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그송, 창조적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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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생명은 기계가 아니다

베르그송 『창조적 진화』

철학, 자연과학에 의존하다

사실에 대한 고찰을 실증과학에 맡기는 것이 신중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물리학과 화학이 무기물질을 다루고, 생물학과 심리학이 생명의 현상을 다룬다. 그때 철학자의 임무는 명백히 한정된다. 철학자는 과학자의 손으로부터 사실들과 법칙들을 건네받는다. 사실들과 법칙들을 넘어서 심층적인 원인에 도달하려하건, 혹은 더 멀리 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믿고 과학적 인식의 분석 자체로 심층적 원인을 증명하려하건, 양쪽 모두 철학자는 과학자가 건네준 사실들과 관계들에 대해서 이미 판결이 난 사태를 대하듯 존경심을 가지게 된다. 철학자는 과학적 인식에 인식능력비판을 올려놓거나, 그것이 잘 안 되면 형이상학을 올려놓을 것이다. 인식 그 자체, 인식의 구체성은 과학이 할 일이지 철학이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분담이 모든 것을 뒤섞어 혼란에 빠지게 한다는 것을 왜 알지 못하는가?

베르그송(H. Bergson, 1859~1941)은 『창조적 진화』에서 당대의 과학과 철학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진단했다. 『창조적 진화』는 1907년에 출판되었다. 그러므로 베르그송 당대의 철학의 상황을 이해하려면 19세기 후반의 상황을 살펴보아야 한다. 1781년에 독일의 철학자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을 발표한 이후 철학의 중심주제는 인식론이었다. 즉, 진리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에 대한 탐구가 주 주제를 이루었다. 칸트는 진리를 알 수 있는 틀, 예를 들면 개념들이 선험적으로 존재한다고 하였다. 칸트는 자연과학의 급속한 발전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자연과학의 성과를 검토하면서 철학의 고유한 영역이 무엇인가에 대해 오랜 동안 사색한 결과 자신의 학설을 내놓았다. 그런데 칸트의 제자를 자처한 철학자들은 칸트와 달리 인식론에 대한 탐구에서 세계 혹은 사물에 대한 탐구를 배제한 채 선험적 개념에 대한 탐구에 매달렸다. 그래서 세계와 사물에 대한 탐구를 자연과학에 미루어 놓았다.

칸트와 다른 방향에서 철학을 추구한 학파가 나타났다. 그 학파 역시 자연과학의 급속한 발전에 큰 영향을 받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영국의 철학자 스펜서였다. 스펜서는 경험과 관찰을 중시하는 경험주의 전통을 이어받아 자연과학의 성과를 철학에 반영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사회적 진화론’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사회적 진화론은 다윈의 진화론을 사회에 적용하여 ‘적자생존의 법칙’으로 사회를 설명하고자 하는 이론이다. 그런데 스펜서의 철학 역시 칸트의 제자들의 철학과 마찬가지로 세계와 사물에 관한 탐구를 자연과학에 미루었다.

베르그송이 활동하던 시기에 철학은 대부분 세계와 사물에 대한 탐구를 자연과학에 미루어둔 채, 자연과학에서 발견한 성과에 대해 논리적 분석을 하거나 아니면 성과를 그대로 가져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베르그송의 철학은 이런 경향에 대한 도전이었다.

공부 잘하는 유태인

베르그송은 1859년에 프랑스 파리에서 폴란드계 유대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베르그송은 어려서부터 과학에 소질을 가지고 있어서 대학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과학의 배후에 숨어 있는 형이상학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고, 자연히 철학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22살에 철학교수 자격을 획득하여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하였다. 베르그송은 대학시절부터 스펜서의 철학을 연구하였다. 스펜서의 진화론은 베르그송에게 감명을 준 것일 뿐만 아니라 베르그송이 극복하고자 한 것이었다. 베르그송이 자신의 주저의 제목을 ‘창조적 진화’라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선, 책 제목 ‘창조적 진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창조’와 ‘진화’는 얼핏 모순된 개념처럼 보인다. 오늘날까지도 생명의 기원과 관련하여 창조론과 진화론이 대립하고 있지 않은가. 베르그송이 말하는 창조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연속적인 변화 속에서 일어나는 질적 비약을 의미한다. 베르그송이 진화 앞에 창조를 붙인 이유는 진화론을 그대로 사회이론과 철학에 적용하려한 스펜서의 철학에 대한 반대함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스펜서의 철학은 당대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진화론을 그대로 사회이론과 철학에 가져오면 결정론이 된다. 인간의 삶과 사회의 변화가 진화의 법칙에 따른 것이라면 인간에게 있어 자유, 사회에 있어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인간의 운명과 사회의 진행방향은 결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스펜서의 철학에 따르면 적자생존의 법칙에 의해 어떤 수단을 쓰던 승리한 자가 정당화된다. 스펜서의 철학은 제국주의자의 논리의 철학적 토대가 되었다. 제국주의가 우월하고 식민지로 전락한 국가들은 열등하므로 제국주의의 지배는 정당한 것이 된다.

