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 자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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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유의 범위와 한계를 논하다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자유를 포기할 자유는 없다

사람이 그 자신을 노예로 팔아 버리는 행위는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는 것이다……그는 자신이 자신을 결정한다는 지위를 스스로 파괴한다. 그의 몸은 자유롭지 못하고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자신을 결정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자유의 원리는 자유를 포기하는 것 역시 자유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는 행위가 허용되는 것은 자유가 아니다.

밀(J. S. Mill, 1806~1873)의 『자유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유럽에서 17, 18세기는 자유와 평등을 얻기 위한 투쟁의 시기였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다!”는 루소의 주장은 혁명적 구호였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자유, 평등, 박애는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보편적 이념이 되었다. 그러나 19세기 들어서면서 보편적 이념과 실상의 괴리가 문제 되기 시작하였다. 마르크스는 노동자에게 자유란 계약을 맺을 때의 자유뿐이라고 자유의 허구성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밀은 다른 측면에서 자유를 문제 삼았다. 밀은 자유가 어느 범위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를 탐구했다. 그래서 자신의 자유를 포기할 자유는 없다고 하였다.

밀은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밀의 아버지는 대표적인 공리주의 철학자 벤담의 친구였다. 아버지는 아들의 교육에 대해 몹시 신경을 썼다. 밀은 3살 때 그리스어를 배웠다. 아버지는 아들의 그리스어 교육을 위해 집안 하인들에게도 그리스어를 사용하도록 했고, 그리스어를 못하는 하인은 아예 말을 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밀은 7살 때 플라톤의 저작을 읽었고, 8살 때 라틴어를 배웠다. 12살 때부터는 논리학과 경제학을 배웠다. 밀의 스승은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엄격한 교육으로 밀은 또래 친구가 없었고 또래 친구들의 놀이문화를 알지 못했다.

20살 때 밀은 “네 인생의 목적이 모두 실현되었다면 나는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가?”라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밀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조기 교육을 받아 이미 학문적으로도 경지에 올라섰지만 자기 인생에 대해 회의를 하였다. 24살 때 테일러 부인을 만나면서부터 밀은 마음을 가라앉히기 시작하였다. 밀은 유부녀인 테일러 부인과 20년 동안 교제를 하다 테일러 씨가 사망하자 결혼하였다. 밀, 테일러 부인, 테일러 씨의 삼각관계는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밀은 말년에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노동자와 여성의 권익향상을 위한 의정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자유론』은 밀이 테일러 부인과 결혼한 후인 1859년에 출판되었다. 밀은 이 책에 대해 테일러 부인과 공저라고 밝히며, 주의 깊게 저술하고 철저히 수정한 책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자유’라는 주제에 대해 논쟁중이다. 만약 밀의 『자유론』이 없었다면 우리는 더 소모적인 논쟁의 늪에 머물러 있었을지도 모른다.

민주주의와 자유를 혼동해선 안 된다

자유는 어느 범위까지 허용될까? 밀은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자유가 허용된다고 말한다. 자유에 대한 적극적 해석이다. 이 명제는 오늘날까지도 ‘자유’에 대해 토론할 때 기초가 되는 명제이다. 밀의 말을 들어보자.

적어도 ‘자유’라고 불릴 만한 유일한 자유는 우리들이 다른 사람들의 자유를 빼앗지 않는 한, 자유를 얻으려고 하는 다른 사람들의 노력을 방해하지 않는 한, 우리들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우리들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자유이다. 각자는 육체적, 정신적 및 영적인 의미에서 그 자신의 건강의 정당한 관리자이다. 다른 사람에 대해 자기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강요하는 것보다, 각자 좋다고 생각하는 바를 자유롭게 행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인류 전체로 보아 얻는 것이 더 많다.

–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그런데 자유의 문제는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자유는 개인과 개인의 관계, 집단과 집단의 관계, 국가와 개인의 관계 등 여러 관계에 걸친 복잡한 문제이다. 특히 국가와 개인의 관계가 중요하다. 우리는 종종 민주주의와 자유를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민주주의에서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기 때문에 민주주의 국가에서 개인은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밀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권력을 행사하는 국민이 반드시 권력의 행사를 받는 국민과 동일하지 않다. 또한 자치 역시 각자가 그 자신에 의해서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의해 통치를 당하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국민의 의사란 실제로는 국민 속에서 가장 활동적인 부분의 의사, 즉 다수자나 또는 자기네들을 다수자로서 인정시키는 데 성공한 사람들의 의사를 의미하고 있다. 따라서 국민이 그 성원의 일부를 억압하려는 일이 있을 수 있으며, 이것에 대해서 다른 일체의 권력 남용과 마찬가지로 철저한 경계가 필요하다.

