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토피아를 설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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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 유웨이 『대동서(大同書)』
변법을 꿈꾸다
대도가 행해진 세상에는 천하가 모두 만인의 것이다. 사람들은 현명한 이와 능력 있는 이를 선출하여 관직을 맡게 하고, 온갖 수단을 다하여 서로 간의 신뢰와 친목을 두텁게 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각자의 부모만을 부모로 섬기지 않고, 각자 자기 자식만을 자식으로 여기지 아니한다. 노인에게는 생애를 편안히 마치게 하며 장정에게는 충분한 일을 주고, 어린아이는 마음껏 성장할 수 있게 한다. 고아와 과부, 불구자 등에게는 고생 없는 생활을 하게 하고, 성년 남자에게는 직분을 주며, 여자에게는 적합한 남편을 갖게 한다. 재화가 헛되이 낭비되지 않게 하고, 재화를 사사로이 독점하지 않게 한다. 사람의 몸에서 힘이 나오지만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힘을 쓰지 않는다. 모두가 이런 마음가짐이기 때문에 모략이 있을 수 없고 절도나 폭력도 없으며, 아무도 문을 잠그는 일이 없다. 이러한 세계를 ‘대동’이라 말한다.
『예기』의 ‘예운’ 편에 공자가 그리는 이상사회인 ‘대동사회’에 대한 내용이다.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사람들은 이상사회를 꿈꾼다. 1840년에 있었던 중국과 영국 사이의 아편전쟁을 계기로 중국은 몰락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서유럽 제국주의 세력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백성의 삶은 더욱 어려워졌다. 이러한 때 캉 유웨이(康有爲, 1858~1927)는 공자가 그린 이상사회를 실현하자고 주장하고 나섰다.
캉 유웨이는 중국 광동성 남해현에서 태어났다. 성리학을 대대로 전수해온 집안의 전통에 따라 어려서부터 중국의 고전과 작문을 배웠다. 18살 때 캉 유웨이는 할아버지의 친구인 주구강의 문하생이 되어 3년 동안 역사학, 철학 등 중국의 고전에 대해 광범위한 학습을 하였다. 훗날 캉 유웨이의 수제자인 량 치차오는 캉 유웨이가 이 3년 동안 공부하면서 중국 사상에 대한 학문적 기초를 완전히 닦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캉 유웨이는 성리학 이외에도 불교와 양명학 등 다양한 사상의 책을 읽어 사상의 폭을 넓혔다.
어느 날 캉 유웨이는 영국 지배하에 있었던 홍콩에 놀러 가게 되었다. 홍콩에서 캉 유웨이는 거리의 장관과 질서정연함에 큰 감명을 받아, 이때부터 유럽 문물에 대해 새로운 인식하게 되었다. 또한 25살 때 과거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상해를 둘러보게 되었다. 이때에도 유럽 문물에 대해 크게 감동을 받아 유럽에 대한 책을 구입하여 돌아와 깊이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유럽에 대한 서적을 연구하면서 캉 유웨이는 커다란 사상적 변화를 겪게 되었다. 당시 중국에서는 양무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양무운동은 유럽의 기술 문명만 도입하자는 주장이었다. 캉 유웨이는 양무운동이 가진 한계를 인식하게 되었고 더 과감하게 유럽 문물을 수입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중국의 전통적인 정치, 사회 제도를 변혁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캉 유웨이의 변혁사상을 한자로는 ‘변법(變法)’이라고 한다. 법 자체를, 즉 제도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는 말이다. 캉 유웨이가 모델로 삼은 것은 일본의 명치유신과 표트르 대제의 근대화 정책이었다.
캉 유웨이는 1888년 이래 여덟 차례에 걸쳐 부국, 양민, 교민, 외교, 관제 개혁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친 부국강병책을 젊은 황제 광서제에게 올렸다. 그리고 제자 량 치차오와 함께 만국공보, 중외기문, 시무보 등의 신문을 발행하고, 강학회, 보국회 등 정치 단체를 조직하여 변법운동을 위한 계몽과 선전, 정치 활동을 맹렬히 전개했다. 캉 유웨이는 1898년 6월에 광서제와 면담을 계기로 광서제의 신임이 얻어 개혁을 추진했다. 이것이 무술변법이다. 그러나 무술변법은 곧 벽에 부딪혔다. 기득권 세력이 강력히 반발하였고, 서태후가 정변을 일으켜 광서제를 유폐시키고 무술변법을 추진한 세력들을 처형했다. 다행히 캉 유웨이는 일본 영사의 도움을 받아 일본으로 망명할 수 있었다. 일본으로 망명한 이후에도 캉 유웨이는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입헌 군주제’를 중심으로 한 개혁 운동을 계속하였다.
