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고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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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유럽만이 진보를 이루었다

메인 고대법

 

신분에서 계약으로

 

인격에 관한 법에 나타난 모든 형식적 신분은 고대에서는 가족 중에 있었던 권력 및 특권에서 유래한 것이고, 어느 정도는 이러한 것들에 의해서 채색되기도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신분을 뛰어난 저자들의 관행에 따라서 인격적 상황을 나타내는 것으로 사용하고, 그리고 신분을 협약의 직접적 또는 간접적 결과인 것 같은 인격적 상황에 적용하는 것을 피하기만 하면, 진보사회의 변화는 지금까지 어느 곳에서나 신분에서 계약으로의 변화였다고 할 수 있다.

 

메인(H. Maine, 1822~1888)은 자신의 주저 『고대법』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서 메인은 ‘신분에서 계약으로’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 표어는 중세 사회에서 근대 사회로 넘어오는 모습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메인이 ‘신분’이라는 말을 사용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메인보다 한 세기 전에 살았던 계몽 사상가들은 ‘신분’이 아니라, ‘자연 상태’라는 말을 사용했다.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 계약을 맺었다는 사회계약론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메인이 신분이란 말을 사용한 것은 계몽 사상가들의 사회계약론, 자연법 이론에 대한 비판이었다.

메인은 스코틀랜드 록스버리에서 태어났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배우고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고대법’을 주제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인도 총독부 위원회의 일원으로서 인도법을 제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정치적으로는 보수주의자로서 민주주의를 중우정치라고 비판하고 상원의 역할 강화를 주장하였다. 『고대법』은 메인이 케임브리지 대학과 법조학원에서 로마법에 대해 강의한 내용을 모아 1861년에 발표한 책이다. 제목을 ‘고대법’이라 했지만 실제로는 로마법에 대한 연구서이다. 메인은 이 책에서 로마법에 고대정신이 집약되었고, 근대법은 로마법을 모태로 해서 생겨났음을 밝히고자 하였다. 반면 메인은 고대법에서 인도나 중국 같은 동양의 법을 제외하였다. 인도와 중국의 법이 근대법 형성의 요인이 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사회계약은 없었다

 

계몽 사상가들은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였다.”라고 하였다. 자연 상태에서 인간들이 계약을 맺어 국가가 탄생하였다. 자연 상태에서 인간들은 자율적으로 생겨난 자연법을 따랐다. 그러므로 자연법은 인간의 본성과 이성에 기초한 법이다. 따라서 사회계약에 의해 생겨난 국가의 법은 당연히 자연법을 토대로 해야 한다. 이러한 계몽 사상가들의 주장은 인간을 노예상태로 묶어두고, 자의적인 권력 행사를 하는 절대왕정에 대한 비판이었다.

메인은 『고대법』에서 사회계약론과 자연법에 반기를 들었다. 메인은 자연 상태의 설정을 착각이라고 했다. 계몽 사상가들이 주장하는 자연 상태는 인류 역사에서 존재하지 않았고, 이론을 만들기 위해 만들어낸 가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메인은 자연 상태를 전제로 하는 사회계약과 자연법 이론은 잘못된 것이라 보았다.

 

자연법이나 사회계약과 같은 이론은 그럴 듯하게 보인다. 그러나 엄격한 검증을 거치지 않은 이론 중에는 사회나 법의 역사에 관한 진지한 연구보다 일반인의 선호에 따른 이론이 있다. 이러한 이론은 이론의 핵심이 드러나게 되는 어느 한 지점에서 독자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하여 진리를 불명확한 것으로 만든다. 이러한 이론이 일단 지지를 받고 신뢰를 얻게 되면 그 이론은 후대의 법학에 매우 현실적이고 아주 중대한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 메인, 『고대법』

 

자연법이나 사회계약 이론은 진지한 연구보다 일반인의 선호에 따른 이론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메인은 자연법이나 사회계약 이론이 정치적 구호 또는 문학적 상상의 결과일 뿐이라고 했다. 메인은 인류의 초기 상태를 원시사회 상태라고 하였다. 물론 메인의 주장은 당대 인류학의 연구 성과를 반영한 주장이었다. 그러나 메인의 주장은 과학이라는 칼로 계몽 사상가들의 심장을 도려내는 주장이었다. 계몽 사상가들의 주장의 핵심은 ‘자유와 평등’이었다. 자연 상태는 자유와 평등을 주장하기 위한 설정이었다. 그런데 메인은 설정이 허구이므로 그에 따른 주장 역시 잘못된 것으로 몰아갔다. 그래서 메인은 프랑스 대혁명에 대해 평가하면서 “자연 상태 이론의 영향을 받은 프랑스 대혁명의 결과는 실망스러운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서유럽만이 진보사회이다

 

그러면 법은 어디에서 생겨났을까? 메인은 특정한 종족이 각각의 원시적 역사에 관하여 보존하고 있는 기록, 그리고 고대법에 대한 탐구에서 해답을 찾으려 했다. 메인은 성서, 그리스 로마 신화, 호메로스의 시, 타키투스와 같은 고대의 역사가들의 저작 등을 탐구했다. 그러나 중국 등 동양의 자료는 탐구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메인은 동양사회에서는 진보가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메인이 인류 역사에서 나타난 사회를 정체사회와 진보사회로 구분한데서 그의 의도가 드러난다. 인류 사회에서 정체상태가 본래의 모습이고 진보의 상태는 예외적이라고 했다. 진보사회는 근대문명의 씨앗을 잉태한 곳에서 나타난다. 서유럽만이 근대문명의 씨앗을 잉태했고 진보사회를 이루었다.

