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케로, 의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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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도덕의 실천은 의무이다

키케로 《의무론》

선함과 현명함, 그것이 문제로다

퀸투스 스카이볼라는 사고 싶은 농장의 가격을 알아보았다. 농장 주인이 농장 값을 불렀을 때, 퀸투스는 그 농장이 그 이상의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농장 주인이 부른 가격보다 10만 세스테르케스를 더 주었다. 이 농장 주인이 선하고 정직한 사람이란 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농장 주인이 팔 수 있었던 가격보다 더 적은 돈을 받고 팔았다면 현명한 처사가 아니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바로 여기에 사람들이 선한 사람과 현명한 사람을 서로 다르다고 평가하는 위험한 생각이 도사리고 있다. 엔니우스의 말도 그러하다. ‘공허하구나, 자기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취하지 않는 현인의 현명함이라니.’ 이익이 된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엔니우스와 내가 의견을 같이하기만 한다면 엔니우스의 말은 옳다.

키케로(M. Cicero, BC106~BC43)는 『의무론』에서 이런 문제를 제기하였다. 키케로가 제기하는 문제는 이렇다. 농장 주인은 자신이 생각한 가격보다 더 많은 돈을 받고 농장을 팔았다. 이때 농장 주인의 태도는 올바른 것인가? 사람들은 만약 농장 주인이 퀸투스가 주는 대로 받지 않고 농장을 넘겼다면 현명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키케로는 농장 소유주가 현명할지는 모르나 선하지는 않다고 보았다.

선함과 현명함, 이 가운데 우리는 어떤 것을 선택해야할까? 이 문제는 농장을 판매하는 경우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명예냐 부냐, 정직이냐 이익이냐, 사랑이냐 돈이냐 등등.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철학자들은 자신의 입장에 따라 다른 대답을 내놓는다. 고대 로마의 에피쿠르스 학파나 근대의 공리주의자들은 쾌락을 따르라고 한다. 어떤 행위에서 생겨나는 쾌락과 고통을 비교하여 쾌락이 크면 그 행위를 하라는 것이다. 부가, 이익이, 돈이 고통보다 쾌락을 준다면 서슴없이 그것들을 선택하라고 말한다. 동양의 맹자라면 전혀 다른 선택을 말할 것이다. 맹자는 견리사의(見利思義), 즉 이익을 보거든 의를 생각하라고 한다. 이익이 아니라 도덕적 올바름을 선택하라고 할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 역시 마찬가지이다. 칸트는 정언명법을 주장한다. 칸트는 도덕법칙이 수단으로 추구되어서는 안 되고 목적으로 추구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키케로는 이상의 두 가지 흐름 중에서 한 흐름의 선구자이다. 키케로는 현명함이 아니라 선함을 선택하라고 한다. 한 발 더 나아가, 키케로는 선한 행동이 현명한 행동이고, 선하지 못한 행동은 현명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말한다.

공화정의 수호자

키케로는 기원전 106년에 고대 로마의 아르피눔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로마와 그리스에서 교육을 받고 폼페이우스 트라보 밑에서 군 복무를 했다. 기원전 81년에 처음으로 법정에 등장하여 클루엔티우스를 변호한데 이어, 기원전 80년에는 존속 살인이라는 날조된 혐의로 기소된 섹스투스 로스키우스를 훌륭하게 변호하여 법조계에서 명성을 얻었다. 기원전 75년에는 시칠리아 섬 서부에서 재무관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고, 기원전 64년과 63년에는 집정관으로 선출되었다. 기원전 60년에 카이사르가 카이사르, 크라수스, 폼페이우스의 정치 동맹에 참가하라고 권유했지만, 키케로는 그 동맹이 위헌이라며 거절했다. 기원전 59년에는 카이사르가 갈리아 원정을 앞두고 자신의 참모로 일할 것을 권유했지만, 이 또한 거절했다. 키케로는 공화정을 옹호했기 때문에 공화정을 폐지하려는 카이사르에 반대하였던 것이다.

키케로는 기원전 58년에 정적 클로디우스가 호민관이 되자 목숨의 위협을 느껴 마케도니아로 탈출했다. 그 다음해에 로마로 돌아와 이번에는 카이사르, 크라수스, 폼페이우스 정치 동맹에 가담했지만 곧 공직에서 물러났다. 키케로는 기원전 51년에 로마를 떠나 소아시아 남부의 시칠리아 지방을 다스리다가 로마로 다시 돌아왔다. 그 무렵,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는 권력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키케로는 카이사르를 저지하기 위해 폼페이우스의 편을 들었다. 그러나 이 싸움은 카이사르의 승리로 끝났다. 키케로는 카이사르가 암살되자 로마로 돌아와 옥타비아누스와 손을 잡고 안토니우스와 전쟁을 벌이고자 하였다. 그러나 옥타비아누스가 안토니우스, 레피두스와 삼두정을 수립하면서, 키케로는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키케로는 권력자 안토니우스를 피해 도망 다니던 시절, 아테네에 유학중이던 아들이 ‘도덕적 선과 유익함’에 대해 묻는 편지를 보내왔다. 키케로는 아들에게 보내는 답신 형태로 기원전 44년에 『의무론』을 지었다. 키케로가 죽기 1년 전이었다. 키케로는 이 책에서 도덕적 선의 실천이 인간의 의무라고 말했다. 그래서 책의 제목 역시 『의무론』이라 했다.