『대동서』는 1919년에 출판되었지만, ‘서문’에 의하면 캉 유웨이는 37살 때인 1884년에 초고를 완성하였다고 한다. 『대동서』는 공자가 그린 이상사회인 대동사회를 현실에서 실현하기 위한 청사진을 그려 보인 책이다.
사회는 필연적으로 발전한다
『대동서』의 각 부 제목을 보면 이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제1부 ‘인간이 세상에서 느끼는 모든 괴로움’, 제2부 ‘국경 없이 세계를 하나로’, 제3부 ‘계급 차별 없는 평등한 민족으로’, 제5부 ‘남녀 차별 없는 평등의 보장’, 제6부 ‘가족 관계가 없는 천민으로’, 제9부 ‘인간과 짐승의 구별을 없애 모든 생명체를 사랑한다’, 제10부 ‘괴로움이 없는 극락의 세계로’ 등. 각 부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캉 유웨이는 이상 세계를 그려보고자 했다.
『대동서』의 사상은 하휴의 ‘3세설’과 『예기』 ‘예운’ 편의 ‘대동사상’을 바탕으로 하였다. 하휴는 한나라 시대의 학자로 공자가 지었다는 역사서인 『춘추』를 해설하면서 ‘3세설’을 주장하였다. 3세란 난세, 승평의 세계, 태평의 세계를 말하는데,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공자의 이상은 ‘태평스러운 세상’을 실현하는 것이다. 그것은 천하가 한 가족과 같아서 대립이 없는 평화롭고 안락한 세상이다……중국 사회는 먼저 ‘난세’에서 시작되고, 이어 조금 평화롭게 되는 ‘승평’의 세계가 되며, 다시 더 나아가 ‘태평’의 시대에 이르게 된다……공자는 『춘추』의 기사문을 빌려 제1기를 난세의 시대, 제2기를 승평의 시대, 제3기를 태평의 시대라고 했다. 그리고 각 시대에 대응하여 기사문의 필법을 달리했다……제1기에는 난세적인 기사를 많게 하여 대립이 격렬하고 다툼과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제2기에서는 평화적인 기사를 많이 게재하여 다툼과 싸움이 감소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제3기는 태평의 단계에 이른 시기로 대립이나 갈등 같은 것이 거의 사라진 상태를 나타내는 필법이 사용되고 있다.
– 하휴, 『춘추공양해고(春秋公羊解詁)』
하휴의 ‘3세설’은 독특한 역사 이론이다. 하휴는 인간의 역사가 난세의 시대에서 승평의 시대로, 그리고 마침내는 태평의 시대로 발전한다고 했다. 『춘추』에서 공자가 주장한 바 없지만 하휴는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여 하나의 역사 이론으로 제시하였다. 하휴가 말하고자 한 것은 사회가 필연적으로 발전하여 이상사회에 이른다는 것이다.
캉 유웨이는 하휴의 필연적 발전설을 받아들였다. 캉 유웨이는 다음과 같이 썼다.
세계는 현재 난세의 단계로 국제적 국내적으로 대립과 투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 주된 원인은 사람들이 가족이나 친척, 그리고 민족과 같은 의식에 사로잡혀 개인적인 혹은 단체적인 이기심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그러나 사회 진화의 방향은 필연적으로 정해져 있다. 먼저 국내적 국제적으로도 나뉘어 서로 싸우는 사태가 빈번했던 ‘난세의 시대’가 있고, 이어 협조적인 연합 국가의 시대, 즉 ‘승평의 시대’로 나아가고, 마침내는 『예기』에서 말하는 ‘대동의 시대’에 이르게 된다.
