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링 『권리를 위한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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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권리위에서 잠들지 말라

예링 권리를 위한 투쟁

 

불법에 맞서지 않는 법은 법이 아니다

 

포샤의 판결은 잘못이다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는 친구 바사니오로부터 벨몬트에 사는 포샤에게 구혼하기 위한 여비를 마련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안토니오는 자신의 배를 담보로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돈을 빌린다. 안토니오를 미워하던 샤일록은 기한 내에 돈을 갚지 못하면 안토니오의 가슴살 1파운드를 베어 낸다는 조건을 걸었다. 바사니오는 포샤에게 청혼을 하여 승낙을 받지만, 안토니오는 전 재산인 배가 돌아오지 않아 샤일록에게 빌린 돈을 갚지 못하게 되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포샤가 재판관으로 변장을 하고 와서 판결을 내려 안토니오의 목숨을 구한다.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희곡 『베니스의 상인』의 줄거리이다. 포샤의 판결은 가장 인간적인 판결로 칭송을 받았다. 그런데 예링(R. Jhering, 1818~1892)은 이 판결에 이의를 제기하였다. 포샤의 판결은 이러했다. ‘1파운드의 살을 베어내되 피가 나서도 안 되고 베어낸 살이 꼭 1파운드이어야 한다.’ 이에 대해 예링은 피 없이 살은 존재할 수 없으므로 1파운드의 살에는 피가 포함되어야 하고, 1파운드의 살을 베어낼 권리를 가진 자는 그 보다 적게 베어낼 수도 있다고 반박한다. 예링의 비판은 샤일록에게 1파운드의 살을 베어낼 권리가 주어졌으므로 그 권리가 행사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링은 안토니오와 샤일록이 맺은 계약이 잘못된 것이라면 그 계약 자체를 무효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고 계약은 인정하면서 계약이 이행되지 않게 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얘기이다.

사실, 예링의 비판은 희곡상의 인물 포샤가 아니라 그 희곡을 쓴 셰익스피어에게 향하는 것이다. 특히 샤일록이 판결을 받고 그 판결을 그대로 인정하는 식으로 글을 쓴 셰익스피어는 잘못되었다고 했다. 샤일록의 권리가 사기로 무효화되었다면 샤일록은 판결에 수긍하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찾기 위한 투쟁을 해야 한다. 이것이 예링의 사상의 정수이다.

예링은 독일에서 태어났다. 24살 때 베를린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그 이듬해부터 베를린, 괴팅겐, 바젤, 로스토크, 빈, 슈트라스부르크 대학 등에서 법학 교수로서 활약을 하였다. 『권리를 위한 투쟁』은 예링이 1872년 오스트리아의 빈 법조협회에서 한 연설을 정리하여 출판한 책이다. 이 책은 출판 즉시 명성을 얻어 1921년까지 무려 20판이 간행되기도 했다.

 

투쟁 없는 법은 무기력하다

 

예링이 『권리를 위한 투쟁』을 쓴 목적은 제목에서 드러난다. 흔히 권리 위에 잠자는 자의 권리는 없다고 한다. 예링은 권리를 지키고 권리를 누리려면 투쟁하라고 한다. 『베니스의 상인』에서 샤일록에 대한 판결은 인간적이다. 그러나 예링은 묻는다. 인간적으로 행해진 불법은 불법이 아닌가? 예링은 이 세상이 존속되는 한 권리를 침해하는 불법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법의 생명은 투쟁이라고 말한다.

 

이 세상의 모든 권리는 투쟁을 통해 쟁취된다. 중요한 모든 법은 무엇보다도 이 법에 반대하는 사람들에 맞서 투쟁함으로써 쟁취된 것이다. 또한 모든 권리는 그것이 민족적 권리이든 개인적 권리이든 그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할 준비를 전제로 한다. 권리는 단순한 사상이 아니라 살아 있는 힘이다. 정의의 여신은 한 손에는 권리를 재는 저울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권리를 관철시키는 검을 쥐고 있다. 저울이 없는 검은 적나라한 폭력에 지나지 않고, 검이 없는 저울은 무기력한 법일 뿐이다. 저울과 검은 서로 결합되어 있으며, 완전한 법률 상태란 정의의 여신이 검을 사용하는 힘과 저울을 다루는 숙련된 기술이 서로 합치되는 곳에서만 나타난다.

– 예링, 『권리를 위한 투쟁』

투쟁 없이는 권리가 없다. 그렇지만 법의 목적은 평화이다. 그래서 예링은 『권리를 위한 투쟁』을 “법의 목적은 평화이며, 평화를 얻는 수단은 투쟁이다.”라는 유명한 문구로 시작하였다. 이에 대해 예링은 이렇게 말한다. “법의 개념 가운데 투쟁과 평화라는 대립적 요소가 함께 발견된다. 법의 목적인 평화와 법의 수단인 투쟁, 이 두 가지는 법의 개념 속에 똑같이 주어져 있어 법 개념과 분리되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의 이러한 입장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투쟁이란 법에 반하는 것, 바로 분쟁을 말하는 것이며, 법의 질서 상태를 파괴하고 부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투쟁 가운데는 법 개념의 요소가 하나도 없는 것이 아닌가. 만약 법에 대한 불법의 투쟁이 문제 된다면 그 이의는 옳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서는 불법에 대한 법의 투쟁이 문제로 되어 있다. 불법에 맞서는 투쟁이나 저항이 없다면 법은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법이 이처럼 불법으로부터의 공격에 대항하는 것으로 파악된다면-이것은 이 세상이 존재하는 한 계속되리라-투쟁은 법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투쟁은 법과 무관한 어떤 개념이 아니고 오히려 법의 본질과 분리할 수 없게끔 밀착되어 있는 법 개념의 한 요소이다.”

