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람시 『옥중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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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헤게모니를 잡아라

그람시 옥중수고

 

멈추지 않은 두뇌

 

“우리는 이 자의 두뇌가 작동하는 것을 20년 동안 중지시켜 놓아야 한다.”

1928년 검사는 그람시(A. Gramsci, 1891~1937))에게 중형을 요구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그람시는 20년을 채우기 훨씬 전에 감옥이 아니라 병원에서 감시를 받으며 사망하였다. 그리고 검사는 그람시의 두뇌가 작동하는 것을 중지시키려 했지만, 육체가 살아 있는 한 그람시의 두뇌는 작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람시는 감옥에서 서서히 기력이 다했지만 총 2,848쪽에 달하는 방대한 필사본을 남겼다. 이 필사본은 그람시가 마지막으로 수감되었던 병원에서 빠져나와 이탈리아 국경을 넘어 오늘날 우리들에게 『옥중수고』라는 제목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람시는 이탈리아 사르디니아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공금횡령죄로 구속되는 바람에 생활이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건강도 좋지 않았다. 척추가 잘못되어 의사가 천장에 장시간 거꾸로 매달아 치료하는 등 노력을 하였지만 그람시는 커서 곱사등이 되고 말았다. 또한 어릴 적부터 정신 질환을 앓았다. 그람시는 8살 때 초등학교에 들어갔지만 초등학교 교육이 끝나기도 전 2년 동안 돈을 벌기 위해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 아버지가 석방된 후 다시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어 18살 때 고등학교에 진학하였다.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형과 함께 하숙을 하게 되었는데, 형이 보여주는 사회주의 관련 팸플릿을 읽으면서 그람시는 정치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또한 당시 사르디니아 지방을 휩쓴 사회적 저항운동에 영향을 받아 그람시는 일찍부터 정치의식에 눈을 떴다.

그람시는 21살 때 장학금을 받고 튜린 대학에 진학했지만, 장학금 액수가 너무 적어 항상 추위와 영양 결핍에 시달려야 했다. 그로 인해 2년 간 심한 병고에 치르기도 했다. 그람시는 철학과 언어학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고, 교수들도 그람시의 재능에 대해 많은 격려를 하여주었다. 그러나 그람시는 가난과 질병으로 대학을 중퇴하였다. 이 무렵에 그람시는 이탈리아 사회당에 가입하였다. 그리고 27살 때인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다. 러시아 혁명은 유럽은 물론 전 세계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러시아 혁명의 영향을 받아 레닌주의에 충실한 세력들이 이탈리아 사회당을 탈당하여 이탈리아 공산당을 결성하였다. 그람시도 공산당에 참여하였는데 1924년부터 공산당의 실질적인 지도자가 되었다.

1922년에 무솔리니를 필두로 하는 파시스트 세력들이 정권을 잡고 독재 정치를 강화하였다. 공산당은 파시스트 세력들의 표적이었다. 1926년 10월 31일, 15살 된 소년이 무솔리니의 생명을 노렸다는 사실이 발표되었다. 사실 여부조차 확인 안 된 이 사건을 빌미로 파시스트 세력들은 탄압을 더욱 강화하였다. 공산당은 그람시에게 망명을 권유하였다. 그러나 그람시는 망명 권유를 거절하였다. 그 당시의 심경에 대해 그람시는 옥중에서 쓴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선장은 배가 난파되었을 때 자신의 배를 떠나는 최후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배를 탔던 다른 모든 사람들이 무사하게 내린 후에만 배를 떠날 수 있다……그러한 규범 없이 집단생활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런 규범이 없다면 아무도 자신의 생명을 남의 손에 맡겨야 하는 책무를 지거나 수행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그람시, ‘옥중편지’ 중에서

 

당시 그람시는 국회의원의 신분이었지만 파시스트 세력들은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을 무시하고 그람시를 즉각 체포하였다. 체포되어 구속된 직후부터 그람시는 『옥중수고』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감옥이라는 열악한 환경에서 24시간 감시를 당하고 있었고, 동맥경화, 폐결핵, 척추결핵, 고혈압, 협심증, 통풍, 위장 장애 등 온갖 병이 복합적으로 재발하여 글쓰기 작업은 매우 더디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현대의 ‘군주’, 정당

 

그람시는 감옥에서 처형에게 보낸 편지에서 “무언가 몰입할 수 있고 내 자신의 내적인 삶에 초점을 줄 수 있는 어떤 영원한 것을 쓰고자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감옥은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지 않았다. 계속적인 감시와 검열을 당해야 했고, 받아볼 수 있는 책의 종류 역시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여기에 여러 가지 질병이 복합적으로 재발하면서 글쓰기 작업은 중단되기 일쑤였다. 이런 악조건으로 인해 『옥중수고』는 완결된 형태의 저서가 되지 못하였다. 완결된 논문이 있는가 하면, 그때그때 생각나는 것을 메모해둔 정도의 것도 들어있다. 『옥중수고』가 다루고 있는 분야는 대단히 방대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철학, 문학 등 인문, 사회과학의 거의 전 분야를 포괄하고 있다. 그중에서 그람시가 가장 관심을 두었던 분야는 정치였다.

