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나무노 『생의 비극적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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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돈키호테처럼 싸워라

우나무노 『생의 비극적 감정』

지조있는 철학자

사실상 그는 이성을 상실했기 때문에 세상 그 어떤 미치광이도 생각하지 않았던 이상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조국을 위해 헌신하는 기사가 되어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며, 지금까지 읽었던 소설에 나오는 기사의 모험을 직접 실행에 옮겨 자신의 이름과 명성을 길이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오래전 증조부님이 사용했던 낡은 무기들을 꺼내 깨끗하게 손질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투구는 있었지만 투구의 얼굴 가리개가 없었다. 그는 솜씨를 발휘하여 판지로 투구의 절반을 가리는 얼굴 가리개를 만들어 끼워 넣었다……투구를 해결하고 야윈 말을 보러갔다. 피골이 상접한 말이었지만 훌륭한 기사에 맞는 말의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수많은 이름을 지었다 버리고, 다시 지었다가 버리기를 반복한 끝에 말의 이름을 로시난테라고 정했다. 말에게 마음에 꼭 드는 이름을 붙여주고 나자 이번에는 자신의 이름을 짓고 싶었다.

그래서 탄생한 이름이 돈키호테이다.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는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는 엉뚱한 생각과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흔히 돈키호테에 비유한다. 그러나 우나무노( J. M. Unamuno, 1864~1936)의 생각은 달랐다. 우나무노는 돈키호테에게서 영웅성을 발견하였다. 돈키호테를 이때까지 인간이 창조한 영웅 중에서 가장 위대한 영웅의 이상을 가진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우나무노는 1864년에 스페인의 북부지방 공업도시 빌바오에서 태어났다. 20살에 마드리드 국립대학을 졸업한 후, 모교에 남기를 원하는 은사들의 요청을 뿌리치고 고향인 빌바오로 가서 개인교수를 하면서 후진 양성에 힘썼다. 28살에 살라망카 대학의 교수가 되고 38살에 살라망카 대학의 총장으로 임명되었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우나무노는 연합군 측을 두둔하면서 독일을 맹렬히 공박했다. 우나무노는 반독일 행위로 인해 총장직에서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 61살 때, 리베라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다. 리베라는 스스로를 독재자라고 말하며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지식인을 탄압했다. 우나무노는 추방되었다가 탈출하여 프랑스로 망명했다. 리베라 정권이 무너진 후 우나무노는 귀국하여 다시 살라망카 대학의 총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런데 당시 스페인에서는 전국적으로 파업, 태업, 데모, 테러가 발생하여 국민들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을 틈타 독재세력이 부활을 기도하고 있었다. 우나무노는 젊은이들을 향해 조국의 미래를 위해 일어날 것을 호소하며, 독재세력에 맞섰다. 우나무노는 일생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굳건히 지키면서 행동하였던 철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삶에 대한 고민이 삶의 활력이다

『생의 비극적 감정』은 우나무노가 1912년에 쓴 책으로 본래의 제목은 ‘인간과 국민에 있어서 생의 비극적 감정’이다. 이 책이 쓰여 질 당시 스페인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스페인은 한 때 세계 최강의 국가였다. 막강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광범위한 식민지를 두었던 국가였다. 그러나 산업혁명에 성공한 영국에 주도권을 빼앗기면서 하락하기 시작하였다. 결정적으로 1898년에 미국과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열강의 대열에서 미끄러졌다. 스페인 국민들은 스스로 스페인이 4등 국가로 전락했다고 생각했다. 스페인 왕정은 무능력했다. 과거의 영광 재현은 한갓 꿈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과거의 영광 재현이 열강의 대열에 다시 합류하고 식민지를 확대하는 것인 한 올바른 것일 수 없다. 그것은 식민지로 전락하게 되는 국가의 국민들에게 고통일 뿐이기 때문이다. 우나무노는 과거의 영광 재현을 위해 이 책을 쓴 것이 아니었다. 우나무노는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이 부닥칠 수 있는 패배와 실의에 맞서 끊임없이 결단하고 싸우라고 말한다.

우나무노는 『생의 비극적 감정』에서 살과 뼈를 가진 인간으로부터 시작한다. 인간은 관념적인 존재가 아니다. 살과 뼈를 가지고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세상 모든 생물이 죽는데, 왜 인간만이 죽음에 대한 관념을 갖게 되는 것일까? 우나무노는 인간이 이성을 가진 동물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인간은 자기 앞에 죽음이 가로놓여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이 죽음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심각한 고민을 하고 때로는 인생 그 자체를 무의미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뼈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은 심각한 고민을 하면서도, 때로는 삶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살아간다. 왜 그럴까? 우나무노는 인간이 ‘영원한 삶’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영원한 삶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도 인간이 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성은 인간에게 죽음을 알게 해 주면서도 인간에게 희망을 안겨 준다.

인간이 가진 희망은 반드시 구체적이거나 합리적인 것이 아니다. 인간의 희망이 감정에서 우러나오는 막연한 현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뼈와 살로 이루어진 구체적인 인간이 추상적인 희망에 매달려 살아간다는 엄연한 현실은 하나의 비극이라고 우나무노는 말한다. 이런 현실을 마땅히 설명해 줄 말이 없어서 ‘생의 비극적 감정’이라고 우나무노는 이름 짓는다.

