슘페터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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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본주의 숭배자가 자본주의의 끝을 예견하다

슘페터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그 자신이 혁신인 경제학자

 

중국 후한시대에 허신(許愼)이라는 학자가 살았다. 허신은 한자의 바른 뜻을 알리기 위해 설문해자(說文解字)라는 사전을 집필한다. 이 사전에서 혁(革)이라는 글자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수피치거기모왈혁(獸皮治去其毛曰革) 혁편야(革便也)’, 즉 짐승의 가죽에서 털을 뽑아 다듬은 것을 혁(革)이라 하는데 혁(革)은 편안함이다. ‘혁’(革) 자는 사냥한 짐승의 날가죽을 펴놓고 털을 뽑고 있는 모양을 본 뜬 글자다. 털이 뽑힌 가죽은 다른 것으로 새롭게 변화한다.

혁신은 짐승가죽이 가방이 되고 신발이 되는 것을 뜻한다. 혁신을 위해서는 가죽이 벗겨지고 털이 뽑히는 짐승의 고통과 사냥꾼의 노력과 용맹이 필요하다. 서양에서 혁신을 말하는 단어는 이노베이션(innovation)이다. 이노베이션은 ‘새롭게 하는 것, 어떤 새로운 것의 창조’를 뜻한다. 전 세계 기업이 혁신을 추구하고 있다. 전혀 새로운 대상으로의 변화이자, 창조를 뜻하는 혁신은 시장의 역동성을 이끌어 가는 동력으로 중요시 된다. 혁신의 중요성을 처음으로 주장한 사람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경제학자 슘페터(J. A. Schumpeter, 1883~1950)이다.

슘페터는 폭넓은 이론적 관심과 통찰력으로 시대를 앞서갔다. ‘자본주의의 본질은 어떻게 될 것인가, 자본주의를 자본주의이게 하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자본주의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슘페터는 이러한 질문들에 사로잡혀 있었다. 경제는 주기를 갖고 성장과 쇠퇴를 반복한다. 일종의 순환이다. 넓은 역사적 안목을 갖고 봤을 때 경제는 돌고 돌아 제자리를 찾는 정태적 순환과정에 놓여 있다. 슘페터가 관심을 갖고 있었던 ‘성장이론’ ‘순환이론’은 당시 소위 정통파 경제학자들의 이론과 거리가 있었다. 오히려 슘페터의 이론은 사후(死後) 반세기 이상 지난 오늘날까지 회자되고 재평가되고 있다. 슘페터 자신이 그 무엇보다 혁신이었다. 슘페터가 1942년에 발표한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의 장래에 관한 가장 선동적인 저서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혁신은 창조적 파괴

 

슘페터는 경제성장 과정에서 기업가가 주도하는 ‘기술 혁신’을 중요시하였다. 기업가의 의지에 의해 이루어지는 기술 발전은 자본축적에 힘을 부여하고, 경제의 성장 과정에서 침체와 고양의 경기 순환을 불러들인다. 이러한 슘페터의 이론에서 ‘노동’은 경제성장에서 수동적인 요소이며, ‘자본’은 기업가가 자신이 필요로 하는 생산의 재료를 구입하여 새로운 생산 방식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슘페터는 ‘혁신’과 ‘기업가 정신’이 자본주의 경제발전의 동력이자 변화의 주체라고 꼽았다. 이윤은 기업가의 혁신을 통해 이루어진다. 슘페터는 자본주의의 진보를 이렇게 설명했다.

 

자본주의 경제는 정태적이지 않고 정태적일 수도 없다. 자본주의 경제는 또 착실한 걸음으로 확대되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자본주의 경제는 혁신에 의하여, 즉 새로운 상품이나 새로운 생산방법이 상업상의 새로운 기회를 그때그때 존재하는 산업구조에 도입함으로써 내부로부터 부단히 개혁되고 있다. 모든 산업구조와 기업행위의 조건은 언제나 변화하는 과정 속에 있다. 모든 사태는 자신을 성취할 충분한 시간을 가지지도 못한 채 뒤덮이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 진보는 전쟁을 의미한다……새로운 물건들을 생산하거나 낡은 물건들을 보다 싸게 생산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윤의 가능성이 끊임없이 구체화되어 새로운 자본을 요구한다. 새로운 상품 및 방법은 낡은 생산품 및 방법과 경쟁을 하게 되는데, 그 경쟁은 동등한 조건에서 행하여지는 것이 아니라 낡은 것에는 죽음을 가져오게 되는 조건에서 행해진다.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서의 진보의 실현방식이다.

– 슘페터,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혁신은 창조적 파괴의 과정이다. 창조적 파괴란 더 큰 가치를 위하여 낡고 오래된 것을 버리고 경쟁력 있는 새것으로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혁신은 생산성을 향상시켜 생산비를 낮추고, 새로운 수요를 창조한다. 기업의 판매 수입은 올라간다. 이에 따라 기업가는 많은 이윤을 얻을 수 있다. 창조적 파괴를 통한 혁신을 추구한 기업가는 이윤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이윤은 기업가의 모험에 대한 정당한 대가이다.

 

자본주의는 소멸한다

 

슘페터는 기업가를 ‘혁신을 추진하는 개인’이라 정의한다. 기업가의 역할은 혁신을 통해 생산방식을 진일보 시키는 것이다. 슘페터는 자본가들이 열정적인 기사와 같이 행동하는 한에서만 자본주의가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자본주의의 추진력은 용감한 사람들, 즉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걸고 창의적인 시험 확장을 감행하는 기업가들로부터 나온다. 슘페터는 열망에 가득 찬 자본가를 묘사한다. 자본가는 이윤극대화만이 아니라 창조적 기쁨, 정복의지, 사적 왕국을 세우려는 꿈 등 다양한 동기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이다. 그러한 동기가 혁신을 낳고, 부단한 창조적 파괴로 이어지면서 경기가 순환하고 자본주의는 발전한다.

