했다. 그러나 프랑스가 독일에 패배하자 미국으로 망명하여 연구 생활을 하였다. 1950년에 파리 대학의 고등 연구원 6분과의 연구 교수로 취임한 이래 레비-스트로스는 짧은 기간 동안 아시아 지역을 여행한 것을 제외하고는 연구와 저술 활동에 몰두했다.

『슬픈 열대』는 레비-스트로스가 브라질에 체류하였던 1937년부터 1938년까지의 기간 중에 브라질 내륙 지방에 살고 있던 카두베오 족, 보로로 족, 나비콰라 족, 투비 카와히브 족 등 4개의 원주민 부족에 대해 쓴 글이다. 이 책에서 4개 부족에 대한 기록뿐만 아니라 레비-스트로스 자신의 사상적 편력과 청년기 체험, 그리고 자신이 왜 민족학자가 되었는가 하는 내용 등이 포함되어 있어, 레비-스트로스의 지적 자서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레비-스트로스는 『슬픈 열대』를 브라질을 떠난 지 15년 뒤에야 썼다.

 

해체과정을 연구하는 학문

 

레비-스트로스는 본래 철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레비-스트로스는 의식에 대한 일종의 심미적 명상에 몰두하는 그 당시의 철학적 연구 풍토에 회의를 느꼈다. 그래서 법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법학에서도 어떤 뚜렷한 학문적인 객관적 근거를 발견할 수 없었다. 이런 지적 갈등 끝에 레비-스트로스는 인류학을 통해 비로소 지적 만족감을 얻을 수 있었다. 레비-스트로스는 인류학에서 자신의 역사가 세계의 역사와 결합하고, 자신과 세계가 공유한 동기를 해명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인간의 다양한 습관, 태도, 제도를 연구하는 인류학을 통하여 자신의 삶과 성격을 조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레비-스트로스는 브라질로 건너가 원주민 사회와 직접 접촉하면서 인류학적 조사를 하였다. 인류학이 가져다주는 만족감에 대해 레비-스트로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류학은 나에게 지적 만족을 가져다준다. 인류학은 세계의 역사와 나의 역사라는 양극을 결합시켜, 인류와 나 사이에 공통되는 근거를 동시에 드러내 보인다. 인류학은 나로 하여금 인간을 연구하도록 함으로써 나의 회의를 덜어 주었다. 어떤 한 문명에만 집착해서 그 문명 바깥으로 나가게 되면 자기붕괴를 일으키고 말 사람들을 제외하고, 모든 인간들에게 관련되는 변화와 차이를 인류학이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학은 풍속, 습관, 제도 등 다양한 것들에 대한 무한한 자료를 나의 사고에 제공하여 주었고, 나의 불안과 파괴적인 갈망을 가라앉혀 주었다. 인류학은 나의 성격과 생활을 융화시켜 주는 것이다.

– 레비-스트로스, 『슬픈 열대』

 

그러나 인류학은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 나오는 것과 같은 모험이 아니다. 인류학적 탐구는 원시림 한 가운데에서 예상치 않게 겪게 되는 굶주림, 피로, 질병을 이겨내는 인내의 작업이었다. 이런 인내의 작업을 한 결과 레비-스트로스는 무엇을 발견했을까? 레비-스트로스는 원주민 사회가 해체되고 있음을 목격했다. 원주민 사회가 소위 문명사회와 접촉하면서 변질되고 있었다. 원주민 사회의 변질은 원주민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유럽 문명이 원주민 사회를 파괴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었다. 레비-스트로스는 유럽 문명의 침략성에 분노했다. 또한 레비-스트로스는 인류학이 원주민 사회의 해체를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한탄하였다.

 

열대가 슬픈 이유

 

레비-스트로스는 자신의 브라질 현지 조사가 바로 해체과정을 찾아 지구의 끝에까지 갔던 것이라 생각했다. 레비-스트로스는 현지 조사를 마치면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나는 루소가 말한 자연 상태를 찾아 지구의 끝에까지 갔다. 나는 보로로 족과 카두베오 족의 복잡한 사회의 베일 뒤에서 우리의 현재 상태를 적절히 판단하기 위해 정확하게 알아야 하는 어떤 상태를 찾으려고 애썼다. 루소는 그 상태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어쩌면 존재한 일조차 없거나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루소보다 운이 좋아서인지 거의 소멸 직전에 있던 한 사회 속에서 그와 같은 상태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사회가 루소가 마음속에 지니고 있던 사회의 흔적을 나타내 주는 것인지 아닌지를 묻는 일은 쓸데없는 짓일 것이다. 그 사회가 전통적인 모습 그대로이든 아니면 타락해 버린 모습이든 간에, 나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사회 및 정치 조직 가운데 가장 빈약한 한 조직과 접할 수 있었다. 나는 그 사회의 역사를 탐구할 필요가 없었다. 즉, 그 사회가 원초적인 상태로 유지되고 있는지 아니면 원초적이지 않은 상태로 변화했는지를 알아볼 필요가 없었다. 단지 내 눈앞에서 전개되고 있는 변화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나는 가장 단순한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사회를 찾아다녔다. 나는 나비콰라 족의 사회에서 오직 인간만을 발견할 수 있었을 정도로 단순한 사회를 발견하였다.

– 레비-스트로스, 『슬픈 열대』

 

『슬픈 열대』에는 원주민 사회에서 느낀 비애감이 우울하게 표현되어 있다. 레비-스트로스는 광대한 열대가 이미 황폐해지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그곳의 자연은 풍요롭지 못하며, 원주민들은 생존의 한계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도기 제조나 직조의 기술을 습득하지 못한 부족에게 선교사, 대농장 지주, 식민주의자, 정부기관의 직원 등이 유럽 문명을 침투시켜, 원주민 사회의 미묘한 균형을 깨뜨리고 있었다.

레비-스트로스는 유럽 사회가 자신의 기준으로 다른 사회를 재단하려는 태도에 반대한다. 레비-스트로스는 유럽 사회의 관점에서 원주민 사회가 야만적이라고나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하였다. 원주민 사회는 유럽 사회와 다른 하나의 사회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더 우월한 사회란 없다. 레비-스트로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약 누군가가 자신들의 사회를 다른 사회와 연관 지어 평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사회가 다른 모든 사회들보다 더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주장 뒤에는 말장난이 있을 뿐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회를 신비화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원주민 사회를 언급하는 우리가 원주민 사회를 신비화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고고학과 인류학의 조사에 따르면 어떤 문명들은 우리들이 아직까지 고심하고 있는 문제들을 가장 훌륭하게 해결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 레비-스트로스, 『슬픈 열대』

『슬픈 열대』의 주제는 복합적이다. 문명에 대한 비판이 나타나는가 하면 이국적인 것에 대한 환멸도 나타난다. 그리고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탐구도 들어 있다. 레비-스트로스는 이 모든 문제들에 대해 비관적인 어조로 지적 초탈과 정신의 평정을 강조한다. 레비-스트로스가 볼 때 악의 기원은 바로 문명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신비스러운 조화의 구조를 가졌던 원시적 과거가 눈앞에서 파괴되고 소멸해가고 있는 것을 목격하였다. 그래서 이제 마지막 남은 원주민들이 자신들의 삶을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열대는 슬픈 것이다.

 

 

 

 

 

 

 

 

 

인민노련 홍보부를 담당하면서 6월 항쟁을 현장에서 이끈 숨은 일꾼. 술만 사 준다면 지옥에도 함께 들어갈 천진무구한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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