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스, 정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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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의란 공정성이다

롤스 《정의론》

‘정의’가 철학 주제가 되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주저인 『국가론』을 ‘정의란 무엇인가’로부터 시작하였다. 플라톤은 한 국가를 이루는 세 계급, 즉 통치계급, 수호계급, 생산계급이 각자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을 정의라고 하였다. 이런 플라톤이 ‘정의’에 대한 정의는 오늘날 결코 만족스러운 것이 아니다. 외형적으로 신분적 구분에 의한 계급이 없어진 사회에서 플라톤의 정의는 통용되기 어렵다.

최근에 미국의 법학자 마이클 샌델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들고 나와 우리 사회에서 하나의 ‘신드롬’이 되었다. 샌델의 책이 신드롬이 되었던 이유는 다수의 사람들이 우리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정치적 의사표현조차 제약하는 국가는 결코 정의롭지 못하다. 그러나 막연하게 공동체 내에서의 정치적, 도덕적 합의를 주장하는 샌델의 주장에서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샌델 신드롬으로 ‘저스티스(justice)’는 우리 사회의 유행어가 되었다.

‘샌델 신드롬’이 생겨나면서 한 권의 책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바로 롤스(J. Rawls, 1921~2002)가 쓴 『정의론』이다. 롤스는 미국에서 태어나 프린스턴 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고, 코넬 대학과 매사추세츠 공과 대학을 거쳐 하버드 대학 철학 교수를 역임하였다. 1958년에 「공정으로서의 정의」라는 논문을 발표한 이후, 「분배적 정의」, 「시민 불복종」, 「정의감」 등 정의와 관련된 주제를 다룬 논문을 계속 발표하였다. 롤스는 20여 년 간의 탐구의 결과를 모아 1971년에 『정의론』을 발표하였다. 이 책은 오랫동안 철학의 뒷전으로 밀려나 있던 정의의 문제를 플라톤이 구상했듯이 철학의 주요 주제로 부각시켰다.

좋은 것보다 옳은 것이 먼저다

롤스는 『정의론』의 ‘서문’에서 글을 쓴 의도를 설명하면서 자신이 토대로 하고 있는 철학이 무엇인지를 밝혔다. 롤스 당대에 도덕 및 윤리학에서 지배적인 철학은 공리주의였다. 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에게 최대 행복을 보장하는 행위는 최선의 것이고, 불행을 가져오는 행위는 최악의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어떤 한 개인이 한 행위가 가져오는 쾌락과 고통의 양을 측정하여 쾌락의 양이 고통의 양보다 많으면 좋은 것이고, 반대로 고통의 양이 많으면 불행이라는 것이다. 공리주의자들은 이런 원리를 사회에도 적용한다. 한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개인이 쾌락의 양과 고통의 양을 측정하여 쾌락의 양이 많으면 좋은 사회이고 고통의 양이 많으면 불행한 사회가 된다.

롤스는 공리주의를 비판하였다. 롤스는 공리주의가 ‘좋음’과 ‘옳음’을 구분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분배를 예로 들어보자. 10개의 물건을 한 사람에게는 9개, 다른 사람에게는 1개를 나누어주었다. 두 사람이 느낄 쾌락의 양과 고통의 양을 비교해본 결과, 쾌락의 양이 많다면 공리주의자들은 좋은 일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롤스는 그런 분배는 결코 올바른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분배의 ‘정의’가 무시되고 개개인의 만족도만으로 행복과 불행을 비교하는 일은 결코 올바르지 않다.

그러므로 롤스의 정의론은 사회적이다. 개개인의 행, 불행보다 정의가 우선한다. 그래서 롤스는 자신의 철학이 ‘사회계약론’의 전통에 서 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내가 시도해왔던 일은 로크나 루소 그리고 칸트가 제시한 사회계약의 전통을 보다 일반화하는 것이었다……나아가서 이러한 이론이 공리주의에 비해 정의에 관한 보다 나은 체계적 설명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논의를 전개해왔다. 결과적으로 도달한 결론은 그 성격상 지극히 칸트적인 것이다.

– 롤스, 『정의론』

원초적 입장과 무지의 장막

그렇다면 롤스는 사회계약론의 전통에서 무엇을 이어받았을까? 사회계약론은 자연 상태의 인간이 계약을 맺어 국가가 생겨났다는 주장이다. 롤스는 자연 상태라는 말 대신에 ‘원초적 입장’이란 말을 사용한다. 그러나 전통의 사회계약론과 달리 롤스는 자연 상태에서의 계약을 특정 사회 혹은 특정한 형태의 국가를 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원초적 합의의 대상은 정의의 원칙이다. 즉, 자신의 이익 증진에 관심을 가진 자유롭고 합리적인 사람들이 평등한 최초의 입장에서 공동체의 기본 조건을 규정하기 위한 원칙을 찾는 게 원초적 합의라는 것이다.

원초적 입장은 실재 존재했던 상태가 아니다. 롤스 역시 그 점을 인정한다. 그런데 왜 원초적 상황을 가정하는가?

