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노동자 계급의 성경_ 카를 마르크스「자본론」
단테도 상상하지 못한 지옥
10억의 대륙, 인도의 건국자 네루는 마르크스의 사상을 받아들인 정치가였다. 13억의 대륙, 중국의 건국 지도자들인 모택동과 등소평 역시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과 『자본론』을 읽고 투쟁에 나섰다. 베트남의 해방 투쟁을 이끈 호지명도 마르크스의 사상을 배운 사회주의자였다. 영화 <모던 타임즈>의 찰리 채플린, ‘상대성이론’의 아인슈타인, ‘불굴의 인간’ 헬런 켈러도 사회주의자였다면? 마르크스의 사상을 모르고서 지난 20세기의 세계사를 이해할 수 없다. 마르크스의 사상은 유럽의 합리주의 사상의 정화이다. 마르크스(K. Marx, 1818~1883)는 독일 철학의 변증법과 프랑스의 사회주의 사상과 영국의 정치 경제학을 계승 발전시켜 자신의 사상을 이루었다. 인문, 사회 과학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마르크스의 이름이 거론될 정도로 마르크스가 20세기의 학문에 미친 영향은 압도적이다. 그 마르크스의 사상의 집약이 『자본론』이다.
마르크스가 살았던 19세기 중반, 유럽 노동자들의 삶은 참혹했다. 마르크스는 노동자의 불행의 원인을 규명했고, 그 해결책을 찾아 나섰다. 『자본론』의 주 무대는 19세기 중엽의 영국 자본주의이고 주된 소재는 노동자의 참상이다. 당시 영국 노동자들의 참상에 대해 1863년의 한 보고서는 이렇게 증언한다. “위원회의 위원인 화이트가 심문한 증인들 중에서 270명은 18세 미만, 50명은 10세 미만이었다. 10명은 겨우 8세, 5명은 겨우 6세였다. 노동 시간은 12시간에서 14, 15시간이고, 야간 노동을 하며, 식사 시간은 불규칙했다. 대다수의 경우가 독성이 가득 찬 작업장에서 식사를 했다. 단테가 이 광경을 보았다면, 그가 상상한 처참하기 짝이 없는 지옥의 광경도 여기에 미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하였을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을 쓰기 위해 무려 10년 동안 대영박물관의 도서관에서 자료를 뒤적였다. 『자본론』에 등장하는 수많은 예들은 대부분 영국 국회에 제출된 공장 감독관의 보고서, 혹은 공중위생에 관한 보고서 등에서 뽑은 것이다. 800여 쪽이 넘는 자본론 제1권에는 19세기 영국 자본주의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지면이 거의 절반을 넘을 정도다. 현실이 그랬다. 나이 8, 9세의 어린아이들은 공장주들의 손에서 하루 16시간씩 노동해야 했다. 인간의 이성과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현실 앞에서 무엇을 해야 했을까?
거대 자본의 탄생, 시초 축적
『자본론』은 뒤에서부터 읽는 게 좋다. 마지막 편인 제8편에서 마르크스는 자본의 시초 축적을 다룬다. 자본의 시초 축적이란 자본이 어떻게 지구상에 출현하게 되었느냐 하는 물음에 대한 연구다. 한국의 대재벌 정주영은 쌀장사 하면서 돈을 벌었고, 김우중은 사무실에서 라면 끓여가며 돈을 모았다고 회고하였다. 이런 얘기들이 사실일 수 있으나 진실은 아니다. 쌀장사하면서 근검절약한 사람,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돈을 모은 노동자들은 너무나 많다. 그러나 그들은 재벌과 거리가 멀다. 그런 식의 답변은 재벌의 신화를 만드는 소재가 될 수 있어도 한국의 자본 축적 과정에 관한 진실은 되지 못한다.
‘시초 축적’은 이런 물음에 대한 답변이다. 우리는 ‘자본’ 하면 큰 건물, 대형 플랜트를 연상하지만, 자본은 ‘자본과 노동의 사회적 관계’를 의미한다. 따라서 자본이 어떻게 탄생했느냐 하는 질문은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느냐 하는 물음이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한다.
시초 축적이 경제학에서 하는 역할은 원죄가 신학에서 하는 역할과 거의 동일하다. 아담이 사과를 따먹자 인류가 죄를 짓게 되었다는 식으로, 아득한 옛날에 한편에는 근면하고 영리하며 특히 절약하는 특출한 사람이 있었고 다른 한편에는 게으르고 자기의 모든 것을 탕진해 버리는 불량배가 있었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대다수는 빈곤했고 처음부터 소수는 부자였다는 이 낡아빠진 어린애 같은 이야기가 매일 우리에게 설교되고 있다. 화폐와 상품은 처음부터 자본은 아니다. 이는 자본으로의 전화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이 전화는 일정한 사정 아래에서만 가능하다. 타인의 노동력을 구매하길 갈망하는 생산 수단의 소유자, 즉 자본가와 자신의 노동력을 자유로이 판매하는 노동자가 서로 대립하여 만나야 한다는 사정이 바로 그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여 자본의 시초 축적은 생산자가 생산 수단을 잃고 빈털터리가 되는 과정과 그 생산 수단이 소수자에게 집중되는 과정이 동시에 진행되는 국면을 의미한다.
