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시작] 애덤 스미스_국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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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심이 사회를 발전시킨다_ 애덤 스미스 『국부론』

 

보이지 않는 손

“우리가 빵을 먹을 수 있는 것은 빵집 주인의 이타심 덕택이 아니라 빵집 주인의 이기심 덕택이다.” 영국의 글래스고 대학의 한 학자는 당대의 상식을 뒤집어엎는 도발적인 발언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모두들 기독교의 교리를 신조 삼아 살던 그 시절,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의 계명을 삶의 더없는 진리로 받들며 살던 그 시절에, 이 학자는 “이기심은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니 이 이기심이 가르치는 대로 살아라.”고 공언했던 것이다. 경쟁만 보장된다면, 또 자유로운 경쟁이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개인의 이기심에 따른 행위들은 사회 전체의 입장에서 볼 때 아름다운 조화를 만들어 낸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도대체 무엇에 의해 개인의 이기심과 경쟁이 사회의 조화로운 발전을 만들어 내는 것일까? “공익을 추구하려는 의도도 없고 자신이 공익에 얼마나 이바지 하는지조차 모르는 사람, 사람들은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한다. 그런데 그들은 그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자신이 전혀 의도하지 않은 부수적 결실(공익)을 얻게 된다.”

학자의 이름은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1790). 이 ‘보이지 않는 손’이 등장하는 책의 이름은 『국부론』이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스미스가 주장하고 싶었던 바는 이른바 ‘레세-페르Laissez-faire’이다. 프랑스어의 ‘Laissez’는 영어의 ‘Let’에 해당하고 ‘faire’는 ‘do’에 해당하는 말이니 이를 우리말로 바꾸어 보면 ‘하도록 내버려 두라’는 정도의 의미이다. 비틀스가 불렀던 ‘Let it be’와 같은 말이 바로 ‘레세-페르’이다.

 

제발 내버려 두세요

지금도 영국산 모직 하면 알아주지만 당시에도 영국은 품질 좋은 모직물을 가지고 전 유럽의 무역을 석권했다. 영국 경제가 이 모직 생산을 위해 얼마나 광분했던가는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토마스 모어의 한마디가 잘 웅변해 준다. 그 당시의 단적인 예를 들어보면 이렇다. 1820년 스코틀랜드의 공작부인은 79만 에이커의 토지에서 일하던 1만 5천 명의 소작인을 쫓아내고 그곳에 1만 1천 필의 면양을 들여놓고선 쫓겨난 농민들에게는 2에이커의 불모지를 나누어주었다. 엘리자베스 제8년의 법률 제3호에 의하면 양, 새끼 양, 숫양을 수출한 자는 초범일 경우 모든 재산을 영원히 몰수당하고 일 년간 구금된 뒤, 장날에 마을에서 왼손을 절단당하고 못 박히게 되었으며, 재범일 경우에는 중죄인으로 판결 받아 사형을 당한다. 짐승을 외국에 팔아넘긴 벌은 사형이었다.

영국의 법률은 양모의 운반을 철저히 규제했다. 양모는 가죽용 천으로 만든 용기에 담아야 하고, 용기 겉에 3인치 이상의 크기의 글씨로 ‘양모’라고 기입하게 했다. 이를 어기면 양모와 용기를 모두 몰수당하고 양모 소유자는 무게 1파운드당 3실링의 벌금을 물어야 했다. 양모는 말이나 마차에 실어서는 안 되며 일출에서 일몰까지의 시간에만 운반이 가능하다. 해안에서 10마일 이내의 지역에 있는 모든 양모 소유자는 양모를 깎은 지 3일 안에 양모의 양과 보관 장소를 세관에 서면으로 보고해야 한다. 또 양모를 옮기기 전에 양모의 양, 무게, 구매자의 이름․주소, 운반 예정지 등등을 통보해야 한다.

여기에 애덤 스미스가 ‘레세-페르’를 외친 이유가 있다. 애덤 스미스는 모직물을 둘러싼 거추장스럽기 짝이 없는 법적 제약들을 집어치워 버리라고 주장하였다. 스미스의 관찰에 의하면 이러한 법적 제약으로 이익을 챙기는 자들은 소수의 모직물 제조업자뿐이었다. 영국의 양모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거래되는 가장 질 낮은 양모의 가격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으로 모직업자에게 넘어갔다. 스미스는 말했다. “우리나라의 중상주의에 의해 주로 진흥되는 것은 부자 권력자의 이익을 위한 산업뿐이다. 가난한 자와 빈궁한 자의 이익을 위한 산업은 너무나 자주 무시되거나 억압받고 있다.”

 

분업의 위대한 힘

『국부론』은 900여 쪽이 넘는 방대한 양이지만 그 속에서 전개되는 경제 이론은 단순하다. 스미스는 책의 서문에서 한 국민의 연간 노동은 그 국민이 소비하는 생활필수품과 편의품 모두를 공급하는 원천이라고 선언함으로써 상품 가치의 원천이 노동이라는 사상을 밝혔다. 이는 국가의 부는 농업과 제조업에 종사하는 생산자, 노동자들의 노동에 달려 있다는 사상을 시사하는 것이다. 스미스가 왜 이런 명제를 서문의 서두에 밝히게 되었을까? 스미스는 국가의 부를 증대시키려면 금이나 은과 같은 화폐를 많이 축적해야 한다는 중상주의에 대한 대결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스미스는 중상주의자들의 착각을 비판했다.

