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테스키외 『법의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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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법은 인간관계의 반영일뿐이다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

 

계몽사상가, 몽테스키외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 디케는 오른손에는 칼, 왼손에는 천칭저울을 들고 있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 유스티치아는 안대로 눈을 가리고 한 손에는 칼, 다른 손에는 천칭저울을 들고 있다. 한 손에 든 칼은 단호함을 나타내고 다른 손에 든 천칭저울은 공평함을 나타내다. 즉, 단호하게 공평 정대를 실현하는 것이 정의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법원 앞에는 정의의 여신상을 패러디하여 한복을 입고 한 손에는 법전, 다른 손에는 저울을 든 여성의 조각상이 서 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법을 적용한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이미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우리 사회에서 통념이 된지 오래이다. 우리는 각종 비리에 연루된 고위층 인사들이 솜방망이 처벌로 풀려나는 수없이 많은 사례를 목격해왔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법이란 무엇인지 다시 묻게 된다.

몽테스키외(C. Montesquieu, 1689~1755) 역시 법이란 무엇인가를 물으며 탐구하였다. 몽테스키외는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몽테스키외가 살았던 시대를 흔히 ‘계몽주의 시대’라고 한다. 계몽주의 시대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인간의 이성을 믿고 무지와 미신, 이성에 반대되는 전통이나 제도를 타파하여 진보를 꾀하려는 계몽사상이 발전한 시대이다. 몽테스키외는 계몽사상가 중의 한 사람이다. 법관이 되어 10여 년 간 프랑스 법원의 주요 직책을 맡았고, 자신의 경험에 바탕을 둔 탐구를 하여 1748년에 『법의 정신』을 발표하였다. 몽테스키외는 ‘서문’에서 『법의 정신』이 20년간에 걸친 탐구의 결과이므로 책 전체를 읽어봐 달라고 독자에게 부탁하였다. “하나의 소원이 있는데, 어쩌면 들어 주지 않을는지도 모른다. 소원 무엇이냐 하면, 잠깐 읽어 본 것만으로 20년의 탐구 결과를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책을 칭찬하건 비난하건 몇몇 구절에 구애받지 말기를 바란다. 만약 여러분들이 저자의 의도를 찾아내고자 한다면, 이 작품 전체에서 그것을 찾아내는 수밖에 도리가 없을 것이다.”

 

법은 인간관계의 반영이다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 첫머리에서 법에 대해 정의를 내린다. “법은 가장 넓은 의미로 사물의 성질에서 생기는 필연적인 관계이다. 그리고 이 의미에서 모든 존재는 자신의 법을 가진다. 신도 신의 법을 가진고, 물질계도 물질계의 법을 가진다. 인간보다 상위에 있는 지혜적인 존재자도 자신의 법을 가진다. 짐승도 역시 자신의 법을 가진다.”

몽테스키외가 법을 관계로 보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몽테스키외는 법을 어떤 추상적인 이념, 예를 들면 절대선, 절대 정신 등의 구현으로 보는 사고를 반대하였다. 법은 관계이다. 보다 엄밀히 말한다면 관계의 반영이다. 그러므로 인간 사회의 법은 인간관계의 반영이다. 이 주장이 법을 이해하기 위한 기초이다. 몽테스키외는 법을 자연법과 실정법으로 분류한다. 사회가 성립 이전에 인간이 누리는 법이 자연법이고, 사회가 성립한 이후 인간이 가지게 되는 법이 실정법이다. 몽테스키외가 설명하는 자연법과 실정법의 구분을 보자.

 

이 상태에서 각자는 자기가 열등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서로 평등하기 때문에 서로 공격하려고 하지 않는다. 즉, 평화가 제1의 자연법이다……인간은 무기력하다는 감정에다 욕구의 감정을 결부시킨다. 즉, 제2의 자연법은 인간으로 하여금 먹을 것을 찾게 하는 것이다. 나는 두렵기 때문에 각자 서로에게서 도망친다고 말했다. 그러나 두려움은 상호적이기 때문에 얼마 안 가 인간들은 서로 접근한다. 게다가 인간들은 동물이 같은 종류의 동물에 접근할 적에 느끼는 환희에 의해 접근하는 경향을 가진다. 더욱이 양성(兩性)이 서로 다름으로 서로에게 주는 매력은 이 환희를 증가시킨다. 인간들이 늘 서로를 원하는 자연적 바람이 제3의 자연법이다. 인간은 감정 외에도 점차로 지식을 갖게 된다. 그리하여 인간들은 다른 동물이 갖지 못한 제2의 유대감을 갖는다. 인간은 서로를 결합하려는 새로운 동기를 갖게 된다. 사회생활을 하려는 욕망이 제4의 자연법이다……인간은 사회에 들어오자마자 자신들이 무기력하다는 감정을 잃어버린다. 인간들 사이의 평등은 소멸하고 전쟁 상태가 시작된다. 각각 특수한 사회가 그 힘을 느끼게 된다. 그 결과 국민과 국민 사이에 전쟁 상태가 생겨난다. 각 사회에서 개인은 그 힘을 느끼기 시작한다. 개인들은 그 사회의 주요한 이익을 자기편에 유리한 방향으로 돌리고자 한다. 그 결과 상호간에 전쟁 상태가 생긴다. 이 두 가지 전쟁 상태가 인간들 사이에 법을 성립시킨다. 지구상에 서로 다른 여러 백성이 살고 있기 때문에, 인간은 백성들 상호의 관계에서 나오는 법을 가진다. 이것이 만민법이다. 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인간은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관계에서 나오는 법을 가진다. 이것이 정치법이다. 인간은 또한 시민 상호간의 관계에서 나오는 법을 가진다. 이것이 시민법이다.