따라서 예링에게 있어서 법 개념은 논리적인 개념이 아니고 실천적인 개념이다. 이 실천의 원천은 권리이다. 권리는 예링에게 있어서 인간의 실존 조건으로 파악된다. 생명권, 신체권, 재산권, 자유권, 명예권, 인격권 등의 확보 없이 인간은 인간으로서 생존할 수 없다. 법은 이러한 권리들을 확보할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그 내용은 권리의 객관화된 ‘사진’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법학에서 권리를 ‘주관적 법’이라고 하고 법을 ‘객관적 권리’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양자는 마치 동전의 앞뒤 면과 같은 관계에 있다. 따라서 권리를 위한 투쟁은 법을 위한 투쟁을 의미한다.

 

불법을 감수하지 말라

 

예링은 권리의 내용을 이익으로 파악한다. 즉, 법에 의해서 확보된 이익이 법적 권리이다. 그래서 권리를 위한 투쟁은 동시에 이익을 위한 투쟁이 된다. 그런데 예링은 단지 물질적, 경제적 이익만이 아니라, 정신적, 인격적 이익에 중점을 둔다. 순수한 인격적 권리 침해는 물론이고 재산적 권리 침해의 경우에도 인격이 침해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따라서 일체의 권리 침해에 있어서 궁극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이다. 그래서 권리를 위한 투쟁은 정의의 실현으로 나아간다.

 

권리를 위한 투쟁은 순수한 이해타산이라는 낮은 단계에서 시작하여 인격을 주장하고 인격을 보호하는 이상적 동기에 이른다. 그리고 마침내 정의의 이념이 실현되는 관점에까지 이르게 된다. 정의의 이념 실현이 최고의 정점이다. 여기서 한 발자국만 잘못 나아가면 침해된 법 감정으로 인해 범죄자가 되어 무법 상태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 예링, 『권리를 위한 투쟁』

 

그러므로 예링은 침해된 재산권에 대해서도 단순한 금전적인 보상만이 아니라 정신적 보상이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링은 로마법과 비교하여 오늘날의 법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로마시대의 민사상의 제재는 정신적 보상 요구까지 만족시키는 것이었는데, 오늘날의 사법상의 손해 배상에는 이러한 배려가 되어 있지 않다고 비판한다. 이런 것을 예링은 ‘물질주의’라고 부른다.

예링의 사상에서 한 가지 더 주목할 것은 권리를 위한 투쟁이 개인을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국가 공동체의 존립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링은 묻는다.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 권리를 위해 행동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전체의 권리를 위해 자기 생명과 재산을 기꺼이 바치겠는가? 권리 의식이 뚜렷하지 못한 국민은 결국 국가의 권리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예링은 외부의 적으로부터 국가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국방 예산보다 국민들이 투철한 권리 의식으로 무장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내 것을 빼앗기지 않고 어떠한 일이 있어도 지킨다는 권리 의식의 함양이야말로 최선의 정치 교육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예링은 침략자보다 짓밟히는 자를 더욱 비난하였다.

예링은 ‘불법을 행하지 말라!’는 금지 명령보다 ‘불법을 감수하지 말라!’는 요구 명령을 우선시 하였다. 이 요구 명령에 상응하는 자기주장이 바로 ‘권리를 위한 투쟁’이다. 예링은 권리를 위한 투쟁을 도덕적 자기 보존의 의무로까지 생각하였다. 도덕적 자기 보존의 의무를 태만히 하는 사람은 자신의 도덕적 실존 조건을 포기하는 사람으로서 도덕적 자살자이다. 그러므로 권리 침해를 감수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노예나 동물의 수준으로 전락시키는 사람이며, 법의 정신을 좀먹는 사람이다. 불법과 불의를 감수하고 관용하는 비겁과 무관심은 당연히 없어져야 할 것으로, 법이 용서하지 못할 죄를 짓는 것이다.

예링은 “투쟁은 권리의 영원한 작업이다. 투쟁 가운데에서 너는 너의 권리를 발견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권리가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투쟁에 의해 쟁취되어야 함을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다. 예링은 한 시인의 시구를 인용함으로써 『권리를 위한 투쟁』의 대미를 장식하는데, 우리 모두가 한번 되새겨 볼 만한다.

 

현명함의 마지막 결론은

자유와 생명을 날마다 쟁취하는 사람만이

자유와 생명을 누릴 권리가 있다.

 

 

홍승기
인민노련 홍보부를 담당하면서 6월 항쟁을 현장에서 이끈 숨은 일꾼. 술만 사 준다면 지옥에도 함께 들어갈 천진무구한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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