–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다수가 소수의 의견에 재갈을 물리는 경우가 많다. 어떤 경우 소수는 올바른 사실조차도 발표할 자유를 갖지 못한다. 올림픽에서 반칙으로 우리 선수가 이긴 경우를 생각해보자. 반칙이 분명하지만 그 말을 꺼낼 수가 없다. 반칙이라고 말하는 순간 지탄받거나 심할 경우 매국노로 몰리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과 국민 사이에 암묵적인 폭력이 분명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밀은 언론과 사상의 자유에 주목한다.

언론과 사상의 자유는 왜 중요한가

언론과 사상의 자유에 관한 밀의 주장을 들어보자.

가령 한 사람을 제외한 전 인류가 동일한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인류가 그 한 사람에게 말을 못 하도록 입을 다물게 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 한 사람이 권력을 장악했을 때 전 인류에게 말을 못 하도록 하는 것이 부당한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의견의 발표를 억제하는 데 따르는 해악은 그 억제가 전 인류로부터 행복을 빼앗는다는 점에 있다. 그것은 지금의 사람뿐 아니라 후세의 사람들의 행복을 빼앗는다. 그 의견을 지지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반대하는 사람들의 행복 역시 빼앗는다.

–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밀은 언론과 사상의 자유에 대해 둘로 나누어서 고찰한다. 첫째, 박해받는 사상이 정당할 경우이다. 정당한 사상을 권력이나 부당한 힘으로 억압해서는 안 된다. 둘째, 박해받는 사상이 잘못되었을 경우이다. 그 사상이 잘못되었더라도 탄압해서는 안 된다. 정당한 사상이라 할지라도 상대의 사상을 탄압하다보면 ‘죽어 버린 독단’이 되어 생생한 진리가 될 수 없다. 형식상으로 정당하더라도 생기를 잃어버린 사상은 진리를 잃게 된다. 그러므로 반대 의견과 진지하한 토론이 중요하다.

개성은 존중받아야 한다

행위의 자유는 어떠한가? 밀은 개인의 행위를 ‘자기 자신에게만 관계되는 행위’와 ‘다른 사람에게 관계되는 행위’로 나눈다. 이 중에서 자기 자신에게만 관계되는 행위는 일체 자유로워야 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관계되는 행위에 대해서는 사회가 간섭할 권한이 있다. 예를 들면 상행위, 독약 매매, 술주정꾼의 주정, 매음과 도박 등이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밀은 『자유론』을 통하여 두 개의 공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첫 번째 공리는 개인은 그 행위가 그 자신 이외의 어떤 사람의 이해에도 관계되지 않는 한 사회의 제재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번째 공리는 다른 사람의 이익을 해치는 행위에 관해서는 개인은 당연히 사회에 대해 책임을 가지며, 사회는 다른 사람의 이익을 옹호해 주기 위해 사회적, 법률적 형벌을 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에 대한 제재는 다수가 소수를 억압하거나 다수가 소수에게 강요하는 일이어서는 안 된다. 일체의 고귀하고 어진 것은 모두 개인의 독립성에서 싹터 나오기 때문이다. 다수의 견해도 결국은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일차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관계되지 않는 일에 있어서는 개인이 자기를 주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기 자신의 성격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전통이나 습관이 행위의 기준으로 되어 있는 곳에서는, 인간의 행복의 주요한 요소의 하나이자, 실제로 개인과 사회의 진보의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인 것이 결여되게 된다……모든 사람들의 성격이 사회의 성격을 본받아 형성되도록 강요하려는 사회의 경향, 그 자체에 대한 방위도 필요하다. 개인의 독립성에 대하여 집단의 의견이 정당하게 간섭할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와 같은 한계를 찾아내어, 그것이 침해되지 않도록 강구하는 것은 정치적 압제를 막는 것과 마찬가지로 바람직한 인간의 상태를 유지해 가는데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밀은 애덤 스미스나 벤담과 다르다. 그 기본적인 차이는 인간에 대한 인식에 있다. 애덤 스미스나 벤담은 인간의 이기심에 주목한다. 애덤 스미스와 밴담에 의하면 인간은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려는 존재다. 그러나 밀은 인간을 다르게 인식한다. 자신이 추구하는 것에 따라 자신을 결정할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다. 밀에게 인간은 쾌락적 동물이 아니라 이성적 존재이다. 그렇다고 밀이 인간을 전적으로 신뢰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밀은 자유의 중요성과 아울러 자유의 범위를 논한 것이다.

홍승기
인민노련 홍보부를 담당하면서 6월 항쟁을 현장에서 이끈 숨은 일꾼. 술만 사 준다면 지옥에도 함께 들어갈 천진무구한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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