– 마르크스, 『자본론』
그러면 어떻게 시초 축적이 진행되었을까? 영국에서는 인클로저 운동은 노동자의 시초의 사례이다. 토지를 빼앗기고 농촌에서 쫓겨난 유랑민들이 형벌과 굶주림 속에서 아무런 권리를 갖지 못하는 상태로 노동자가 되었다. 그리고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대륙에 대한 잔혹한 약탈을 통해 획득한 금, 은이 유럽의 자본의 시초였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시초 축적을 이렇게 규정짓는다. “자본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든 털구멍에서 피와 오물을 흘리면서 이 세상에 나온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잉여 노동의 착취
자본의 목적은 이윤의 증대이다. 그러면 이윤의 원천은 무엇인가? 마르크스는 노동자의 잉여 노동을 착취라고 말한다. 마르크스는 자본가들이 노동자의 잉여 노동을 착취하기 위해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최대한 늘리려 하는 사례를 예시한다. 그 한 사례를 보자. “1836년 6월 초에 듀즈버리(요크셔)의 치안 판사에게 제출한 고발장에 의하면, 베틀리 부근의 8개 대공장의 소유자들이 공장법을 위반하였다. 이 공장주들 중 일부는 12세 내지 15세 소년 5명을 금요일 오전 6시부터 다음날인 토요일 오후 4시까지 식사 시간과 한밤중의 한 시간의 수면 시간 이외에는 조금도 휴식을 주지 않고 혹사시켰다는 이유로 고소당했다. 이 아동들은 이른바 ‘넝마 구덩이’라고 불리는 구멍에서 30시간을 쉴새없이 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곳은 모두 누더기를 찢는 곳으로 그 안의 공기는 성인 노동자라도 계속 손수건으로 입을 가려서 폐를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티끌과 털 부스러기 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런 현실을 대하면 누구나 자본이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한 것이라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이러한 소박한 느낌에 대하여 마르크스는 이렇게 표현했다.
자본가는 단지 인격화된 자본에 지나지 않는다. 자본가의 혼은 자본의 혼이다. 그런데 자본에게는 단 하나의 충동이 있을 따름이다. 즉, 가능한 많은 양의 잉여 노동을 흡수하려는 충동이 그것이다. 자본은 죽어 있는 노동인데, 이 죽어 있는 노동은 흡혈귀처럼 오직 살아 있는 노동을 흡수함으로써 활기를 띠는 것이다.
– 마르크스, 『자본론』
자본주의의 운명은?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노동자의 상태가 자동적으로 개선될 것이라고 한다. 자본주의의 발전은 생산성의 증대를 가져오는 새로운 기계의 도입으로 상징된다. 기계의 도입은 노동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걸까? 마르크스는 자본가가 오직 잉여 노동의 양을 늘리기 위해 새로운 기계를 도입한다고 주장한다. 노동자의 저항에 의해 노동 시간은 감소하고 자본가가 가져갈 수 있는 잉여 노동의 양이 줄어든다. 그래서 자본가는 같은 노동 시간에 더 많은 물건을 생산하기 위해 기계를 도입한다. 노동 시간이 줄어든 대신 생산량을 늘려 잉여 노동의 양을 증대시키려는 것이다. 기계의 도입으로 노동자가 겪는 가장 커다란 고통은 해고와 실업이다. 새로운 기계의 도입은 노동자를 기계로 대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19세기 초반 영국에서는 노동자들이 기계 때문에 일자리를 잃게 되자 기계 파괴 운동에 나서기도 하였다.
그러면 자본주의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마르크스는 공황에 주목하였다. 19세기에 10년을 주기로 공황이 발생하였다. 공황이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 마르크스는 부르주아지가 너무나 큰 생산 수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즉, 부르주아적 사적 소유가 팽창하는 생산력을 감당 못 하고, 그것을 질곡에 빠뜨리는 것으로 설명했다.
마르크스는 역사 발전의 원동력을 생산력에서 찾았다. 인간 역사의 여러 발전 단계에서 생산력은 그에 어울리는 생산 관계를 요구한다. 생산 관계는 법적으로 소유 관계로 표현된다. 예를 들면 물레방아가 봉건제를 낳았다면 제분소는 자본주의적 소유 관계를 낳았다. 자본주의는 생산력의 측면에서 볼 때 날이 갈수록 생산은 사회화되는 반면, 생산 관계의 측면에서 볼 때 사회적으로 생산된 노동의 성과들이 극소수의 자본가들에게 집중되는 모순을 안고 있다. 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이 모순은 심화될 수밖에 없고, 더 이상 생산력의 발전이 자본주의적 소유 관계 내에 머무를 수 없는 지점이 도래한다. 마르크스는 생산력의 발전이 자본주의적 소유 관계를 파괴할 수밖에 없는 시점이 필연적으로 도래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마르크스는 자신이 살았던 시기의 자본주의에 대해 면밀하게 연구했다. 마르크스의 정신에서 배워야 할 점은 자신이 살아가는 당대의 사회 문제를 구체적으로 연구하는 일일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는 마르크스가 살았던 19세기의 자본주의와 현격하게 다른 모습으로 변모해 왔다. 그런데 21세기를 맞이한 지금, 인류의 지성은 아직 마르크스처럼 우리 시대의 현실을 총체적으로 분석, 연구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가 어떻게 운동하는지 합리적으로 분석해 내는 과제는 21세기를 담당할 지성의 어깨에 걸려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과학적인 비판에서 나온 의견이라면 무엇이든지 환영한다. 그러나 내가 한 번도 양보한 일이 없는 소위 여론이라는 편견에 대해서는 저 위대한 플로렌스인 단테가 남긴 다음과 같은 말을 변함없이 나의 좌우명으로 삼을 것이다.
“남이야 뭐라든 너의 길을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