– 캉 유웨이, 『대동서』
캉 유웨이는 ‘대동의 시대’라고 했는데, 이것은 하휴가 말한 ‘태평의 세계’와 같다.
대동사회를 이루려면
캉 유웨이는 하휴의 3세설에 『예기』에서 말한 ‘대동사회’를 결합하여 자기만의 대동설을 주장하였다. 대동설은 이상 사회의 청사진이다. 즉, 대동사회를 현실화하기 위한 계획이었다. 대동설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대동 시대의 출현을 촉진시키고 또 대동 평화의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규제를 필요로 한다. 대동 시대를 방해하는 것은 인간의 이기심이고, 이기심은 가족 제도로 인해 나타난다. 따라서 가족 제도를 없애고, 또 개별 국가도 없애야 한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국가는 없어지고, 전 세계는 하나의 총 정부를 세우며, 약간의 지역 구분만을 한다. 총 정부와 지역 정부는 모두 민선에 의하여 구성한다……가족은 없어지고, 남녀의 동거는 1년을 넘어서는 안 되며, 기간이 차면 배우자를 바꿔야 한다. 부녀가 임신하면 태교원에 들어가고, 아기가 태어나면 영아원에서 키운다……어린이는 자라는 데 따라 유치원 및 각급학교에 입학한다. 성년이 되면 정부는 농업, 공업 등의 생산 분야에 각기 파견하여 종사케 한다……병이 들면 병원에, 늙으면 양로원에 들어간다. 태교 시설, 육아 시설, 유치원, 병원, 양로원 등은 모두 최고의 시설을 갖추고, 각 시설 이용자는 최고의 복지 혜택을 누리게 한다. 성년의 남녀는 반드시 이들 제 기관에서 수년간 의무 복무를 해야 한다……공공의 기숙사와 대중식당을 설치하되 등급을 두어 각기 수입에 따라 자유로이 즐기도록 한다……게으름을 경계하고 게으른자는 엄벌에 처한다……학술상 새로운 발명자와 태교원 등 5개 기관의 특별 유공자는 포상한다.
이상이 대동사회를 이루기 위해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구체적인 임무이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가? 캉 유웨이의 이상사회는 이루어지겠는가?
변법을 꿈꾸다
대도가 행해진 세상에는 천하가 모두 만인의 것이다. 사람들은 현명한 이와 능력 있는 이를 선출하여 관직을 맡게 하고, 온갖 수단을 다하여 서로 간의 신뢰와 친목을 두텁게 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각자의 부모만을 부모로 섬기지 않고, 각자 자기 자식만을 자식으로 여기지 아니한다. 노인에게는 생애를 편안히 마치게 하며 장정에게는 충분한 일을 주고, 어린아이는 마음껏 성장할 수 있게 한다. 고아와 과부, 불구자 등에게는 고생 없는 생활을 하게 하고, 성년 남자에게는 직분을 주며, 여자에게는 적합한 남편을 갖게 한다. 재화가 헛되이 낭비되지 않게 하고, 재화를 사사로이 독점하지 않게 한다. 사람의 몸에서 힘이 나오지만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힘을 쓰지 않는다. 모두가 이런 마음가짐이기 때문에 모략이 있을 수 없고 절도나 폭력도 없으며, 아무도 문을 잠그는 일이 없다. 이러한 세계를 ‘대동’이라 말한다.
『예기』의 ‘예운’ 편에 공자가 그리는 이상사회인 ‘대동사회’에 대한 내용이다.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사람들은 이상사회를 꿈꾼다. 1840년에 있었던 중국과 영국 사이의 아편전쟁을 계기로 중국은 몰락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서유럽 제국주의 세력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백성의 삶은 더욱 어려워졌다. 이러한 때 캉 유웨이(康有爲, 1858~1927)는 공자가 그린 이상사회를 실현하자고 주장하고 나섰다.
캉 유웨이는 중국 광동성 남해현에서 태어났다. 성리학을 대대로 전수해온 집안의 전통에 따라 어려서부터 중국의 고전과 작문을 배웠다. 18살 때 캉 유웨이는 할아버지의 친구인 주구강의 문하생이 되어 3년 동안 역사학, 철학 등 중국의 고전에 대해 광범위한 학습을 하였다. 훗날 캉 유웨이의 수제자인 량 치차오는 캉 유웨이가 이 3년 동안 공부하면서 중국 사상에 대한 학문적 기초를 완전히 닦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캉 유웨이는 성리학 이외에도 불교와 양명학 등 다양한 사상의 책을 읽어 사상의 폭을 넓혔다.