혁신의 바람직한 결과는 물론 이윤이다. 그러나 정상적 순환궤도에서 탈주하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다. 이 모험이 엄청난 이윤을 가져올지 막대한 손실을 가져올지 아무도 모른다. 철저하게 준비하고 계획한 뒤 예측되는 여러 가지 위험에도 불구하고 순환궤도로부터 탈주하는 모험을 감행하는 것이 기업가에게 요구되는 자세다. 혁신과 기업가 정신이 자본주의를 꽃피운다. 그러나 슘페터는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에서 자본주의의 밝은 면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본주의의 장래를 최종적으로 평가하면서 “자본주의는 잔존할 것인가? 아니다, 나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슘페터가 보기에 자본주의는 매력과 흥분에 휩싸인 기사들이 말을 타고 벌이는 창술 시합과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 창술 시합이 긴장과 열광의 분위기를 잃고 무미건조한 하나의 사업이 되어 갔다. 자본주의는 눈부신 발전을 통해 경제 진보 자체를 자동 기계화하여 발전의 추진력인 기업가의 역할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린다. 독점 기업에서 경제의 혁신이란 과거와 같이 기업가의 개인적 자질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계화된 일상 업무로서 전문가의 손에 의해 사무실 책상 위에서 이루어진다. 자본가 정신이 기계화되어 더 이상 혁신을 혁신이라 할 수 없는 단계, 즉 자본주의가 더 이상 도약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른다.

슘페터는 하나의 비유를 들었다. “중세에서 전쟁은 지극히 개인적인 사항이었다. 무장한 기사들은 평생을 단련하여 무예를 습득하였고, 그 무예 솜씨로 평가받았다. 그 특수기술이 명실 공히 하나의 사회계약의 기초를 이루게 된 사정은 쉽게 이해할 수가 있다. 그런데 사회적 기술적 변화는 그 계급의 기능과 지위를 밑받침 하는 기초를 뒤엎고 드디어 그들을 파괴하고 말았다……전쟁 그 자체는 없어지지는 않았다. 다만 그것은 더욱 더 기계화되었을 뿐이다.”

과거의 전쟁에서 장군의 개인적 판단과 용병술이 승패의 주요한 요인이었다. 장군은 지도자를 의미하였고 전쟁 승리는 장군의 개인적 성공을 의미했다. 그러나 지금은 전술과 용병술이 모두 기계화되어, 지휘관은 복잡한 작전 기구 속에서 일개 사무원으로 변해 버렸다. 항상 정력적인 기업의 기사들은 비기사적인 인물들로 대체되고, 기업가는 상당액의 소득과 안정된 사회적 지위에 안주하여 모험하던 시절과 무한한 부에 대한 욕망을 망각한다. 그래서 슘페터는 자본주의가 소멸할 것이라 예언하였다. 기업 자체가 자본주의적 기질과 자본주의 체제를 사수하려는 정열을 잃게 되고, 정신도 물질도 사회주의에 호의적인 분위기로 되어 간다. 지지자를 잃은 자본주의는 드디어 다른 체제에 자리를 양보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슘페터의 예언이 정확한 것인지 여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슘페터의 생각은 독특한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슘페터는 자본주의의 경제에 관해 낙관적인 분석을 하였다. 그럼에도 슘페터는 경제적 이유가 비경제적 이유로 자본주의가 소멸할 것을 예언하였다. 경제학자로서 경제 발전 자체가 자본주의의 운명을 종국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명시적으로 말한 것은 슘페터가 처음이었다.

 

사회주의가 대안인가?

 

슘페터는 사회주의의 비민주성을 고발한다. 슘페터는 사회주의자들이 자기의 사상이나 이익에 도움이 되는 경우에만 민주주의를 말하는 역사적 사례를 인용하였다. 슘페터는 사회주의를 자본주의가 미숙한 상태에서 등장한 소련의 사회주의와 성숙한 자본주의에서의 사회주의로 나누었다. 그리고 영국의 개량주의적 사회주의를 높이 평가했다.

 

우리가 사례를 통해서 제시하려는 모든 특징을 영국에서 볼 수 있다. 영군의 산업구조나 상업구조는 분명히 일거에 사회화를 성공시킬 정도로 성숙되어 있지 않다……그러나 20세기 초부터 기업가적 노력이 현저하게 위축되었고, 무엇보다 발전과 같은 주요 분야에서 국가 지도 내지 국가 통제를 모든 정당이 인정하고 요구하여 왔다……그리고 영국 국민은 대체로 국가적으로 훈련되어 있다……영국의 노동자는 잘 조직되어 있으며 일반적으로 책임 있게 지도되고 있다.

– 슘페터,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슘페터는 민주주의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정치방식이라고 강조한다. 민주주의가 어느 사회에서나 반드시 최상의 정치방식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적 방식이 효과적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들이 필요하다. 민주주의가 갖추어야 할 조건들을 무시한 채 민주주의 그 자체를 최상의 가치로 이상화하면 안 된다. 그래서 슘페터는 사회주의 체제는 민주주의 없이도 존재할 수 있고, 또 양자가 결합되어 존재할 수도 있다고 결론짓는다.

 

 

 

 

홍승기
인민노련 홍보부를 담당하면서 6월 항쟁을 현장에서 이끈 숨은 일꾼. 술만 사 준다면 지옥에도 함께 들어갈 천진무구한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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