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젠 『순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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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도덕과 법을 분리하라

켈젠 순수법학

 

법만을 연구하자

 

이론으로서 순수법학은……법학의 대상을 인식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한다. 순수법학은 법이 어떠해야 하는가, 법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아니다. 순수법학은 법이란 무엇인가, 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시도한다.

 

켈젠(H. Kelsen, 1881~1973)은 『순수법학』에서 순수법학의 목적에 대해 이렇게 썼다. 법은 우리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흔히 하는 말로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이 있지만 실상 우리는 알게 모르게 법을 의식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그 법이 항상 올바른 것은 아니라는 게 문제가 된다. ‘악법도 법이다.’라고 하지만 악법은 고쳐지기 마련이다. 법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그 법이 정의로운가 하는 점에 맞추어진다. 그리고 그 법이 정의롭지 못하다면 어떤 방향으로 고쳐져야 하는가가 또 우리의 관심이 된다. 이렇듯 우리는 법이 어떠해야 하는지, 법이 어떻게 고쳐져야 하는지에 관심을 가진다. 켈젠은 그러한 우리의 관심을 도덕적인 것 혹은 정치적인 것이라고 한다. 켈젠은 법학이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것에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켈젠은 오스트리아의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켈젠이 태어날 당시 프라하는 오스트리아 소속이었는데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체코로 귀속되었다. 켈젠은 빈 대학을 나와 빈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히틀러 정권이 들어선 후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하여, 미국에서 대학교수를 역임하였다. 켈젠은 대표작인 『순수법학』을 1934년에 발표하였다. 당시 켈젠은 스위스로 피신해 있었다. 켈젠은 1930년부터 독일 쾰른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었는데, 1933년에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후 유대인 억압을 시작하자 스위스로 피신한 것이었다.

『순수법학』은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법학을 순수하게 다루자는 것을 주장한 책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법학을 순수하게 다룰 수 있을 것인가? 켈젠은 『순수법학』 ‘서문’에서 순수법학은 “일체의 정치 이데올로기와 자연과학적 요소와 분리된 법 이론이다.”라고 했다. 법을 탐구함에 있어 윤리적, 정치적, 심리적, 사회적, 경제적인 요인을 배제하고 실정법 자체를 순수하게 인식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 켈젠은 ‘법 과학’이란 방법론을 제시하였다.

 

법학은 도덕을 다루지 않는다

 

그러면 법 과학이란 무엇인가? 켈젠은 과학적 인식을 경험적인 인식과 규범적인 인식으로 구분한다. 밥 짓는 과정을 예로 들어보자. 밥을 지으려면 냄비에 씻은 쌀을 넣은 후 물을 붓는다. 그리고 물에 열을 가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물이 끓는다. 이 과정을 순서대로 나열해보자.

 

(1) 씻은 쌀을 냄비에 넣는다.

(2) 냄비에 물을 붓는다.

(3) 물에 열을 가한다.

(4) 물이 끓는다.

 

이 네 가지 과정에서 과학적 인식의 대상이 되는 건 (3)과 (4)의 관계이다. 즉, ‘물에 열을 가하니 물이 끓는다.’ 이것을 인과관계라고 한다. 인과관계란 ‘A이면 B이다.’라는 관계이다. 그리고 우리는 인과관계를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다. 경험을 통해 알 수 있기 때문에 경험적인 인식이라고 한다.

그러면 규범적인 인식이란 무엇인가? ‘죄를 지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규범적인 인식이다. 죄와 벌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있다. 그런데 죄와 벌 사이의 관계는 인과관계가 아니라 귀속관계이다. 귀속관계란 ‘A이면 B이어야 한다.’라는 관계이다. 귀속관계는 경험을 통해 하는 아는 것이 아니라 규범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관계이다. 물에 열을 가하면 끓는다는 것은 누구나 어디서나 경험할 수 있는 일이지만,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는 사실은 죄를 짓지 않는 대다수 사람이 경험이 아니라 규범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이다.

켈젠은 법학, 즉 법 과학이 규범적인 과학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법 과학은 인과관계를 다루는 과학과 다르다. 켈젠은 『순수법학』에서 “법 과학은 자연 사건들을 인과법칙으로 설명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모든 과학들과 구분된다.”고 말했다.

그러면 법 과학은 무엇에 대해 다룰까? 법 과학이 다루는 대상은 ‘법 규범’이다. 당연한 이야기이다. 경제 현상을 다루는 게 경제학이고 사회 현상을 다루는 게 사회학이며 우주를 다루는 게 우주과학이듯이 법학은 법 규범을 다룬다. 그런데 켈젠이 법 과학의 대상이 법 규범이라 한 데는 중요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즉, 법 규범 이외의 것은 법 과학의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법학은 순수한 이론이 된다.

 

순수법학이 스스로 법에 관한 ‘순수한’ 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순수법학이 오로지 법으로 지향된 인식만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또한 정확히 법으로 규정된 대상에 속하지 않는 모든 것을 법학의 인식에서 배제시키기 때문이다.