원초적 입장은 역사상 실재했던 상태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문화적 원시상태라 생각해서도 안 된다. 원초적 입장은 일정한 정의관에 이르도록 규정된 순수한 가상적 상황이다. 이러 상황에서는 아무도 자신의 사회적 지위나 계층상의 위치를 모른다. 또한 누구도 자기가 어떤 소질이나 능력, 지능, 체력 등으로 천부적으로 타고났는지를 모른다. 정의의 원칙들은 무지의 장막에서 선택된다. 그러므로 아무도 타고난 우연의 결과나 사회적 여건으로 인해 유리하거나 불리해지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유사한 상황에 처하게 되어 아무도 자신의 특정 조건에 유리한 원칙들을 구상할 수 없기 때문에 공정한 합의와 약정의 결과 정의의 원칙들이 선택된다. 각자 상호 동등한 관계인 원초적 입장이란 여건이 주어지면 도덕적 인격체로서, 즉 자신의 목적과 정의감을 가진 합리적 존재로서 개인들에게 이 최초의 상황이란 공정하다.

– 롤스, 『정의론』

롤스는 원초적 입장을 가정함으로써 정의란 무엇인가를 말하고자 하였다. 롤스가 말하는 정의는 ‘공정성’이다. 원초적 입장은 원초적 평등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롤스에게 무지의 장막이 필요했다. 무지의 장막에서는 어느 누구도 자신의 사회, 경제, 계층적 지위를 알지 못한다. 또한 소질이나 능력, 지능, 체력 등 태어날 때부터 가지는 천부적 능력 역시 알지 못한다. 이런 상태가 되어야 원초적 평등이 이루어진다. 이런 원초적 평등의 상태에서 선택이나 결정을 해야 공정한 선택 혹은 결정이 된다고 롤스는 보았다.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함으로 자신 자신의 이해에 입각한 선택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무지의 장막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해를 가지고 다투지 않음으로 최소의 노력으로 최선의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정의로운 선택이 이루어진다.

롤스의 정의론을 ‘공정으로서의 정의’라 한다. 롤스는 자신의 정의론이 칸트의 정언명법에 따른 것이라 하였다. 칸트의 정언명법은 방법이나 결과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인 것이다. 즉, 롤스는 ‘공정으로서의 정의’가 수단이나 방법이 아니라 목적으로 추구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정의의 두 원칙

그렇다면 원초적으로 평등한 상태에서 사람들은 어떠한 선택을 할까? 롤스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원칙을 두 가지로 제시했다.

나는 원초적 입장에서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두 개의 상이한 원칙을 선택할 것이라 주장한다. 첫 번째 원칙은 기본적인 권리와 의무의 할당에서 평등을 요구하는 것이다. 두 번째 원칙은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 예를 들면 재산과 권력의 불평등을 허용하되 모든 사람, 그 중에서도 사회의 최소 수혜자에게 불평등을 보상할 만한 이득을 가져오는 경우에만 정당한 것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런 원칙들은 소수자의 노고가 전체의 보다 큰 선에 의해 보상된다는 이유로 어떤 제도를 정당화하는 일은 배제한다. 다른 사람의 번영을 위해 일부가 손해를 입는다는 것이 편의적일지는 모르나 정의로운 것은 아니다.

– 롤스, 『정의론』

롤스가 말하는 첫 번째 원칙이란 시민권의 평등을 의미한다. 선거권과 피선거권, 언론과 집회의 자유, 양심과 사상의 자유, 재산권과 신체의 자유, 부당한 체포 및 구금을 당하지 않을 자유 등 시민의 기본적인 자유에 대해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첫 번째 원칙에서 주목할 점은 롤스가 시장의 자유를 배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첫 번째 원칙에 대해서는 큰 논란이 없지만, 두 번째 원칙과 관련해서는 논란이 많다. 두 번째 원칙을 이른바 ‘차등의 원칙’이라 하는데, 롤스가 도입한 독특한 개념이다. 차등의 원칙을 최소 수혜자 원칙이라고도 한다. 최소 수혜자 원칙이란 사회적 약자에게 최대한 이익을 주어, 사회적 강자와 약자 사이의 차이를 최대한 좁혀야 한다는 원칙이다. CEO와 평사원의 예를 들어보자. CEO는 평사원보다 많은 월급을 받는다. 그러면 CEO와 평사원의 월급 차이는 어느 선까지 인정된 수 있는가? CEO가 경영능력을 발휘하여 평사원에게 이익이 돌아갈 수 있게 할 수 있는 선까지이다. 그러므로 CEO와 평사원의 월급 차이가 무한대로 커지면 안 되고, 오히려 최대한 그 차이가 좁혀져야 한다.

물론 롤스는 두 원칙 중에서 첫 번째 원칙을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순위를 매긴 이유는 첫 번째 원칙이 요구하는 평등한 자유의 제도로부터 벗어나게 되면 어떠한 사회적, 경제적 이득으로도 보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와 소득의 분배 및 권력의 계층화는 반드시 동등한 시민권의 자유 및 기회 균등을 보장하는 선에서 생각해야 한다.

– 롤스, 『정의론』

홍승기
인민노련 홍보부를 담당하면서 6월 항쟁을 현장에서 이끈 숨은 일꾼. 술만 사 준다면 지옥에도 함께 들어갈 천진무구한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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