–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

 

자연법과 실정법에 대한 설명에서 몽테스키외가 법을 인간 사이의 관계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자연법은 원시시대의 인간관계, 실정법은 고대 이후 사회 의 인간관계와 일치함을 알 수 있다. 또한 몽테스키외에 따르면 법은 세계의 모든 백성을 지배하는 한에서 인간 이성이다. 정치법 및 시민법은 인간 이성이 적용되는 특수한 경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법은 각각의 백성에 고유한 것이다. 따라서 한 국민의 법이 다른 국민에게 적합하다면 그것은 우연이다. 법은 사람들이 성립시키고자 하는 정치 형태의 성질 및 원리와 연관된다. 뿐만 아니라 법은 나라의 위치, 기후와 연관되고, 토지의 성질 및 크기는 물론 국민들의 생활양식, 즉 국민들이 농업을 하는지 목축을 하는지 등과도 연관된다. 또한 법은 자유의 정도, 주민의 종교 및 성품, 재부(財富), 주민의 숫자, 상업, 관습에도 연관된다. 이렇듯 몽테스키외는 인간의 삶, 그리고 인간 사이의 모든 관계와 연관된다고 보았다. 이것이 몽테스키외가 말하는 ‘법의 정신’이다.

 

법은 쉬워야 한다

 

몽테스키외의 사상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삼권 분립이다. 몽테스키외는 먼저 자유에 대하여 고찰을 한다. 자유라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몽테스키외는 법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자유란 바라는 것을 할 수 있고 바라지 않는 것을 행하도록 강제당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자유란 법이 허용하는 것을 행하는 권리이다. 따라서 헌법은 어떤 사람도 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 것을 하도록 강제당하지 않도록 만들어져야 한다. 그 관건이 권력 남용의 방지이고, 그래서 몽테스키외는 삼권 분립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모든 국가는 스스로 자기를 지킨다는 일반적인 목적과 아울러 특수한 목적을 가진다. 영토 확장은 로마의 목적이었고, 전쟁은 스파르타의 목적이었다. 종교는 유대법의 목적이었고, 상법은 마르세유의 목적이었고, 공공의 안정은 중국법의 목적이었고, 항해는 로오도인의 법의 목적이었고, 자연의 자유는 야만인의 목적이었다. 일반적으로 군주의 쾌락은 전제 국가의 목적이고, 군주의 영예 및 국가의 영예는 군주정의 목적이었다. 각 개인의 독립이 폴란드 법의 목적이지만, 그 결과가 나타난 것은 모든 사람의 압박이다.

세계에는 아직 정치적 자유를 그 헌법의 직접 목적으로 삼고 있는 하나의 국민(영국민)이 있다. 우리는 그 국민이 자유를 내세우는 데 기초가 되는 원리가 무엇인가를 검토하기로 하자. 그 원리가 좋으면, 자유는 그곳에 거울에 비치는 것같이 명료하게 나타나게 될 것이다. 각 국가에는 3권의 분립이 있다. 입법권, 만민에 관한 사항을 집행하는 권력 및 시민권에 관한 사항을 집행하는 권력이 그것이다.

제1의 권력에 의해 군주 또는 집정관은 일시적 또는 항구적인 법을 만들고, 또 제정한 법을 개정 또는 폐지한다. 제2의 권력에 의해 군주 또는 집정관은 다른 나라와 평화를 유지하거나 전쟁을 하거나 대사를 파견한다. 또한 치안을 유지하고 침략에 대비한다. 제3의 권력에 의해 군주 또는 집정관은 범죄자를 처벌하고, 개인 간의 소송을 재판한다. 사람들은 이 마지막의 것을 재판권이라고 부르며, 나머지를 단지 국가의 집행권이라고 부른다.

동일한 군주 또는 동일한 집정관의 수중에 입법권과 집행권이 주어지면 자유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동일한 군주 또는 동일한 원로원이 폭정의 법을 만들고 집행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재판권이 입법권 및 집행권으로부터 분리되어 있지 않을 때 역시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재판권이 입법권과 결합하면 시민의 생명 및 자유에 대해 권력은 자의적으로 될 것이다……만일 동일한 인간, 또는 귀족, 또는 국민의 동일한 한 집단이 이 세 가지 권력, 즉 법을 만드는 권력, 공공의 의결을 집행하는 권력 및 범죄 또는 개인의 소송을 재판하는 권력을 행사하게 되면 모든 것이 상실된다.

–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

 

법은 국민의 자유 보장을 위해 존재한다. 이것이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법률을 보면 일반인들이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어려운 말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자유를 지키는 것이 법이라면, 일반 국민이 이해할 수 없는 법 자체가 이미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다. 그래서 몽테스키외의 다음 말은 입법자들이 반드시 되새겨야 한다.

 

법의 문체는 쉬워야 한다. 직접적인 표현은 언제나 완곡한 표현보다 이해하기 쉽다. 그런데 비잔틴 제국의 법에는 위엄이 없고, 왕이 천한 변사처럼 지껄이고 있다. 법의 문체가 과장되어 있을 때, 사람들은 법을 허세와 창작물로밖에 보지 않는다.

 

 

 

 

 

 

 

홍승기
인민노련 홍보부를 담당하면서 6월 항쟁을 현장에서 이끈 숨은 일꾼. 술만 사 준다면 지옥에도 함께 들어갈 천진무구한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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