국민이 소비하는 생활필수품을 공급해 주는 것은 얼른 보면 금이나 은과 같은 화폐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금과 은은 이런 상품을 구입할 때 사용하는 교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상품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바로 농산물을 만드는 농민, 공산품을 만드는 노동자들의 노동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한 나라의 부는 그 국민의 연간 노동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 애덤 스미스, 『국부론』

그러면 한 나라의 부를 증진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조건 제조업에다 많은 사람을 투입하여 노동의 양을 늘리면 되는가? 스미스는 그 유명한 ‘핀 공장’의 작업 공정을 예로 들었다. “핀 공장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다수의 부문으로 분할되어 특정의 노동을 수행한다. 첫째 사람은 철사를 잡아 늘이고, 둘째 사람은 철사를 곧게 하며, 셋째 사람은 철사를 끊고, 넷째 사람은 끝을 뾰족하게 하며, 다섯째 사람은 머리를 붙이기 위해 끝을 문지른다. 머리를 만드는 데도 두세 개의 다른 조작이 필요하다. 머리를 붙이는 일, 핀을 휘게 하는 일이며, 핀을 종이로 싸는 일 역시 하나의 작업이다. 핀 제조업은 이처럼 약 18개의 독립된 조작으로 분할되고 있다. 만일 한 사람의 노동자가 혼자서 핀을 제조한다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하루에 20개 이상을 만들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핀 공장에서는 10명이 분업을 통해 하루 4만 8천 개 이상의 핀을 만들 수 있다. 한 사람이 하루에 4천 8백 개의 핀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경제학사에서는 애덤 스미스를 매뉴팩처(공장제 수공업) 시대를 대변하는 경제학자라 하여 산업 혁명 이후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자본주의 시대의 경제학자들과 구별한다. 핀 공장에서 진행되고 있던 분업의 경제적 의의를 높이 평가하는 논설에서 매뉴팩처 경제학자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스미스는 분업이 노동 생산력을 증대시키는 이유를 세 가지로 들어 설명한다. 첫째는 노동자의 기술이 증진하는 것이고, 둘째는 작업 공정에서 이동에 드는 시간이 절약되기 때문이며, 셋째는 반복되는 동작을 통하여 다수의 기계를 발명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회가 수없이 다양한 업종으로 분화되었을 때 한 나라의 경제는 어떤 원리에 의해 조화를 획득하게 될까? 분업은 교환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스미스에 의하면 분업의 정도는 시장의 크기에 제한받는다. 시장이 발달하지 않은 오지의 사람은 자신의 생활필수품을 자급자족해야 하기 때문에 특정의 일을 붙들고 있을 수 없다.

 

이익을 이야기 하라

스미스는 자유로운 시장이 상품의 가격을 결정하고, 상품의 수요에 따라 상품의 생산량을 조절하며, 생산자에게 공정한 노동의 성과를 배분해 주는 자동 조정 장치라고 말한다. 이 점을 이해하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냥꾼의 세계에서 물개 한 마리를 잡는 데 필요한 노동이 사슴 한 마리를 잡는 데 필요한 노동의 두 배라면, 한 마리의 물개는 당연히 사슴 두 마리의 가치를 갖는다. 만일 시장에서 물개와 사슴이 1:2로 교환되지 않고 물개와 사슴이 1:1로 교환된다면 물개 사냥꾼들은 업종을 바꾸어 사슴 사냥에 나서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물개의 공급은 줄어들고 사슴의 공급은 늘어난다. 수요와 공급의 조정 과정은 물개와 사슴이 1:2로 교환될 때까지 진행될 것이다. 결국 시장은 각각의 생산물이 자기의 가치에 따라 교환되는 것을 도울 뿐 아니라 이 과정을 통하여 사회 전체의 수요에 따라 각 상품의 생산량을 통제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스미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 주인,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의 이타심 덕택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자기의 이익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이타심에 호소하지 않고 그들의 이기심에 호소해야 하며, 그들에게 우리의 필요를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익을 이야기해야 한다.
– 애덤 스미스, 『국부론』

스미스의 논리는 매우 소박하고 더러 오류도 있다. 경쟁의 자유만 주어지면 경제는 합리적으로 운용될 것이라거나, 모든 상품은 자유로운 경쟁으로 자신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 점은 사실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일하게 노동자가 제공하는 노동력이라는 상품만은 자본가와 자유로운 경쟁을 할 수가 없다. 19세기 자본주의 역사는 스미스의 주장대로 자유방임주의의 길을 걸었으나, 그 시대에 노동자 계급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단테가 『신곡』에서 묘사한 지옥의 고통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다.

자유방임주의는 산업 혁명을 전후로 하여 부르주아 계급이 절대 군주와 영주, 독점 상인들과 싸우기 위해 치켜든 깃발에 불과하였음을 이후의 역사는 증명한다. 19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유럽의 자본주의는 격심한 공황을 주기적으로 겪으며 자유로운 경쟁을 배제하는 독점자본이 출현하였다. 자유경쟁 자본주의는 자신의 이데올로그 스미스를 버리고 독점자본주의로 변신해 나갔다.

스미스의 주장이 한계가 있지만 자본주의 비판, 사회를 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인식이 스미스로부터 연원하였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홍승기
인민노련 홍보부를 담당하면서 6월 항쟁을 현장에서 이끈 숨은 일꾼. 술만 사 준다면 지옥에도 함께 들어갈 천진무구한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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