키케로의 네 가지 덕

그러면 키케로가 말하는 도덕적 선이란 무엇인가? 키케로는 네 가지의 덕에 대해 말한다. “너는 플라톤이 말한 것처럼 ‘육안으로 구별할 수 있다면 지혜에 대한 놀라운 사랑을 일으키게 될’ 도덕적으로 명예로운 것의 형상과 모습을 보고 있다. 도덕적으로 선하고 명예로운 것은 다음 네 가지 중의 하나에서 나온다. 첫째 지혜에 대한 통찰과 이해에서 나오거나, 둘째 인간 사회를 유지하고 각자의 것을 나누어주며 계약된 것에 대한 신의에서 나오거나, 셋째 굽히지 않는 고귀한 정신의 위대함과 강고함에서 나오거나, 넷째 행동이나 말에 절도와 인내가 내재해 있는 질서와 온건함에서 나온다. 네 부분은 비록 서로 중복되거나 혼합되어 있지만, 어떤 유의 의무는 단일 부분에서 나오기도 한다.”

키케로는 지혜, 정의, 용기, 인내를 네 가지 덕이라 했다. 키케로가 주장한 네 가지 덕은 플라톤을 연상시킨다. 플라톤은 지혜, 용기, 절제를 덕이라 했다. 정의가 더 첨가되기는 했지만, 이 또한 플라톤의 주장과 다르지 않다. 플라톤은 세 가지 덕이 실행되는 것을 정의라고 했다. 키케로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의무론』에 대해 “이 책들은 남의 책을 베낀 사본이다. 나는 거기에 낱말을 공급했을 뿐이다.”라고 썼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윤리 철학에 관한 백과사전적 지식을 전해 준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키케로가 베끼기만 한 건 아니다. 이전 철학자들의 주장과 다른 독창적 주장을 하였다. 키케로의 주장은 플라톤의 주장과 다르다. 플라톤은 각각의 덕을 각각의 계급과 연관 지었다. 즉, 플라톤은 이상적 국가의 구성원을 세 개의 계급, 즉 통치계급, 수호계급, 생산계급으로 나누고, 통치계급은 지혜, 수호계급은 용기, 생산계급은 절제의 덕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키케로는 네 가지 덕을 계급과 연관시키지 않고 모든 사람이 실천해야할 의무이자 규범이라고 했다. 그래서 칸트는 윤리학에 관한 한 플라톤에게서 배우지 않고 키케로에게서 배웠다고 했다.

윤리학의 한 흐름의 선구자

키케로는 네 가지 덕 중에 지혜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왜냐하면 인간의 본질과 가장 밀접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새로운 것을 듣고 배우기를 원한다. 인간은 비밀스러운 일이거나 신기한 일에 대해 알고자 하는 호기심과 욕망을 가진다. 키케로는 인간이 지혜를 가짐으로써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다고 했다. 키케로는 지혜와 관련하여 두 가지 오류를 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체하여 맹목적 동의를 해서는 안 된다. 둘째, 애매모호하고 어려우며 필요하지 않은 것에 너무 많은 정력과 노력을 쏟아서는 안 된다. 우리가 깊이 되새겨야할 덕목이다.

키케로는 또한 정의를 매우 중요시한다. 정의는 덕의 광채를 빛나게 한다. 키케로는 정의로운 사람이 선한 사람이라고 했다. 자선, 친절, 관대함이 모두 정의와 결부된 말이라고도 했다. 키케로는 정의의 기능에 대해 이렇게 썼다. “정의의 일차적 기능은 정의롭지 못한 것으로 인해 해를 입지 않는 한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으며, 공공물은 공공을 위해 사용하고 개인의 사유물은 개인을 위해 사용하는 데 있다.” 키케로에 의하면, 본래 자연 상태에서 모든 것이 공공물이었다. 그 뒤에 공공물이 개인에게 할당되었는데 누군가 자기 몫보다 더 많은 것을 탐낸다면 그 사람은 인간 사회의 법을 위반한 것이 된다. 이런 키케로의 주장은 훗날 사회계약론과 정의론에 이론적 토양을 제공하였다. 키케로는 이렇게 말했다. “자연 상태인 인간의 본성을 우리 안내자로 하고, 공동의 이익을 위해 공동의 이익을 중심문제로 생각하며, 서로간의 의무를 교환해야 한다. 때에 따라 기술, 노동, 재능을 주고받음으로써 인간 사회를, 인간과 인간의 결속을 공고하게 해야 한다.”

키케로는 용기와 인내에 대해 마음의 혼란과 동요를 억제하고, 본능적인 요구를 이성으로 복종시키는 능력이라고 했다. 욕망은 사람을 충돌질 한다. 욕망을 통제하지 않으면 한계가 정도를 넘어서게 되어 정신적 혼란뿐만 아니라 신체적 이상이 생길 수도 있다. 이성으로 욕망을 통제해야 모든 정신적 혼란에서 벗어나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 특히 쾌락을 멀리해야 한다.

키케로는 자신이 제시한 덕을 인간이 실행해야할 의무라고 했다. 이렇게 주장함으로써 이후 등장하는 윤리학의 한 흐름의 선구자가 되었다. 좋은 것이 아니라 옳은 것을 추구하고, 도덕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추구해야 한다. 이런 주장은 오늘날까지도 윤리학의 한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의 계몽철학자 볼테르는 키케로의 『의무론』에 대해 이렇게 썼다. “아무도 이 책보다 현명하고 진실하며 유용한 것을 쓰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거나 훈시하려는 야심을 가진 작가가 만약 키케로의 『의무론』보다 더 잘 쓰기를 원한다면 그 작가는 허풍장이이거나 아니면 이 책을 베끼는 책을 쓰게 될 뿐이다.”

홍승기
인민노련 홍보부를 담당하면서 6월 항쟁을 현장에서 이끈 숨은 일꾼. 술만 사 준다면 지옥에도 함께 들어갈 천진무구한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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