– 켈젠, 『순수법학』

 

위법행위를 예로 들어보자. 위법행위에 대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이라 정의를 내리는 것은 법학이 할 일이 아니다. 그 정의는 법적 규범에 기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정의는 도덕적 정의 혹은 정치적 정의에 불과하다. 그러면 위법행위에 대한 법학적 정의는 무엇인가? 켈젠은 위법행위란 “법이 정하고 있는 제재의 조건이 되는 행위이다.”라고 정의를 내린다. 그러므로 법적 의무는 “제재의 조건이 되는 인간행위와 반대되는 행위를 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켈젠의 의도는 법에 대한 탐구에서 윤리, 도덕, 정치 등 법 그 자체가 아닌 모든 것을 배제하라는 것이다.

 

법적 명제로 재구성하라

 

그러면 법 과학은 무엇을 하는가? 켈젠은 법 과학이 법적 소재를 재구성하여 완전하고 통일된 법적 명제를 만드는 일을 한다고 했다. 먼저, 켈젠은 법을 완전화 하기 위해 법질서가 강제질서임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법이 강제질서라는 의미는 법적 명제가 강제행위의 조건과 그 효과로서 부과되는 강제행위를 기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켈젠은 법질서가 강제질서이므로 법에 의해 규정된 일정한 조건 아래에서 법에 의해 규정된 강제행위가 실행되어야 한다는 ‘법적 명제의 기본형태’라고 불렀다.

 

예컨대 누군가가 범죄를 저지르면 그 사람에게 형벌이 가해져야 한다는 명제나 누군가가 자신의 채무를 변제하지 않으면 그 채무자의 재산에 대해 강제집행이 가해져야 한다는 명제, 누군가가 전염병에 걸렸을 경우 병에 걸린 사람은 일정한 시설에 수용되어야 한다는 명제 등 이러한 명제들은 법적 명제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법질서에 의해 규정된 일정한 조건 아래에서 법질서에 의해 규정된 일정한 강제행위가 가해져야 한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것이 법적 명제의 기본형태이다.

– 켈젠, 『순수법학』

 

켈젠은 여러 가지 법적인 소재를 모아 재구성하여 법적 명제의 기본형태로 완성하는 게 법학이 일차적으로 하는 일이라고 보았다. 예를 들어 도둑질에 관한 두 가지 규범이 있다고 하자. (1) 도둑질을 해서는 안 된다. (2) 도둑질을 하지 말라는 규범을 위반한 자는 감옥에 보내져야 한다. 이 두 규범이 법적 소재이다. 이 법적 소재가 법적 명제로 되려면, “도둑질을 한 자는 감옥으로 보낸다.”라고 재구성해야 한다. 이렇듯 켈젠은 법적 소재를 법적 명제로 재구성할 수 있어야 법이 완전하게 된다고 보았다.

다음으로 켈젠은 법적 소재를 통일성 있게 재구성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서로 충돌하는 법적 소재를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포로수용소장이 어떤 포로에게는 “물을 1컵 마셔라.” 하고 명령을 내리고, 다른 포로에게는 “물을 2컵 마셔라.” 하고 명령하였다. 포로수용소장의 명령은 법제 소재이다. 그런데 그 법적 소재 사이에 통일성이 없어서 포로들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물을 1컵 마셔야 하느냐, 2컵을 마셔야 하느냐.

이때 누군가가 포로수용소장의 명령들을 “14세 이상의 포로는 물을 2컵 마시고, 14세 미만의 포로는 물을 1컵 마셔라.” 하고 재구성하였다. 그러면 포로수용소장의 명령들은 모순이 없이 통일된 것이 된다. 이렇듯 법적 소재를 재구성하여 모순이 없는 통일된 법적 명제를 만드는 일이 순수법학의 또 다른 임무이다.

명령과 같은 법적 소재뿐만 아니라 법 자체에도 모순과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두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먼저, 같은 법 안에 다음과 같은 두 개의 조항이 있다고 해보자. (1) 도둑질을 한 자는 모두 처벌해야 한다. (2) 14세 미만의 자는 처벌하지 않는다. 두 조항은 모순된다. 이 경우 혼란을 없애기 위해 “14세 이상의 자가 도둑질을 하면 처벌해야 한다.”로 재구성해야 한다. 다음으로, 같은 법 안에 다음과 같은 조항이 있다고 하자. (1) A를 한 자를 처벌해야 한다. (2) A를 한 자를 처벌해서는 안 된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할까? 켈젠은 선택을 해야 한다고 하였다. 즉, “A를 한 자를 처벌하거나 처벌하여서는 안 된다.”

그런데 도둑질의 경우에는 누구나 납득할 수 있게 재구성이지만, A의 경우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는 재구성이다. 그렇다면 법은 주관에 따라 해석하는 것이지 객관적으로 유효한 존재가 될 수 없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말처럼 법에 대한 주관적 해석으로 논란이 많다. 특히 강자에 유리하게 법이 해석되어 사회적 분쟁을 낳는다. 켈젠은 법학의 순수성을 위해 주관을 배제하자고 하였지만 주관적 해석을 배제하지는 못하였다.

인민노련 홍보부를 담당하면서 6월 항쟁을 현장에서 이끈 숨은 일꾼. 술만 사 준다면 지옥에도 함께 들어갈 천진무구한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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