그람시는 묻는다. 러시아에서는 혁명이 가능했는데 왜 서유럽에서는 혁명이 일어나지 않을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그람시는 『옥중수고』에서 이탈리아의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의 저서에 대한 주석부터 시작하였다. 그람시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대해 “체계적인 논술이라기보다 정치 이념과 정치 과학이 극적인 형태로 혼합되어 있는 생동감 있는 작품”이라고 평가하였다. 그람시가 마키아벨리로부터 시작한 이유는 마키아벨리와 마찬가지로 정치학을 독립된 학문으로 정립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정치를 경제라는 토대 위에 서 있는 상부 구조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여, 정치를 독립된 영역으로 다루지 않았다. 그람시는 이런 사고에서 탈피하여 “상부 구조 중의 한 특별한 수준으로서 정치 활동의 변증법적 위치를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그람시는 정치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지배자와 피지배자, 지도자와 피지도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들었다. 이런 사실로부터 그람시는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으로 피지도자들을 지도할 수 있을까, 또 효율적인 지도를 위해 지도자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그리고 피지도자 혹은 피지배자의 복종을 확보하고자 할 때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는 노선 혹은 가장 합리적인 노선은 무엇인가.”를 고민하였다.

그람시의 고민은 정당의 문제, 즉 공산당의 문제와 연관된 것이었다. 정당은 현대의 ‘군주’이다. 현대의 군주인 정당이 어떻게 대중을 지도하여 이탈리아 사회의 근본적인 변혁을 이룰 수 있을까? 그람시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통해 사회 변혁을 위한 새로운 전략을 제시하였다.

 

전략을 변경하라

 

그람시는 국가와 시민 사회를 구분하였다. 그람시는 “국가는 성을 둘러싼 외곽에 불과하다. 국가의 뒤에는 요새와 같은 강력한 체계가 버티고 있다.”고 하였다. 그 강력한 체계가 바로 시민 사회이다. 국가는 시민 사회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다. 헤게모니는 지배에 있어 강제와 동의의 결합을 특징으로 한다. 국가는 군대, 경찰 등 물리력을 동원하여 강제에 의한 지배도 하지만 시민 사회로부터 동의도 얻고 있다. 그러므로 국가가 헤게모니적 지배를 하고 있는 한 국가를 일거에 무너뜨릴 수 없다. 그람시는 서유럽 사회의 특징을 이렇게 파악하였다.

그람시는 서유럽 사회의 특징으로 인해 서유럽에서의 혁명이 러시아 혁명과 다를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당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러시아 혁명의 예에 따라 노동자, 농민이 일거에 일어나 구체제를 타도하고 정권을 잡는 혁명이 서유럽에서도 가능하다고 믿고 있었다. 이런 방식의 혁명을 그람시는 군사 개념을 도입하여 ‘기동전’이라 하였다. 그람시는 서유럽에서는 기동전이 어렵다고 보았다.

 

적어고 가장 발전한 나라들의 경우, 정치 기술과 정치학에 있어서 동일한 격하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들 나라에서는 ‘시민 사회’가 직접적인 경제적 요소(공황, 불황 등)의 파국적 ‘기습’에 저항할 수 있는 복합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카도르니즘이 기대한 것과 같은 속도, 가속된 시간, 결정적 진군의 요소를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 그람시, 『옥중수고』

 

카도르니즘이란 자신이 지도하는 사람들의 동의를 얻기 위한 노력을 조금도 하지 않는 권위주의적 지도자 카도르나의 이름에서 온 말이다. 기동전이 어렵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람시는 새로운 전략의 개념으로 ‘진지전’을 제시하였다. 진지전은 “대립하는 기본 계급들 사이에 상대적으로 안정된 균형이 성립된 시기, 다시 말하여 정면 공격이나 기동전이 불가능한 시기에 가능한 유일한 투쟁형태”라는 것이다. 서유럽에서는 러시아와 달리 국가에 대한 정면 공격에 대해 시민 사회가 저항하기 때문에, 혁명을 하려면 먼저 시민 사회를 정복해야 한다. 이것이 그람시가 제시한 진지전이다. 진지전은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전략이 아니다. 그람시는 이렇게 말했다.

 

한 사회의 집단은 통치 권력을 획득하기 이전에 이미 ‘지도’를 행할 수 있으며 또 행해야 한다. 이것은 권력을 획득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조건들 중의 하나이다.

– 그람시, 『옥중수고』

 

진지전은 혁명이 있기 이전에도 사회의 일부분을 실질적으로 지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적극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람시의 사상은 사회의 변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그람시로부터 사회의 변화와 변혁에 관한 전망을 얻고자 하였다. 그람시가 제시한 시민 사회, 헤게모니, 진지전 등의 개념이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연구, 검토되고 있는 이유이다.

 

 

 

 

 

홍승기
인민노련 홍보부를 담당하면서 6월 항쟁을 현장에서 이끈 숨은 일꾼. 술만 사 준다면 지옥에도 함께 들어갈 천진무구한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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