정체사회와 진보사회의 차이점은 아직 풀어야할 과제들 가운데 가장 큰 과제이다……인류의 정체적 상태가 본래의 모습이고 진보적 상태가 예외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이 문제에 대한 고찰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없다. 그리고 그 고찰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한 또 다른 필수불가결한 조건은 로마법에 대한 정확한 이해이다. 로마법제는 인간이 알고 있는 제도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그 시작되는 시점에서 종결되는 시기까지 그 수정을 담당하였던 사람들은 더 나은 방향으로 진보적으로 수정하였으며, 그 개선과정이 인류의 사상 및 행동이 현저하게 느렸던 경우에도 계속 진행되었고, 그에 맞추어 반복적으로 정체되기도 하였다.

– 메인, 『고대법』

 

메인의 연구는 로마법으로 향했다. 메인은 로마법제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제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말은 사실이 아니다. 이미 그 이전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법제가 있었다. 이라크에 남아 있는 함무라비 법전은 기록된 것으로는 가장 오래된 법전이고, 동양에서도 로마가 생기기 수천 년 전부터 법제가 존재했음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메인은 이런 사실을 몰랐거나 아니면 무시하였다. 서양에서만 근대문명이 생겨날 수밖에 없음을 강변하고자 로마법을 가장 모범으로 삼았다.

메인은 성서와 로마법을 논거로 하여 초기 인류 사회에 대한 연구 결과 가부장제설이 확립되었다고 하였다. 원시사회는 가족사회이다. 가족은 씨족으로, 씨족은 부족으로 발전했고 마침내 국가가 탄생하였다. 이런 발전과정에 맞춰 법은 족장의 판결, 관습법, 불문법, 성문법으로 발전하여 왔다. 법은 최초에 가족에 관한 법으로 시작되었다. 메인은 국가에서도 여전히 사회의 기본적 집단은 가족이기 때문에 가족법이 중심이라고 보았다. 메인은 초기의 가족이 가부장적 질서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가족법 또한 가부장적 가족관계를 표현한 것이라 하였다.

가부장제란 최고 권력자인 남자에 대한 복종으로 가족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가장 나이 많은 아버지나 지배자가 가족 내에서 절대적 권력자이다. 지배자는 가족 성원의 생사여탈권뿐만 아니라 자녀와 전 세대에 대한 절대적 지배권을 가진다. 가부장제 아래에서 자녀는 노예와 다를 바 없다. 아들들은 나중에 한 가족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는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만 노예와 다르다. 메인은 가족법이 이러한 가부장권을 제도화한 것이라고 했다. 로마법은 가부장제적 가족 관계를 가장 잘 정리해놓은 법이다.

메인은 인류의 초기 사회에 가족이 가부장제적 관계이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에서 몇 구절을 인용한다.

 

그들은 상담하기 위한 회합도 테미스테스도 갖지 않지만, 누구든지 그 처나 자녀에 대하여 사법권을 행사하고 그들 상호간에는 특별한 배려를 하지 않았다.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테미스테스는 정의의 여신을 상징하는 테미스의 복수형으로 판결이라는 의미이다. 메인이 강조하고자 한 바는 가부장은 처나 자녀에 대해 절대적 권위를 가졌다는 것이다. 메인은 가부장권이 사라지는 것에서 진보를 찾았다. 메인에 따르면 로마를 제외한 지역에서는 가부장권의 소멸을 보여주는 증거가 없다. 그래서 로마를 제외한 지역의 사회는 정체되었다.

메인은 가부장적 가족관계가 해체되고 계약에 따른 사회적 관계가 생겨나는 것을 정체사회에서 진보사회이 이행으로 보았다. 개인의 위치가 가족관계에서 생겨난 신분에 의해 정해져 있는 사회가 정체사회이다. 그리고 신분적인 예속 아래 놓여있었던 개인이 가족을 대신하여 법적 주체가 된 사회가 진보사회이다. 진보사회의 특징은 개인 간의 자유로운 계약이다. 그래서 메인은 정체사회에서 진보사회로 이행을 ‘신분에서 계약으로’라고 하였다.

메인은 로마법에서 보여주는 가부장권의 소멸 과정이 진보적 과정이라 보았다. 근대에 들어 서유럽에서 노동자와 자본가의 계약관계가 나타나고 확대되었다. 그래서 메인은 진보사회로 이행한 곳은 오로지 서유럽뿐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노동자와 자본가의 계약은 노예계약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되던 당시에 나온 메인의 학설은 당대 영국 법률의 자기 정당화였다고 할 것이다.

 

 

홍승기
인민노련 홍보부를 담당하면서 6월 항쟁을 현장에서 이끈 숨은 일꾼. 술만 사 준다면 지옥에도 함께 들어갈 천진무구한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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