베르그송은 『창조적 진화』를 저술한 목적을 이렇게 쓰고 있다. “인식론과 생명론을 서로 분리할 수 없다. 생명론은 인식비판을 수반하지 않으면 지성이 위임해 준 개념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생명론은 하나의 메카니즘을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보고, 이 메카니즘 속에 여러 가지 사실을 덮어놓고 밀어 넣는 일밖에 못 한다. 이리하여 안성맞춤의 부호법이 얻어진다. 그것은 실증 과학에서는 필요할지 모르지만, 대상의 직접적인 관찰은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 인식론은 지성을 생명의 일반적 진화 속에 되돌리지 않는다면, 인식의 틀이 어떻게 해서 형성되었는지, 어떻게 하면 지성을 확장하거나 초월할 수가 있는지를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지 않을 것이다. 인식론과 생명론이라는 이 두 가지 탐구는 합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베르그송은 인식론과 생명론을 분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생명론은 주어진 개념에 사실들을 끼워 맞추려고 하는 한계가 있다. 즉, 생명 현상에 대한 탐구의 결과에 대해 반성적 고찰을 하지 않고 그대로 모든 현상에 적용하려는 문제가 있다. 인식론은 생명론에 대한 탐구가 없다면 지성의 확장을 가져올 수 없다. 인식론은 반성적 고찰을 하지만 세계와 사물에 대한 새로운 고찰은 하지 않게 때문이다. 그러므로 생명 현상에 대한 탐구의 결과에 대해 반성적 고찰을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롭게 새로운 현상을 탐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인식론과 생명론은 긴밀하게 연결되어야 한다.

창조적 진화란 생명의 자유로움

베르그송이 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이론은 기계론과 목적론이다. 기계론은 생명을 일종의 기계장치로 보는 사고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로부터 시작하여 베르그송 당대에 널리 퍼져 있었다. 베르그송은 생명의 진화를 통해 인간과 같은 유기체가 결코 단순한 기계장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베르그송은 시간의 개념을 도입하여 기계론에 반대한다. “기계론적 설명은 우리의 사유가 전체로부터 인위적으로 분리시키는 체계들에 대해 유효하다. 그러나 전체 그 자체와 이 전체 속에서 그것의 이미지를 따라 자연적으로 형성되는 체계들을 기계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선험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경우 시간은 불필요하게 될 것이고 심지어 실재하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기계적 설명의 본질은 과거와 미래를 현재의 함수로 계산할 수 있다고 간주하고 그렇게 해서 모든 것이 주어졌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가설에서 계산을 할 수 있는 초인간적 지성이 있다면 그는 단번에 과거, 현재, 미래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목적론은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목적과 연결시켜 설명하는 이론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독일의 철학자 라이프니츠의 예정조화설이다. 예정조화설은 인간을 포함한 우주의 질서의 조화가 신에 의해 예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사물과 존재들은 미리 그려진 계획을 실현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베르그송은 목적론에 대해 이렇게 비판한다. “만약 예측 불가능한 것이 없다면 우주에는 발명도 없고 창조도 없으며 시간이 불필요하게 된다. 기계적 가설에서처럼 여기서도 역시 모든 것이 주어졌다고 가정된다. 이와 같이 이해되었을 때 목적론은 거꾸로 된 기계론에 불과하다.”

베르그송은 기계론과 목적론을 동시에 넘어서고자 하였다. 그것은 생명론과 인식론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이었다. 베르그송은 과학과 철학, 즉 생명론과 인식론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정식화하였다. “철학은 과학을 따라가면서 과학의 진리 위에 형이상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아주 새로운 종류의 인식을 겹쳐 놓아야 한다. 그러면 과학적이든 형이상학적이든 우리의 모든 인식은 되살아난다……우리는 과학과 철학을 결합하여 점진적으로 발달시키면서 존재 자체의 심증에 도달한다.”

이런 관점에서 베르그송은 다윈의 진화론을 검토한다. 다윈은 유리한 변이의 자연 선택으로 새로운 기관과 기능, 새로운 유기체와 새로운 종이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베르그송은 진화란 지속, 생명력의 축적, 생명과 정신의 발명력, 절대적으로 새로운 것의 끊임없는 전개라고 하여 다윈과 다른 진화개념을 사용하였다. 다윈의 학설을 그대로 사회에 적용하는 ‘사회진화론’은 올바르지 않다. 진화는 기계적 메커니즘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생명은 기계 장치 이상의 것이다. 생명은 성장하고 자신을 회복하며 환경을 어느 정도 마음대로 만들어 낼 수 있는 힘이다.

베르그송은 생명의 진화가 세 가지 방향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생명이 거의 물질적인 식물의 무감각에 빠져 나태하게 안전만을 찾아 수천 년 동안 비겁하게 살아남는다. 다른 하나는 생명의 정신과 노력이 개미나 벌의 경우처럼 본능으로 응결된다. 또 다른 하나는 척추동물의 경우처럼 생명이 자유를 추구하여 본능을 벗어 버리고 용감하게 사고의 무한한 모험을 감행한다. 생명은 지성에 관심을 갖게 되고 지성에서 희망을 찾게 된다. 그러므로 진화는 자연의 선택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생명 외적인 어떤 계획이 있어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창조적 진화란 생명의 자유로운 활동에 의해 일어나는 진화이다.

인민노련 홍보부를 담당하면서 6월 항쟁을 현장에서 이끈 숨은 일꾼. 술만 사 준다면 지옥에도 함께 들어갈 천진무구한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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