어느 날 캉 유웨이는 영국 지배하에 있었던 홍콩에 놀러 가게 되었다. 홍콩에서 캉 유웨이는 거리의 장관과 질서정연함에 큰 감명을 받아, 이때부터 유럽 문물에 대해 새로운 인식하게 되었다. 또한 25살 때 과거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상해를 둘러보게 되었다. 이때에도 유럽 문물에 대해 크게 감동을 받아 유럽에 대한 책을 구입하여 돌아와 깊이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유럽에 대한 서적을 연구하면서 캉 유웨이는 커다란 사상적 변화를 겪게 되었다. 당시 중국에서는 양무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양무운동은 유럽의 기술 문명만 도입하자는 주장이었다. 캉 유웨이는 양무운동이 가진 한계를 인식하게 되었고 더 과감하게 유럽 문물을 수입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중국의 전통적인 정치, 사회 제도를 변혁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캉 유웨이의 변혁사상을 한자로는 ‘변법(變法)’이라고 한다. 법 자체를, 즉 제도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는 말이다. 캉 유웨이가 모델로 삼은 것은 일본의 명치유신과 표트르 대제의 근대화 정책이었다.
캉 유웨이는 1888년 이래 여덟 차례에 걸쳐 부국, 양민, 교민, 외교, 관제 개혁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친 부국강병책을 젊은 황제 광서제에게 올렸다. 그리고 제자 량 치차오와 함께 만국공보, 중외기문, 시무보 등의 신문을 발행하고, 강학회, 보국회 등 정치 단체를 조직하여 변법운동을 위한 계몽과 선전, 정치 활동을 맹렬히 전개했다. 캉 유웨이는 1898년 6월에 광서제와 면담을 계기로 광서제의 신임이 얻어 개혁을 추진했다. 이것이 무술변법이다. 그러나 무술변법은 곧 벽에 부딪혔다. 기득권 세력이 강력히 반발하였고, 서태후가 정변을 일으켜 광서제를 유폐시키고 무술변법을 추진한 세력들을 처형했다. 다행히 캉 유웨이는 일본 영사의 도움을 받아 일본으로 망명할 수 있었다. 일본으로 망명한 이후에도 캉 유웨이는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입헌 군주제’를 중심으로 한 개혁 운동을 계속하였다.
『대동서』는 1919년에 출판되었지만, ‘서문’에 의하면 캉 유웨이는 37살 때인 1884년에 초고를 완성하였다고 한다. 『대동서』는 공자가 그린 이상사회인 대동사회를 현실에서 실현하기 위한 청사진을 그려 보인 책이다.
사회는 필연적으로 발전한다
『대동서』의 각 부 제목을 보면 이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제1부 ‘인간이 세상에서 느끼는 모든 괴로움’, 제2부 ‘국경 없이 세계를 하나로’, 제3부 ‘계급 차별 없는 평등한 민족으로’, 제5부 ‘남녀 차별 없는 평등의 보장’, 제6부 ‘가족 관계가 없는 천민으로’, 제9부 ‘인간과 짐승의 구별을 없애 모든 생명체를 사랑한다’, 제10부 ‘괴로움이 없는 극락의 세계로’ 등. 각 부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캉 유웨이는 이상 세계를 그려보고자 했다.