이성은 죽음을 인간에게 알려 주지만, 이성이나 철학은 인간에게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해 주지 못한다. 인류의 역사가 있은 이래 수많은 철학자들이 삶의 본질에 대해 말하고 연구하여 왔지만, 그 누구도 그 문제에 대해 만족할 만한 답을 주지 못하였다. 인간은 답을 얻지 못한 채 불확실한 삶을 살아간다. 또한 죽음을 의식하면서 일생을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우나무노는 바로 이런 사실이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고 생각했다. 인간이 삶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힘이 인간의 삶을 지탱해 줄 수 있겠는가. 우나무노는 삶이 한정되어 있음을 엄연한 기정사실로 받아들이자고 아울러 삶에 대한 고민을 삶의 활력소로 이용하자고 제안한다. 우나무노는 말한다. “인간이여, 기운을 내라! 죽은 이후의 일은 죽은 다음에 걱정하자. 지금은 ‘나는 살고 싶다. 영원히 살고 싶다.’는 열망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살과 뼈의 구성체를 에너지의 원천으로 이용하자.”

사막에서 외치리라

우나무노는 인간 존재에 대한 인식을 스페인 국민들이 활력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데 이용한다. 어떻게 활력을 찾을 것인가? 우나무노는 인류 역사 이래 나타난 철학 사상과 종교에 대해 검토한다. 그리고 그런 사상과 종교가 스페인 국민들에게 활력을 줄 수 없다고 말한다. 우나무노는 돈키호테에게서 활력을 찾자고 했다. 돈키호테는 온갖 고민을 하면서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과감하게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다. 돈키호테가 가진 삶에 대한 의욕이야말로 인간이 이때까지 창조해 놓은 영웅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영웅의 기상이다. 우나무노는 돈키호테를 사상적 영웅으로 삼아 돈키호테와 같은 삶을 살자고 하였다. 우나무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사상 속에서 영웅을 찾는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영웅은 뼈와 살이 있는 철학자가 아니라 가공적이지만 행동을 보여 주었던 존재이다. 이러한 존재야말로 모든 철학자들을 합친 것보다 더 실재적이라고 할 것이다. 이런 인물이 도대체 누구냐고 되물을 필요가 없다. 그 인물은 바로 우리의 돈키호테이다. 왜냐하면 돈키호테는 철학적인 돈키호테주의를 확실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돈키호테적인 철학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돈키호테주의는 엄밀히 말해 이상주의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돈키호테는 이상을 위해서 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돈키호테주의는 정신주의라고 말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돈키호테는 정신을 위해서 싸웠기 때문이다.” 철학자는 살과 뼈로 이루어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사상에서 활력을 찾을 수 없다. 활력은 가공적 인물에게서 찾아야 한다. 그 인물이 바로 돈키호테이다.

우나무노는 감정이 비록 비극성을 띠긴 하지만 고귀한 운명의 발로라고 말한다. 그래서 감정이 있는 민족은 삶의 비극성을 절감하지 않는다고 우나무노는 주장한다. 왜냐하면 삶의 비극적 고민으로 인하여 비극적 감정이 생겨나지만, 이 비극적 감정이야말로 삶의 고민을 말살시키고 삶에 대한 의욕을 북돋워 주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우나무노는 이런 비극적 감정을 신앙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우나무노는 이성이 신앙보다 우위에 있으면 희극적 죽음을 초래하고, 신앙이 이성보다 우위에 있으면 비극적 죽음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인간은 불멸을 갈망한다. 물론 인간의 이성은 불멸에 대한 열망이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말해 준다. 그렇지만 인간은 결코 그 열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것은 분명 모순이지만, 우나무노는 이런 모순을 합리적으로 지탱해 주는 것이 감정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모순 속에서 살고, 또 모순에 의해 살고 있기 때문에 항상 생의 비극적 감정을 맛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비극적 감정은 아무런 희망 없이 영속된다고 말한다.

이 굴레를 벗어나려고 발버둥 친 것이 돈키호테주의이다. 우나무노에게 돈키호테주의는 승리 없는 싸움을 영원히 계속하는 절망을 나타낸다. 그러나 승리가 없더라도 싸움은 계속되어야 한다. 우나무노는 스스로를 돈키호테라 생각했다. 그래서 스페인 사회에 횡행하는 온갖 철학 및 종교와 맞서 싸웠다. 왜 돈키호테처럼 엉뚱한 싸움을 계속하는가? 우나무노는 말한다. “오늘날 이 세계에서 돈키호테가 해야 할 사명은 무엇인가? 사막에서 외치는 일이다. 그렇다. 인간들은 비록 돈키호테의 목소리를 못 듣더라도 사막은 듣는다. 어느 날 이 사막은 반향이 있는 밀림으로 변할 것이다. 또한 돈키호테가 홀로 지르는 소리는 사막에 심어진 씨로 남을 것이다. 급기야 거대한 삼나무로 자랄 것이다. 그리하여 이 삼나무는 백 개나 되는 혀로 삶과 죽음의 신에게 영원한 환희의 호산나를 부를 것이다.”

인민노련 홍보부를 담당하면서 6월 항쟁을 현장에서 이끈 숨은 일꾼. 술만 사 준다면 지옥에도 함께 들어갈 천진무구한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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