『대동서』의 사상은 하휴의 ‘3세설’과 『예기』 ‘예운’ 편의 ‘대동사상’을 바탕으로 하였다. 하휴는 한나라 시대의 학자로 공자가 지었다는 역사서인 『춘추』를 해설하면서 ‘3세설’을 주장하였다. 3세란 난세, 승평의 세계, 태평의 세계를 말하는데,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공자의 이상은 ‘태평스러운 세상’을 실현하는 것이다. 그것은 천하가 한 가족과 같아서 대립이 없는 평화롭고 안락한 세상이다……중국 사회는 먼저 ‘난세’에서 시작되고, 이어 조금 평화롭게 되는 ‘승평’의 세계가 되며, 다시 더 나아가 ‘태평’의 시대에 이르게 된다……공자는 『춘추』의 기사문을 빌려 제1기를 난세의 시대, 제2기를 승평의 시대, 제3기를 태평의 시대라고 했다. 그리고 각 시대에 대응하여 기사문의 필법을 달리했다……제1기에는 난세적인 기사를 많게 하여 대립이 격렬하고 다툼과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제2기에서는 평화적인 기사를 많이 게재하여 다툼과 싸움이 감소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제3기는 태평의 단계에 이른 시기로 대립이나 갈등 같은 것이 거의 사라진 상태를 나타내는 필법이 사용되고 있다.
– 하휴, 『춘추공양해고(春秋公羊解詁)』
하휴의 ‘3세설’은 독특한 역사 이론이다. 하휴는 인간의 역사가 난세의 시대에서 승평의 시대로, 그리고 마침내는 태평의 시대로 발전한다고 했다. 『춘추』에서 공자가 주장한 바 없지만 하휴는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여 하나의 역사 이론으로 제시하였다. 하휴가 말하고자 한 것은 사회가 필연적으로 발전하여 이상사회에 이른다는 것이다.
캉 유웨이는 하휴의 필연적 발전설을 받아들였다. 캉 유웨이는 다음과 같이 썼다.
세계는 현재 난세의 단계로 국제적 국내적으로 대립과 투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 주된 원인은 사람들이 가족이나 친척, 그리고 민족과 같은 의식에 사로잡혀 개인적인 혹은 단체적인 이기심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그러나 사회 진화의 방향은 필연적으로 정해져 있다. 먼저 국내적 국제적으로도 나뉘어 서로 싸우는 사태가 빈번했던 ‘난세의 시대’가 있고, 이어 협조적인 연합 국가의 시대, 즉 ‘승평의 시대’로 나아가고, 마침내는 『예기』에서 말하는 ‘대동의 시대’에 이르게 된다.
– 캉 유웨이, 『대동서』
캉 유웨이는 ‘대동의 시대’라고 했는데, 이것은 하휴가 말한 ‘태평의 세계’와 같다.
대동사회를 이루려면
캉 유웨이는 하휴의 3세설에 『예기』에서 말한 ‘대동사회’를 결합하여 자기만의 대동설을 주장하였다. 대동설은 이상 사회의 청사진이다. 즉, 대동사회를 현실화하기 위한 계획이었다. 대동설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대동 시대의 출현을 촉진시키고 또 대동 평화의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규제를 필요로 한다. 대동 시대를 방해하는 것은 인간의 이기심이고, 이기심은 가족 제도로 인해 나타난다. 따라서 가족 제도를 없애고, 또 개별 국가도 없애야 한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국가는 없어지고, 전 세계는 하나의 총 정부를 세우며, 약간의 지역 구분만을 한다. 총 정부와 지역 정부는 모두 민선에 의하여 구성한다……가족은 없어지고, 남녀의 동거는 1년을 넘어서는 안 되며, 기간이 차면 배우자를 바꿔야 한다. 부녀가 임신하면 태교원에 들어가고, 아기가 태어나면 영아원에서 키운다……어린이는 자라는 데 따라 유치원 및 각급학교에 입학한다. 성년이 되면 정부는 농업, 공업 등의 생산 분야에 각기 파견하여 종사케 한다……병이 들면 병원에, 늙으면 양로원에 들어간다. 태교 시설, 육아 시설, 유치원, 병원, 양로원 등은 모두 최고의 시설을 갖추고, 각 시설 이용자는 최고의 복지 혜택을 누리게 한다. 성년의 남녀는 반드시 이들 제 기관에서 수년간 의무 복무를 해야 한다……공공의 기숙사와 대중식당을 설치하되 등급을 두어 각기 수입에 따라 자유로이 즐기도록 한다……게으름을 경계하고 게으른자는 엄벌에 처한다……학술상 새로운 발명자와 태교원 등 5개 기관의 특별 유공자는 포상한다.
이상이 대동사회를 이루기 위해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구체적인 임무이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가? 캉 유웨이의 이상사회는 이루어지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